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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1993년 11월)

수상작 4편 · 출품 후보작 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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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4편

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11편

한국기자상)지적 원점 독립 캠페인 : 지적이 국력이다…
(39회 한국기자상)지적 원점 독립 캠페인 : 지적이 국력이다 경인일보 경제부 윤인수· 김성규· 이윤희· 김무세 기자 『지적 원점 독립 캠페인 : 지적이 국력이다』 [지역기획보도부문] 이번에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겨준 '지적이 국력이다' 시리즈는 두 시기(국내편 : 6월12일~8월7일, 해외편 : 11월28일~12월18일)로 나뉘어 보도됐다. 사전 취재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5개월 이상을 시리즈 하나에 매달린 셈인데, 취재의 계기는 대한지적공사 관계자의 푸념섞인 불만을 우연히 듣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된 만큼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지적공사가 1차측량을 하면 해당 기초단체가 2차측량을 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일선 시·군이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관리·감독에서 벗어난 지적공사가 오히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적의 낙후로 지적 측량기사조차 자신의 성과물을 확신하지 못해 시·군이 한 번 더 점검해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본 시리즈가 이처럼 방대해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우리나라 지적의 낙후성'은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는 얘기였기 때문에 그동안 관련 기사만도 수백편은 족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취재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기존 기사의 대부분은 단발성 문제제기에 그쳐, 총체적인 고찰이 필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지적이 전문분야다 보니 용어조차 어려웠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도 많지 않았다. 해외취재에서는 이를 소화해낼 수 있는 통역을 구하는 데만도 1달 이상이 걸렸고, 현지에서는 토지가 국가 핵심정보라고 취재에 협조적이지도 않았다. 특히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에서는 출국 2시간 전까지 취재에 매달여야만 했다. 덕분에 한국기자상이라는 영광을 안게 됐지만, 지적재조사 사업은 여전히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17대 국회가 불과 3달여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벌써 3번째 법안 통과가 무산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편 기사에서도 밝혀듯,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은 모두 유사한 지적사(史)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한국을 제외한 3국은 길게는 수십년 전부터 이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국가 구성의 3대 요소의 하나인 토지 정보의 개선책에 '나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새 정부와 18대 국회가 새롭게 구성되는 만큼, 100여년동안 방치돼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적제도 전반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기자상)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39회 한국기자상)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정치부 김종목· 손제민· 장관순 기자 『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기획보도부문] 어느 영화배우의 말처럼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기만 한' 팀의 막내가 수상소감을 쓰려니 겸연쩍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 못하지만 지난해 3월초였다. 취재 마치고 그날 저녁 회사에 복귀하다 덕수궁 길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회사 로비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기도 했다. 뭔가 불길했다. 예감이 적중했는지 사회부장은 '지식인팀 파견' 지시를 내렸다. '지식인의 죽음' 기획팀을 꾸리기 위해 정치부, 문화부, 사회부에서 1명씩 차출당해야 했는데, 하필 내가 지목됐다. 기자 경력의 절반 이상을 '사건기자'로 보낸 5년차 햇병아리가 언감생심 '한국의 지식사회'를... 첫 기획회의 날 가안으로 하달된 기획안만 봐도 2개면 이상 20회가량 장기 연재가 예정돼 있었다. 취재해야할 분량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지식인, 지식사회란 추상적 주제를 어떻게 기사로 가시화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정치부 김종목, 문화부 학술담당 손제민 선배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취재팀은 '담론으로 전하지 말자', '데이터를 직접 만들자', '코멘트와 케이스로 풀어내자' 등 '지식인의 죽음' 기획 원칙을 정했다. 안팎으로 싸워가며 원칙대로 지면을 구성해 나갔다. 당초 "두 선배는 머리, 나는 손발" 정도의 '속 편한' 각오로 시작했지만 나도 당장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기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열심히 기사와 논문 등을 찾아 읽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 등 학자들을 만나 취재를 빙자한 과외 학습도 수시로 받았다. 