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 1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 술집, 호텔서 향응 받아 파문”
한국일보 이태규 기자
구름 위의 고봉같던 상을 타게 되서 기쁘고, 지난 1년 같이 고생한 동료 선후배님들에게는 혼자 수상하게 되어 송구스럽다. 더 훌륭하고 공들인 특종기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진에도 감사 드린다. 보도가 없었다면 사건이 완전히 파묻힐 수 있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 ꡐ양길승씨 향응ꡑ사건을 기자보다 한참이나 먼저 보도했던 청주의 ꡐ충북리뷰ꡑ에는 빚을 진 기분이다.
본의 아니게 기자가 속한 신문에 취재기를 기사로 공개한 마당이라 다시 취재기를 쓰는 일은 중언부언 같아, 대신 이 보도로 인해 겪어야 했던 일을 소개한다. 지난 여름, 솔직히 기사가 나간 뒤 걱정과 격노로 잠 못 드는 일이 많았다. 부인되던 기사의 내용들이 차츰 사실로 밝혀질 때는 짜릿함도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이 더해가면서 기사를 쓴 것이 잘한 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개인적인 혼란이 찾아왔다. 더구나 의혹만 쌓여 사건이 특검과 국회 청문회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사가 사회혼란만 부채질하지 않았는지 겁이 나기도 했다. ꡐ이런 파장을 알았다면 기사를 썼겠느냐ꡑ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진실을 파헤쳐, 보도하는 기자의 본분이 한편으로 외롭고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것도 이번 일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언론과 기관까지 나서 보도에 무언가 흑막이 있는 것처럼 의혹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가 지근거린다.
생각해보면 당시 의혹에 휘말렸던 한 친구는 이런 기자에게 ꡐ고마운ꡑ 사람이었다. 데스크가 알면 혼낼 일이지만, 지난해 7월30일 팩트 확인이 끝나고 기사화하기 직전 그 친구에게 ꡒ혹시 그곳(청와대)이 난처해질지도 모르겠는데, 취재가 됐으니 미안하게 됐다ꡓ고 미리 알려줬다. 돌아온 말은 ꡒ친구 이전에 기자 직에 충실해야 하는 너의 입장을 이해한다, 알았다는데 어쩌겠느냐ꡓ는 게 전부였다. 이 통화 탓에 ꡐ정보를 고의로 흘렸다ꡑ는 의혹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 친구는 ꡒ바로 이런 게 음모론의 실체다. 너도 그 한가운데서 한번 당해봐라ꡓ하고 웃어 넘겼다.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 2
앞으로는 특종이 아니더라도 기쁨을 주는 기사 쓰고 싶어
특종을 해도 별로 기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 올해 한국 기자상의 한편으로 선정된 필자의 ‘탈북 국군포로 북한 압송 위기’ 기사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독자들이 기사의 주인공인 전용일씨가 체포, 압송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사안일에 분노하고 흥분했을테니 필자 역시 기분이 좋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는 독일 속담대로 그가 작년말 정부의 뒤늦은 발빠른 후속 조치로 귀환에 성공,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됐지만 말이다.
불행중 다행이라는 말에서 보듯 그야말로 해피 엔딩으로 끝난 필자의 기사는 지난 11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친분이 있는 한국 NGO 관계자와 국내 거주 탈북자들로부터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한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가 3일전 동행한 여성 한명과 한국행에 나섰다 체포됐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이 분이 3개월여전 베이징(北京) 한국 대사관 주변을 전전하면서 귀환을 타진한 전용일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그럼에도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판단,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소식은 NGO들에 의해 언론에 제보돼 다음날 조간에 보도됐다. 최초로 찾아온 특종을 놓쳤으나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그러던 차인 19일 정오경 이번에는 전씨가 체포된 항저우에서 예의 NGO 관계자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전씨와 동행 여성이 이날 오후 베이징을 거쳐 북한과의 접경 지역인 투먼(圖們)으로 이송된다는 소식이었다. 다음날 새벽 필자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대사관에 그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는다면 그건 기자로서의 직무유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필자의 기자 작성 경위는 전용일씨의 파란만장하고 복잡한 귀환 과정과는 달리 단순하다. 권위의 상징인 한국기자상을 받는 것이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이 필자에게 분에 넘치는 영광을 주는 것은 아마도 국군 포로 탈북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워준 전용일씨의 귀환이 가지는 상징성에 있지 않나 싶다. 아무쪼록 전용일씨같은 안타까운 상황에 다시 봉착하는 국군 포로 탈북자들이 없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기쁨을 주는 밝은 기사로 독자들을 대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기자협회와 언론재단, 그리고 심사위원들님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다.
