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백병규 심사위원(미디어평론가)
204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38편이 출품됐다. 다른 달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출품작이었다. 하지만 수상작은 5편에 그쳤다. 취재보도부문이 2편, 기획보도에서 신문통신 부문과 방송부문이 각각 1편씩, 지역기획 방송부문에서 1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돋보이는 작품이 그만큼 적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 괜찮은 기사이고, 당연히 보도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좋은 기사이지만, 수상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아쉬운 작품도 적지 않았다.
취재보도부문에선 수상작 두 편 모두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된 권력형 비리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다. ‘신정아씨 권력 비호 의혹 추적 보도’(조선일보 사회부 이진동 기자 등 5명)는 자칫 망각 속에 묻힐 뻔 했던 신정아-변양균 커넥션의 진상을 규명하는 단초를 연 기사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정아-변양균 씨 사건을 다룬 상당수 언론의 보도가 사건의 본류와는 관계없이 곁가지에 주목해 선정적으로 흘러갔던 점에 비춰서도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를 비롯한 사회부 팀의 포커스가 계속 청와대 실세의 신정아씨 비호와 부당한 압력 행사 쪽에 맞춰졌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윤제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뇌물을 준 모 건설사 사주와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의 기사 역시 같은 이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수진 기자는 이 기사에서 정윤제 씨가 건설업자 사주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검찰 진술’을 확보해 보도함으로써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이달의 기자상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으로는 세계일보 김동진 기자 등 특별기획취재팀의 ‘신약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기획보도·신문)이었다.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기사 아이템이지만,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어려운 아이템을 선정해 도전한 치열한 도전정신과 이를 실현해낸 근성있는 취재만으로도 좋은 평을 얻었다. 또 임상실험 피험자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그동안 외부 모니터링의 사각지대였던 신약 임상시험의 가려진 이면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히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있는 말기암 같은 환자들의 신약 임상시험 참여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KBS 시사보도팀 정재용 기자의 시사기획 쌈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기획보도·방송)는 방송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운동 기계로 만드는 빗나간 학교 운동부 운영 실태에 대해서는 그동안에도 많은 지적과 고발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동일한 소재라도 접근 방식에 따라, 또 매체 특성에 맞는 설득력 있는 구성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 모범적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기획부문의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KBS 순천방송국·임병수·서재덕 기자)은 너무 쉽게 잊곤 하는 우리 언론의 ‘건망증’에 역행한 진중한 탐사보도로 손색이 없었다. 이 기사는 지난 2월 10여명의 외국인 수감자들이 사상당하는 참사를 빚은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 사건 이후 200일 이후 외국인 보호소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꼼꼼하게 챙겼다. 또 여수 화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해 뒤늦긴 했으나 정부의 대책을 끌어낸 점 등은 언론의 사회적 약자 보호 기능 측면에서도 높이 살 만 했다. 어찌 보면 이런 기사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희망을 가져볼만 할지 모르겠다.
이번 이달의 기자상에서도 아깝게 탈락한 작품들이 꽤 있다.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협상 사실을 끈질긴 추적 끝에 보도한 한국경제 유병연 기자의 ‘HSBC, 외환은행 인수 협상’이나 특색있는 기획기사였던 중앙일보 유권하 기자의 ‘레나테 홍 할머니 망부가 기획보도’, 한국일보 사회부 김정우 기자 등의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노원구청 공무원들의 제안’ 등이 그랬다.
경향신문 강병한 기자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 검증 시리즈’나 KBS 박태서 기자 등의 ‘국제금융센터 특혜의혹 추적 보도’등은 대선 후보 검증 기사들로 주목을 받았지만,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선과 관련한 기사나 기획들이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사위원들 중 상당수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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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회)신정아씨 권력비호 의혹 추적 보도/조선일보 사회부 이진동
[취재보도부문]
성적증명서도 없이 어떻게 교수로 채용됐을까? 쟁쟁한 인사들을 어떻게 제치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정됐을까? 그녀는 어떻게 몰래 미국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신정아씨 가짜 학위 사건 보도를 쭉 지켜봤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이 때부터 ‘뭔가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과 함께 취재 의욕이 발동했다. 어느 법조인도 “비슷한 생각이다”고 취재를 북돋웠다. 들끓던 신씨 가짜 학위 보도가 거의 사라지던 무렵이다.
