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10편
한국기자상) 중국 동북3성 최초 특파원 활동중 순직 …
선배, 영원히 떠나버리셨다는 비보를 접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습니다. 멀리 북녘에서 홀로 눈감으셨을 생각에 애통함이 앞서더니 이제는 차분히 선배를 추억합니다.
당신이 계시던 자리에는 아직도 아쉬움과 슬픔이 맴돌지만 동시에 마지막 한걸음까지 뜨겁게 타올랐던 꿈과 열정이 깊은 울림으로 퍼져 나옵니다.
선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온 기자, 아니 기자이기 전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준 "잊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남에서 북으로, 중국 동북 3성까지 자신의 꿈을 실로 넓고 활달하게 펼치면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했기에 당신의 기사에는 기자정신에서 나오는 날카로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갈수록 서먹해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배의 떠난 자리가 더욱 아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선배를 떠올리는 것은 단지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잡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걸음이 어떤 꿈을 향하는지, 그 꿈을 향해 얼마나 뜨겁게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따뜻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지……. 당신은 우리의 마음에 맑은 거울 하나를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은 홀연 떠났지만 9년 동안 기자로서 쉬임없이 걸었던 길은 결코 끊어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동료 언론인과 앞으로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이어 나갈 것입니다. 온갖 나무와 풀이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치열하게 봄날의 영광을 준비하듯이 당신의 떠남은 이미 또 다른 뜻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선배! 어느 곳에서든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 선배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오늘도 팽팽하게 맞선 남과 북, 북방 동포의 삶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37년의 생을 통해 심어 두었던 뜻이 언젠가 이 땅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믿습니다. 그 뜻이 당신을 잊지 않는 우리와 함께 더 넓고 크게 번져나가길 바랍니다.
이 상(賞)도 선배의 길을 이어가자는 내일을 향한 되새김이자 고마움의 표현이겠지요. 이렇게 깊은 울림으로 남는 선배의 열정적인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한국기자협회에 감사드립니다.(연합뉴스 국제뉴스부 함보현 기자)
▲조계창 특파원 공적 요약
고(故) 조계창 차장은 1998년 12월 연합뉴스에 입사, 전주취재팀과 사회부, 민족뉴스부를 거쳐 2006년 6월 한국 언론사 최초 중국 선양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선양특파원으로 동북 3성을 담당하면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영해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생포된 한국인 '켈로부대원'이 중국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타전했다. 백두산 호텔 철거에 따른 교민 피해 등의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 보도하는 등 동포사회의 소식을 정확하게 취재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해 동포사회의 신망을 얻었다.
고인은 2008년 11월27일부터 지린(吉林)성 일대를 순회하며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고 옌지(延吉)에서 김병민 연변대 총장을 인터뷰한 뒤 12월2일 택시를 이용 투먼(圖們) 취재에 나섰다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한국기자상) 성역없는 비판정신과 투철한 기자정신 Y…
임 장 혁 (YTN 돌발영상 제작자)
일손을 놓은 지 넉 달이 지났습니다.
‘성역 없는 비판정신과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방송을 잘했다고 상을 받게 됐지만 저희 돌발영상팀은 현재 방송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무한한 영광과 자부심을 표해야 하는 수상 소감에 답답함과 억울함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YTN의 대표상품이라는 돌발영상을 4년 동안 꾸려오던 저는 정직 6개월 ‘조치’를 당했습니다. 참으로 일 잘하던 후배 정유신 기자는 아예 해고돼 버렸습니다. 저희 둘은 이번 설 연휴 바로 전날 사측으로부터 4번째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5년 넘게 쉼 없이 방송되던 돌발영상은 하루아침에 YTN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막내 정병화 기자 홀로 돌발영상이 영영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롭게 버티고 있지만 이 막내의 얼굴엔 갈수록 그늘만 짙어집니다.
외부에선 상을 주고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징계하고 고소하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은 몇 달 전만 해도 YTN과는 일면식조차 없던 ‘대선특보’ 출신 사장이라는 사람에 의해 벌어졌습니다. 돌발영상 뿐 아니라 YTN의 수많은 기자들이 ‘대선특보’에 의해 해고되고 고소당하고 보직이 박탈됐습니다. 이 대선특보를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YTN이 문 닫을 수 있다는 정부 고위 공직자의 협박도 거셉니다.