문화일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mhhong@munhwa.co.kr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해파리의 침공>제작 후기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 방송까지의 전 과정을 통틀어
‘해파리의 침공’이라는 타이틀 선정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해파리는 우리가 모르던지 아니면 애써 외면한 사이 우리의 바다를 침공했으며
이미 점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기자 생활 10년!
올해로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 뛰어든지 6년째로
그동안 30여편을 제작해 왔다.
누가 들어면 어설픈 다작주의라고 표현할 지도 모르겠다.
취재 일선에서 취재기자 노릇하랴 틈틈이 다큐 제작하랴 몸둥이는
두,세개가 있어도 모자랄 한해 한해가 흘러갔다.
열악할 수 밖에 없는 지역 방송사의 제작 지원시스템 속에서
지금이 아니면 그리고 내가 아니면 할 수없지 않으냐는
풍선과도 같은 자만심으로 뛰어왔다.
여기에서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책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많은 일들 속에 순서와 시간 배정은 필수였고 그렇게 했다.
해파리의 침공이라는 프로그램 제작도 이런 연장선에 있었다.
지난 2002년 가을 무렵이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보도국장으로부터 수필집 한 권을 넘겨 받았다.
부산지역 한 노교수가 소일거리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그 책 한 켠엔
해파리가 연안 바다에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하고 있다는 글이 있었다.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지친 몸을 쉬고 싶다는 생각과 제작할 만한 떼꺼리라는 갈등 속에
보도국장은 여지없이 강행하라는 무언의 지시를 가해왔다.
그리고 바다와의 길고 긴 전쟁이 시작됐다.
제작은 한국이 바다 생물 연구에 어처구니 없는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해파리 생태에 대한 단 한편의 논문은 고사하고
몇 종이나 연근해에 분포하는지 등의 기본적인 조사자료 조차 없었다.
막연히 큰해파리, 작은 해파리 등의 유아적인 수준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피해는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삼면 곳곳에서 이미 수년전부터 발생했으며
여름철 해수욕장 입욕까지 금지되는가 하면 발전소 취수구까지 틀어막아
원자력 발전이 중단되는 사태마저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파리를 먹은 사람이 숨지는가 하면 그 독성에 수십명이 집단으로
화상치료를 받는 등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개체수의 다양한 해파리들이 끼치는 피해는 화면에 담을 순
있지만 이들이 정작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번성하는지의 기본적인
의문을 해결하는데는 불가능 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유일한 돌파구를 일본과 호주 전문가들의 연구 수준을
취재하면서 뚫었다.
일본에서 어렵게 만난 히로시마 대학의 우에 교수는 현지에서도 유일하게
해파리의 피해 부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해파리의 대량 번성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해안에 무분별하게 조성된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과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해파리를 키우는 보육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연상태의 해안가 모래나 갯벌에선 해파리의 유충단계인 ‘폴립’이
부착하기 힘들지만 인공구조물이나 쓰레기 등 딱딱한 곳은 부착이 쉬워
번성하기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증거는 일본뿐아니라 마산만과 시화호 등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해마다 겪는 적조 피해 역시 해파리의 대량번성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으며 결국 인간의 오염행위가 낳은(한 배에서 나온)
사생아 임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일본과 한국 해파리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으며 이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한,중,일 해파리 연구 프로젝트>라는
전문가 그룹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촬영을 거듭하면서 취재진은 해파리의 정확한 생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호주자본으로 운영되는 부산아쿠아리움을 통해 호주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연찮게 만난 생태 촬영 전문가는 프로그램 전반에 엄청난
도움으로 다가왔다.
