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이대로 좋은가 광주M…
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이대로 좋은가
광주MBC 김인정 기자
4년 전 겨울 새벽, 낯설었던 경찰서가 기억납니다. 수습기자였던 저는 형사과 구석에 앉아 경찰관들이 수사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쌍방폭행 조서를 꾸미기도 했고, 술에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질러대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흘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해서 음식을 훔친 피의자에게 더운밥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경찰서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저는 ‘법의 얼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명쾌한 언어로 모든 것을 단 한 차례만 설명해주는 종이법전에 비해 경찰은 얼마나 다양한 ‘법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들은 울고, 웃고, 화를 내고, 피곤해 하고, 짜증도 내고, 모든 것에 무감하기도 하고, 때론 동정하고, 공감했습니다.
경찰관들의 개인정보 무단조회에 대한 취재는, 그래서 적어도 저에게는, 분노에서 시작된 취재는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잠깐이나마 그들의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한 얼굴을 지켜본 경험에 비춰보면, 충분히 있을법한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정보 무단조회는 있을 수 없고, 용인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경찰청 감사 결과에 나온 경찰들의 개인정보 무단조회 사유는 사실 약간 웃음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야간근무를 서다가 텔레비전의 야구중계를 보고 호기심이 일어 야구선수의 주소를 들여다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동창회 총무를 맡아 추억을 더듬으며 동창 3백여 명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뭐라고 지적하기도 난처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들입니다.
취재진은 행정심판을 통해서야 감사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나긴 싸움 끝에 펼쳐보게 된 자료에는 그들이 보여준 수많은 ‘법의 얼굴’ 가운데 가장 미숙하고 철없는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개인정보를 돈을 받고 팔아 넘겼다는 대목에서는 시작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분노까지 느끼게 됐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없긴 힘들겠지요. 하지만 경찰이 일을 편하게 하겠다고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5년 전, 무단조회나 불법유출 같은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나 주소, 전과 같은 민감한 나의 개인정보를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게 공권력이라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누군지도 모르는 경찰관이라면 어떨까요. 그렇게 가면으로 가린 얼굴은 더 이상 친숙한 ‘법의 얼굴’일 수가 없는 겁니다. 개인정보가 헐값에 사고 팔리는 시대, 개인정보만 알아내도 누군가를 위협할 수 있는 시대. 법이 지켜줘야 하는 건 힘없는 개인들의 가리고 싶은 맨 얼굴 아닐까요.
이번 보도로 단 한 명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큰 상, 감사합니다.
범죄 예방의 새로운 대안 ‘셉테드’ 부산일보
범죄 예방의 새로운 대안 ‘셉테드’
부산일보 조영미 기자
3년 전 부산 사상구 덕포동 공·폐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김길태는 이곳에서 여중생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유기했다. 이후 한 달 간 공·폐가를 떠돌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김길태 사건 이후 부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공·폐가를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우범지대 사는 주민들이 스스로 주변 환경 정비에 나섰다. 본보는 여기에 주목했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범죄예방 환경디자인)는 이런 부산의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이론이었다. 마침 부산지방경찰청, 부산디자인센터도 셉테드의 취지를 공감하고 있는 터였다.
지난 3월 경제부 김형 기자를 주축으로 셉테드 취재팀이 꾸려졌다. 경찰, 디자인 전문가 등으로 셉테드 위원이 선정됐다. 사회부 경찰 기자들은 10회에 걸쳐 공·폐가, 원룸 밀집지역, 공원, 아파트 등 범죄 취약 지역 현장 취재에 나섰다. 실제로 범죄 취약 지역을 가보니 범죄를 저지르라고 부추기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본보 셉테드 위원들은 셉테드가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페인트색 하나만 바꿔도, CCTV가 있다는 표시만 해도 범죄가 예방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셉테드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김형 기자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셉테드를 도입한 뉴사우스웨일즈주를 방문했다. 이후 선진국의 셉테드 적용 방식을 확인하고 시사점을 제시했다.
