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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1993년 9월)

수상작 2편 · 출품 후보작 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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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2편

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 MBC
철도청이 러시아로 간 까닭은… MBC 윤효정 기자 "기사 거리를 건지지 못하면 기자실에 들어 올 생각도 마라, 알겠냐?" 1진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무엇이든 찾아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기사 거리를 찾다가 "철도청이 유전사업을 하려다 마피아에 수십억 원을 사기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황당한 얘기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철도청이 민영화를 앞두고 수익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 일환으로 러시아의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가 실패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취재가 계속되면서 누가 봐도 한심할 정도로 허술한 사전 조사와 투자 계획이 드러났습니다. 석유공사도 사업성이 없다며 손을 뗀 사업에 철도청이 뛰어들었지만 준비 과정은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중소기업과 합작 회사를 만들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60억원이 넘는 계약서에 당시 철도청장이 서명한 것입니다. '뭔가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고위층에 누군가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에 참여했던 한 중소기업 사장은 "다른 투자자들이 이광재 의원과 청와대를 들먹이며 '사업은 잘될 것이고 자금 마련 역시 정부가 힘을 써 문제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모든 사람들은 관련성을 부인했습니다. 석유 전문가를 자처하며 이광재 의원의 자문을 맡기도 했던 허문석씨 역시 당시엔 사업성을 장담했습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그는 취재가 시작되자 행적을 감췄고 지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지만 사실 관계를 밝히는 고리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전말에 대한 모든 것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드러난 사실은 밝히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는 일파만파로 커졌고, 검찰 수사에 특검 수사까지 이뤄졌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구속됐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당시 사업을 주도했던 철도공사의 왕영용 본부장이 러시아 측과의 협상에서 돌아와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던 날 "이 일을 세상에 알린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국익인지는 보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진실만큼 국익에 부합하는 것은 없다고 말입니다. 분에 넘치는 큰상을 받게 됐습니다. 취재 당시 정리한 자료들을 다시 꺼내봤습니다. 처음 취재를 시작한 때가 지난해 1월.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늦었지만 같이 고민하고 함께 뛰어 주신 홍순관 부장과 이호인 차장, 그리고 김경태 선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사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 대신 제가 담당한 구역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막아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들과 동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 조선일보
조선일보 사회부 이진동 'X파일 테이프'의 출처를 찾아가는 탐문취재가 별 성과 없이 끝나갈 무렵인 2005년 6월 어느날. 막 출근하려던 참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누군지 아시겠죠" 목소리만으로 신분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얼굴 없는 익명의 취재원 A였다. 사정당국에서 정보를 다루는 A가 이렇게까지 조심할 정도면 뭔가 '큼직한 놈'이 걸린 게 분명했다. 일주일 전쯤 누구를 접촉해야 X파일테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겠느냐고 A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A는 며칠 내로 알아봐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A의 전화는 X파일테이프의 'X파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알려주려는 게 아닐까하는 짐작은 적중했다. A는 국정원 퇴직자 중 '공 서기관'이라는 직원이 도청테이프를 들고 나갔다가 삼성을 협박한 일로 국정원에 압수 당한 일이 있다. X파일은 바로 그 테이프다”고 일러줬다. 주변을 맴돌던 취재가 핵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힌트'를 준 셈이다. X파일테이프를 손에 넣으려던 취재는 이 때부터 '정보기관의 도청'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X파일테이프가 도청의 결과라면 처음으로 드러난 '도청 물증'이 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X파일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MBC는 'X파일테이프'의 컨텐츠인 정·경·언(政·經·言)유착에 포인트를 맞췄다면 테이프가 없는 입장에선 'X파일 테이프'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취재의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공 서기관'을 찾아내는 일도 녹록지는 않았다. 엉뚱하게 해답은 미국에 망명신청중인 전 국정원 퇴직직원 김기삼씨에게서 얻어졌다. 김씨는 주저하다 어차피 공 서기관까지 알았다면 시간 문제 아니냐는 설득에 '공운영'이라는 이름과 '미림'이라는 비밀조직명을 알려줬다. 국정원 직원들이 관련된 판결문을 죄다 뒤진 결과, 운 좋게도 공씨의 주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공씨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처음엔 어디 찾아와 행패냐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지만 공씨는 이내 많은 걸 털어놓았다. 은폐될 뻔했던 정보기관의 '도청'이라는 기본권 침해 범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2, 제3의 X파일테이프'에 들어있을 재벌과 권력간 유착 실상도 언젠가는 기자들에 의해 베일이 벗겨질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중앙일보
