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기획보도신문통신부문
地安門 또 하나의 중국
유신모/경향신문 국제부
`신문쟁이 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사안을 두고 뭔가 잘못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 보려는 습성이다. 굳이 근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문제점을 발견할 때까지 캐고 또 캐려는 태도 때문이다.
신문쟁이 근성은 결국 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헛수고로 그치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다. 때로는 공연한 트집으로 발전해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하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씩은 일반인이 발견치 못했던 감춰진 문제점을 찾아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경향신문 중국 기획팀이 15회에 걸쳐 시리즈로 보도한 `地安門, 또 하나의 중국'은 이같은 신문쟁이 근성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기획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금부터 1년전인 지난해 가을이었다. 당시만해도 거칠 것 없는 성장세를 과시하며 단기간에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평범한 국민들의 삶을 통해 조명하려는 시도는 다소 엉뚱해보였다. 신년 기획으로 준비했던 시리즈가 시간 부족으로 미뤄지고 지루하게 취재가 이어지는 동안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이 아이디어가 언론재단의 기획취재 부문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뒤 기사 준비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의 중국 시리즈가 보도된 8월부터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외국 언론도 중국식 계획경제의 후유증과 사회 이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기획물을 집중적으로 쏟아내 우리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 정치를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획팀에 이름을 올린 필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팀원들의 면면은 사실 매우 화려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언론계 최고의 중국 전문가 김인수 차장을 비롯해 탁월한 기획능력으로 자칫 공허해 질수도 있는 주제의 맥을 정확히 짚어낸 국제 전문기자 유병선 차장,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와 오랜 경제부 경험으로 다져진 경제감각을 가진 김용석 선배 등 편집국의 정예요원들이 이번 시리즈를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으로 일했다. 특히 현지인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 언어능력과 외모로 중국의 최하층 계급인 민꿍(民工)의 세계에 잠입해 혁혁한 취재 성과를 올린 김인수 차장은 이번 시리즈의 MVP로 꼽을만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느 관점에서 조망하느냐에 따라 형상이 달라질 수 있는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다. 뜻하지 않은 수상 소식에 흐뭇한 기분과 함께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이 기사가 중국의 한 단면만을 보여주는데 치우친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 때문이다.
뉴스가 폭주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15회의 긴 시리즈 내내 아낌없이 지면을 할애해준 편집국 국장단과 취재지원을 해준 언론재단,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기사에 후한 평가를 내려준 심사위원단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지역기획보도신문통신부문
김길수/부산일보 사회2부
상을 타면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을을 맞아 흥겨워해야 할 농민들이 쌀 수확을 포기하고 논을 갈아엎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우리 농촌이 이런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고 싶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 예정된 쌀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과정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탓하기보다는 당장의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기획팀은 쌀시장을 이미 개방했거나 성공적으로 극복한 해외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가정 하에 본 기획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특히 일본의 사례는 우리 농촌에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고품질쌀 생산대책을 세우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일본은 이미 정착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쌀브랜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수입쌀과 차별화를 위해 친환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재배와 수확, 저장, 유통 등을 정착시킨 상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산물 재배과정의 투명화라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재배이력서 작성이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인공위성을 활용해 비료 줄이기와 품질별로 쌀을 분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품종별,품질별 가격 차등화로 고품질 쌀이 우대받는 유통체계를 확립,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고품질 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데다 재배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소비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그 브랜드로 포장해 높은 가격에 팔려는 사기꾼이 설치는 게 현실이다.
쌀이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쌀을 둘러싼 여건들이 변하는 만큼 농민도 변해하고 정책도 변해야 산다.
본 기획팀은 고품질 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일본을 취재한 것은 물론 쌀개방 1년을 맞은 대만의 고품질화 실태를 보도해 국내 연구기관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쌀연구의 세계적 싱크탱크인 국제미작연구소의 연구동향을 소개한 것과 쌀생산 신흥대국인 중국농업을 취재한 것도 우리나라 쌀농업의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15회 시리즈를 연재하는 과정에 보여준 독자들의 관심과 사우들의 후원도 큰 힘이 됐다.
