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숭례문 단청 박락 경향신문
숭례문 단청 박락
경향신문 이상훈 기자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시사주간지 기자가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월요일 점심.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광고국 기획위원으로 있는 김경은 부장과 마주쳤다. 김 부장은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라며 “복원된 숭례문의 단청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식사 후 망원렌즈를 챙겨서 현장으로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에는 일반인 관람을 위한 개방을 하지 않는 날이어서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펜스 밖에서 600mm 망원렌즈를 꺼내들고 숭례문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단청에 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이 있으니까 소문이 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누각 2층의 서까래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1시간30분 정도 흘렀을까. 망원렌즈로 단청사진을 찍고 최대한 확대해 보기를 반복하니 조금씩 이상한 단청이 발견됐다. 카메라 모니터 상에서 이상이 확인된 단청만 7개, 그 중 4개가 남쪽에 몰려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모두 동원돼 국민적 관심 속에 복원된 숭례문 단청이 이렇게 흉한 모습을 드러낼 수가 있는가.
회사로 돌아와 문화재청을 출입하는 본지 문화부 도재기 부장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현장 상황을 상세하게 전해주었다. 도 부장은 곧바로 문화재청과 단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로부터 단청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증거사진을 손에 쥐고 물어보는 도 부장의 송곳질문을 피해나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복원 5개월 만에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숭례문 단청의 훼손사실을 지면에 게재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에 기사가 나간 당일 문화재청은 숭례문 현장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단청의 훼손상황 및 향후 수리 계획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일반 토목공사 현장처럼 공기에 맞춰서 충분한 조사와 연구, 실험 없이 복원공사가 진행된다면 제2, 제3의 숭례문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26년차 기자가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머쓱하기만 하다. 하지만 옛날 같으면 퇴직할 나이에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바람이 있다면 기자생활 30년차 기념으로 대특종을 하나 터뜨리고 퇴직하고 싶다는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지만, 열심히 뛰어다니다보면 운도 비켜가지 않으리라 믿는다. 제보해준 김경은 부장과 신속하고 정확한 확인으로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어준 도재기 부장과 영예를 함께 하고 싶다.
건강최악도시 부산, 공공보건의료 바꾸자 부산일보
건강최악도시 부산, 공공보건의료 바꾸자
부산일보 김경희 기자
저희가 보도한 ‘건강최악도시 부산, 공공보건의료 바꾸자’ 시리즈는 보도 횟수로만 13회, 관련기사와 후속보도를 포함하면 20여 회에 걸쳐 본보에 게재됐습니다. 첫 보도가 6월 10일이었으니, 11월 초까지 6개월여 동안 시리즈가 이어진 겁니다.
부산은 지난 20여년 간 전국에서 가장 낮은 기대수명과 가장 높은 사망률이 계속돼 왔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은 일찍 사망하고, 많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지요.
건강이 화두가 되어온 것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건강은 그저 개인이 관리하고 민간병원이 치료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분야로 인식돼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망률과 기대수명 같은 건강지표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돼야 하는 영역일까요?
기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정부가, 지자체가 더 세심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은 물론,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은 더욱 건강관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간 보도를 이끌어오면서, 무엇보다 힘이 됐던 것은 함께 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해왔던 부산의 공공의료 전문가와 의식있는 보건소장님들, 의료분야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였습니다.다소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고, 비교적 침착하게 문제 인식을 함께 했던 시민들의 반응도 좋은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큰 감사를 전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시민들의 건강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부산시의 지지부진한 움직임입니다. 어느 정도 가시적인 정책변화가 시작되고 있지만, 심각한 부산의 현실에 비춰보면 기대 이하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리즈 보도는 끝났지만 기자라는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노력들을 꾸준히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개인적 소회를 덧붙이자면, 올해 기자생활 10년을 맞은 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계기로 한 계단 정도 더 성장한 느낌입니다. 이제 스스로 기획안을 만들고, 취재 아이템을 찾고, 후배를 이끌어갈 수 있는, 10년 차 기자의 포스를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던 입사 때 초심, 흔들려가던 그 첫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더 좋은 기사 쓸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사기획 창 - 후쿠시마의 진실 KBS
시사기획 창 - 후쿠시마의 진실
KBS 윤지연 기자
후쿠시마의 가을은 맑고 고요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고, 들녘에는 벼가 영글어 간다. 누렇게 물들어가는 가을 들판의 적막을 깨는 것은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뿐이다. 힘찬 연기를 내뿜는 육중한 검은색 기관차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것 같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여전히 잔인하다.
잠시나마 차창 밖에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광에 매료될라 치면, 운전석 옆에 설치한 ‘공간 선량계’가 수시로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경고음을 울려대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각인시킨다. 방사능 오염 지대를 피해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무겁고 아프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집을 찾아 손때 묻은 집기류를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후쿠시마의 현재는 바로 이 ‘평화로움과의 싸움’으로 보인다.