법과 원칙이라는 말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대선 때 ‘공식 직함’을 가졌던 현 정권의 사람이, 24시간 뉴스만 하는 언론사 사장자리에 앉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반칙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칙이 시키는 대로 반칙을 막기 위해 나선 기자들을 마구 해고하고 고소하는 것은 법이 아닙니다. 폭력입니다.
정권 인사를 사장으로 모시지 않는다고 멀쩡한 방송사가 갑자기 문 닫게 되는 일은 법과 원칙이 선 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억압과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나 상상해볼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법과 원칙이 선 나라이며, 지금의 정부 또한 법과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할 거라 믿습니다.
반 년 넘은 투쟁의 피곤함을 올곧은 정신으로 채찍질하며 여전히 굳게 서 있는 선후배들과 해고당한 채 투쟁을 이끌고 있는 돌발영상의 창시자 노종면 선배, 그리고 저희의 투쟁을 지지하는 수많은 분들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상을 주신 기자협회에도 ‘제대로 된’ 법과 원칙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감사함을 표합니다.
한국기자상) 무법(無法)의 전당 연합뉴스
'無法의 전당' / 연합뉴스 사진부 김주성 기자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거침없는 욕설... 작년 12월18일 '이것도 기록해야 할 우리의 역사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은 난장판 이었다. 국회 복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카메라와 펜들 앞에서 '그들만의 정치행위'는 떳떳했다.
사진기자로서 그 난장판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해야 될 역할은 분명했다. 누가 먼저 무법행위를 했는지, 누구의 무법행위가 더 정당한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았다.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던 그 난장판 상황에서‘가장 난장판다운 순간’을 거짓 없이 기록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언론들은 마치 증거자료 내밀 듯 그날의 '무법의 전당' 사진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그날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모습은 로이터 등 뉴스통신사를 통해 세계 각 국에 전해졌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에 대해 국내외 언론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비판과 냉소 때문이었을까? 각 정당들은 연말연시 되풀이되는 폭력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방법을 두고 여야간 시각차는 여전하다. 심지어는 또 다시 극한 대립을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폭력방지 입법을 두고 폭력이 행사되는 일은 없겠지라고 기대해 본다.
한국기자상... 언젠가 받아보리라 했는데 너무 일찍 받아 민망스럽다. 수상작인 ‘무법의 전당’이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뉴스전달의 도구로서 ‘사진의 힘’에 대해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갈길 먼 8년차 사진기자에게 초심을 깨우쳐주는 큰 상이다.
한국기자상) 「AI 기획리포트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
‘AI’(조류인플루엔자) 또는 ‘앵무새’라는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고 TV화면에서 간혹 앵무새가 나오면 시선이 온통 그놈에게 쏠릴 정도다.
지난해 봄, 불청객 AI의 급습에 서울과 부산까지 잇따라 뚫리면서 엄청난 홍역을 치렀는데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국내 가금류 농가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안겨준 잔인했던 봄,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
AI와 관련된 기사는 지금도 내외신을 통해서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인접한 중국에서는 최근 사망자가 잇따르고 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AI 다발지역에서는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국내에서 3번째 AI가 발생하는 등 조류인플루엔자가 연례행사가 되면서 국내 방역체계도 많이 개선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AI가 겨울철 전염병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봄에 발생했고 기온상승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바람에 방역당국이 혼이 났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덕(?)에 AI 방역체계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연중 방역체계전환과 오리사육농가에 대한 감시활동 강화 그리고 조류사육시설의 점검대상 포함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빗장이 하나 풀리면서 AI전염의 위험성은 한층 높아졌다.
야생동식물보호법 규정을 내세워 그동안 앵무새 수입을 전면 금지했던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인공증식을 전제로 이를 허용했다.