취재팀은 학계와 시민사회의 여러 분들을 만나 최대한 생생한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재일학자 윤건차 교수처럼 직접 만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나 혼자서 주고받은 취재 e메일 건수만 따져도 100회가 넘었다. 실증적 분석을 위해 각종 학회, 학술재단 등으로부터 다양한 통계자료도 확보했다. '지식인 지도', '문민·군사정권 넘나든 장·차관 분석', '지식인 설문', '해외 박사 분석' 등이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지식인의 '죽음'이란 타이틀은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죽어가는 지식사회에 장기 연재를 통해 비수를 꽂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 "정보화사회 속에서 대중이야말로 엄연한 지식인이 아니냐" 등 학계의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지식인의 죽음'은 지식인을 살리자는 캠페인이나, 한국 지식인의 역사를 다루는 학술논문이 아니었다. '87년 체제' 이후 여러 담론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20년이 지난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실증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같은 취지를 제대로 읽고 응원을 보내준 많은 독자들께 감사한다. 또 '지식인의 죽음'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음을 거듭 밝혀둔다. 고선생의 인터뷰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감하다'는 미발표 논문이 기획의 밑거름이 됐다. 특히 넉달 가량의 준비 및 연재 기간 동안 ‘고집스럽게’ ‘독하게’ 데스크를 보고 취재팀을 지휘하며 팀원들을 종종 극한 상황까지 몰곤 했던 이대근 정치에디터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항상 옳은 방향으로 취재팀을 이끌었다.
한국기자상)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 근로자 연쇄사망…
(39회 한국기자상)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 근로자 연쇄사망 보도 대전일보 경제부 김형석·노형일, 사회부 송충원, 정치부 한종구 기자 『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 근로자 연쇄사망 보도』 [지역취재보도부문] 얼마 전 괴소문에 시달리던 나훈아가 기자회견을 했다. 내겐 괴소문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의 회견내용이 참인지, 거짓인 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회견내용에는 울림이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나훈아는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을 다뤘던 언론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만약 ‘나는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좇아 쓴 것 뿐이야’라고 하면 방조자다. ‘나는 한 줄도 안 썼어’라면 방관자다.” 억울함과 독기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표현이었다. 만 13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어쩌면 나는 대부분 방조자이거나 방관자였을 것이다. 틀린 줄 알면서도 다른 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좇아 쓴 적도 있었고, 옳은 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썼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하기도 했지만 시간은 그 부끄러움도 닳게 했다. 지난해 말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식에 이어 한국기자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솔직히 기뻤다. 동료, 선후배들이 “평생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타기 어려운 상”이라고 축하와 격려를 해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웠다. 방조자이거나 방관자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 상은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장’과 같다. 함께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동료,후배기자들에 대한 고마움은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후 썼던 취재후기와 동일하다. 함께 경제부를 출입하며 이 내용을 처음 듣고, 사실확인에 앞장섰던 노형일 기자는 이번 수상의 일등공신이다. 사회부 송충원 기자와 정치부 한종구 기자의 도움과 지원이 없었다면 그 기사를 그렇게 자신있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타이어 근로자 연쇄사망’ 특종보도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첫 보도 이후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추가로 확인해 기사화 했던 다른 매체의 기자들도 한국기자상 수상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처럼 방조자나 방관자는 아니었다. 나훈아는 자신의 40년 노래인생 성공비결을 약속과 진실, 꿈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꿈을 파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성공한 기자들의 원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내가 팔 꿈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앞으로 기자생활에서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지난해에는 한국타이어 뿐 아니라 대기업과 관련된 구설수가 유독 많았다. 대기업들도 약속과 진실, 꿈을 기업운영의 원칙으로 삼아도 될 듯 싶다. 근로자와 소비자들에게 약속과 진실을 지키고, ‘꿈’을 판다면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타이어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기자상)『‘로드킬’ 견공들의 항의』 매일신문
