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추위에 떠는 YS 영결식 어린이합창단 CBS
추위에 떠는 YS 영결식 어린이합창단
CBS 강종민 기자
故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이 엄숙하게 거행된 국회 앞마당.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눈까지 내려 체감온도는 영하권에 머물렀다. 영결식에 참석한 내·외빈은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무릎담요를 덮은 채 고인을 추모했다.
그런데 영결식장 앞에서 추모곡을 부르기 위해 대기 중인 어린이합창단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합창단은 강추위에 얇은 단복 하나만 입고 있었다. 뒤에 앉아 있는 성인 합창단은 패딩 점퍼를 입고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상반된 모습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린이합창단의 인솔자를 만나보니 주최 측에서 무릎담요를 덮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부모들의 계속된 요구에 주최 측은 아이들에게 무릎 담요를 덮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무릎담요로 추위를 피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어린이합창단원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추위에 떨며 장시간을 대기했고 영결식 마지막 순서인 추모곡을 불렸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강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이기 전에 한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보도 후 행정자치부와 김현철씨의 사과를 이끌어냈고 아동 학대와 아동 인권문제로 사태가 확산됐다.
어린이합창단이 취재진 바로 앞에서 추위에 떤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시한부 면세산업 매일경제
시한부 면세산업
매일경제신문 손일선 기자
2015년 유통업계 최대 화두는 면세점 특허권 갱신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한 데다 주요 기업들의 특허권 재계약이 모두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한국·중국·일본 간 관광객 유치 경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5년짜리 시한부 영업권으로 인해 자칫하면 주도권을 놓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점이었다. 일자리 상실에 직면할 노동자들이 생기고 기업은 경영안정성 저해로 사업 자체를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기업과 언론, 정부가 모두 간과하고 있었다.
매경 취재팀은 10월 중순부터 면세점 산업 육성책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10월15일 ‘규제 발목 잡힌 면세산업’이라는 첫 기획 기사 이후 총 15회에 달하는 시리즈와 칼럼 등을 통해 보도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14일 시내면세점 특허권자 선정 당일, 주요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이 탈락하며 본지 기획팀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본지 기획팀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접근과 입법과정에서의 문제를 파악해 심층 보도를 이어갔다. 이후 면세점 특허권 쟁탈전 위주의 문제를 단기적 관점에서만 보도해 오던 타 언론사에서도 매경의 목소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김낙회 관세청장과 기획재정부, 국회도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면세점 업계는 규제로 인한 고용불안 등 각종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다. 매경 기획팀의 손·발도 여전히 바쁘다. 이제 막 시작된 정부의 움직임이 ‘제도개혁’이라는 열매를 맺어 매경 면세산업 기획팀이 즐거운 ‘해단식’을 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신세계 1천억원대 ‘차명 주식’ CBS
신세계 1천억원대 ‘차명 주식’
CBS 곽인숙 기자
두려웠습니다. 제가 다시 잘할 수 있을지, 예전처럼 ‘기자질’을 할 수 있을지….
지난 한해는 제겐 참 힘든 한해였습니다. 결혼 8년차에 ‘난임’임을 알게 되고 시험관 시술에 임신, 유산, 다시 시험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후회와 패배감, 1년을 임신에만 집중하자면서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도 심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회사의 배려로 1년의 휴직 기간을 보냈지만 저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홀몸으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기자 생활 13년차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출입처를 거치며 가장 취재하기 힘들었던 곳이 국세청이었습니다. 4년 만에 다시 국세청에 출입하면서 우연히 신세계그룹의 차명주식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발로 뛰며 취재한 특종이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은 외로운 ‘단독’ 기사가 되어 심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좌절감을 힘으로 다시 취재를 거듭해 2보, 3보, 4보에 이르기까지 단독 기사를 이어나갔습니다.
