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강남구청 ‘댓글부대’ 운영 의혹 경향신문
'강남구청 ‘댓글부대’ 운영 의혹'
경향신문 구교형 기자
경향신문의 강남구청 ‘댓글부대’ 운영 의혹 연속 보도는 공무원이 일반 시민인 양 신분을 감추고 업무와 연관이 깊은 사안에 개입하는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시작됐다.
취재와 보도 과정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진행됐다. 기초자료 수집을 하면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구의회 구정질문에 출석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10월14일 한 인터넷 기사에 구정을 옹호하는 댓글이 집중적으로 달린 것을 알게 됐다. 당시는 신 구청장이 한국전력 부지 공공기여금 사용 등을 놓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차라리 ‘강남특별자치구’를 설치해달라”고 공개 선언하면서 서울시와 강남구가 극한 대립하던 때였다.
이후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을 단 아이디의 활동내역을 분석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난해 10~11월 수백개의 댓글이 평일 업무시간에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댓글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열한 정치꾼”으로, 시정 운영을 “깡패 같은 행정”으로 폄훼했다. 야당 시·구의원과 언론을 비난하는 댓글도 발견됐다.
12월8일 최초 보도 직후 서울시 비방·강남구 칭송 댓글이 대량 삭제됐다. 증거인멸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신원이 불명확한 아이디와 댓글도 의심 행적이 있으면 일일이 캡처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12월18일까지 연일 보도를 이어갔다. 정치권은 수사를 촉구했다. 서울시는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지검 공안2부에 배당했다. 이 모든 성과는 여선웅 강남구의원과 후배 선명수·김상범 기자 덕분이다.
인천 11살 여아 아동학대 사건 MBC
'인천 11살 여아 아동학대 사건'
MBC 이준희 기자
“아이는 고아원에 잘 돌아갔나요?”
과자를 훔치러 들어온 11살 소녀를 경찰에 인계했던 슈퍼 주인은 첫 통화에서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이는 혹시라도 자기를 집에 되돌려 보낼까봐 보육시설에서 도망쳤다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A양은 맨발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습니다. 어른 3명은 2년 넘게 아이를 굶기고, 가두고,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당사자, 바로 친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19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16kg 소녀’의 사연이 처음 공개되던 순간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과연 학교는 몰랐을까’였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분명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입으로, 눈으로, 아니면 시퍼렇게 멍이 든 온몸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요. 만약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면, ‘이상하게 생각한 누군가가 틀림없이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과정이니까요. 그러나 학교-주민센터-교육당국으로 이어지는 헐거운 감시 시스템은 결국 A양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민심이 들끓자 사회부총리와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제도 개선을 지시했습니다. 교육부는 뒤늦게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번 보도로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커졌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A양이 이른 시일 안에 예전의 웃음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빗자루로 때리고 욕설하는 학생 '짓밟힌 교권…
'선생님 빗자루로 때리고 욕설하는 학생 '짓밟힌 교권'’
YTN 우철희 기자
퇴근 후 SNS를 통해 캡이 보낸 동영상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열어본 순간 충격은 '메가톤급'이었습니다. 심지어 피해 교사가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 신분으로 추정된다는 제보자의 말은 더욱 취재 욕구를 끓어오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처음부터 난항이었습니다. 학교 측 사람들과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모르겠다" 혹은 무응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동영상만으로 보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을 거듭했지만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발생 학교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고, 학생과 학교 관계자, 피해 교사까지 만나 마침내 사실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교권 침해의 전반적인 현실을 되짚고, 기간제 교사의 처우와 교권 보호 방안의 실효성, 학생 처벌 수위를 둘러싼 논란까지 공론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보도의 파장이 생각보다 컸기에 교권 침해의 현실을 알리고, 당국의 후속 조치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 교사가 신분상의 제약으로 말 못할 속앓이를 한 건 아닌지에 대한 취재 부족과 가해 학생들에 대한 ‘신상털기’라는 부작용, 일부 학생을 구속까지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완결 짓지 못한 과제입니다. 1년 남짓 기간제 신분으로 교단에 서봤기에 제 일처럼 취재에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기자로서의 보람과 언론의 역기능까지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적어도 선생님이 맞아가면서 교단에 서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부디 기원합니다.
