제55회 한국기자상 심사평
한국기자상이 올해로 시상횟수로 55회를 맞았습니다. 햇수로는 57년째입니다. 유신선포 1972년과 12.12쿠데타 1980년, 독재정권으로 인한 시상을 걸렀던 역사가 한국기자상의 의미를 새삼 상기시키는 듯 합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7년 엄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뛰어난 보도활동과 민주언론창달에 공적이 뚜렷한” 기자를 찾아 포상하기 위해 한국기자상을 제정했습니다.
‘한국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만, 퓰리처상은 미국 언론재벌 퓰리처의 기부금으로 콜롬비아 대학이 운영하는 반면, 한국기자상은 한국기자협회가 직접 운영하며 심사위원들도 대부분 기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래서 퓰리처상은 특종상도 있지만 더 많게는 피처라이팅 기사, 저술. 등 언론문화 창달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한국기자상은 권력 감시 보도 등 민주주의 언론 가치 제고에 비중을 두는 전통이 형성된 듯 합니다.
제55회 한국기자상은 지난해 12개월 동안 이뤄진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들과 새롭게 출품된 작품을 포함해 모두 110편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토론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과정을 거쳐 8편의 한국기자상 수상작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10편 중 1편을 확정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대상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기자상 후보작 110편 모두 두 말할 나위 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또 보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등 그야말로 ‘민주언론 창달’에 기여한 ‘좋은 보도’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포털과 소셜미디어 환경에 언론이 상업적으로 포획되어 버리고 지배권력의 억압과 언론의 정파적 자기 분열로 인해 언론생태계와 언론인의 직업적 삶의 환경이 매우 핍진해지는 하수상한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수상하는 한국기자상 기사들과 또 100여편의 수상후보작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국 기자들의 정의감과 근성은 살아 있다, 아니 선배 세대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큰 위로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수상자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리고, 심사라는 현실로 인해 아쉽게도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많은 역량있는 기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상작 8편 및 조계창기자상 1편에 대한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취재보도부문
△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소송전」 (KBS 최형원·최유경·이도윤 기자)
보도는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과거 자체 취재 보도 내용과 연결해 보강 취재함으로써 학폭 문제를 이슈화함은 물론 교묘하고 부당하게 행사하는 권력을 감시하고 저지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LH 부실시공과 전관특혜」 (KBS 김지숙‧이지은‧김보담·박상욱 기자) 보도는 LH 아파트 부실시공 이면에 LH의 오래된 관행인 ‘전관특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한 최초의 보도였을 뿐만 아니라 전관 감리 회사가 부실시공으로 4년 동안 6차례나 벌점을 받고도 LH 사업을 계속 수주한 사실을 고발해, 부실시공의 고질적 원인인 ‘전관특혜’를 근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서이초 교사 극단적 선택…교권이 무너졌다」 (한국경제신문 이혜인‧안정훈 기자)
보도는 단순 발생 사건으로 지나칠 수도 있는 사안을 놓치지 않고 보도해 사회적 의제로까지 끌어올렸고, 보도 이후 수만 명의 교사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생존과 교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교육 당국은 관련법 제·개정을 발표하는 등 교권 강화를 향한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청부 민원’ 의혹」 (MBC 이재욱·배주환·이혜리 기자) 보도는 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한 방송사들에 대한 방심위의 무더기 과징금 의결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방심위의 정파적 편향성과 의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결여 문제를 결정적으로 폭로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기획보도부문
△ 「서울로 가는 지역 암 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한겨레신문 박준용·권지담·채반석·조윤상 기자) 보도는 지역과 서울의 의료진 능력 차이가 명확하게 검증되지도 않은 상황임에도 환자들이 서울로 집중되는, 지역 의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깊이 있게 입체적으로 다룬 수작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였습니다.
△ 「특수활동비 등 검찰 예산 최초 공동검증」 (뉴스타파·부산MBC·경남도민일보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 보도는 누더기 정보를 공개한 검찰 횡포에 맞서, 감춰진 정보들을 재판과 협업을 통해서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사라는 이종 매체의 협업과 재판을 통해서 정보공개 청구를 이뤄낸 것은 타 언론사에게도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 지역취재보도부문
△ 「해병대원 실종, 구명조끼 없이 수색」 (연합뉴스 대구경북취재본부 김선형‧윤관식‧박세진‧황수빈 기자) 보도는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고 허리까지 차올라 흐르는 급류에 무리하게 들어가 수색하다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고 특히 구명조끼 미착용 사실을 해병대원들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확인해 줌으로써 이 사건이 중요한 정치 사회 이슈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지역기획보도부문
△ 「제3자가 된 피해자-‘부산 돌려차기’ 등」 (부산일보 안준영‧양보원·변은샘 기자) 보도는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최초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년간 피해자의 행적을 동행하며 그가 부딪혀야만 했던 제도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취재진은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 피해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 수사기관 내부규정 및 준칙 등 현행 사법 체계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짚어내는 등 피해자를 위한 ‘회복적 사법’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제시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습니다.
■ 연합뉴스 선양 특파원으로 재직 당시 순직한 故 조계창 기자를 기리기 위해 한국기자협회와 연합뉴스가 공동으로 제정해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조계창 국제보도상’ 수상작은 △ 「8000원혼 우키시마호의 비극」 (부산일보 이승훈·변은샘·손희문 기자) 보도를 선정했습니다. 78년 전 일본 땅에서 한인 강제 징용공 등 8000명이 숨진 세계 최대의 해양사고였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유해 발굴과 송환, 나아가 추모도 없었던 비극을 현재 시점에서 상기시켜 준 수작이었습니다. 지면 1면의 광고를 없애 주목도를 높인 과감한 편집이 눈길을 끌었고, 일본 큐슈 최대 신문사인 서일본신문과의 장기 합동 취재도 협업 모델로 돋보였다는 평가였습니다.
올해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기자분들에게 심심한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분열과 혐오, 비지성과 부정의가 난무하는 혼돈 속의 한국 사회가 기자 여러분의 좋은 보도, 옳은 보도로 인해 그래도 좀더 투명한 사회, 좀더 공정한 사회, 좀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난해 노고 많으셨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슬기로운 기자생활 영위하시길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기자! 홧팅!입니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