호주 제임스 쿡대학에서 해양생태와 해파리 대량 번성을 연구하는
이 교수는 촬영부분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수준의 전문가 중 한사람이었다.
취재진은 그를 통해 아직 국내에선 선보이지 않은 엄청난 화면을
확보할 수있었다.
그 화면엔 그렇게 궁금해 하던 해파리의 생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호주 촬영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은 취재진은 해파리 활용부분 즉
식용 해파리 최대 생산국인 태국의 자그마한 어촌지역을 찾았다.
그 곳에 유일하게 살고있는 한국인 부부를 통역으로 삼았지만
심한 배멀미 탓에 결국 촬영은 통역없이 이뤄졌다.
영단어 한자 구사할 줄 모르는 어부와 손짓 발짓하며
며칠을 바다에서 보냈다.
뗏목같은 작은 배로 열대성 폭풍을 견뎌야 했고 너무 느린 엔진으로
중천에 떠있을 달을 보며 항구로 들어오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취재진은 이런 상황에서도 식용해파리의 어업 장면과
해파리가 수백마리 치어들을 먹여 살리는 떠다니는 어초임을 증명하는
엄청난 화면을 촬영할 수있었다.
물밖으로 나온 해파리는 축축한 쓰레기처럼 그 몰골이 흉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물속에 보는 해파리는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새끼 손가락 만한 해파리에서 크기가 10여m에 달하는 놈까지,
천천히 그리고 투명한 몸체의 해파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최근 화두가 되고있는‘느림과 비움’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은 수중촬영 화면이다.
그리고 이 수중촬영을 어떻게 해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촬영 초반부터 취재진의 숙제였다.
안전을 전제로 제작진이 찾은 답은 연출자인 본인과
카메라기자 두명이서 직접 하자는데 결론이 모아졌다.
여기엔 해병대 출신인 카메라 기자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면서
틈틈이 스쿠바 실력을 닦아온 본인의 욕심이 일치했다.
이를 위해 두사람은 몇 개월에 걸쳐 수중촬영 연습을 별도로 해야했다.
해파리는 지구 생명탄생의 역사와 함께 한다.
6억5천만년 전 최초의 강장동물이 탄생했지만 오로지 한곳에 정착하면서
먹이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사냥의 전부였다.
하지만 기다림을 거부한 또다른 강장동물이 자리를 박차고 대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해파리가 탄생한 것이다.
해파리의 촉수에는 자포라고 불리는 독침이 많게는
수십억개가 숨어있다.
이를 건드리면 침을 통한 독성이 순식간에 파고 들어와 마비상태를 일으키며
결국 해파리의 먹이감이 되고만다.
해파리가 대량 출몰한 바다는 다른 해양생물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상현상도 이 때문이다.
호주에선 코끼리도 5분안에 죽일 수 있는 독성을 지닌 Box jelly 라는
해파리 때문에 휴가철 해수욕장이 폐쇄된다.
더구나 최근 4~5년 사이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Eurkanji(이루칸지)라는
해파리가 출현해 한마디로 호주는 ‘해파리 신드롬’에 흽쌓여 있다.
항공촬영을 통한 관광지인 킌즈랜드 주의 해수욕장을 관찰한 결과는
이를 여실히 증명해 줬다.
모래사장엔 해수욕객들이 넘쳐나지만 막상 해수욕을 위해 바다로
뛰어 든 사람은 볼 수없었다.
기껏 해야 휀스를 친 곳에서만 수영이 가능할뿐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바다수온 상승은 이런 해파리의 북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제작진은 바닷물이 비교적 차가운 4월에서 6월 사이에 제주도에서
열대바다에서만 관찰되는 해파리 10여종을 촬영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아직 그 생태조차 밝혀지지 않은 것이어서
문제는 어떤 형태로 확산될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올 여름 이미 나타나는 몇몇 피해들은 그 심각성을 먼저
보여줬다.