중공군 유해 송환 조작 의혹 JTBC
'중공군 유해 송환 조작 의혹’
JTBC 임진택 기자
아직도 국방부는 저희 보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도 이후 진상조사와 자체 감사까지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 과정이 두 달이 다돼 갑니다. 제가 부족한 정보와 제한된 소스로 어렵사리 취재한 기간이 한 달입니다. 모든 자료, 분석 전문인력, 관련자 조사 권한을 가진 국방부입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보도 초기 “철저하게 조사해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방부가 이 사안에 대해 ‘뭉개고 넘어가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보도는 지난 2014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에 보내진 중공군 유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 정부가 꼽는 외교 성과였습니다. 적군의 유해를 반세기가 넘어 돌려보낸 인도적 조치였습니다. 한중관계가 밀착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505구의 송환 유해 중에 수십 여구가 잘못 보내진 의혹이 많았습니다.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고 보낸 경우까지 합하면 5구 중 1구꼴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라 취재한 오류를 확신할 수 없는 맹점이 있었습니다. 보도 과정에서 학문적 도움을 주신 인류학 전공의 민간 전문가와 여러 비위를 증언해준 분들에게 죄송함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여서 정치적인 부담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후배들의 취재 내용을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 의논해 주신 모든 선배께도 감사드립니다.
중국군유해송환 사업은 당장 올해 3월뿐만 아니라 내년, 내후년 계속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진실이 꼭 밝혀져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가 아직 나오지 않아 큰 반향에 이르지 못한 ‘미완성의 보도’였음에도 큰 상을 주신 기자협회와 심사위원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실화된 괴물 ISD, 뒷걸음질 치는 정부 국민일보
'현실화된 괴물 ISD, 뒷걸음질 치는 정부‘
국민일보 조민영 기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라는 낯선 제도를 처음 접한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한창이던 2007년이었다. 몇몇 인사를 중심으로 위험성을 지적했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스쳐갔다. ISD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4년 후인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통과를 앞두면서였다. 소위 ‘ISD 괴담’이 SNS에 퍼졌고, 정부는 수색했다. 그리고 또 4년이 지난 2015년 ISD는 론스타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더 이상 괴담이라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정부의 태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론스타 외에 추가로 제기된 두 건의 ISD는 대응 부처조차 다르다는 얘기를 접했다. 확인 결과 정부조직 상 통상교섭본부가 사라진 이후 ISD와 같은 국제중재사건을 총괄할만한 부처는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ISD의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문제없다고 포장하는 건 모두 피하자는 데 팀원 모두가 공감했다. 이제는 ISD를 현실로 인정하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대처할 채비를 하라고 주문하기로 했다. 취재 당시 비준을 앞두고 있던 한중 FTA의 ISD 조항을 들여다보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ISD라는 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등을 더 짚어보고 싶었지만 독자들에게 있어 지나치게 전문적인 분야라는 것은 장벽이었다. 취재 과정보다 조금이라도 ‘친절한’ 기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사 작성 과정이 더 어려운 것도 같은 유였다. 무지한 기자에게 ISD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아주 편하게 설명하고 전달해준 민변의 김종우 변호사께 특히 감사를 표한다.
