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광복 70년, 독립운동家 70년 한국일보
(300회) 광복 70년, 독립운동家 70년
한국일보 김성환 기자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정확하게 진단해 보고자 했던 팀원들의 구상이 기사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 팀은 6월 초부터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가장 많이 등록돼 있는 광복회 회원 68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자문을 구한 여론조사기관에서는 회수율이 5%에 그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22%를 웃도는 1500명의 응답을 받아냈다. 마감 기한을 넘긴 400여명의 답변까지 합치면 30% 가까운 응답을 통해 가능한 실태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다.
설문조사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도 험난했다. 특히 독립운동가 신돌석 장군과 친일파 문명기 후손의 삶을 경북 지역에서 취재했던 과정은 취재 당일까지도 취재원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박 2일간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의 노력 끝에 이들의 삶의 궤적을 비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 기자들을 진정 힘들게 한 건 각박한 지난 삶을 살아 온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때문에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기사 작성 과정에서 이러한 책임감을 한 촉 한 촉 담아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이번 기사는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 전국을 누비며 취재에 임했던 한국일보 사회부 경찰팀 기자들의 팀워크가 하나로 뭉쳐졌기에 가능했다.
기획 구상단계부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회부장을 비롯한 데스크 그리고 다른 부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이후 뜨거웠던 반향만큼 우리 경찰팀 기자 개개인은 앞으로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접근할 것임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길 것이다.
조선소 잔혹사 프레시안
(300회) 조선소 잔혹사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13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모두 일하던 중 사망했다. 산업재해였다. 사회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국회는 현대중공업 관련 국정감사도 실시했고, 노동부 특별감독도 진행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올해 5월에 이어 6월에도 현대중공업에서는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이들은 왜, 어떤 일을 하다가 죽었을까?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왜 죽음은 반복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겼다. ‘조선소 잔혹사’를 기획하게 된 이유다.
세계조선 1위라는 명성 뒤에 숨겨진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했다. 왜 산재를 은폐하는지, 그리고 산업재해는 왜 반복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조선소 잔혹사’는 이제껏 사고가 발생하면 단발적으로 지적된 산업재해의 문제, 그리고 은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기획이다. 산업재해 문제를 그간 다뤄온 ‘안전제도 미비’, ‘작업환경 열악’ 등을 다룬 게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풀어나간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간 산업재해 관련해서 언론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만을 보도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면 ‘조선소 잔혹사’ 기획은 그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던 사측 관리자 인터뷰를 통해 산업재해가 왜 은폐되는지, 은폐는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획 중간에 또다시 현대중공업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청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다가 머리를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현재 의식불명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다. 미력하나마 이런 현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복 70년 특집 다큐멘터리> 끌려간 소녀들, 버마전…
(300회) <광복 70년 특집 다큐멘터리> 끌려간 소녀들, 버마전선에서 사라지다
KBS 노윤정 기자
광복 70년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1~2년마다 한번 꼴로 제작되는 위안부 다큐멘터리, 어떻게 하면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결론은 ‘탐사’스럽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잘 모르는 위안부의 진실. 생생한 현지 취재와 자료 발굴로 접근해 보자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석 달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취재 과정에 몇 번의 굉장한 행운을 만났습니다. 태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위안부로 추정되는 한인 여성포로 명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태국 연구자, 미얀마에서 1년 넘게 체류하면서 故 문옥주 할머니의 회고록을 집필했던 일본 작가, 중국 윈난성에서 10년 간 수천 명을 면접 조사했다는 70대 전문가 할아버지. 이 세 분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프로그램 제작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직전, 태국에서 발견한 포로 명부에 실제 위안부 피해 신고자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기적처럼 알게 돼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취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여성가족부는 KBS로부터 포로 명부를 받아가 분석하고 있습니다. 태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발굴 프로젝트도 계획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여가부는 유사한 자료가 없어 의미있는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실로 확인되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혀왔습니다.
또 중국 CCTV가 판권을 구입해 가 중국 전역에 방송했습니다. 시청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돼 기쁩니다. 방대한 분량의 일본어 자료를 깨알같이 검토해 준 탐사팀 리서처 김지혜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수중방파제 ‘잠제’.. 부실 시공 G1강원민방
(300회) 수중방파제 ‘잠제’.. 부실 시공
G1강원민방 홍서표 기자
‘해안침식 공사를 했는데 왜 침식은 계속될까’ 잠제 보도의 시작이다. 이번 취재의 관건이자 난관은 물속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렵게 당시 잠제 시공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물속 현장을 취재해 엉망이 된 부실공사 현장 영상을 들고 업체 관계자를 다시 만났다. 이러저런 얘기 끝에 조금씩 부실공사의 실체를 들을 수 있었다. “애초부터 부실하게 제작된 잠제가 들어갔다”는 실로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때부터는 국내 몇 명 되지 않는 해안침식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을 쫓아다니며 취재에 돌입했지만, 입장이 난처하다며 인터뷰를 꺼려했고 인터뷰에 응했던 다른 교수는 해양수산부의 압력이 너무 강하다며 인터뷰 삭제를 요구했다.
시공업체는 극히 일부만 망가졌다며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을 통해 반박 보도자료까지 내고 현장을 호도했다. 또 취재기자의 지인들을 통해 보도 자제 압력을 가해 왔다.
그래서 다시 수중 팀을 꾸렸다. 2차 수중 취재는 잠제를 전수조사 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역시 엉망이었다.
이때부터 거짓말을 한 당국과 업체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다. 문제가 없다던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은 2차 보도 직후 정밀 용역을 의뢰하겠다며 180도 입장이 바뀌었고, 용역 보고서가 나온 뒤에는 “명백한 부실이다. 확실하게 하자 보수를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감에서도 곧 이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언론의 감시도 계속될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앞으로 수 백, 수 천억원이 더 투입될 동해안 해안침식 방지 공사가 제대로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끝으로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데스크 및 동료 선후배께 감사드린다.
산업재해 은폐 의혹(‘그들은 왜 119 구급차를 되돌…
(300회) 산업재해 은폐 의혹(‘그들은 왜 119 구급차를 되돌려 보냈나?’)
청주CBS 박현호 기자
“간과 폐가 으깨진 채 한 시간 동안 의식이 살아 있던 고인의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에, 누군가의 욕심에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병원만 옮겨 다니다 죽게 된 억울함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첫 보도 뒤 유족이 취재진에게 전한 말이다. “사장이 장례식장에 보낸 조화에 화풀이를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유족의 제보로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출동한 119구급대를 돌려보내고, 15분 거리의 종합병원을 지나쳐 30분이나 떨어진 지정병원까지 환자를 이송한 일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계속된 후속 취재는 또 다른 충격이자 반성의 시간들이었다. 사고 업체는 그동안 29건의 산업재해를 은폐했지만 이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이를 외면했다.
산업현장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재해 은폐가 수도 없이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하고 있다.
30대 젊은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은 이제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 됐다. 사고 업체와 관련자들은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고 또다시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법 제도 개선 등의 후속 조치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취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온힘을 다해 함께 해준 장나래 기자와 항상 지지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청주CBS 동료와 가족들, 또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