중앙일보 탐사기획 부문 박수련 기자 - 지난해 10월 어느날, 4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인 박승일(35ㆍ前 현대모비스 농구팀 코치)씨를 처음 만났다.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돼 온몸이 석고처럼 굳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 이규연 팀장의 취재기록과 박승일씨의 투병기를 미리 읽으며 단단히 마음 단속을 했건만, 막상 먹먹해지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꿈뻑이는 그의 눈꺼풀 너머로 '고통'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넉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보내온 e-메일은 총 40여 편. 성대 근육조차 마비돼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박승일씨가 눈동자를 이용해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는 안구마우스로 쓴 편지였다. 눈으로 꾹꾹 눌러쓴 보석같은 e-메일이었지만 오ㆍ탈자 가득하고 띄어쓰기도 없어 해독하려면 눈이 아팠다. e-메일이 차츰 쌓이면서 우리는 박승일씨를 최악의 운명을 극복한 초인(超人)이나 최루성 기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해선 안 되겠단 생각을 굳혔다. 누구의 삶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할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박 박승일씨는 나날이 가까워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서리치고, 가족의 작은 실수에 화를 내기도 하며 줄기세포 치료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기존 기사의 틀에서 벗어나 '소설 같은 기사'를 써보기로 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되 사실에 근거하자는 컨셉이다. 처음엔 독자 마음에 오래 남는 기사를 쓰겠단 욕심에 휘둘려 어색한 글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에 충실하면서 이내 균형을 찾았다. 박승일씨의 e-메일을 그대로 기사에 삽입해 독자가 직접 박승일씨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길을 열어둔 것도 비결이었다. 또한 박승일씨의 삶의 명암을 읽어낸 사진과 참신하고 세련된 편집은 기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감히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지면이었다고 자평한다. 보도 이후 박승일씨를 비롯한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겠다는 독자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에선 한달 간병보조금을 30% 인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크게 높아져 보람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신문기사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글의 힘을 보여준 데 동참한 기쁨도 크다. 박승일씨와 그 가족들에게 뿐 아니라 내게도 희망과 기적을 보여준 기사였다. 더불어 좋은 선배들을 만나 일찍 큰상을 받은 만큼 앞으로 더 크게 눈뜨고 더 깊게 귀 기울이는 기자가 돼야겠단 생각을 한다. 이 기회에 이규연 선배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YTN
한 원상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한국기자 상을 수상하는 것은 기자로서 영광이다. 이번 기자 상은 5년 전에 '경찰, 롯데호텔 노조원 폭력진압'에 이어 두 번째 받는 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지난해 한국, 중국, 일본은 영토 분쟁과 역사 왜곡으로 시끄러웠다. 그것은 일본의 우경화와 정치인들의 망언이 잇따르면서 아시아 국가의 반발로 외교마찰까지 이어졌다. 역사란 무엇인가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과거를 반성하는 것' 이다. 빌리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과거를 잊는 자는 영혼이 병든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아소다로 외상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반성과 화해가 필요한 시점에 외교수장으로서 역사인식과 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고 거침없이 막말을 하고 있어 외교적 갈등만 계속 초래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아소家는 일본의 전형적인 우익이다. 아소다로 외상의 증조부 아소 타키치는 일본의 중의원을 역임했고, 부친인 아소 타가키치는 아소광업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아소타로 외증조부는 요시다 시게루 일본 전 총리이다. 일제강점기 때 아소광업의 창업자인 아소타키치(麻生太吉. 1933년 사망) 와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연행자를 노역시킨 아소가기치(麻生 賀吉.1980년사망)의 가업을 이어온 아소외상은 아소시멘트 회사의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소다로가 외상으로 있는 한, 일본정부는 '한·일 유골조사협의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아소광업에서 조선인 희생자가 얼마나 사망했는지 알기 위해서 6일간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개인장비를 들고 일본에 갔다. 휴가를 낸 것은 혹시나 성과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소광업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어 있었다. 