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주머니에 손 넣고…빌 게이츠식 악수 국민일보
주머니에 손 넣고…빌 게이츠식 악수
국민일보 이동희 기자
결례인가 문화차이인가.
지난 4월2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반갑게 악수한 사진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빌 게이츠 회장이 주머니에 왼쪽 손을 넣은 채 악수를 한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 보도사진은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퍼져 네티즌 사이에서 삽시간에 ‘결례’, ‘문화차이’라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문화상대주의론적 관점에서 보면 빌게이츠는 친구 혹은 협력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박 대통령과 편하게 악수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방문국 예절을 지켜야 할 국제매너와 그 악수의 상대방이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빌게이츠 악수 사건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지난 4월8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빌 게이츠 회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했을 때는 왼손을 호주머니에서 뺀 채 악수를 했다. 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일본 천황을 접견하면서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4월23일 빌게이츠 회장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한 한 장의 보도사진은 중앙일간지, 경제지, 영자지 9개사 조간신문 1면을 장식했고 석간신문과 진보신문 정치면에 게재됐다. 급기야 워싱턴포스트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같은 외신들까지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보도했다. 외신들은 한국 특유의 예의범절을 숙지하지 못한 빌 게이츠의 행동을 비판했다.
빌 게이츠 악수사건 이후 박 대통령과 악수하는 미국 유명 인사들은 모두 공손히 두 손을 맞잡았다. 지난 4월26일 래리 페이지 구글 CEO는 청와대에서 두 손으로 박 대통령과 악수했다. 또 미국순방을 동행 취재했던 5월7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박 대통령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악수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박 대통령의 보도사진 한 장이 주는 영향력과 메시지, 악수법에 대한 상대국의 국제매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환경의 역습? 한강·임진강 정체불명 ‘끈벌레’ 대…
환경의 역습? 한강·임진강 정체불명 ‘끈벌레’ 대량서식 국내 최초 확인
중부일보 김만구 기자
‘막막’에서 ‘희열’로, 다시 ‘열정’에서 ‘걱정’으로 뒤바뀐 한 달이었다.
4월24일. 그저 막막했다. ‘끈벌레’라 불리는 유형동물이 한강 하류 경기도 구간(고양 행주대교 인근)에서 대량서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데다 끈벌레가 어떤 동물인지도 몰랐던 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다.
4월25일. 특종을 잡았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사실관계 확인 중 고양시가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수산과학원에 조사를 의뢰했다는 정보를 추가로 확인했다. 조사결과에는 끈벌레가 유형동물이라는 것 외에 어떤 종(種)인지조차 분류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현장 취재팀은 이날 어민들의 배를 타고 동행 취재에 나섰다. 현장에서는 그물을 들어 올릴 때마다 상당량의 끈벌레가 포획됐다. 이 같은 내용과 어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1보를 내보냈다.
4월26일. 열정적으로 임했다. 후배들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경기도와 지자체, 정부, 학계를 집중 취재했다. 한강뿐만 아니라 임진강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뱀장어 치어 잡이 어민들을 수소문했다. 그 결과 임진강 민간인통제구역 안에서도 끈벌레가 대량 포획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5월1일. 열정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현재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1차 유전자 분석에서는 신종 끈벌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국내외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種)으로 판명 날 경우 세계 생물사전에 신종 출연을 등재할 수 있는 과학적 성과는 물론, 끈벌레 연구를 통한 유무형의 부가가치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 파괴가 이뤄진 건 아닌지 우려됐다. 자연재앙의 전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끈벌레 대량서식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복원해 나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기아차 직원 세습 채용 합의서 KBC광주방송
기아차 직원 세습 채용 합의서
KBC광주방송 김재현 기자
광주의 몇 안 되는 소위 ‘좋은 직장’ 가운데 하나인 기아차에서 수년 만에 수백 명 단위의 신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올해 초였다. 일주일동안 지원자만 3만명 이상이 몰리면서 지역 사회 전체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기아차 광주공장 노사가 정규직 자녀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채용에 불공정 논란을 빚어왔던 세습 채용 규정이 들어간다는 소문에 취재는 시작됐다.
사실 확인은 녹록치 않았다. 지난 2011년 현대차 노사도 세습 채용 규정을 합의했다가 비정규직들의 거센 반발과 사회적 논란이 확산된 바 있었기 때문에 기아차 노사는 보안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제한된 취재상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정규직노조와 사측이 작성한 신규채용 시 장기근속자 자녀 가산점 합의 문건을 확보하면서 취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측과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노조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접촉하고 설득해 가며 신뢰를 얻은 것이 주효했다.
문건이 공개된 이후 타 언론들의 보도가 폭주했고 기아차 공장을 둘러싼 긴장감은 더 높아졌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측과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소극적으로 대응한 정규직 노조, 허탈감과 배신감에 휩싸인 비정규직 근로자들.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는 계속됐다. 특히 노사 합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전환 문제를 외면했던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서만 가산점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수위는 높아졌다.
