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한국기자상 심사평
한국기자상은 1967년 엄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기자협회가 “뛰어난 보도활동과 민주언론창달에 공적이 뚜렷한” 기자를 찾아 포상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올해로 55년째를 맞았습니다. 72년과 80년 정치적 혼란으로 시행하지 못해 올해 53회입니다.
‘한국의 퓰리처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만, 퓰리처상은 미국 언론재벌 퓰리처의 기부금으로 콜롬비아 대학이 운영하는 반면, 한국기자상은 한국기자협회가 직접 운영하며 심사위원들도 대부분 기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래서 수상작들도 권력 감시 보도가 많고 ‘기자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으로 한국기자상이 자리매김한 듯 합니다.
제53회 한국기자상은 지난해 12개월 동안 이뤄진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들과 새롭게 출품된 작품을 포함해 모두 105편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토론과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과정을 거쳐 6편의 한국기자상 수상작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5편 중 1편을 확정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대상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기자상 후보작 105편 모두 두 말할 나위 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또 보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등 그야말로 ‘민주언론 창달’에 기여한 ‘좋은 보도’였음을 인정합니다. 포털환경으로 공론장의 붕괴 우려가 높아지고 언론의 정파적 분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역시 한국 기자의 정신과 근성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수상후보작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라는 현실로 인해 아쉽게도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많은 역량있는 기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상작 6편에 대한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취재보도부문에서, △ 「공군 성폭력 사망 은폐 사건」 (MBC 신재웅 기자)보도는 밝히기 어려운 군의 조직적인 은폐를 낱낱이 파헤쳐 이후 잇따른 군 내부 성폭력 보도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권 차원에서 자극적인 영상을 배제하는 취재윤리가 돋보였습니다.
△ 「곽상도 의원 아들에 50억 등 ‘화천대유 자금 추적기’」 (CBS 홍영선·윤준호·김구연·김태헌·서민선 기자)보도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와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보도해 이 문제를 최초로 공론장에 진입시켰고, 보도 내용들이 곽 의원 구속 등 사실로 밝혀졌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취재과정에서도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등을 꼼꼼히 추적해 증거기반의 보도를 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대장동 사건은 진영에 따라 전혀 다른 프레임과 관점으로 보도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고, 수뢰사건의 다른 편의 ‘대장동 특혜의혹’ 보도도 수상후보작으로 동시에 검토되었으나 여전히 진행형의 의혹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표결에 의해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 경제보도부문에서는 △ 「국세청 ‘세정협의회’ 비리 추적…50년만에 ‘폐지’까지 이끌어내」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보도 1편을 선정했습니다. 세정협의회가 전직 세무서장 등 전관의 재취업이나 사후뇌물 창구로 이용되었다는 것과 세정협의회 관련 국회 증인출석을 저지하기 위해 국세청이 조직적 행동을 벌였다는 것을 기사화해 제도 자체를 50년 만에 폐지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언론사도 개별기업으로서 다루기 어려운 보도를 했다는 점과 함께 그동안 관련 보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언론의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보도였다고 평가했습니다.
■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인 △ 「탐사보고서「기록」3D프린터와 암」 (YTN 기획탐사팀) 보도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하나인 3D프린터와 암의 연관성을 3D프린터 업무를 하다 희귀암에 걸린 교사 사례를 놓고 실험, 관련 논문 검색, 해외 인터뷰, 정부 매뉴얼 변화 과정 등에 대한 증거기반의 과학적인 취재를 통해 상당부분 입증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직은 제한적인 소수 사례에 관한 가설 입증 차원의 보도이긴하지만 산업체와 학교 등에서 3D프린터 보급의 확산세를 감안할 때 파급력있는 보도였다는 평가였습니다.
△ 「5·18 북한특수군 김명국」 (JTBC 봉지욱·라정주·송우영·채승기·김동훈 기자)보도는 일부 정치인들이 악용하고 오랫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5·18 북한군으로 인용됐던 김명국을 추적해 스스로를 탈북민 정명운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광주 침투설은 지어낸 이야기였으며, 5·18 땐 광주가 아닌 평양에 있었다고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관련 논란을 완전 종식시키는 중요한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지역기획보도부문에서는 △ 「감춰진 진실-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 (강원일보 최기영·이현정·김수빈 기자)보도 1편이 선정됐습니다.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은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 동·서해안에서 조업 중인 어민들이 북한의 경비정에 납북돼 고초를 겪고 돌아왔으나 공권력에 의해 고문·폭력에 시달리며 간첩으로 조작된 일로 전국의 피해자는 3600여명, 강원도 동해안의 경우 1500명에 달하지만 재심 등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경우는 46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동안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는 있었으나, 대상자 및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총괄적인 데이터까지 조사, 보도함으로써 이 문제를 새로운 의제로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연합뉴스 선양 특파원으로 재직 당시 순직한 故 조계창 기자를 기리기 위해 한국기자협회와 연합뉴스가 공동으로 제정해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조계창 국제보도상’ 수상작에는 △ 「'조선인 강제노역' 사도광산 세계유산 일본 후보로 유력」 (연합뉴스 김호준·이세원 기자)보도가 선정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이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특파원이 추적 끝에 선도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한-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시킨 공적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올해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기자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기자 근성과 역량을 발휘한 좋은 보도들 덕분에 한국 사회가 좀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병과 백신, 방역정책과 관련한 과학 보도 부문의 수상작 뿐만 아니라 후보작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보도의 전문성 측면에서 한국언론의 과제를 생각나게 합니다.
지난 2021년 노고 많으셨습니다. 2022년 임인년에도 더 좋은 기사로 한국기자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국 기자! 홧팅!입니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