보안이 특히 중요한 국세청발(發) 기사의 특성상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폈고, 그 어려운 세법을 다 뒤져가며 묻고 또 묻고 전문가의 자문도 구했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주신 회사에, 그리고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를 온 삶으로 보여주신 스승, 고(故) 최승진 선배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쌀 생존전략 리포트-해외에서 길을 찾다 농민신문
쌀 생존전략 리포트-해외에서 길을 찾다
농민신문 김봉아 기자
2014년 1인당 쌀 소비량 65.1㎏. 하루에 밥 두 공기도 먹지 않는다. 2014년 쌀 관세화 유예 종료.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그야말로 쌀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2015년 초, 편집국 기자들은 우리 쌀이 겪고 있는 심각한 내우외환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편집국 내에 TF가 꾸려졌다.
고심 끝에 찾은 방법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 주요 쌀 생산국인 일본·호주·베트남·중국 4개국 현장 취재를 통해 쌀을 살리는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문제는 섭외였다. 이번 기획은 기자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현지 업체들과 정부 관계자, 통역까지 섭외하며 2∼3개월에 걸쳐 일정을 짰고, 낯선 이국에서 혈혈단신 취재를 했다.
다행히 고생에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쌀의 수출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큰 성과였다. 호주에서는 한인마트 설문조사를 통해 부유한 중국계 호주인이 한국 쌀의 주 소비층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중국에서는 친환경 쌀의 수출 잠재력을 확인했다. 또 베트남에서는 쌀국수·라이스페이퍼 등 쌀 가공식품을 통한 소비 확대 가능성을 찾았고, 일본에서는 남는 쌀의 사료화 방안과 생산조정제에 대한 해법을 얻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정부에서는 쌀 수출 전담반을 가동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내우외환에 처한 쌀을 살리는 데 국민적인 관심이 모아졌으면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쌀은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다.
스노든 폭로 2년, 인터넷 감시사회 한겨레
스노든 폭로 2년, 인터넷 감시사회
한겨레신문 고나무 기자
지금 한국 신문 편집국에서 ‘기획’이란 단어는 오염되어 있습니다. 팩트에 대한 치열한 추구 없이 나태한 취재에 바탕해 관점을 앞세워 만든 저널리즘이라는 이미지가 그것입니다. 캠페인성 기획기사 때문에 생긴 이미지일지 모릅니다.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이처럼 오염된 ‘기획’이란 단어와 쌍으로 묶여, 종종 함께 비난받습니다.
그러나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본령은 검경과 출입처가 알려주지 않는 중요한 사실과 ‘전체 그림(whole picture)’의 추구와 발굴이라 생각합니다. 관점의 추구가 아니라 사실의 발굴이 의무라 생각합니다. 2015년 한국을 흔들었던 이슈들은 ‘출입처 나와바리’로는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나와바리’는 사회부 지역 취재팀만의 주제가 아니었고,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사건의 담당자는 정치부 혹은 경제부 IT 담당 기자 단독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노든 문건을 조사해 NSA가 한국을 해킹한 정황을 취재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이 NSA에 해킹당한 정황도 부분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자들은 자주 ‘시의성’이란 말을 씁니다. ‘당장 중요해 보이는 일’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합니다. ‘독자와 대중에게 중요한데 실체적 진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로 시의성의 의미를 조금 넓게 해석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겨레 탐사기획팀은 계속 이런 문제의식을 좇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동위 심층 보고서’ 누가 심판하는가? KBS
‘노동위 심층 보고서’ 누가 심판하는가?