(39회 한국기자상)『‘로드킬’ 견공들의 항의 매일신문 사진부 박노익 기자 『‘로드킬’ 견공들의 항의』 [사진보도부문] 신문사에 몸 담은지 20년째다. 그동안 특종다운 특종을 한번 하지 못한 터라 선·후배 대하기가 민망했는데 ‘한국기자상’ 본상 소식을 접하니 너무 기쁘다. 밤낚시에 나섰다 새벽녘에 대물을 낚은 느낌이다. 내 작품에 손을 들어 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또 내 사진을 통해 마음의 상처 받은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거나 애완동물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작품은 행운이 따랐다. 능력이 없었던지 아니면 운이 없었던지 평범한 기자생활을 하던 내게 행운이 온 것은 항상 사진물에 쫓기는 ‘보조 데스크’로서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유기견’. 어느 날 출근과 함께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 날 바로 데스크에 보고하고 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1주일의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흐지부지 취재를 포기하려고 할 때 쯤 사고 현장에서 주인공들과 부닥쳤다. 차에서 급하게 내려 셔터를 눌렀지만 파인더를 통해 보여진 ‘그림’은 별로였다. 그러던 순간 지나가는 차량 너머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고(로드 킬)가 발생한 것이었다. 길을 건너던 강아지가 차량을 보고 뒤쪽으로 피한다는 것이 오히려 운전자에게 사고의 빌미를 준 것 같았다. 문제는 사고 이후에 나타났다. 끔찍한 사고를 지켜본 동료 강아지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뭔가 ‘감’이 왔다. 퀭하니 초점 잃은 눈동자, 함께 있던 동료 강아지에게서 슬픈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주위에 강아지들이 몰려들고 그리고 한 마리가 달리는 차량에 달려드는가 싶더니 곧이어 모두가 합심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동물의 본능이라기보다 의도된 행동이었다. 동료 강아지가 죽은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가온 사고와 강아지들의 항의. 사실 마감을 끝낸 뒤에도 이 것이 커다란 반응을 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괜찮은 사진이다’라는 느낌만 가졌을 뿐이다. 신문이 쇄출된 그날 오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사진이 뜨면서 격려 전화와 항의 전화(항의는 대부분 강아지를 구출하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는...)메일, 그리고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를 비난하고 유기견 문제를 꼬집었다. 심지어 취재 보도가 본업인 기자를 욕하는 독자도 상당수였다. 특종이었다. 모두가 유기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나 역시 특종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기쁨을 뒤로한 채 심호흡을 해야했다. 독자들의 슬픈 감정과 강아지의 촉촉한 눈망울이 오랫동안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한국기자상)신음하는 주거복지 부산일보
(39회 한국기자상)신음하는 주거복지/부산일보 부산일보 사회부 박진국, 김종열, 김경희, 이현정, 이대성 기자 『신음하는 주거복지』 [지역기획보도부문] ‘신음하는 주거복지’가 기획된 계기는 지난해 9월말 민주노동당 소속 심상정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였다. 심상정 의원은 ‘전국에 11만명이 판잣집이나 움막 토굴에 살고 있으며 그 중 6만8천명이 수도권에 집중해 살고 있다’고 발표했다. 심상정 의원의 보도자료는 발표 즉시 연합뉴스뿐만 아니라 주요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에 기사로 보도됐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보도자료 상의 수치만 인용해 보도했을 뿐 극한의 주거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밀착보도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날 이후 심 의원실의 보도자료는 좀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1평당 아파트 가격이 2천만원을 훌쩍 넘긴 부동산 광풍 시대에 아직도 동굴과 움막집에서 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본격적인 기획은 11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최저 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처에 사는 이웃들의 고통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미치자 더 이상 보도를 늦출 수 없었다. 특히 정부와 사회의 모든 관심이 폭등하는 아파트값 잡기에 집중돼 있던 때여서 주거극빈층의 고통은 더욱 관심의 사각에 내몰리고 있었다. 후배들의 도움도 컸다. 사회부 2년차, 3년차를 뛰면서 지치기도 했을텐데 기획 취지를 듣고서는 극빈주거층이 살고 있는 지역 담당 후배기자들은 흔쾌히 뜻을 모아줬다. 수습기간 중이던 막내들이 특히 고생했다. 선배들의 지시에 따른 것 뿐이라고 했지만 열정이나 의지가 선배기자 못지 않았다. 부산일보의 이번 보도는 발로 뛰는 전통적인 취재형식에 더해 주거극빈층의 실태를 통계로 분석, 취재보도 기법을 진일보 시켰다고 판단한다. 본보는 표준화된 설문지를 바탕으로 주거극빈층을 심층면접, 인구통계학적 속성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환경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본보 취재팀이 SPSS(사회통계 분석프로그램)를 이용, 주거극빈층의 실태와 욕구를 빈도와 교착분석뿐 아니라 아노바(3개 그룹의 평균 차이가 의미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통계분석)와 회귀분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의대 권승 교수팀의 도움이 실로 컸다.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권 교수팀에게도 감사 드린다.