아무쪼록 막바지에 이른 쌀협상이 우리 농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길 기대한다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방송부문
최초추적-황제는 독살당했는가?
PSB부산방송 사회팀 송준우 기자
사람의 살이를 미리 짐작하고 재기가 힘들듯이 취재도 그런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6월초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로부터 덕혜옹주를 다룬 문건이 있는데 그 가운데 고종황제 독살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역사라곤 일반인 수준의 지식밖에 없는 터여서 고종황제 독살은 제게 생소했고 또 그만큼 눈길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건을 쓴 일본인 여류 사학자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여서 문건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본 바로 근세사 특히 대한 제국시대를 다룬 전문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소문 끝에 몇몇 분들로부터 글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한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뉴스로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로서 담아내는 내용은 거기까지가 끝이었습니다. 한정된 짧은 시간 속에서 문건의 작성자를 더 이상 알 수도 없었고 고종황제의 독살설을 입증할만한 어떤 것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취재가 중단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문득 드는 의문하나, "지금까지 내가 알기로 고종은 명성황후와 대원군에 의해 조종당한 어리석은 사람인데 일본이 그런 어리석은 사람을 왜 독살했을까?"하는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황제독살을 8.15보도 특집으로 제작하라는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주어진 기간은 불과 한 달여, 힘든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국내를 모두 뒤져도 고종황제 독살에 대한 논문 한편 없었습니다. 당연히 황제 독살에 대한 집중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만 여기저기 역사의 편린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오만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마칠 땐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이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전혀 지역적이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취재기간 내내 서울과 대전의 독립기념관 그리고 일본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명성황후의 시해를 정부차원에서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황제를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더말할나위 없어, 한국을 이해한다는 소위 지한파란 일본 학자들조차 고개를 흔들고 외면했습니다. 일본 내에서 고종황제 독살에 관해 인터뷰를 할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취재의 방향은 황제의 독살을 증언한 역사적 기록 가운데 믿을만한 사람이한 신빙성 있는 내용만을 취재해 추렸습니다.
자신이 황제의 며느리이자 그분의 죽음에 대해 책임 있다고 생각한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미국정부에 정보 보고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 선교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자 박은식 선생과 언론인 이종일 선생 등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것은 "그렇다면 일본이 고종을 독살할만한 이유가 있었는가"에 대한 취재였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한끝에 저는 "내가 일본이라도 고종을 죽였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취재는 또한 고종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1919년 당시 고종의 독살설은 2천만 백성이 모두 사실로 믿으며 슬퍼하고 분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3.1운동이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민족적 저항이 전개됐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것이 일본제국주의의 공작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조선은 미개하고 자주적 근대화의 능력이 없다. 또한 어리석은 임금이 있으므로 민족의 발전을 내다볼 수 없다. 그 때문에 우리가 조선을 합병해 근대화 시켜주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조선 침략에 대한 일본의 표면적 논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일본은 조선의 왕인 고종의 근대화 노력을 무시하고 왜곡했으며 그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매도했습니다.
고종은 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이 눈에 가시로 여길 만큼 독립운동을 독려했고 그 자신 역시 목숨을 내놓았다고 말할 만큼 노력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프로그램은 '고종황제를 위한 변명'이기도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사회가 무의식중에 부끄러운 치부라고 생각하고 금기시했던 고종의 공과 과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자는 문제 제기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하며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에 직접 테입과 자료를 복사해서 보내준 분들만 수십 명에 이릅니다. 저 역시 노력하겠지만 한일 근세사에 있어서 고종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존재인 이상 선후배 기자들과 학자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있을 것으로 즐거이 짐작해봅니다.
취재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덕혜 문건을 작성한 일본인 여류학자와 연락이 됐습니다. 방송과 만나는 것은 물론 전화 인터뷰조차 기피해 결국 취재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머지 않는 때에 이분을 만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취재하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부족한 취재에 이렇듯 뜻깊은 상을 주신 것은 취재의 내용보다는 방향성을 보고, 앞으로 더 능력있는 분들이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라는 가편의 뜻으로 압니다.