KBS 이재석 기자
노동위원회는 중요한 곳이다. 노동자가 해고를 당했을 때 그게 정당한지 부당한지 따지는 ‘심판’ 기능, 노사 분규를 ‘조정’하는 기능,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성과가 낮은 사람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 요건을 새로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데, 이런 개념이 도입되면 부당해고를 판정하는 노동위원회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년에 1만 건이 넘는 해고·징계 사건이 전국 12개 노동위원회에 접수된다. 이 가운데 법원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5% 미만이다. 95% 이상은 노동위원회에서 결론이 난다. 이 말은 노동위원회가 사실상 법원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법원에 판사가 있듯, 노동위원회에는 공익위원이 있다. 이들이 해고자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들이 도대체 누구고, 이들의 판정에 문제가 없는지 진단해 보자는 게 취재진의 기획의도였다. 재심 판정 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가 보유 중인 7년 치 해고·징계 사건 6537건 전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신문도 신문이지만 방송은 노동 아이템에 인색하다. 집회, 시위, 파업, 충돌…. 이런 것들이 아니면 도대체가 다뤄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있는 보도도 피상적 진단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노동 이슈만큼 우리 삶에 밀착해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방송은 요즘 너도나도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이때의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란 반쪽짜리에 불과하거나, 사회적 쟁점을 깊숙이 다루지 않는 ‘회피의 도구’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닐지 의심해 본다.
테스트 타이어 대량 유통 KBS대전
테스트 타이어 대량 유통
KBS대전 성용희 기자
취재는 지난해 9월, 한 통의 제보전화로 시작됐다. 완성차 업체 연구소에서 차량 주행 시험에 사용하고 폐기하는 ‘테스트 타이어’ 중 일부가 시중에 새것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테스트 타이어’는 극한 상황을 가정한 고속 주행과 급제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수명이 크게 단축돼, 전량 폐기해야 한다.
타이어를 빼돌린 곳은 완성차 업체가 테스트가 끝난 타이어를 폐기 처리하도록 지정한 폐기물처리업체였다. 겉보기가 멀쩡한 것들을 골라 판매점에 팔아넘겼고, 판매점은 이 타이어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경찰과 함께 창고 안을 확인한 결과, 쌓여 있던 타이어만 8천 개가 넘었다. 이유는 돈이었다. 폐기물처리업체는 타이어를 파쇄한 뒤 밧줄 등 다른 제품으로 재활용해야 하는 데,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타이어 판매점으로 빼돌린 것이다.
경찰은 취재와 함께 수사를 벌여 지난 4년간 시가 6억원어치, 8천여 개의 테스트 타이어가 판매된 사실을 밝혀냈다. 보도 이후 완성차 업체와 타이어 제조사들은 ‘테스트 타이어’ 유출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자체 점검을 벌였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완성차 업체 등 ‘테스트 타이어’ 배출업자가 폐기물처리업체를 선정해 폐기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폐기물처리업체가 작정하고 ‘테스트 타이어’를 유통할 때는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타이어의 유통. 허술한 법제도 개선은 남겨진 숙제다.
경찰 물대포에 맞는 농민 백남기 씨 프레시안
경찰 물대포에 맞는 농민 백남기씨
프레시안 손문상 기자
지난해 11월14일 집회 현장에서 목격했던 경찰의 물대포는 그 어느 때와 달랐다. 그날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사 조준 물대포에 고꾸라졌다. 바로 그때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선생은 한 달이 넘도록 생사의 경계에 있다. 그리고 나는 백 선생이 그렇게 쓰러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이렇게 때아닌 상복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경찰의 집회 해산 지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을 향해 정조준한 물대포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장비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날 또 그날 이후에도 경찰이 바로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법은 국민의 인권과 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국가 권력은 바로 이 헌법을 준수하고, 보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 권력의 현신인 경찰의 역할도 바로 이것이다. 헌법과 현실의 간극이 컸던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떠올려야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언론인으로 살아온 지 26년째다. 사진 기자로 시작해 편집기자, 미술 기자를 거쳤다. 이제 사람들 대부분은 내 입으로는 절대 쓰지 않는 극존칭 ‘화백’으로 부른다. 영욕이 함께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처럼 ‘하방’할 수 있게 나를 품어준 프레시안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프레시안 임직원 모두의 뜻을 빌어 농민 백남기 선생님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