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 후쿠시마의 진실
KBS 윤지연 기자
후쿠시마의 가을은 맑고 고요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고, 들녘에는 벼가 영글어 간다. 누렇게 물들어가는 가을 들판의 적막을 깨는 것은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뿐이다. 힘찬 연기를 내뿜는 육중한 검은색 기관차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것 같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여전히 잔인하다.
잠시나마 차창 밖에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광에 매료될라 치면, 운전석 옆에 설치한 ‘공간 선량계’가 수시로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경고음을 울려대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각인시킨다. 방사능 오염 지대를 피해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무겁고 아프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집을 찾아 손때 묻은 집기류를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후쿠시마의 현재는 바로 이 ‘평화로움과의 싸움’으로 보인다.
취재팀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바다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250㎞ 이상 떨어진 도쿄만까지 광범위한 바다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대학과의 공동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오염수 통제에 심각한 결점을 드러냈고, 제염작업 폐기물을 쌓아둘 장소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지에서 ‘방사능 공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원전사고로 중단했던 조업을 재개한 어부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마스크를 쓰는 일 조차 머쓱할 정도였다.
취재팀 뿐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 ‘방사능 위험’을 말하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취재를 통해 만난 이들 가운데 방사능 위험을 걱정하는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신원 공개를 꺼렸다.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정부나 거대 권력이 아니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주를 원하는 주부가 염려하는 것은 ‘유난 떨지 말라’며 핀잔을 주는 남편과 친척들이었고, 도심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찾아 알리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 역시 지역사회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의 현재’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우리 식탁의 안전성’이었다. 이를 위해 국내 취재를 맡은 손원혁 기자는 부산 어시장 주변에서 며칠씩 잠복 취재에 나섰고, 김연주 기자는 다양한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산 식품 전반을 점검했다. 이렇게 취재한 내용은 일본 현지 취재 분량과 함께 이주형 팀장의 지휘 아래 50분의 ‘시사기획 창’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회차 심사평
제278회 전체 총평
부산일보 ‘건강 최악 도시’ 지역에 바탕 둔 기획·취재 돋보여
언론이 현대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의 횡포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민주사회 시민들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자의 사명감이 더욱 충실해지는 징후인가? 10월 기사를 대상으로 한 이번 심사에는 출품작이 74편에 달해 최근 5년내 최다 출품의 기록을 세웠다. 매달 평균 출품작 40~60편 사이를 크게 넘어선 출품 기록이다. 최근 다양한 국내외 활동에 따라 높아진 한국기자협회와 ‘이달의 기자상’의 권위와 신뢰에 부응, 사회 모순을 파헤치려는 기자들의 특종 열망이 커지는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모두 호평 속에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심사위원들 모두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작품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일부 출품작의 경우 특종임을 과시하기 위해 성과와 의미를 과장하거나 타사의 경쟁작을 폄하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같은 행태는 자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음을 알린다.
취재보도 1부문에서는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효성그룹 수천억 탈세·국세청 검찰 고발키로’와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의혹’ 두 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효성그룹…’ 보도는 여러 건의 단독보도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다양하게 조명됐으며, 역외탈세 문제까지 다룬 점과 금융감독원의 후속 조치까지 이끌어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효성그룹 탈세에 대한 연속 취재를 힘있게 끌고 갔으며, 다른 언론 보도를 주도한 시의적절하고 알찬 내용을 담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군 사이버사…’ 보도는 한겨레신문이 추적 취재하지 않았으면 미궁에 묻혔을 사안을 발굴해 단독 보도한 수작으로, 보도 기간 진행된 국정감사로 여론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는 운도 따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정보기관과 정부 부처의 대선 개입 파문이 국민적 충격을 준 가운데 정치적 중립지대의 마지막 보루인 군마저도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밝힌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부문의 한겨레신문 ‘보조출연자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은 화사한 주연배우의 그늘에 가린 방송국 보조출연자들의 심각한 현실을 잘 포착해 보도함으로써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동안 많이 다뤄진 주제임에도 보조출연자들의 실태를 밀착 취재함으로써 현장 상황을 세심하게 드러낸 미시적인 접근법으로 겉보기에 화려한 방송국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의 KBS ‘시사기획 창-후쿠시마의 진실’은 혹시 모를 방사능 피해의 위험을 감수한 취재정신을 높이 산다는 긍정적 평가와 기자라면 당연히 감수하는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지만, 심사결과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일부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의 1회성 현장취재와 달리 일상생활에서 방사능 노출 피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사건을 취재해온 도쿄 상주 특파원들의 고뇌와 고통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역기획보도 신문부문의 부산일보 ‘건강최악도시 부산, 공공보건의료 바꾸자’는 지역언론이 전통적인 취재방식에서 벗어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좋은 기획기사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마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점을 잘 보여줬고, 지역사회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를 지방도시에 바탕에 두고 기획과 취재를 조화롭게 진행했다는 평을 받았다.
전문보도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숭례문 단청 박락’ 사진작품이 선정돼 오랜만에 사진 분야의 수상작을 냈다. 단발성 사진보도지만 사진기자가 부실한 문화재 관리의 현장을 꼼꼼하게 확인해 보도했고, 정부가 이같은 보도내용을 수용해 후속 대책을 내놓고 이후 문화재청장까지 경질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큰 특종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