한국기자상)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보도 연…
(제39회 한국기자상)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보도 연합뉴스 사회부 사건팀 공병설 임화섭 홍제성 김병규 강건택 성혜미 장재은 차대운 임은진 홍정규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보도』 [취재보도부문] 작년 5월11일 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구속 장면을 바라보던 연합뉴스 사건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이런 상황을 자초했을까, 좀 더 솔직했더라면 이런 파국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을 한 것 같다. 아들이 맞고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흥분해 일을 벌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뒤에 김 회장이 보여준 행동은 재벌의 모습이 아니었다. 계속된 거짓말 행진으로 결국 쇠고랑까지 찼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은 셈이다. 작년 봄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보복폭행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남의 허물을 들춰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반드시 진실이 밝혀졌어야 할 사건이었고, 연합뉴스는 운 좋게 그 역할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맞고 들어 온 아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아버지가 어디 있겠냐는 생각을 하면, 김 회장의 감정적 반응도 전혀 이해 못 할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만약 사건의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보복폭행을 행한 당사자는 아무런 사회적 비난과 제약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 대기업은 여전히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보복폭행 사건 보도는 재벌이 경제 분야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으로도 책무가 적지 않으며, 이를 감시해야 할 임무가 언론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또 수사를 미루면서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경찰의 추악한 모습을 알림으로써 대기업과 경찰의 검은 커넥션을 파헤쳤다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사건의 1보는 연합뉴스가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사도 심층 취재를 통해 경찰을 압박함으로써 실체를 밝히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진실을 알리려고 애 쓴 사건기자 모두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옛말에 제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보복폭행 사건은 이런 작은 깨달음부터, 이른바 `사회지도층'에게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야뉴스 같은 면이 있다는 교훈을 우리 사회에 던져 줬다. 새해에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됐던 모든 사람들이 아픈 상처를 깨끗이 치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특히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가 오랫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한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연합뉴스 사건팀도 더욱 좋은 기사를 찾아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한다. 올해는 기사의 주인공도, 기사를 읽는 사람들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하고 싶다.