취재팀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바다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250㎞ 이상 떨어진 도쿄만까지 광범위한 바다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대학과의 공동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오염수 통제에 심각한 결점을 드러냈고, 제염작업 폐기물을 쌓아둘 장소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지에서 ‘방사능 공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원전사고로 중단했던 조업을 재개한 어부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마스크를 쓰는 일 조차 머쓱할 정도였다.
취재팀 뿐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 ‘방사능 위험’을 말하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취재를 통해 만난 이들 가운데 방사능 위험을 걱정하는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신원 공개를 꺼렸다.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정부나 거대 권력이 아니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주를 원하는 주부가 염려하는 것은 ‘유난 떨지 말라’며 핀잔을 주는 남편과 친척들이었고, 도심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찾아 알리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 역시 지역사회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의 현재’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우리 식탁의 안전성’이었다. 이를 위해 국내 취재를 맡은 손원혁 기자는 부산 어시장 주변에서 며칠씩 잠복 취재에 나섰고, 김연주 기자는 다양한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산 식품 전반을 점검했다. 이렇게 취재한 내용은 일본 현지 취재 분량과 함께 이주형 팀장의 지휘 아래 50분의 ‘시사기획 창’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보조출연자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 한겨레신문
보조출연자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
한겨레신문 박유리 기자
한겨레 사회부 24시팀 박유리 기자입니다. 부족한 기사임에도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9월 말부터 8회 연재한 ‘엑스트라 쥐어짜는 드라마 왕국’은 개인적으로 4년간 지켜 본 보조출연자 업계에 대한 노동 보고서입니다.
2009년 문화부 방송 담당 기자 시절 알게 된 보조출연자들의 인권 유린 실태를 언젠가는 탐사 보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실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시리즈는 지난해 겨울, 잠시 기자직을 떠나 있을 때 보조출연자 노조 위원장 등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합니다. 부당 노동 행위를 당했다며 위원장이 제게 연락을 취했지만 당시에는 업무 현장을 떠나 있던 때여서 보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업무에 복귀하게 되면, 꼭 보도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좋은 기자가 무엇인지는 늘 제 삶에 있어서 화두입니다. 아직은 그 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기획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취재 대상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 이러한 것들이 기획 기사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란 의문이었습니다. 보조출연 업계에 대한 지상파 방송 3사의 무관심이나 수십 년간 굳어진 보조출연 기획사 업계를 감안하면, 현실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취재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몇 가지 후회도 남습니다. 성폭력 당한 자매 자살 사건을 취재하면서 숨진 여성이 남긴 유품을 뒤지고 비밀번호가 걸린 휴대전화를 복구시키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데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아무래도 1인 기획이 남긴 구멍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분은 제게 저널리스트가 되기에는 피가 너무 뜨겁다는 조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가진 단점이자 기자로서 더 발전하지 못하는 덫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뜨거웠던 피가 있었기에 두 달이란 시간 동안 앞만 보고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늘 제게 자극을 주고 반성하게 하는, 그리고 존경하는 사회부 24시팀 선후배님들께 감사합니다. 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24시팀이 함께 받은 상입니다.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의혹 한겨레신문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의혹
한겨레신문 하어영 기자
“군도 댓글을 달았다.”
한마디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 상대방과 달리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군의 대선개입은 국정원의 정치공작과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군은 민주주의의 방화벽과 같은 존재입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질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지는 독재의 상처를 남긴 지난 역사가 보여줍니다.
예전처럼 개인정보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취재환경에서 대선개입 여론전을 펼친 의심 아이디를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의 것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지루하고 길었습니다. 수사를 맡고 있는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는 아직도 어떻게 취재가 가능했는지를 묻습니다.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와 구글링 작업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한달여를 매달렸습니다. 대선개입 의혹 제기와 함께 군 사이버사 요원 3명으로 시작한 보도가 4명으로, 5명으로, 결국 1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수사대상은 90명을 넘어섰습니다. 조사본부는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지만 진실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쌍둥이입니다.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고 사건의 확장되는 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첫 보도 뒤부터 작전상 비밀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을 계속하는 당국자의 태도, “대선개입이라고 하기에는 올린 글의 수가 너무 적다”는 여당 의원들의 논리까지 국정원 사건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보도 직후 요원들의 정치글은 대거 삭제됐고, 일부 트위터, 블로그 계정들은 비공개로 전환됐습니다. 군 수사기관에서는 엄정수사를 공언했지만 첫 압수수색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의 전개상황까지 예견될 정도입니다. 여기에 국민의 ‘의식 오염’을 말하는 장관의 태도는 모든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당국자의 말은 결론을 암시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이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확장됐고, 할 일은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수사가 막바지에 달했고, 진실을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현재의 상황입니다. 다시 묵묵하게 할 일을 해야겠습니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주위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취재를 위해 떠난 빈자리를 나눠 맡아준 정치부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한 미국 언론인의 금언이 요즘처럼 사실에 부합하는 때는 없는 듯합니다. 취재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