가짜 학위 사건 관련자를 새로 접촉하고 신씨 임용 당시의 동국대 상황을 세밀하게 취재해 들어갔다. 취재 과정에서 장윤 스님의 한 측근으로부터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름과 함께 “(가짜 학위를 폭로한) 장윤 스님을 만나보라”는 얘기가 나왔다. 변 실장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8월초 전등사에서 장윤 스님과 약속을 잡았다. 스님을 만나기전 몇 명의 스님 측근들로부터 “장윤 스님이 변 실장으로부터 ‘조용히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마주앉은 스님은 변 실장 얘기는 피하려는 듯 했다. 하지만 요리 저리 5시간여를 물고 늘어진 끝에 듣고 간 얘기들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20여일간 2005년 신씨 임용 무렵 동국대 이사장과 총장 등에 대한 검찰 내사가 유야무야된 경위, 조계종 종단이 교육부에 요청한 동국대 특감이 묵살된 경위 등을 파고들었다. 신씨 임용 당시 동국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과 신씨 임용 간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것이다. 또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의 미스터리와 아르코 큐레이터 채용 외압 의혹의 윤곽도 잡아냈다. 신씨가 신용불량자였던 사실도 파악됐고, 기업들의 성곡미술관 후원 실태 및 후원 배경도 취재됐다.
첫 기사가 나간 8월24일부터 9월10일 변 실장의 사퇴까지 연일 ‘신씨 권력 비호 의혹’ 추적 기사를 내볼 수 있었던 것도 한달 간에 걸친 취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낮 가리지 않은 후배 기자들의 발품 취재가 위력을 발휘했다. 기사를 통해 제기된 의혹은 검찰 수사에서 사실로 드러났거나 검찰의 핵심 수사사안이 됐다.
이번 사건은 사적 관계 유지를 위해 변 전 실장이 저지른 권력 남용과, 신씨를 매개로 한 권력과 기업의 유착 비리가 핵심이다. 언론 취재나 검찰 수사 모두 갈길이 한 참 남아 있는 셈이다.
수뢰구속 정상곤 국세청 국장 - H 건설사 사주, 정윤재…
(204회)수뢰구속 정상곤 국세청 국장 - H 건설사 사주, 정윤재 전 비서관이 만남 주선 의혹/동아일보 정치부 조수진
[취재보도부문]
순전히 운이었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 사건을 ‘건진’ 것은.
8월 8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 발표 이틀 뒤인 8월 10일 오후 3시30분경.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엔 A4용지 한 장짜리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정 전 비서관이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교체된다는 내용.
청와대 출입기자가 된 지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은 ‘신참’에겐 모든 게 궁금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의 외교 일정과 절차를 전담하는 의전비서관이 교체될 수 있을까. 천호선 대변인의 설명은 이랬다. “부산 신라대 객원교수로 가게 됐거든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청와대 ‘부산파’ 중 대선과 총선에 참여할 참모들의 거취는 8월 3일 비서관 인사로 정리가 됐다. 청와대 내에선 마지막 ‘부산파’인 정 전 비서관은 10월 초 부산으로 낙향할 것이란 소문과 함께 ‘부산파’의 맏형격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왜 빨리 귀향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월 30만원의 월급을 받는 객원교수 보다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하고 방북단에 포함되는 의전비서관이 더 욕심나지 않을까.
부산지검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와 함께 정 전 비서관에 대해 물었다. 난데없이 부산국세청장이 튀어나왔다. 인터넷에서 뉴스 검색을 했다. 정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내기 하루 전인 8월 9일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이 구속됐다는 사실과 정 전 청장의 혐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정 전 비서관이 문제의 업자를 소개시켜준 것인지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퍼즐 맞추기’ 작업의 결과는 검찰의 재수사,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약속까지 이어졌다.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는 것,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란 생각에 짜릿할 뿐이다.
정 전 비서관이 세 차례나 강력히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수진’을 믿고 기사 게재를 허락해주신 정치부 선배들, 제 기사로 인해 부산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사회부 후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울러 5월 말 출산 휴가를 마친 뒤 전주 친정에 떼놓고 온 아들 인준이에게도 속삭여본다. ‘나쁜
신약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
(204회)신약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우한울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탐사취재에서 ‘딥스로트’는 도움 그 이상을 뜻한다. 그가 제공하는 내밀한 정보들은 엉킨 실타래를 단번에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학, 법률 등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취재에서는 그런 용기있는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많은 전문의들의 협조를 받을 순 있었으나 임상시험을 직접 수행하는 의사들의 깊은 속 얘기는 듣지 못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한 의사는 자신이 쓴 논문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논문 내용은 임상시험 과정 중 피험자들이 사망한 사실이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 보고에 누락됐다는 것인데, 논문 저자가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현행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이 사실을 검증할 수 없었다. 지도 교수도 “연구 결과가 잘못됐다”는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놨다. 연구 대상이 됐던 곳은 국내 최대 종합병원 가운데 하나다.