한국기자상)비운(悲運)의 괭이갈매기 영남일보
(39회 한국기자상)비운(悲運)의 괭이갈매기 영남일보 사진팀 박진관 기자 『비운(悲運)의 괭이갈매기』 [사진보도부문]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다>(마태복음) “박 기자! 갈매기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어?” 뜨끔했다. ‘이제껏 새들을 카메라에 담아오면서 카메라의 먹잇감으로만 새를 이용한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에 선배에게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얼버무렸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비운의 괭이갈매기’ 취재당일 새벽안개가 낀 형산강 국도를 달리다 교통사고가 났다. 자칫 기자와 일행들이 비운에 갈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큰상을 받고 보니 ‘하나님께서 기자가 갈매기보다 귀했기 때문에 기자를 살려 죽어가는 갈매기를 찍게 하셨다’고 믿고 싶다. 비운의 갈매기를 만난 것도 우연이지만, 그 갈매기는 마치 ‘나의 처절한 모습을 마음껏 찍어 인간들에게 고발해 주시오’라고 절규하듯 다양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신문에 보도된 뒤 반향은 컸다. 납덩이를 몸에 매단 채 살기위해 버둥거리는 괭이갈매기는 몰지각한 일부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다 낚싯줄이 끊겨 버리면 수거하지 않고 물속에 그대로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납덩이가 갓난아기 새끼손가락만하겠지만, 갈매기에겐 바윗덩어리보다 무거운 천형이다. 더욱이 갈매기가 먹이를 사냥하면 할수록 부리 안쪽으로 몸에 감긴 낚싯줄이 조여오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은 죽음을 빨리 맞이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갈매기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고 갈매기가 먹이사냥을 그만둘 순 없다. 낚싯줄에 감기지 않은 왼쪽 다리만을 이용해 자맥질을 하기 때문에 먹이사냥에 실패하면서도, 쉴 틈 없이 숭어를 잡기 위해 대가리를 물속에 처박아 넣던 갈매기의 처연한 날갯짓. 하루 종일 그 갈매기를 찍어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 시련과 역경이 없는 생명체들이 어디 있을까마는 포기하지 않고 살기위해 애쓰는 모습은 슬프다 못해 아름답다. 배설만 하고 배려하지 않은 인간의 탐욕과 실수로 멸종시킨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새보다 귀한 존재’라는 사실만 믿고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자연을 파괴해선 안 된다. 2008년 남한에선 그러한 논쟁들이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연의 복원과 조화가 전제되지 않은 개발은 죄악이란 점이다. 수상을 계기로, 아버님께서 지어준 이름 뜻대로, ‘모든 사물을 참되게 보는(眞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환경파괴에 대한 파수꾼의 역할을 더 잘 해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고 싶다. 새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새사모(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최고점수를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일하는 영남일보 동지들과 수상의 영광을 나누고 싶다.
한국기자상)시사기획 ‘쌈’ 김앤장을 말한다 1, 2편
(제39회 한국기자상)시사기획 ‘쌈’ 김앤장을 말한다 1, 2편 KBS 탐사보도팀 최문호, 이영섭, 이중우, 오범석 기자 『시사기획 ‘쌈’ 김앤장을 말한다 1, 2편』 [기획보도부문]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변호사만도 250여 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으로 변호사를 합친 직원 수만 해도 1천 7백여 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국부유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외국 투기자본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막대한 국부를 가져갔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이런 논란의 한 당사자이다. 즉 외국 투기자본의 편에 서서 국부유출의 첨병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이나 편법은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조명된 것이 없는 실정이었다. 그 만큼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성역이었다. 이번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대한 방대한 취재는 그 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발굴이었고 또한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초로 시도된 취재였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수십 명의 전직 관료들을 거액을 주고 고문, 전문위원 또는 실장 등의 직함으로 스카웃해 가고 있다. 김앤장은 법률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앤장이 그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앤장은 그들이 어떤 보수를 받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그러나 KBS 탐사보도팀은 수개월에 걸친 추적을 통해 이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는 수 개월 동안 기자들이 하나하나 발로 뛰어서 얻어낸 것이었으며, 분석 또한 몇 달이 소요 되는 최초의 시도였다. 예를들어 김앤장에 근무하는 변호사와 전직 공무원들의 보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우선 법조인대관 전체와 서울지방변호사회 명부, 각종 법률 정보 사이트, 그리고 지난 97년부터 10년 동안 재경부, 국세청, 검찰, 금감원 등 7개 정부기관의 퇴직공무원의 명단을 입수한 뒤 이들 수 만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전산 입력해야 했다.