세월호 탐사 보도 한겨레신문 한겨레21
'세월호 탐사 보도’
한겨레신문 한겨레21부 정은주 기자
2014년 4월20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의 밤은 눈부시게 환했습니다. 앞쪽 무대에 놓인 대형 모니터가 컴컴한 바다를 비추지 않았다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환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 아빠들은 울다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밤새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 마감을 끝내고 2014년 4월19일 전남 진도행 첫 아침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을 당연히 취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닷새 만에 기자는 이미 ‘기레기’로 낙인 찍혀 있었습니다. 명함을 내미는 순간 부모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변했습니다. 단 한 명의 부모도 인터뷰하지 못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 1년 9개월은 그 취재 현장에서 무기력했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14년 7~8월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38일간 800km(경기도 안산 단원고~진도 팽목항~대전 월드컵 경기장)를 걸었고, 2015년 4월 참사 1주기를 맞아 새로운 진실을 발굴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3월 실제로 세월호 기록을 입수해보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진실의 조각이 산산조각 깨져 그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때 기꺼이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손들을 마주 잡고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간 지 어느덧 10개월째입니다. ‘프로젝트팀’을 구성하지 못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그래도 ‘프로젝트팀’은 짙은 안갯속을 계속 헤맬 작정입니다. 이렇게 헤매는 것이 이 안개를 헤쳐나갈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힘겹고 버겁습니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선후배들께서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끝까지 힘을 내보겠습니다.
몽고식품 회장의 직원 상습폭행 경남CBS
'몽고식품 회장의 직원 상습폭행’
경남CBS 이상현 기자
“그럴 줄 알았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의 직원들 상습폭행 단독기사가 나가고 난 뒤 경남지역의 많은 분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김 회장의 언행이 한번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김 회장은 그동안 많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직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폭행이나 폭언을 했고,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회사나 가족 중에서도 김 회장을 말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김 회장은 그렇게 자신의 폭행에도 무감각해졌을 것이다. 언론보도 이후 사태는 커질 대로 커져 결국 매출이 뚝 떨어질 정도로 몽고식품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번 보도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것은 그동안 가진 자, 있는 자에게 당해왔던 없는 자, 이른바 ‘을’들의 울분이 보도와 함께, 고스란히 터져 나왔던 탓인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생활터전에서 먹고 살기 위해 험한 꼴 당하면서도 이 악물고 버티고 있는 수많은 ‘을’들이 자신이 당했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분노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조만간 경찰과 노동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아야 하고, 혐의가 드러나면 재판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죄가 있다면 처벌을 통해 대가를 치르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인들, 가진 자들 스스로가 자성하고, 반성해서 더 이상 종업원들을, 없는 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기업들이 앞장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고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전도시(Mega Nuke City) KBS부산
'원전도시(Mega Nuke City)'
KBS부산 양희진 기자
“우리 곁에 원전이 그렇게 많았나요? 정말 몰랐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부산권역 안에 8기나 되는 원전이 이미 들어서 있고, 최소 2기가 더 건설계획이란 사실은 기자 중에도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우리 프로그램의 영어 제목 ‘Mega Nuke City’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해운대해수욕장으로부터 불과 20킬로미터 거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단지가 있고 부산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세계 최대 원전도시가 됐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이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 우리 프로그램은 목표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광활한 국토의 이점이 있긴 하지만 세계 최고 원전대국 미국의 원전 건설 원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은 ‘환경적 공평성’이란 원칙 아래 어떤 위험시설도 한 지역에 몰아서 짓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원전은 한 지역에 1~2기가 대부분이고, 많아야 3기뿐이다. 이미 8기의 원전이 있는 지역에 또 원전을 더 짓겠다는 우리 정부의 발상은 “이미 버린 몸이니까 너희가 좀 희생하면 안 되겠니?”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개발의 시대, 원전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었지만 이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시대고 원전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원전 진흥주의자들은 ‘청정에너지 원전론’을 앞세워 계속해서 불도저를 밀어붙일 뿐 공론화의 문은 닫아 놓고 있다. 변화는 철장 너머에 가려져 있던 원전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년 전 함께 하겠다고 용기 있게 나서준 후배 노준철 기자, 묵묵히 자료조사와 구성을 맡아준 조경남 작가, 그리고 탁월한 작품 해석력과 예술적인 편집 솜씨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해준 이동훈 편집감독, 멋진 그림을 찍어준 한석규, 허선귀 두 촬영기자와 함께 영광스러운 이 상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