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근 심사위원장(숙명여대 교수)
최근 한국 사회는 높아진 국민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고 전근대적인 권력과 제도, 관행이 곳곳에서 거센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이고 공정한 사회, 물질적 계산보다 개개인의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 약자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 언론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잘 읽어내고, 지체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많은 의미 있는 보도를 통해 사회변혁의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감춰진 국가권력의 비리와 권력남용을 고발하고, 부패하고 불공정한 사회관행을 폭로하며, 그동안 관심 받지 못하던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우수한 기사들이 많았습니다.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이러한 기사들을 대상으로 엄중한 심사 끝에 5개 부문, 총 8편의 기사를 제49회 한국기자상 수상작으로 결정했습니다.
취재보도부문을 수상한 3편 가운데 시사IN의 <단독 입수 안종범 업무수첩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속 보도>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12권을 입수해 정밀 분석함으로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데 크게 기여한 기사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수첩 내용에 암호처럼 적혀있는 사실들을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지난한 노력을 통해 국정농단의 실체를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최순실이 부하 직원과 주고받은 카카오톡과 대포폰 사용 내역도 처음 공개했습니다.
TV조선의 <김정남 암살 최초 보도 및 후속 보도>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을 국내 언론이 최초로 보도한 진귀한 세계적 특종입니다. 신속성에서 가장 앞섰을 뿐 아니라 첫 보도에서 사건 내용을 거의 완전하게 제시한 정확성이 돋보였습니다. 막연한 첩보를 토대로 모든 취재망을 가동해 끈질기게 추적하고, 확인과 재확인을 거쳐 사실관계를 완전하게 파악한 뒤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후속보도에서도 북한의 암살 배후인물과 살해에 사용된 독가스 성분을 가장 먼저 밝혀내는 등 앞서 갔습니다.
한겨레신문 한겨레21부의 <국가정보원 비선 민간여론조작 조직 실체> 연속보도는 국정원이 우파 단체들을 동원해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조작을 조직적으로 자행해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탐사기사입니다. 국정원의 여론 조작 실체는 그 후에도 많은 후속기사들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고 있지만 이 기사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취재팀이 수년에 걸친 집요한 추적을 통해 밝혀낸 이 기사는 보도의 성역으로 남아있던 국정원의 불법적 활동을 양지로 끌어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획보도부문을 수상한 한겨레신문의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기사는 우리 사회에 채용비리와 청탁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 보도였습니다. 300곳이 넘는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하고, 수백 명이 넘는 취재원을 인터뷰하는 심층취재를 통해 만들어낸 탐사보도의 모범 사례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기사가 집중적으로 파헤친 강원랜드의 경우 지역사회 전체가 얽힌 비리의 커넥션이 생생히 드러났고, 비리혐의자에 대한 수사 문제가 지금도 뜨거운 쟁점이 되는 등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같은 부문 수상작인 서울신문의 <2017 대한민국 과로리포트-‘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기사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직장내 과로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폭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시리즈입니다. 주제 선정이 시의적절 했고, 과로사 유가족에 대한 심층인터뷰와 직장인 설문조사, 비공개 정부자료 발굴 등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취재방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야기체 기사 스타일을 통해 가독성을 높인 점이나 워킹맘의 고충과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선정도 돋보였습니다.
지역취재보도부문을 수상한 제주CBS의 <누가 18살 민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제주 현장 실습 사망사고 최초 연속보도’>는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이 사건을 최초로 알리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후속보도를 이어간 수작입니다. 심사위원들은 특히 기사욕심을 앞세우기보다는 유가족의 입장을 우선 배려하면서 신중하게 보도를 이어간 취재기자의 사려 깊은 태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단발적인 보도에 그치지 않고 현장실습제도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을 계속 지적함으로써 제도개선도 이끌어냈습니다.
지역기획보도부문을 수상한 국제신문의 <생애 마지막 전력질주> 기사는 취재팀이 노인 밀집지역에 6개월 이상을 거주하면서 노인 현실을 장기간 밀착 취재한 노력과 현장성이 살아있는 기사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노인을 불쌍하고 돌봐주어야 하는 시혜적 복지의 대상으로 보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들의 주체적인 자립 노력에 초점을 맞춘 접근방식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노인협동조합 결성과 마을 자활공동체라는 결실로 이어져 언론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하는 공공저널리즘을 구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문보도 사진부문을 수상한 한겨레신문의 <불타버린 코리안드림> 기사는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불합리한 법규정으로 인해 아무런 치료혜택과 보상을 받지 못하며 고통 받는 현실을 강렬한 사진과 스토리텔링으로 생생하게 전달한 작품입니다. 특히 지방이나 해외를 가리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찾아가고, 4년에 걸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취재기자의 집요한 노력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자와 취재-편집기자 간 영역이 무의미해지는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모범사례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한편 연합뉴스 선양특파원으로 재직 당시 순직한 고(故) 조계창 기자를 기리기 위해 2010년 한국기자협회와 연합뉴스가 공동으로 제정해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조계창 국제보도상’ 수상작에는 국민일보의 <홍콩 민주화와 인권상황 연속보도>가 선정됐습니다. 이 기사는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홍콩 민주화와 인권의 현실을 현지르포와 민주화운동 지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상세히 분석한 수작으로, 국내 언론이 소홀한 이 사안을 지속적으로 다뤄온 취재기자 노력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어려운 언론 환경 속에서도 치열한 기자정신을 발휘해 빛나는 성과를 이뤄낸 수상 언론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다만 지난 한 해의 한국 언론의 성과를 대표하는 대상작을 선정하지 못한 점과, 경합한 다른 우수한 기사들이 수상작에 선정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언론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더욱 많은 보도들이 한국기자상에 오를 수 있도록 언론인 여러분의 분투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