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 이 작업만 해도 몇 개월이 소요됐다. 김앤장에 대한 취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많은 부분에서 힘이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김앤장의 대응 방식이었다. 김앤장과의 마땅한 의사소통 통로가 없어 고민하던 중 김앤장으로부터 언론 관계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제 대화가 조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김앤장은 시종일관 자신들은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했다. 언론이 지나치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변호사들이 모인 단순한 법률회사일 뿐인데 이를 두고 권력기관이라는 등의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논쟁을 하지는 않았다. 기자는 기사로 말할 뿐 취재대상과 언쟁을 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무엇보다 비록 취재대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생에 한국기자상을 한번 타는 것도 힘든 일인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기자상을 타게 돼서 더 없는 영광이다. 매번 그렇지만 이번 작업도 KBS 탐사보도팀 전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올해는 해외연수 중이어서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다시 한번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국기자상)여수참사, 200일의 기록 KBS순천(광주…
(제39회 한국기자상)여수참사, 200일의 기록 KBS순천(광주) 방송부 임병수· 서재덕 기자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 [지역기획보도부문] 다음 달 11일이면 여수출입국사무소에 불이난 지 1년이 된다. 일요일 새벽이었다. 새벽 불길은 외국인 1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7명의 몸과 마음에는 평생 멍에인 큰 상처가 남았다. 이중 쇠창살 속 검게 타버린 보호소는 참혹했다. 60여명의 외국인들은 그 속에서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건 분명 참사였다. 7개월 남짓 떠난 자와 살아남은 자, 또 남겨진 가족과 그 동료들 곁을 맴돌며 취재를 했다. 이란 청년 유세비와 중국에서 온 서뢰에 대한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이름을 잊었지만 그들은 불길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가혹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함께 병원을 오가며 꿈 많았던 그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단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들은 아직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프로그램이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이다.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를 흘러간 사건이 아닌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사건을 기본 틀로 우리 사회 외국인 노동자와 그들의 인권문제를 뜯어보고 다시 꿰맞춰보고 싶어 제작에 뛰어들었다. 처음 생각과 달리 취재의 덩치는 자꾸만 커져갔다. 곳곳에 이야기가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외국인과 관련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50분짜리 그릇에 담느라 뼈대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버려야 했다. 우리의 뼈대는 결국 ‘인권’ 이었다. 최소한 국가기관이 개입해 법을 집행하는 순간부터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스키폴 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을 어떻게 처리했고 또 우리나라 못지않게 불법체류자 단속에 엄격한 독일의 보호소 현실은 어떤 지도 취재했다.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달랐고, 그 차이는 결국 인권에 대한 시각차였고 여수참사의 불씨였다. 지난해 ‘외국인 백만 명 시대’라는 구호가 뜨거웠다. ‘다문화 사회’라는 말은 이제 흔히 쓰인다. 함께 살아가는데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 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 한 사람이 아쉬운 지역국 현실에서 묵묵히 내 몫까지 감당하며 지켜봐준 KBS순천방송국 드림팀(우리는 우리팀을 그렇게 부른다)에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한국기자상)뉴스추적 413회 ‘전직교수 김명 호, 그는…
(39회 한국기자상)뉴스추적 413회 ‘전직교수 김명 호, 그는 왜 法을 쐈나?’ SBS 보도제작2부 김용철, 윤창현 기자 『뉴스추적 413회 ‘전직교수 김명 호, 그는 왜 法을 쐈나?’』 [기획보도부문] 지난 해 1월 중순 현직 부장판사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한 전직 교수의 화살에 맞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법조계와 언론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여론은 외형적 폭력의 피해자인 부장판사보다 가해자인 전직교수 김명호씨를 옹호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극에 달한 사법 불신의 원인을 이 사건을 통해 비춰보기로 했다. 취재진은 석궁테러 사건의 빌미가 된 김명호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을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읽고 또 읽어 봤다. 