이후 비정규직 노조 간부의 분신과 정규직 노조의 입장 선회, 현대차 노조와의 연대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기아차 채용 대물림에 대한 보도 이후 한 달 반의 시간이 흘렀다. 노조와 회사는 아직 어떤 가시적인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한동안 들끓었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다소 느슨해졌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심을 새롭게 이끌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계획 광주일보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계획
광주일보 이종행 기자
취재진은 지난달 24일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사무실을 찾았다. 5·18 민중항쟁 33주년 기념행사 취재를 위해서였다. 해마다 5월이 다가오면 5월 관련단체를 찾는 것은 지역 언론사의 일상적인 ‘루틴 체크’다. 올해 33주년 기념식의 최대 화두는 사실상 5·18 추모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였다.
33주년 기념식과 관련 유족회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 국가보훈처 직원 2명이 며칠 전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놓고 얘기를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매년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됐던 만큼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지만 국가보훈처 직원의 방문 목적을 알아보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로 국가보훈처와 전화 통화를 해 “정해진 게 없다”는 말만 들었다.
취재진은 국가보훈처가 이 과정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5·18 추모곡 공모예산으로 4800만원을 책정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선정된 새로운 추모곡은 올 기념식에서 불리게 될 예정이었다.
정부가 이미 지난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기 위한 예산을 편성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이번 33주년 기념식에는 제창은커녕, 합창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획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이번이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에 대한 정부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재진은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계획’을 제목으로 첫 보도 이후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자 연속 보도를 이어갔다.
국가보훈처는 관련 공모사업을 잠정 보류한 뒤 33주년 기념식 이후 공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일보 보도가 없었다면 자칫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신할 5·18 대체 추모곡 공모를 진행함으로써 광주·전남 지역민들에게 아픔을 줬을지 모른다. 특히 이번 보도를 통해 5·18 민중항쟁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5월 정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호 사진의 비밀 - 김정은 체제 1년…노동신문 사진…
1호 사진의 비밀 - 김정은 체제 1년…노동신문 사진 전수조사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토요판이 생기면서 뜻하지 않게 사진기자가 지면에 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1호 사진의 비밀-김정은 체제 1년…노동신문 사진 전수조사’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4월13일자 1, 2, 3면에 게재됐다.
조금 엄살을 부리자면 이 기사를 쓰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3년 개성공단 착공식에 풀 취재를 가면서 처음으로 북한을 경험했다. 카메라 속에 들어온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의 정체에 대해 뭐라고 사진설명을 붙여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북한을 너무 모른다고 깨달았다. 평소 보도사진이 예술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었던 터라 1년여의 고민과 탐색을 한 후 북한대학원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에 대한 분석을 논문 주제로 잡아 “북한 ‘1호 사진’의 변화”라는 석사논문을 2007년 2월에 제출했다. 2008년 가을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 이후 북한은 김정일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쏟아내면서 체제 보호에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어서 김정은의 권력을 정당화하는데도 이미지가 활용되고 있다. 이번 기사는 그 현상을 분석한 것이다.
영상시대라는 세계적 흐름에서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도 자신을 알리고 설명하고 홍보하기 위해 많은 이미지를 외부세계에 배포하고 있다. 유튜브에 북한이 올리는 동영상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 김정은의 이미지 정치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신세를 진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어쩌면 제 기사라고 하기보다는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은 북한 정치 사진을 분석해보겠다는 도전을 회사는 물심양면으로 격려해줬고, 2008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 이후부터는 제 아이디어에 지면을 계속 줬다. 기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북한연구모임도 부족한 저에게 많은 영감과 용기를 줬다. 사진보도 분야로 응모하지 않고 기획보도 부문으로 응모해서 죄송한 마음도 있다. 한편으론 새로운 길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선후배 사진기자들의 격려도 있었다.
무죄와 벌 한겨레신문
무죄와 벌
한겨레신문 정은주 기자
한겨레21 연재기획 ‘무죄와 벌’에서 단독 보도한 ‘보령 삼남매의 살인 허위 자백 사건’은 지난 2009년 2월 처음 알았다. 초등학교 1학년, 5학년생은 경찰 조사에서 “큰언니(누나)가 작은언니(누나)와 말다툼을 하다 밀어 넘어뜨렸고 작은언니가 사망했다. 뒤늦게 귀가한 엄마가 작은언니의 사체를 차에 싣고 나가 버렸다”고 진술했다.
동생들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 큰언니도 “엄마가 실종됐다고 신고한 여동생을 사실 내가 죽였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엄마는 혐의를 부인해 사체를 찾지 못했다. 열흘이 지나 죽었다는 작은언니가 살아 돌아오면서 ‘살인 사건’은 ‘허위 자백 사건’으로 뒤바뀐다. 당시엔 비보도를 전제로 법률가에게 들은 데다 사건 수사기록을 입수할 방법이 없었다.