앵무새 반입이 위험한 것은 앵무새 서식지가 대부분 AI 발생국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야생이 아닌 인공 증식된 앵무새만 수입이 허용되고 AI발생국으로부터 수입이 금지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해서 AI 전염이 원천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AI발생국 인도네시아산 앵무새들이 필리핀으로 대거 밀수되고 이곳에서 인공 증식된 필리핀産 앵무새로 국적이 세탁돼 다른 나라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이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앵무새 수입 또는 밀수를 경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앵무새가 AI전염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2004년 영국에서 검역을 받던 수리남산 앵무새에서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된 것이 이를 대변한다.
이듬해 벨기에 브뤼셀 공항으로 밀반입하던 태국産 새끼 독수리 2마리에서도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됐다.
애완조류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앵무새 수입이 국내에서도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검역당국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가금류에 대한 감시뿐 아니라 애완조류에 대한 감시도 소홀히 할 수 없게 됐다.
소득 수준과 앵무새, 애완조류 사육은 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래서 그런지 국내 앵무새 사육이 늘고 있다. AI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뜻밖의 한국기자상 수상 소식에 기쁨도 크고 어깨도 무겁다.
태국 현지 취재의 난관을 뚫고 앵무새 밀수 고리를 확인한 이균형 기자, 그리고 데스크의 지원과 해외 취재에 대한 회사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취재에 도움을 준 태국 검역당국과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ProFauna Indonesia, 그리고 편집과 더빙에 힘을 보탠 후배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훌륭한 다른 작품이 많음에도 좋은 평가를 해주신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
한국기자상) 무너지는 버스 준공영제, 혈세 1700억 샌…
- 무너지는 버스 준공영제, 혈세 1,700억원이 샌다 -
“아이템은 잘 건져오지만, 1%가 부족해. 아이템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키워라.”
이창선 방송 본부장님과 경찰팀 캡이던 심병철 선배가 항상 강조하던 부분이었습니다. 지난 1년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챙기며 동시에 참신한 아이템을 찾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리저리 기사를 찾던 지난 5월 버스노동자 협의회 운전기사를 만난 자리에서 솔깃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버스 준공영제가 대구시의 관리, 감독 실종 하에 버스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버스 운전기사들의 인건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당하게 지급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인건비 부당 청구 규모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월급명세서를 확보하면 밤을 새더라도 인건비 부당 청구 금액을 확인해 볼 참이었지만, 대구시는 취재진의 요청과 정보공개청구에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 취재기자는 오기가 발동했고, 버스 준공영제의 세금 누수와 구조적인 문제점 등 지난 3년간 준공영제의 부실 운영을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찾아냈습니다. 연간 수백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이 너무나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자가 아닌 대구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취재는 버스 준공영제의 지난 3년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데 집중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고구마 줄기를 뽑아 올리듯 숨겨진 팩트들을 하나하나 손에 넣으면서 ‘이것이 선배들이 말하던 진정한 취재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반면 취재가 막혀 고민을 하던 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대구시와 대구시의회,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일반 시민들까지 서민의 발인 버스 정책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버스 준공영제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대구의 거대 교통 정책의 하나인 버스 준공영제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역의 모든 언론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계속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입사 5년 차, 불과 1년 전만 해도 막내생활을 하던 제게 한국기자상은 불가능이자, 꿈이었습니다. 9번의 도전 끝에 이달의 기자상을 간신히 거머쥔 제가 수상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자 최고 영예의 상을 다시 받게 되다니! 정말 저는 억세게 운이 좋은가 봅니다. 어떤 상이든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취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신 데스크, 취재를 하느라 생긴 공백을 묵묵히 메워주신 선후배님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파업기간 중 김환열 뉴스취재팀장님과 김현수 영상팀장님이 마지막 리포트를 대신 해주신 노고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한국기자상은 대구 MBC 기자 모두가 함께 만든 작품입니다. 7달에 걸친 취재를 통해 희망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끝으로 언제나 곁에서 말없이 응원해준 아내 최인영과 딸 성은이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한국기자상)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시사기획 쌈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 취재후기
KBS 정재용 기자
“그거 취재 거의 안 될 거에요, 재용씨” 스포츠 분야 성폭력 취재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앞이 깜깜했다. 그래서 여성계 취재 경험이 풍부한 동료 기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한 마디로 ‘사실상 취재불가’였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순간 그들의 용기를 찬양하는 대신 오히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더구나 2차 피해를 양산하는 반인권적인 수사 과정과 시대에 역행하는 수많은 솜방망이 판결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깊다고도 했다.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면서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어떤 피해자와 가족들도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부모들은 이제 간신히 살아가는 아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겠다는 거냐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인터뷰 약속을 하고서도 결국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피해자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범죄 피해자이면서도 세상의 눈을 피해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고통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답답했다. 피해자 인터뷰가 없으면 방송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냥 포기하기엔 상황이 너무나 심각했다. 무엇보다 문제의 원인이 잘못된 스포츠계의 제도와 시스템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다.
