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회)여수참사, 200일의 기록/KBS순천(광주) 방송부 임병수
[지역기획 방송부문]
지난 2월11일 새벽, 후배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것이다. 사무실로 뛰어나가 아침 뉴스광장 전화연결을 시작으로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다.
체포돼 출국을 기다리던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였다. 이중 쇠창살 속 검게 타버린 보호소 내부는 참혹했고 또 당황스러웠다. ‘국가기관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 ‘터질게 터졌다’ ‘총체적 안전 불감증’ ‘허술한 초동대처 화 키워’…. 당시 신문·방송을 장식했던 뉴스 제목들이다. 그러나 뜨거웠던 언론의 관심은 차츰 사그러들었고 48일 만에 치러진 합동영결식 이후에는 아예 꺼져 버렸다.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여수참사’를 흘러간 사건이 아닌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번 사건을 기본 틀로 우리사회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뜯어보고 다시 꿰맞춰보고 싶었다. 외국인 백만명 시대, 그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22만명, 더구나 그 수가 계속 증가하는 현실은 그런 욕심의 바탕이 됐다. 마지막 편집과정까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 됐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든 밀린 임금 때문이든 분명히 불법의 영역에 서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소박한 원칙의 중요성이었다. 불법은 불법대로 분명 처벌받아야 하지만 체포, 구금, 강제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기관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바로 그 원칙. 어렵게 취재한 우리나라와 외국 보호소의 극과 극을 달리는 현실은 그런 생각을 더 굳게 했다.
여수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상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고 출입국관리소를 구금시설이 아닌 보호시설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여전하다. 여수사건 이후 중단됐던 불법체류자 단속도 지난 8월부터 다시 시작됐고 이미 양산된 불법체류자 22만명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두고 지금도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계속될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에서 ‘여수참사 2백일의 기록’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작은 판단의 근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 한 사람이 아쉬운 지역국의 현실에서 묵묵히 내 몫까지 감당해준 순천방송국 기자동료들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회차 심사평
제204회 전체 총평
제204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백병규 심사위원(미디어평론가)
204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38편이 출품됐다. 다른 달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출품작이었다. 하지만 수상작은 5편에 그쳤다. 취재보도부문이 2편, 기획보도에서 신문통신 부문과 방송부문이 각각 1편씩, 지역기획 방송부문에서 1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돋보이는 작품이 그만큼 적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 괜찮은 기사이고, 당연히 보도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좋은 기사이지만, 수상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아쉬운 작품도 적지 않았다.
취재보도부문에선 수상작 두 편 모두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된 권력형 비리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다. ‘신정아씨 권력 비호 의혹 추적 보도’(조선일보 사회부 이진동 기자 등 5명)는 자칫 망각 속에 묻힐 뻔 했던 신정아-변양균 커넥션의 진상을 규명하는 단초를 연 기사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정아-변양균 씨 사건을 다룬 상당수 언론의 보도가 사건의 본류와는 관계없이 곁가지에 주목해 선정적으로 흘러갔던 점에 비춰서도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를 비롯한 사회부 팀의 포커스가 계속 청와대 실세의 신정아씨 비호와 부당한 압력 행사 쪽에 맞춰졌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윤제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뇌물을 준 모 건설사 사주와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의 기사 역시 같은 이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수진 기자는 이 기사에서 정윤제 씨가 건설업자 사주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검찰 진술’을 확보해 보도함으로써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이달의 기자상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으로는 세계일보 김동진 기자 등 특별기획취재팀의 ‘신약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기획보도·신문)이었다.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기사 아이템이지만,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어려운 아이템을 선정해 도전한 치열한 도전정신과 이를 실현해낸 근성있는 취재만으로도 좋은 평을 얻었다. 또 임상실험 피험자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그동안 외부 모니터링의 사각지대였던 신약 임상시험의 가려진 이면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히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있는 말기암 같은 환자들의 신약 임상시험 참여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KBS 시사보도팀 정재용 기자의 시사기획 쌈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기획보도·방송)는 방송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운동 기계로 만드는 빗나간 학교 운동부 운영 실태에 대해서는 그동안에도 많은 지적과 고발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동일한 소재라도 접근 방식에 따라, 또 매체 특성에 맞는 설득력 있는 구성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 모범적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기획부문의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KBS 순천방송국·임병수·서재덕 기자)은 너무 쉽게 잊곤 하는 우리 언론의 ‘건망증’에 역행한 진중한 탐사보도로 손색이 없었다. 이 기사는 지난 2월 10여명의 외국인 수감자들이 사상당하는 참사를 빚은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 사건 이후 200일 이후 외국인 보호소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꼼꼼하게 챙겼다. 또 여수 화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해 뒤늦긴 했으나 정부의 대책을 끌어낸 점 등은 언론의 사회적 약자 보호 기능 측면에서도 높이 살 만 했다. 어찌 보면 이런 기사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희망을 가져볼만 할지 모르겠다.
이번 이달의 기자상에서도 아깝게 탈락한 작품들이 꽤 있다.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 사실을 끈질긴 추적 끝에 보도한 한국경제 유병연 기자의 ‘HSBC, 외환은행 인수 협상’이나 특색있는 기획기사였던 중앙일보 유권하 기자의 ‘레나테 홍 할머니 망부가 기획보도’, 한국일보 사회부 김정우 기자 등의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노원구청 공무원들의 제안’ 등이 그랬다.
경향신문 강병한 기자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 검증 시리즈’나 KBS 박태서 기자 등의 ‘국제금융센터 특혜의혹 추적 보도’등은 대선 후보 검증 기사들로 주목을 받았지만,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선과 관련한 기사나 기획들이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사위원들 중 상당수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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