제주도 한림 해수욕장에서 수십명이 해파리 촉수에 쏘여 병원으로
실려가는 소동이 빚어진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런 피해가 극히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며
그 피해는 갈 수록 확산되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해파리 피해 부분은 다뤄왔지만 체계적이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프로그램은 해파리가 왜 최근들어 대량 번성하며 그 피해는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확산됐는지 그리고 정작 해파리는 어떤 생물인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해파리는 2백여년전 정약전 선생의 현산어보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때의 해파리는 해양 생태계의 한 축으로서의 생물이었고
지금은 대량 번성을 통한 바다 생태계 파괴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기자의 욕심을 편집은 물론 글(원고)를 쓰는데 있다.
6년간 구성작가나 스크립터 그리고 편집요원 없이 프로그램 전반을
구성 편집 제작해왔다.
이번 제작물도 촬영 종류 후 편집과 원고 작성에
두달간의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프로형태의 고발성 보도물로 만들것인가 아니면 정통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엄청난 고민을 하지 않을 수없었다.
결국 이 두 포맷을 혼합한 형태로 프로그램은 방송됐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방송되는 것을 본 순간 너무나 많은 실수와 착오가
여지없이 tv에서 뭍어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렇게 어설픈 프로그램이 전국 방송을 통해서까지 나갔단 말인가?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한국방송대상 3회 연속 그리고 최다 수상을
노렸었다는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부족한 작품에 대해 한국기자협회와 봉생문화재단, 한국언론정보학회,그리고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에서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이며 큰 상을 안겨줬다.
하지만 제작진은 아직 첫걸음도 제대로 내디디지 못했음을 말하고 싶다.
내년부터 해양수산부는 160억원을 투입하는 해파리 연구에 들어간다.
취재진은 이 연구에 상임고문격으로 참여해 밝혀내지 못한 해파리의
생태와 피해상황 그리고 활용방안까지 다각적인 취재를 병행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에 영감을 던져준 보도국장과 열대 바다에서 해파리를 보고
너무 반가워 무작정 뛰어든 하호영 카메라 기자,그리고 우리의 촬영에
헌신적으로 도와준 국립수산과학원 강영실 과장 등 많은 이들에게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 부산방송 보도국 보도제작사회팀 진재운기자 spring@mail.psb.co.kr
017-565-1314
051)850-9433
*사진설명:
1번:진재운(부산방송 보도제작사회팀 기자)
2번:하호영(부산방송 영상제작팀 촬영기자)
3번:노무라입깃해파리(머리지름 1m 이상,촉수크기 10m가 되는 초대형
해파리로 가을과 겨울철 연안 어업에 심각한 피해를 미치고 있음)
4번:취재진에 의해 처음으로 촬영된 열대 해파리(일본 오키나와 이남에서만
관찰기록이 있었음,다른 해파리를 통째로 삼킬 정도로 포식성이 강함)
5번:보름달 물해파리(유리 연안앞바다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며 대량 번성으로
발전소 취수구까지 막는 종)
한국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
대구지하철 참사 생생히 기록한 CCTV 화면 단독보도
YTN 조영권 기자
홍콩 지하철에서 1월 5일 발생한 방화사건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방화범이 불붙은 신문지와 석유통을 객실에 던졌지만 192명이 목숨을 잃은 대구지하철에서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화사건이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열차 안이 내화재였고 환기구가 넓고 개방형이었다는 점등이 그것입니다. 또 지하철 승무원이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침착하게 대피시킨 것이 참사를 막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보도를 접하면서 끔찍했던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의 참상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객차안을 모두 내화재로 바꿨다는데 그건 제대로 시공된 건지......지하철 환기시설은...... 많은 언론사에서 그와 같은 지하철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를 했지만 부족하거나 빠뜨린 건 없는지......
대구지하철 희생자 대책위원회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www.daegusubway.or.kr)를 보면 대구지하철 참사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희생자 유족들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아직도 의사의 상담이 필요한 상태인데도 방재 테마공원 설치와 같은 사고 당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 공사측이 약속한 사업들은 여전히 지지 부진합니다. 아직도 해야 할 많은 일이 과제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고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5년 전 돌아가신 막내 누나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하는 유족들을 볼 때 함께 울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란 직업이 뭔지...... 감정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는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취재 현장에서 눈물을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의 명목을 빕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함께 고생한 선․후배 기자들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기자상 지역 기획보도부문 1
한국기자상 수상 후기
(울산MBC 보도국 보도부 박치현 기자)
훌륭한 과학자나 사회학자가 되려면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관찰력이 필요하다는 외국 어느 학자의 말이 기자에게도 절대 예외가 아니라고 믿어왔다.