더운 여름날 출입처를 비워두고 뛰어다닌 제 뒤에서 말없이 '땜빵'해주신 선후배 기자님들 그리고 데스크와 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역사의 격변기에서 참담하게 쓰러진 많은 선조들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1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은 일본군 헌병 오장
동아일보 신동아팀 허만섭 기자
“신기남 열린 우리당 의장 부친 신상묵씨가 일본 경찰을 지냈다”는 글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자 신기남 당시 의장은 “부친은 해방 후까지 줄곧 교사로 재직했다”면서 이 같은 내용을 부인했다. 과거사 청산을 주도하는 과반의석 집권당의 대표로서, 신 의장은 친일행적 규명의 당위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역설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인터넷 사이트 글을 인용해 신 의장 부친의 친일의혹을 다시 제기했고 신 의장은 소송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며 더 강하게 부인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정치 지도자가 진실을 감춘 채 사회의 진로를 결정짓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 국정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글을 최초로 쓴 전기 작가를 수소문했다. 결국 작가는 “일본 경찰이 아니라 일본군 헌병 오장이라는 증언들을 들었는데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 그렇게 쓴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이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신상묵씨(1916∼1984)의 대구사범학교 동기생 10여 명을 수소문해 신상묵씨가 일본군에 스스로 지원해 헌병 오장이 된 뒤 징병기피자를 찾는 활동을 벌였다는 증언을 들었다.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 신씨가 입대소감을 피력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인터뷰 기사, 조선총독부 직원록, 고교동창회보 등 신상묵씨의 행적을 입증하는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다. 신상묵씨는 명문학교를 나온 뒤 당시 엘리트 직업인 교사로 재직하다 장교도 아닌 사병으로 일본군에 자원했으니 한국인 전시동원체제 수립을 서둘렀던 조선총독부로선 그의 선전가치가 높았고 그래서 신문 인터뷰까지 이뤄진 것이었다. 마감 4일 전부터 신 전 의장에게 반론을 요청했지만 신 전 의장은 응하지 않았다.
보도 다음날 “나를 고문한 그 일본군 헌병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 왔는데 이제야 찾았다”고 밝히는 독립운동가들이 나타난 것은 신동아 기사가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일제 말기 한국 사회는 경제적 기반이 해체되고 있었고 실업자는 넘쳐 났다. 일본군지원병은 저 학력 빈곤층 한국 청년들이 생계를 이을 마지막 수단으로 택하는 자리였다. 취재를 하면서 일본군지원병 합격자 명단 속 이름들을 한 명, 한 명 읽어 내려간 적이 있다. 신상묵씨의 입대 동기이며 아마도 신씨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그 합격자 명단 속 3000명의 한국인들은 후손으로부터 단죄를 받아야 할 가해자일까, 일본제국주의의 또 다른 피해자일까. 민족 수난사의 한 단면을 취재하는 내내 떠나지 않은 의문이었다.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2
총독부 관계자 증언 녹취록 全篇 첫 공개
신지홍 기자(연합뉴스 도쿄특파원)
shin@yna.co.kr
일본내 한국사 전공자들과의 평소 교류가 한 건(件)을 장식했다. 7월말께 한국사 전공자인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일본 가쿠슈인 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총독부 고위관계자 육성녹취록'이라는 책자를 완성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제보자는 "일제의 조선통치를 둘러싼 비화가 그득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때부터 광복절 직전까지 보름간 이해영 도쿄지사장과 본인의 입체취재가 시작됐다.
일본 사학계의 다른 지인들을 동원한 끝에 언론보도용으로는 주기 힘들다는 연구소 담당자를 설득해 5권 전량을 넘겨받았다. 총독부 고위관료들이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신들의 통치과정을 육성으로 밝힌 증언이 빼곡이 기록돼 있었다. 열흘 여에 걸쳐 전권을 해독, 담담한 마음으로 광복절을 사흘 앞둔 지난 8월 12일 11건의 관련기사를 송고 했다.