셉테드 보도는 지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부산대 기숙사를 셉테드 위원들과 함께 점검해 본 현장취재는 부산대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인용하며 화제가 됐다. 부산대 여자기숙사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 뒤, 취재진이 부산대 전체 기숙사를 셉테드 관점에서 취재한 결과 여전히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통제가 허술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셉테드 기획취재로 지역사회가 변하기 시작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는 ‘셉테드 보행등’이 설치됐다. 무엇보다 전국 최초로 셉테드 의무 적용을 위한 ‘부산시 안전한 도시 만들기 조례’, ‘부산시 빈집 정비 지원 조례’가 제정되는 성과를 낳았다.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사상구 덕포동에서는 재정비를 위한 ‘안전한 덕포동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상은 기자가 받은 상이 아니다. 셉테드의 취지에 공감하고 발로 뛴 경제부 김형 기자와 사회부 경찰기자 8명이 받은 상이다. 셉테드 취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일보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하다. 본보 취재를 계기로 부산이 안전하고 사람 사는 냄새 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어 기쁘다.
경기도의회 ‘부정 대리투표’… 의결 안건 사상 첫…
경기도의회 ‘부정 대리투표’… 의결 안건 사상 첫 무효처리
중부일보 이복진 기자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때가 제 기자 인생에서, 힘든 기자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힘이 날 때입니다. 특히 기자 선배들이 직접 후보작들을 살펴보고 수상자를 정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자부심이 생깁니다.
사실 이번 취재 ‘경기도의회 ‘부정 대리투표’…의결 안건 사상 첫 무효처리’는 얼마되지 않은 저의 기자 인생을 걸었던 취재였습니다.
저는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9월 13일 경기도의회 현장에 있지 못했습니다. 사건 발생 하루 뒤인 14일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도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중 한 의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뚜렷한 팩트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의원 한 명의 멘트만 믿고 시작한 기사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대오보가 나오고 제 기자 인생을 접을지도 모를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를, 그런 투표에 의해 뽑힌 의원들이 거짓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견딜 수 없었고 그 결과 기사를 썼습니다.
민주당은 자당이 단독발의한 ‘경기도 재정위기 행정사무조사 발의의 건’을 본회의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자당 소속 의원들이 본인의 전자투표기가 아닌 동료의원의 전자투표기를 대신 눌렀습니다. 즉, 부정 대리투표 행위가 발생한 것입니다.
처음 기사가 나간 뒤 당연히 민주당은 오보라고 주장했고, 이에 저는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을 신문에 캡처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은 지난달 2일 도의회 브리핑 룸에서 “책임을 느낀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민주당 대표의원 자격으로 동료 의원의 잘못에 책임지겠다고 총대를 멘 것입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합의체의 의사결정 절차에 있어 구성원이 의사표시를 하는 것으로, 구성원의 찬성이나 반대의 의사표시를 모아 합의체의 의견으로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과정에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대신 의견을 표시하는 행위는 그 행위가 적던 많던 투표 결과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대리투표 문제를 덮고 가자는 이야기도 일부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나왔지만 민주당 대표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대표단은 이 문제를 공식 사과하면서 정면돌파를 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제 개인적으로 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게 하는 영광을 주면서도 제가 더 열심히 기자활동을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의회 차원에서는 투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저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시리즈 경향신문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시리즈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기자상을 받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기자생활 20년이 넘었는데도 이달의 기자상 수상 결정 소식에 수습기자처럼 마음이 설렜다. 기자를 하다보면 가끔씩 누군가의 ‘공감’에 목이 마르는 순간이 있는데 기자상은 바로 그 갈증을 해소하는 ‘단비’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노동의 관점에서 500대 기업의 순위를 매겨보겠다며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시리즈를 처음 준비할 때 ‘돈 키호테’가 된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해 분석도구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노동소득분배율’, ‘간접고용비 비중’, ‘인건비 대비 배당성향’ 등의 개념을 주변에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어떤 경영학 교과서에도 찾아볼 수 없는 개념들인데다 자본의 관점에서 작성된 재무제표를 노동의 관점에서 재해석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해 보였다.