적조 방제용 황토가 지금까지 별다른 의심없이 마구잡이 바다에 살포된 것은 수산당국이 망원경 관찰만으로 황토의 우수성만 보고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취재팀이 적조 방제용 황토가 오히려 바다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에서 처음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다와 황토의 상관관계를 현미경 관찰력 시각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동안 국내 학계에서도 적조방제용 황토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일부 있었지만 연구를 통해 보고서를 낸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국가가 하는 일에 제동을 걸어봐야 덕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자신이
없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어느 교수의 말을 듣고 왠지 오기가 발생했다. 그래서 필자는 80년대에 잠깐 황토를 쓰다가 사용을 중단한 일본의 히로사마 수산연구소를 찾아갔다. 이유는 황토와 바다는 특성상 맞지 않아
바다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과 중국, 네덜란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전화 취재를 해 본 결과 똑 같은 답변이었다.
우선 황토에 관심이 많은 대학교수와 수산전문가, 토양전문가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 취재팀 구성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대부분 거절했다. 이유는 황토의 부작용이 지금까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아 섣불리 나섰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전문가들과의 취재팀 구성은 뒤로하고 우선 황토가 살포된 해역 7곳을 선정해 20여회 걸쳐 수중촬영을 실시했다. 예상대로 황토로 신음하는 수중생태계를 화면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의 황토 출토장을 돌아다니며 샘플을 채취해 PH와 입도, 햇빛 차단율 등 해 볼 수 있는 실험은 다 해 보았다. 취재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에는 자신감이 확신감으로 변했다. 현장취재를 통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다시 전문가들에게 취재협조를 요청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현장취재 자료를 검토한 뒤 자신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취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황토가 적조 방제의 유일한 대안이라며 황토 예찬론을 펼치던 해양당국도 서서히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취재가 쉬워졌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전문가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촬영을 거듭할수록 황토의 부작용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화면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1년 4개월 동안의 추적과 취재를 마치고 방송이 나가자 전문가들의 격려 전화와 메일이
잇따랐다. 심지어는 해양당국의 젊은 연구원들도 프로그램 내용에 공감한다며 학계나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언론사가 앞장서 심층진단을 해 줘서
황토로 병들어 가는 해양생태계를 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당연히 반론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했던 해양당국은 침묵
으로 일관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해양당국도 황토의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황토를 사용하지 않자니 지금까지 해온 자신들의 적조방제 대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니까 노코멘트를 한 것이었다. 특히 황토의 부작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황토로 파괴된 해저의 생생한 화면을 뒤집을 수 있는 이론적 뒷받침이 불가능했던 것도 당국이 침묵한 이유였다.
적조가 발생할 때 황토를 살포하는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나라 뿐이다.
문제는 황토를 뿌리면 뿌릴수록 바다는 망가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해안과 남해안에서는 대규모 적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해양당국이 또 황토를 뿌릴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황토에만 의존해 온 결과 다른 적조방제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해양당국의 선택은 “악순환의 반복”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현미경적 관찰력 시각으로 적조방제대책을 다시 한번 접근해 보기를 권한다.
==========끝===========
한국기자상 전문보도부문
카지노에 빠진 국회의원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지난 10월 25일 제보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용산 미군기지 카지노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도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현직 국회의원의 비리의 제보라는 점에서 국회의원과 알력 관계가 있는 악의적인 제보일 가능성 등을 검토했다. 그러나 제보 동기가 어찌됐건 현직 의원이 내국인 출입이 금지된 미군기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한다는 팩트 자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판단을 내렸다.
미군 카지노에 어렵게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일단 열린우리당 송영진의원이 정신없이 도박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카지노 안의 상황과 환전 방법, 내국인들의 출입 과정을 취재했다. 당시 삼엄한 경비 속에 사진 촬영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현역 국회의원의 도박을 기사화하기 위해 물증인 사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현장 판단을 내렸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경비원들이 잠시 자리를 뜨는 순간 가방 안에 감춘 카메라를 꺼내 5컷을 눌렀다.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이 사진기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고위 당직자의 어긋난 행태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사진기자인 필자에게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어렵게 셔터를 눌렀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를 확인했을 때 그제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군 부대 영내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카지노에 빠진 국회의원’의 모습을 담은 디지털카메라를 무사히 가져 나오는 순간, 어려웠던 기억보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채웠다.