'친일파 송병준 매국 대가 1억5천만엔 요구' 등 제하의 기사의 반향은 대단해서 전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 등을 장식했다. 이 책자에서 뽑아낸 기사들은 저마다 지금껏 학계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컸다. 조선 근세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당시 한국 정치권은 '친일 청산법'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도쿄지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이 기사는 친일 청산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는 등 정치적 파급을 던졌다. 일부 신문들은 친일파들의 추잡한 매국행위가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친일청산을 서둘러야 한다고 정치권을 몰아세웠다. 네티즌들의 여론도 전에 없이 들끓었다.
육성증언을 녹취한 이는 재일사학자 강덕상 교수이다. 그는 수십년전 총독부 고위관료들의 육성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 적었다. 그것이 이번에 세상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찾아갔다. 강 교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재일한국인으로서 받았던 차별과 울분을 착잡하게 토로했다. 도쿄지사의 이번 기사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생애를 던졌던 강 교수를 위한 작은 헌사가 됐다.
(8월) 사진보도 서울古宮은 '새들의 낙원' 국민일보
서울古宮은 '새들의 낙원'
국민일보 사진부 곽경근기자
지난해 3월 서울 창경궁. 새봄을 시샘하듯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은 쌀쌀한 가운데 겨울철새 오목눈이 둥지를 발견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서울의 도심 고궁에서 처음으로 봄소식을 전한다는 기쁨과 셔터의 기계 음에 알을 품고 있는 어미가 놀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1년 반에 가까운 고궁나들이는 희귀조류와의 짜릿한 만남과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소쩍새, 붉은배새매, 솔부엉이, 참매, 새매, 황조롱이, 원앙 등 7종의 천연기념물을 발견했고 흰날개해오라기, 홍여새, 쇠동고비, 북방쇠박새 등 68종의 조류를 관찰하고 61종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종묘의 벗나무에 둥지를 틀기 위해 쇠딱다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옥타브 높은 경쾌한 음률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고, 정적 깊은 고궁의 밤, 후라쉬에 비친 솔부엉이의 형형한 눈빛은 소름 돋는 스릴이었다. 애간장 녹이는 소쩍새 울음은 구중궁궐을 스쳐간 여인들의 한(恨) 인양 가슴을 짠하게 했고, 원앙가족이 10년만의 폭염을 견디다 못해 춘당지에서 물장구치는 모습도 앙증스럽기만 했다.
특히 지난 5월, 28년 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흔히 비원(秘園)으로 불리는 창덕궁 후원은 그야말로 자연생태가 살아 꿈틀대는 '생태계의 보물창고'. 옥류천과 관람정일대 2만 여평의 공개지역과 비공개지역인 8만 여평에는 주복, 다래나무, 향나무 등 160여종의 나무와 300년이 넘은 거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솔부엉이, 소쩍새, 붉은배새매, 원앙, 꾀꼬리, 오색딱다구리, 검은댕기해오라기 외 다양한 종의 새들이 번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소쩍새 등 맹금류의 관찰은 이곳이 안정된 생태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고궁에 반해 한 달여간 매일 같이 창경궁, 종묘 등을 찾았던 오스트레일리아 탐조가 탐 페인톤(72)씨는 "대도시에 국립공원(북한산)과 궁궐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곳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드물 일"이라며 "도심을 통과하는 다양한 새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용히 관람해야 할 고궁에 경운기가 마음대로 다니며 소음과 매연을 뿜고 새들을 놀라게 하는 일은 옥의 티로 남는다.
국민일보 생태조사팀은 지난 8월 2일 본지 게재 이후에도 꾸준한 조사를 통해 희귀한 나그네새인 '한국동박새' 등 10여 종을 새롭게 발견하는 성과를 이뤘다.
또한 본지 조사팀은 서울의 고궁 1차 조사에서 빠진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의 야생조류 생태를 함께 조사하여 2006년 봄 2차 조사결과를 발표 할 예정이다.
'백두대간의 고통'으로 164회(2004년 5월) '이달의 기자상' 수상에 이어 다시 한번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심사위원과 함께 고생한 국민일보 생태조사팀원들에게도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공식적인 외박(출장)이 너무 잦아 몸서리쳐하는 사랑스런 가족과도 수상의 기쁨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