결국 취재팀은 비밀리에 사건 관계자들과 피해자 주변 선후배 친구들을 접촉한 뒤 그들의 설득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정보를 제공해 준 분들 모두 취재에 협조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평생 살아 온 스포츠계를 떠나야 할 만큼 위험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취재팀을 믿고 위험을 감수해 준 그 분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보고서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 쯤이면 항상 같은 말이 이어졌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00사건도 아시죠? 00를 찾아가 보세요” 한 번 물꼬가 트이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증언에 취재팀조차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이 거의 똑같은 형태로 벌어졌고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덮여졌다는 점이었다. 오직 승리와 대학 진학, 취업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송 이후 정부와 여당은 학원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 선수 최저학력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늦었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남은 과제는 이제 시작인 스포츠 개혁이 성폭력까지 유발했던 승리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에게 스포츠의 혜택을 나눠줄 수 있도록 지켜보며 감시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힘겹게 정보를 제공해 준 분들과 피해자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기자상)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이달의 기자상 수상 후기
지난해 4월초 노동담당 기자는 '정규직 없는 공장'이라는 단발성 아이템을 발제했다. 이 소박한 아이템은 그러나 조호연 당시 사회에디터(현 기획탐사에디터)에 의해 비정규직 문제 전반을 다루는 기획으로 범위가 대폭 확장됐다. 조 에디터는 담당 기자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이 가능한지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된 비정규직 관련 기사를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사들은 대략 네 가지 각도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했다. 먼저 통계수치를 인용해 비정규직의 양적 팽창을 다뤘다. 또 투쟁하는 사업장의 사례를 통해 비정규직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보도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비정규직법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짚었다. 끝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은 무엇인지 검토했다.
이 기사들로 현실을 모자이크해보니 곳곳에 공백이 보였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이 850만을 넘어섰다는 통계수치는 비정규직화가 우리사회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투쟁하는 사업장의 사례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비정규직 문제를 특수한 사업장 혹은 계층의 문제로 제한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간극을 해소하려면 비정규직이 일반적으로 처한 삶의 조건을 먼저 그려낸 바탕 위에서 비정규직 각자의 처지에 따라 반응이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법·제도·정치·운동적 요인과 어떻게 맞물려있는지 분석돼야 현실에 대한 입체적 진단이 가능해진다.
비정규직 집중기획은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4월 중순, 국장단은 비정규직 기획을 2008년 대형기획물로 갖고 가기로 결정했다.
취재는 기획안 마련을 위한 사전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한 본 취재로 나뉘었다. 사전취재 단계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각종 자료 수집과 전문가들 인터뷰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본 취재는 기획 의도에 맞는 사례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예상대로 취재는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쉽게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얘기가 기사화될 경우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컸다. 사례 발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공·사적으로 알고 있는 지인들을 직접 취재하거나 그들에게 소개를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사람에게 또 소개를 청하는 '다단계형' 취재가 기본이었다.
이번 기획의 취지는 "비정규직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당초 의도대로 비정규직 문제가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나와 형제와 이웃의 문제라는 것,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이라는 무겁고 녹록치 않은 주제를 능력껏 다룰 수 있도록 많은 지면을 허락해준 국장단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전국부 선배들의 헌신적인 취재와 장은교, 이호준, 송윤경 기자의 열정이 없었다면 이번 기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취재에 도움을 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전문가들, 그리고 커다란 상으로 부족한 기획을 격려해준 한국기자협회에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국기자상) 천국의 국경을 넘다 조선일보
2007년 8월 21일 새벽.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윈난산(雲南山). 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박혔다. 환한 별빛은 무성한 열대림에 갇혔다. 가파른 산길은 한치 앞을 가눌 수 없었다. 탈북자 8명과 취재진 2명은 중국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1만㎞를 달려왔다. 동 트기 전까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이 산만 넘으면, 이제 자유다.