한 장의 사진으로 송의원은 도박 등 혐의로 부산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이후 서울지검으로 재소환돼 대우건설로부터 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 그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으며 그와 함께 의원직을 상실했다.
만약 피할 수 없는 증거인 이 한 장의 사진이 없이 공개되었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실제 본보 취재팀이 기사 개제 전날 사진 촬영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송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반론을 들으려 했을 때 그는 계속해서 “증거가 뭐냐”라고 물었다. 사진이 없었다면 그는 본보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 운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현장의 정확한 판단 능력과 끈질긴 기자 근성이 없었다면 아마 이 취재는 불가능한 취재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기사의 의미도 남달랐다고 생각된다. 특종 이후 시민단체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였고, 미8군은 카지노를 폐쇄하고 미군내 불법출입해 거액도박을 한 내국인명단을 경찰로 넘겨 사법처리하게했다. 이 취재는 고위층의 어긋난 행태를 지적하고 비판함으로써 사회에 경종을 울리게 했다.
지난달 31일 제주도 출장 중에 협회에서 수상축하 전화를 받았다. 기자생활 13년만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큰 상이라 뭐라고 소감을 적어야 할지 한 참을 망설였다.
기자생활 한답시고 마음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감사하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들 상우와 이쁜 짓(?)만 골라하는 둘째 아들 상현이 그리고 제보를 확인해주고 취재에 많은 도움을 준 석동률차장과 부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 2
“벼랑끝 농어촌, 위기를 기회로”
전남일보 사회부 김선욱 기자
새해벽두부터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농업․농촌 기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쌀 재협상,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DDA농업협상 등 `농업 개방시대'가 코앞에 닥쳐와서다.
사실 우리 농촌은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때 한차례 개방 홍역을 치렀다. 그리고 10년만에 또다시 국내 농산물과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압력이 몰아치고 있다. 이같은 개방 파고는 이미 2002년 예고됐다. 하빈슨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상 특위 의장이 고율관세 감축방안 등 농업협상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개방은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왔다.
연중 기획보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농도' 전남에서 한국 농촌의 현실을 투영해 대응전략과 활로를 찾기로 했다. 먼저 대표 소득작목을 통해 현주소와 문제점 조명에 들어갔다. 그런데 농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보리․콩․고추․마늘․참깨 등 지역 대표 농산물들이 소비 감소와 넘치는 재고, 중국산 농산물 수입 급증으로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이는 급격한 재배면적 감소와 자급률 하락,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품목별 경쟁력 제고방안과 새 활로가 절실했다.
이 해답은 선진농민들이 쥐고 있었다. 이들은 고품질․기능성 농산물 생산과 친환경 농법, 규모화․단지화, 유통구조 혁신, 수출 강화, 도․농교류 확대, 녹색관광 등으로 개방 압력에 맞서고 있었다. 증산에서 고품질로, 우리맛을 세계로, 토종 향기 추출로 미래 향기산업의 대안을, 공격적 수출로 내수시장 안정에 도모하는 농민 등등…. 이들의 실패와 도전, 성공담에서 희망을 보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농민과 도시민에게 전했다. 독자로부터 ꡒ힘이 된다ꡓ, ꡒ농산물을 구입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을때는 절로 힘이 나 사명감도 더했다.
2004년 농촌은 여전히 외롭다. 누구나 쉽게 개방을 말하면서 농촌은 돌아보질 않아서다. `너 없는 나' 없듯 `농촌 없는 도시'는 없다. 농촌은 지금 도시민의 손길을 갈망한다. 도시민들이 농촌을 자주 찾고 농산물을 애용하면 개방도 두려울 게 없다. 도시민과 농민이 함께 웃는 그날까지 기사 쓰기에 진념하는게 `큰 상'을 안겨준 농촌에 대한 보은(報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