명부는 있어도 유골이 없거나, 아니면 유골이 있어도 주소가 없어 먼 이국땅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아소家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산림을 훼손했다는 사실도 밝혀내었다. 일제 때 아소광업의 전신인 아소상점이 조선 총독부로부터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안면도를 매수해서 벌채와 송진을 채취하고 이것을 군수품과 갱목에 사용했다. 또 안면도를 '아소 가(家)의 왕국건설' 을 목표로 한 곳 이었다는 사실과 여기에 입증 할 수 있는 자료와 증언자를 직접 찾아 아소家의 실체를 드러내었다.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있는 아소외상, 총리경선을 위해 당내 우파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해서 외교적 물의를 빚을 발언들을 거침없이 계속 쏟아낸다면 마치 앞을 보지 않고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위험하게 보인다. 역사를 새롭게 찾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다. 이번 한국기자 상은 역사를 새롭게 밝히는데 더욱 분발하라는 듯으로 생각하고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부산일보
부산일보 사회부 방준식 기자 IMF 이후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일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대졸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졸자들의 문제는 경제 불황이나 좁은 취업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육 커리큘럼 자체가 취업준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러나 기존 대졸자 취업관련 보도들은 탐사보도나 밀착취재가 부족하고 특정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만 매달려 제대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본보 특별취재팀은 부산 지역 대학교에서 대학교육을 착실히 수행해온 최우수 졸업자(각 단과대별 수석, 차석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통계를 활용해 이들의 졸업 이후 행보를 따져보기로 했다. 이들마저도 취업에 실패하고 있다면 대학 커리큘럼 자체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대학 졸업생들의 현 상황이 극히 어렵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은 부산지역 9개 종합대학교 지난해 2월 졸업자 중 단과대학 수석과 차석을 차지해 각종 상을 수상한 우수졸업생을 선별해 지난해 4월 7일부터 10일간 취업여부 등을 전화로 직접 설문 조사했다. 총 110명의 조사대상 중 연락이 불가능한 7명을 제외한 103명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취업여부, 직장에 대한 만족도, 미취업 졸업생들의 현 상황, 단과대별 졸업생 진로를 5점 척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통계 분석했다. 그 결과 103명 중 37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도출됐다. 취업한 졸업생들도 절반 가량 이 취업한 회사에 만족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미취업자 대부분이 공무원시험이나 임용고시에 매달리고 있어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백수'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곳은 바로 해당 대학교 측이었다. 대학교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책마련에 고심했고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속속 제시하고 나섰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국적인 취업정보, 각 기업의 취업흐름에 부산지역 각 대학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왔다는 방증이라 할 것이다. 지역대학 최우수 졸업자들이 졸업 이후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가에 대한 보도는 본보 특별취재팀의 기획보도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독자들의 큰 반향을 얻었고 참신한 기획이었다는 대내외 평가도 받을 수 있었다.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부문 대구MBC
대구MBC 보도제작부 도건협 제가 사는 대구는 서울처럼 교통체증도 심하지 않고 도로망도 잘 갖춰져 있어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차가 없다면?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돼 있고 버스를 타면 둘러가기 일쑤여서 짜증만 납니다. 반면에 차가 있으면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많습니다. 아니,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차가 정말 현대인의 필수품일까요? 폭증하는 자동차의 수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1,500만대를 넘어선 자동차 등록대수는 오는 2020년에는 2천만 대를 넘는다고 하니까요. 이처럼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이면에는 도로 중심의 교통정책이 있습니다. 차가 다니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로공화국>에서는 고속도로와 국도에서부터 산간 오지의 도로까지 중복, 과잉투자 논란의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또 이런 도로 중심 교통정책의 바탕에 '도로건설연합'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건설교통부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같은 정부 부처와 국회, 건설업계, 관련 학계의 이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도로 중심의 교통정책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업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공무원과 선거를 위해서 가시적인 치적을 내놓아야 하는 정치인, 그리고 현금 확보에 유리한 관급공사를 따내려고 하는 건설업계, 관련학계가 생존을 공통 목표로 한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수출 효자 종목이 된 자동차 산업 성장의 바탕에도 도로 중심의 교통정책이 있었습니다. 개별 기업이 해야 할 몫을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대신 해준 꼴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방송분을 인터넷으로 다시 봤습니다. 보면 볼수록 여기저기 엉성한 부분이 눈에 많이 띄어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졸작을 높이 평가해준 데 대해 감사드리고, '도로공화국'의 대안을 찾고 있는 분들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한국기자상 사진보도부문 한국일보