4년간 마음에 묻었던 이야기를 풀어낼 기회가 찾아왔다. 법심리학을 연구해오던 취재원(김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이 한국의 첫 오판 보고서(540건)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했다(논문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심 유죄-2심 무죄 사건을 전수 조사해 분석하는 양적 연구였다.
앞서 1년 전, 현직 경찰(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쓴 저서 ‘허위자백의 이론과 실재’에 나온 사건 등까지 수백 건을 추적해 오판의 원인을 밝히는 6회 기획을 지난 3월부터 연재했다.
특히 다섯 번째 이야기 ‘좁고도 좁은 재심의 길’은 기존 논문들도 빗겨간 대법원 ‘유죄 확정 오판’으로 한겨레21이 발굴했다. 목격자로 조사를 받다가 ‘강간치사’ 범인으로 둔갑한 30대는 징역 15년을 받고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새로운 마음을 품어본다. 인권단체, 변호사들과 손잡고 유죄 오판을 바로잡을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무죄와 벌 2’다. 미국의 ‘결백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도 1980년대에 그렇게 만들어져 지난 5월 현재 306명의 무고한 피고인을 감옥에서 풀어냈다고 한다. 그중 18명이 사형수였다.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전화벨이 울린 건 양구이가 맛있다는 종로구 필운동의 한 식당에서였다. 마주앉은 캡과 바이스 옆에서 노심초사 소(牛) 부속물을 뒤집느라 정신없던 찰나였다. 휴대전화를 집어든 캡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고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가 감금됐다고 주장하는 역삼동 오피스텔로 내달려야 했다. 2012년 12월11일, 소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의혹 사건은 그렇게 ‘발발’했다. 씹다만 양구이가 역류해 밤새 악취를 풍겼다.
사건팀 내에서 강남라인은 전통적으로 가장 ‘모진’ 곳으로 불린다. 특히 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 각종 대형사건, 사고가 빈발한 강남라인 일진 기자는 매순간을 초긴장 속에 산다, 아니 살아야 한다. 왜 하필 국정원 여직원은 역삼동에 살았을까하며 툴툴대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한 장맛비가 쏟아졌다. 외곽취재를 통한 한겨레, 경향신문의 단독보도 파상공세에 나는 매일 아침 장대비를 맞는 심정이었다. 너무 흠뻑 젖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니 경찰의 입과 눈만 바라보고 서 있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팀장(캡)은 “팩트가 맞다면 남의 기사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고 했다. 채근 대신 당근을 쥐어준 셈인데 이미 사건은 단독보도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힘써야 할 것은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었다. 숱한 팩트들은 ‘밝혔다’, ‘확인됐다’, ‘전해졌다’, ‘알려졌다’ 등의 옷을 입고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렇게 내 손끝에서 사건의 퍼즐은 알게 모르게 맞춰졌다. 허나 지금도 내가 써내려간 기사가 사건의 실체와 몇 퍼센트 닮았는지는 자신하기 힘들다.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정작 권은희 과장에게는 수상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상을 대신 받은 것 같다는 미안함이 앞선 탓이었다.
뒤늦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금방 답문이 왔다. “힘이 돼 줘서 내내 고마웠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제 쉬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차마 답문을 보내지 못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휴가를 떠났다고 했다.
대기업 임원 승무원 폭행 파문 YTN
대기업 임원 승무원 폭행 파문
YTN 한연희 기자
우연하게 들은 황당한 얘기 하나. 비행 중인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이 맞았다. 그것도 비즈니스석에 탄 대기업 상무에게. 폭행 이유는 더 가관이었다. 끓여온 라면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이유였다.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취재. 고상하고 높게만 느껴졌던 대기업 임원의 행패는 어이없게도 모두 사실이었다. 심지어 해당 임원은 이 일로 미국 입국까지 거부당했다. 모범이 되기는커녕 국가 망신만 시키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대기업 임원의 이야기에 분노를 느꼈다.
기사가 나던 날은 토요일이었다. 쉬는 날이었지만 기사에는 순식간에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예상보다 반응은 더 뜨거웠고, 네티즌들의 정보력은 놀라웠다. 차마 기사에 쓸 수 없었던 내용부터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까지 빠른 시간에 정보가 공유됐고, 심지어 기내 보고서까지 나돌았다.
기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한 폭력. 그 위험성에 대한 자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업의 사과와 해당 임원의 해임. 기내 폭행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까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감정노동자’ 들의 열악한 처우를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직장 내 갑을관계 속에 상사 막말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 기도한 공무원부터 밀어내기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남양유업, 썩은 술까지 팔아넘기며 대리점주들의 손실은 나 몰라라 하는 배상면주가까지.
회사에는 관련 사실을 고발하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한 관계 속에 상처 받고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는지 차마 알지 못했다.
평소 무심코 써 왔던 ‘갑을’이라는 단어처럼 그들의 일방적인 상하 관계를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그동안 ‘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작은 기사 하나에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더더욱 기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이 상은 우리들 대다수인 ‘을’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