일부 임상시험 의사들은 취재팀의 문제제기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한 임상시험센터 소장은 “기분이 나쁘다”며 취재팀의 문제제기를 ‘비생산적 발상’으로 치부했다. 임상시험의 긍정적 효과만을 강조하면서 임상시험 중 부작용은 인간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또한 임상시험 의사들의 공통된 대응법은 다국적 제약회사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 임상시험 수행 전문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수십 년간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제약회사가 제시하는 원칙대로만 시험하면 어떤 문제도 발생치 않는다”고 방어 논리를 펼쳤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윤리 문제를 거르는 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우리나라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 손에 우리나라 환자를 볼모로 잡히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윤리의식은 제대로 된 임상시험을 가능케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목격된 의사들의 윤리 불감증은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임상시험이 병원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자리 잡은 마당에 IRB는 거추장스런 장애물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생명윤리 문제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제약회사 요구에 뒷전으로 밀리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의사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깨야한다. 또다시 제2, 제3의 황우석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사기획 쌈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Ⅰ,Ⅱ” K…
(204회)시사기획 쌈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Ⅰ,Ⅱ”/KBS 시사보도팀 정재용
[기획보도 방송부문]
단 한 명의 이승엽, 단 한 명의 박지성을 탄생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지금도 수 천 수 만 명의 젊은 청춘들의 삶을 짓밟고 있다. 그 뒤엔 교실에 한번 들어가지 않고도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어처구니없는 제도와 시스템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체육특기자 제도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화석처럼 굳어진 관행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공개된 인권 사각 지대가 아닐 까 싶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참 염치없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고생은 연세대 농구부 학생들이 했고, 취재팀은 그저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하기만 했을 뿐인데. 살인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꾸준히 수업에 참여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편견에 도전하고 극복해 낸 농구부 학생들이다.
프로그램 기획 당시엔 한국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연세대와 고려대의 공동 참여가 합의된 상태였다. 학생 선수들이 일반 학생과 똑같이 수업에 참여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획기적인 학원 스포츠 개혁안을 만들어 내자는 공동 합의문은 양 교 총장의 조인식 하루 전날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연세대가 참여하긴 했지만 고려대의 불참은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학원 스포츠 개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문제는 공부하지 않으면 학교를 대표하는 운동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제도를 채택한 연세대학교 모델이 얼마나 확산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프로그램을 본 어느 감독이 기자에게 물었다. “정기자, 뜻은 좋은데 한번 그렇게 보도하고 끝낼 거면 안하는 것만 못 할 거야. 정말 변할 때까지 계속 보도할 수 있는 거지?” 감히 ‘정말 변할 때까지’라는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스포츠 기자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은’ 이라고 답할 순 있을 것 같다.
끝으로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를 공동제작하고도 함께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KBS 스포츠 중계 제작팀 박일해 PD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여수참사, 200일의 기록 KBS순천(광주) 방송부 임…
(204회)여수참사, 200일의 기록/KBS순천(광주) 방송부 임병수
[지역기획 방송부문]
지난 2월11일 새벽, 후배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것이다. 사무실로 뛰어나가 아침 뉴스광장 전화연결을 시작으로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다.
체포돼 출국을 기다리던 외국인 노동자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였다. 이중 쇠창살 속 검게 타버린 보호소 내부는 참혹했고 또 당황스러웠다. ‘국가기관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 ‘터질게 터졌다’ ‘총체적 안전 불감증’ ‘허술한 초동대처 화 키워’…. 당시 신문·방송을 장식했던 뉴스 제목들이다. 그러나 뜨거웠던 언론의 관심은 차츰 사그러들었고 48일 만에 치러진 합동영결식 이후에는 아예 꺼져 버렸다.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여수참사’를 흘러간 사건이 아닌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번 사건을 기본 틀로 우리사회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뜯어보고 다시 꿰맞춰보고 싶었다. 외국인 백만명 시대, 그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22만명, 더구나 그 수가 계속 증가하는 현실은 그런 욕심의 바탕이 됐다. 마지막 편집과정까지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 됐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든 밀린 임금 때문이든 분명히 불법의 영역에 서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소박한 원칙의 중요성이었다. 불법은 불법대로 분명 처벌받아야 하지만 체포, 구금, 강제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기관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바로 그 원칙. 어렵게 취재한 우리나라와 외국 보호소의 극과 극을 달리는 현실은 그런 생각을 더 굳게 했다.
여수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상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고 출입국관리소를 구금시설이 아닌 보호시설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여전하다. 여수사건 이후 중단됐던 불법체류자 단속도 지난 8월부터 다시 시작됐고 이미 양산된 불법체류자 22만명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두고 지금도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계속될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에서 ‘여수참사 2백일의 기록’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작은 판단의 근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 한 사람이 아쉬운 지역국의 현실에서 묵묵히 내 몫까지 감당해준 순천방송국 기자동료들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