대부분 김 교수의 인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성균관대 측의 증거와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잣대에 의해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의 인격이 어떻게 법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법원이 사실로 인정한 몇몇 증거의 내용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취재팀은 법정 증거를 통해 김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으로 돼 있는 당시 학생들을 일일이 찾아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판결문에 실명이 거론된 몇몇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판결문에 자신의 이름이 인용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한 증거로 인용된 문서는 본 적 조차 없다는 증언과 함께 자신들은 서명한 적도 없다는 제자들도 있었다. 법원이 판결의 근거로 내세우며 채택한 증거의 효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결국 거짓과 부정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진실과 정의를 대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 이후 많은 시청자들은 그동안 우리사회의 마지막 성역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자신의 판결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사법 권력의 개혁 필요성을 공감했다는 격려 전화와 메일을 보내 주셨다. 지난 해 10월 판사 상해 혐의로 기소된 김명호 전 교수는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현저히 증대됐다’게 재판부가 밝힌 중형 선고 이유다. 과연 ‘사법부에 대한 위해 가능성을 현저히 증대’시킨 것이 김명호 전 교수의 행위일까? 아니면 방송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사법판단일까? 재판부에 다시 한번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한 지인은 기자에게 ‘김명호 교수가 세상과 소통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외골수 같은 성격에 생업을 내던진 채 10년 넘게 거대 사법 권력에 맞서 온 것만 봐도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적당한 타협과 진실에 대한 외면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김명호 교수의 ‘소통’ 실패는 곧 우리 사법제도, 나아가 우리 사회공동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사법제도가 권력과 자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시민의 상식을 담아내고 실체적 진실과 법적 진실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 내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김명호 교수 사건은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든든한 믿음과 동료애로 지켜봐주신 SBS 선후배들께 깊은 감사와 함께 한국 기자상의 영광을 돌린다.
한국기자상)욕정에 눈 먼 70대의 공포의 해상 연쇄살인
(39회 한국기자상)욕정에 눈 먼 70대의 공포의 해상 연쇄살인 YTN 사회2부 김범환· 김경록 기자 『욕정에 눈 먼 70대의 공포의 해상 연쇄살인』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에서 기자, 그 것도 다름 아닌 한국의 뉴스채널 YTN 기자로 살면서 한국기자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이번 취재는 주변 사람이 피해자를 잘 알고 발생 현장이 고향 부근이라는 점, 또 오랫동안 취재를 다녀 그 지역 주민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육상경찰과 해양경찰의 핵심 수사라인과는 10년이 넘게 교류를 해 온 사람들이어서 양쪽을 넘나드는 취재가 가능했다. 그래서 행정구역으로는 각각 다른 곳에서 발견된 시신들이었고 육경과 해경의 떠넘기기가 있었지만 두 사건의 관련 가능성을 생각해 보며 그림을 더 크게 그리고 묶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용의자가 붙잡혀 혹시라도 있었을 지 모르는 추가 피해를 막았다는 점이다.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무등록 어선의 관리 강화, 육상경찰과 해상경찰의 수사 공조 문제 등은 구체적인 지침 등이 논의 중이다. 다만 지명을 밝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첫 보도 이후 농약녹차, 값싼 수입녹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성에 관광객들도 크게 줄어든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돌이켜 보면 단순 변사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을 한 달여 동안 끈질기게 추적해 보도함으로써 경찰도 처음에 설마했던 희대의 연쇄살인극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다고 판단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1명이 더 숨져 피해자가 모두 5명으로 늘었다. 다름 아닌 70대 어민의 큰 아들이 지난해 말 서른 여덟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사건의 충격과 옥바라지 등으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의 명복을 삼가 머리숙여 빈다. 온 누리가 하얗던 겨울, 고생만 하시던 아버지께서 사실만 하시니까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신 지 만 3년이 됐다. 하늘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보고싶은 울 아버지 기일에 '한국기자상 수상' 이라는 낭보를 들었다. 선친의 음덕이 큰 아들을 여전히 보살피고 계신가 보다. 아울러 넉넉치 않은 여건에도 성원해 준 이인배 지국장을 비롯한 YTN 광주지국과 모든 YTN 식구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