총을 든 군인들이 저 멀리 보였다. 가이드의 손짓에 따라 물길을 거스르고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어느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정상을 앞두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안경 위로 빗방울이 내리쳤다. 나무를 찾아 몸을 감추고 숨을 고르는 사이. 르포 기사의 리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투철한 기자정신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엉뚱한 고민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만큼 밀입국의 순간은 몸서리칠 만큼 두려웠다.
당초 8시간이면 끝난다던 산행은 18시간을 넘겼다. 목이 마르면 메콩강의 흙탕물을 마셨다. 배가 고프면 이름 모를 나뭇잎을 따서 씹었다. 그런 우릴 바라보며 가이드는 혀를 찼다. “아무 거나 먹으면 죽을 수 있어.” 하지만 본능은 이성보다 강했다. 그렇게 밀입국에 성공했다. 라오스 국경에 도착하자 일행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자유의 땅에 가면 두 번 다시 국경을 넘지 말자고 약속도 했다.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취재팀은 그 밀입국 길을 다섯 번이나 더 건너야 했다.
2007년 4월에 시작된 취재는 2008년 2월에 끝났다. 중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등 9개 국가를 옮겨 다니며 취재했다. 우리가 돌아다닌 거리를 계산하니 2만㎞가 넘는다. 그 동안 중국인 브로커를 따라 두만강 인근에서 인신매매 현장에 참여했다. 마약을 입에 물고 국경을 건너온 북한 군인과 마주친 적도 있다. 그에게 받은 마약 덩어리를 손에 쥐고 중국 국경수비대 정문을 뛰어서 지나치기도 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벌목소에 잠입했다 들켜서 도망친 경험도 있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제 죽는구나’하고 마음을 정리한 것만 세 차례다. 특히나 현장에서 붙잡혀 중국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밀 때 그랬다. 트럭을 타고 그들의 본부로 가는 길. 유서를 써놓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서울의 편집국으로 돌아가 자판을 두드릴 기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에 마음이 울컥하곤 했다. 탈북자 인권을 짚은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그렇게 완성됐다. 하늘이 도운 덕에 무사히 돌아와 기사를 썼고 다큐멘터리를 편집했고 온라인 특집페이지를 기획했다. 게다가 제40회 한국기자상도 수상하게 됐다. 참으로 기적이다. 덧붙여 감사한 일이다.
수습기자 딱지를 뗀 게 벌써 10년이다. 1999년 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마주친 선배는 원고지에 빨간 줄을 그으며 말했었다. “기자란 직업이 네겐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아보렴." 그만치 재능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영상 편집을 했다. 어리석은 후배를 길러준 조선일보와 국민일보의 여러 선배들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까닭이다.