한국일보 사진부 박서강기자 더 없이 영광스럽다. 내가 과연 이렇게 큰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쏟아지는 격려와 축하도 혼자서 독차지하기에 벅차다. 여러모로 분에 넘치지만 더욱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고 싶다. '로드킬' 취재에 매달렸던 지난 여름은 10여 년간의 사진기자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결과에 대한 압박감에 잠 못 이뤄야 했고 취재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체력도 바닥났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 끝까지 용기를 북돋워 준 한국일보 사진부원과 두 달간 함께 밤을 지샌 여섯 분의 배차실 직원들께도 감사 드리고 싶다. 무엇보다 사고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을 아내와 수상의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도로 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야생동물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접했다. 충격적이었다. 곧바로 '로드킬'의 실태를 사진으로 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6월 중순 경, 밤부터 동 틀 때까지 중앙고속도로를 뒤지기 시작했다. 통계상 사고가 가장 많은 남원주∼홍천 구간을 시속 20Km의 속도로 이동하며 살폈다. 아찔한 순간을 넘겨가며 목격한 '로드킬'의 실태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구간에서만 하루 밤에 수 십 마리의 동물들이 죽어갔다. 해마다 1∼2천 마리에 이른다는 도로공사의 '로드킬' 통계는 참혹한 실상을 감추려는 속임수에 더 가까워 보였다. 눈을 부릅뜨고 밤을 달렸지만 단 한 컷도 못 찍는 날이 더 많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초조해지기도 했다. 오늘은 제발... 매일 밤 기도하는 마음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야생동물을 촬영하는 일은 애초부터 쉽지 않았다. 며칠 밤을 세워 겨우 찍은 사진이 엉망이었을 때는 견디기 힘든 허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행히 사고 없이 취재를 마쳤고 보도 후에는 많은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격려가 이어져 기뻤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눈을 부릅뜨고 지샜던 전쟁 같은 밤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깜박깜박' 졸음을 부르던 비상등의 규칙적인 소음도 아직 귀에 익다. 야생동물들도 매일 밤 목숨 건 횡단을 계속하고 있다. 안타깝다. 이제 곧 봄이다.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다. 장맛비로 씻겨 내리기 전까지 고속도로가 야생동물의 피로 얼룩지는 공포의 계절이 또 오고 있다.
한국기자상 특별상 MBC
MBC 이상호 기자 이따금 걸려오는 윗분들의 소환 전화를 받으며 과연 기사에서 피고발자의 이름을 빼줘야 할까 말까, 남들이 다 좋아하는 정치부 지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할까 말까... 기자생활은 크고 작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고민 뿐, 나의 선택은 늘상 비껴만 갔다. 그 대가는 냉혹했다. 줄 소송에 왕따. 선배들에겐 부담스런 후배, 후배들에겐 튀는 선배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랴!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경향을. 전전반측하다 날이 새고 또 10년 세월이 지나고 말았다. X파일을 둘러싼 지난 1년여의 시간을 ‘역외자’로 지냈다. 문밖에는 쏟아지는 억측과 비난. 온실에 머무르고 싶은 생존 욕구를 억누르며 매번 운명의 문을 열어야만 했다. ‘다름’이 용납되지 않는 순혈의 사회. 그 이유으로 언론에 거명될 때마다, 대중 앞에 옷 벗고 선 차력사의 고통을 느껴야만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보도와 진행중인 소송. 모든 것이 미완성인데 큰상을 받으란다. 문 밖에는 이미 또 다른 갈등이 노크하고 있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채찍이 되어준 말이다. 미국 언론의 사표, 월터 크롱카이트가 지난 98년 3월 워싱턴의 National Press Club 창립 90주년 기념식장에서 행한 연설을 옮긴다. 두렵다. 기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먼저 자신에게 떳떳하라. 머리로 기억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라.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인기 없는 스토리를 보도하면서 당신 이웃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사실 보도를 하면서도 온갖 비난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 동료들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한다. 우리 언론은 흔히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취재한다는 말을 듣는다. 만약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취재를 하면 동료들의 비판을 받거나 비웃음을 산다.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생각되면 용기를 갖고 밀어붙일 줄 아는 기자가 돼야한다. 그리고 그 무리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또 만약 경영진이나 당신의 부장이 틀렸을 경우, 그들에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어떤 이슈에 대해 당신의 시각이 다르다고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의 정직성(integrity)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사 입문 당시 가졌던 기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