한국기자상) 청와대 ‘KBS 사장 인선 비밀 대책회의’…
김정섭 경향신문 미디어팀 기자
수상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취재·편집 과정에서 많은 도움과 지혜를 더해 주신 경향신문 선·후배들과 방송사 관계자들, 졸고를 높이 평가해준 한국기자상 심사위원단께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미디어 기사 홍수의 해'로 기록된 지난 한해동안 취재 현장에서 고생을 함께 한 동료 미디어 담당 기자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
2008년에는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국내 언론계와 미디어·영상산업 현장에도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경제 살리기'를 모토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당선된 '이명박호'의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실력'과 '자신감'으로 국정을 펼쳐나갈 지 기자로서 관심이 많았다. 참여정부 이후 권력이 미디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 역시 특별한 관심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언론계에 아름답고 건설적인 어휘보다는 '방송장악' '낙하산 인사' '언론인 해고' 등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문구들을 다시 등장하도록 이끌었다.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를 비롯 각 방송사 사장 등을 이른바 대통령 측근으로 갈아치우는 '낙하산 인사'도 시작했다. '법치'를 강조하는 정부가 법에 보장된 KBS이사장, 이사, 사장의 임기를 무시하고 수사·감사기관을 총동원, 핑계거리를 찾아내 그들을 차례로 사퇴·축출시켰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7층 중식점 '도원'과 인연이 닿았다. 방송계 및 여권 인사들과 우연히 식사를 하다가 "바로 이곳에서 비밀회의가 열렸다는군"이란 말이 나왔다. 매일 수십 개씩 떠도는 소문가운데 하나였지만 왠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조각조각 팩트를 수집하고 교차 확인하면서 힘겨운 '퍼즐 맞추기'를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8월17일 '도원'에서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 실장,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유재천 KBS이사장 등이 한자리에 모여 김인규씨의 '대체 카드'인 김은구씨를 KBS 사장으로 앉히기 위한 비밀스런 '면접'과 '대책회의'가 벌어진 사실이 완벽하게 재현됐다. 불려간 게스트들의 발언도 모두 수집됐다. 이 대변인으로도 모자라 청와대에서 정 실장까지 참석한 이유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차마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보도 당일 대책회의를 갖은 사실을 시인하며 "우리는 듣기만 했다"고 해명했지만, 해명도 참석자들끼리 사전 조율한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보도이후 김은구씨가 낙마하고 이병순씨가 사장이 됐다. 그러나 사장만 바뀌었을뿐 KBS는 여전히 '관제방송' 논란에 휩싸여 있다. 만인에게 통용되는 법치, 권력과 언론관계의 정상화, 방송법에 명시된 방송의 독립성 보장이 아쉬운 때다. 청와대와 이 사장은 '개방성'은 '자신감'과 '능력'의 다른 표현이란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한국기자상) 한미쇠고기 협상 관련 보도 경향신문
<경향신문 경제부 강진구 차장>
5월 촛불항쟁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연수를 온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나간다.
노트북을 꺼내보니 지난해5월 한 달 동안 농수산식품부를 출입하던 오관철기자와 함께 한 팀이 되어 출고한 1면 기사가 20건이 넘었다.
첫 게재일자가 5월5일이니까 사실상 한 달간 거의 쉬지 않고 매일 1면 커버기사를 쏟아낸 셈이다.
당시 농식품부 기자실의 하루일과는 경향신문의 1면기사를 읽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적당히 파문을 봉합하고 넘어가보려는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정부 협상과정의 문제점, 새로 밝혀진 미국의 허술한 광우병소 관리실태등 농식품부는 연일 경향신문의 문제지적에 면피성 해명자료를 내놓기 급급했다. 담당 실국장들을 찾아가면 미국측의 계약위반에 대한 진지한 검토 대신 "이쯤에서 마무리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 올뿐이었다.
충격적인 대목은 내가 만났던 우리측 협상대표중 그 누구도 미국과 협상이 끝나고 난후 미국의 연방관보를 제대로 정독해본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동물사료금지조치에 대한 기초적인 영문오역역시 경향신문취재팀이 문제제기가 있고 3시간이 지나고 난후에야 잘못을 인정할 정도였다.
솔직히 지금도 정부내에 과연 몇명이나 '한해 광우병 의심소 40여만마리(5월7일자) '병든소·죽은소도 사료허용'(5월13일자)'광우병위험물질 제거증명 목축업자가 발행'(5월15일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해8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 둥지를 튼 이후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연일 착잡함이 앞선다.
'MBC피디수첩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탄압', '수개월간 농성끝에 무차별 연행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지도자', '언론소비자주권운동을 벌이다 법정에 서게 된 네티즌들'.
반면 '싸고 안전한 쇠고기를 먹게 됐다고 선전하던 국가최고지도자', '미국정부를 못 믿으면 누굴 믿겠느냐는 장관', '광우병은 복어독 같아서 광우병위험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수석협상대표'는 광우병괴담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가인 존 스튜어드 밀은 말년에 현실자본주의를 보며 "현실세계에서 진리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고 절망감을 토로한바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집어던진 이라크 기자의 심경이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5월 촛불항쟁의 한복판에서 국민과 함께 했던 경향신문이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과 회사를 떠나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영광이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