다행히 내부에서는 공감대가 쉽게 이뤄졌다. 지난 7월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편집국에 복귀한 뒤 기획안을 보고하고 20대 기업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피드백을 거쳐 분석틀을 확정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 이후부터는 편집국 막내들 6명과 함께 500대 기업별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기업별 공시자료 중 원하는 팩트들을 모아 엑셀에 입력하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작업은 계속됐고 토요일에도 출근해 심야까지 씨름이 계속됐다.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개념을 모두가 정확히 공유하는 일이 중요했다. 지리한 입력작업과 다시 이를 재검토하기까지 꼬박 2주일이 걸렸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거쳐 국내 어떤 연구소나 정부부처도 생각하지 못했던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에 대한 방대한 DB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MB정부 5년간 친기업정책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은 떨어지고 간접고용비 비중이 50%에 육박하며 20여만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 이익이 현금배당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확인됐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분석 결과를 수긍했다. 한국은행도 경향신문 분석틀을 인정하고 노동부 용역을 수행하는 연구자들도 조사방법을 원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자협회에서 본 기획의 가치를 인정해준 것이 고맙고 기쁘다.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 막막함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대기업의 성장률과 노동자들의 체감경기가 일치하지 않는 가운데 이제 언론은 ‘성장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500대 기업에 대한 분석과 기획이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양 사태 연속보도 한겨레신문
동양 사태 연속보도
한겨레신문 김경락 기자
부족한 기사에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양그룹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습니다. 수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사안들과 그간 숨겨져 있던 진실이 좀 더 드러나길 바랍니다.
금융담당으로서 해당 이슈를 취재하고 기사를 써온 입장에선 검찰 수사가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달 가까이 동양그룹에 집중해온 터라 진이 빠졌다고나 할까요. 이제 조금은 뒤로 물러나 있어도 될 것 같습니다.
동양그룹 기사를 처음 쓴 게 8월 중순이었습니다. 당시 취재를 마치고 기사화 여부를 이틀 정도 고민했습니다. 행여 보도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동양그룹이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연속보도를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금융당국이나 신용평가사, 각 기업 재무 담당자 등은 동양그룹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반면 동양그룹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그 위험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금융시장에서 종종 나타나는 정보 비대칭이 너무 심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는 동양그룹도 중요하지만 이 그룹에 투자한 사람들의 입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들은 종종 출입처 이해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묵적 카르텔이 형성되는 이유입니다. 이 카르텔에 들어오지 못한 투자자들에게 객관적 정보를 주는 게 기자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보도를 계기로 동양그룹 경영진이 자산 매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당시 동양그룹은 구조조정 계획을 세워놓고도 결행에는 미적거리고 있었습니다. 9월 말 법정 관리 신청은 구조조정이 너무 뒤늦게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동양 내부 임직원들도 이런 심정으로 여러 차례 제보를 해왔습니다.
이번 취재는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한 그룹의 재무 구조를 자세히 뜯어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경영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동양 사태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사건의 원인과 수습, 대책 마련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란 이분법적 구도가 너무 부각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또 과도하게 특정 인물이나 기관의 책임론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책임 소재는 잘 따져야지 여론에 언론이 편승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앞으로 부족했던 부분은 메워가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쓰겠습니다.
송전선 인근 암 보고서 입수…50대 위암 · 60대 간암…
송전선 인근 암 보고서 입수…50대 위암 · 60대 간암 증가
중앙일보 임진택 기자
밀양의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은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흔히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경제적 보상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 집 앞에, 내 밭과 논 위로 거대한 송전선로가 지나간다는 것 자체가 끔찍이도 싫다는 감정이 더 컸습니다.
아무리 전기가 급해도, 아무리 이들이 소수라고 해도 이들의 목소리를 이들 입장에서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송전선로를 주거지 가까이 짓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8년 기사에서 당시 지식경제부가 서울대 등과 함께 송전선로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 실태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짧은 기사를 찾았습니다. 그 뒤로 전국 여기저기서 송전선로가 생기는 곳마다 크고 작은 지역 갈등이 있었지만 이 보고서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정보공개를 요구했습니다. 보고서는 이미 완료돼 올해 초 정부에 보고된 상태였습니다. 보고서는 67개 지역에 대한 5년간의 13개 주요 암 발생 실태를 조사한 것이었는데 연구비만 10억원이 든 방대하고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쉬쉬했습니다. 내용을 보니 납득이 갔습니다. 송전선로 인근 지역의 암 발생 증가를 의미하는 데이터가 꽤 많았던 겁니다.
보고서에 언급된 송전선로 인근 지역을 실제로 취재해 보니 주민들은 불안해했고 시각적 위협이나 소음 등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밀양 송전탑을 얘기할 때 ‘님비 현상’을 빗대 설명하곤 합니다. 결론은 이기적 행동이라는 건데,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이들의 절규는 너무 절박하고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더욱 많은 비슷한 갈등을 접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사회적 의제로 끄집어 내서 충분히 얘기하고 온갖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정부가 감추고자 한 민감한 보고서를 들춰 공개했다는 점보다 단독 보도 후 주말 기사로 10분 이상을 할애해 이 문제를 집중 분석한 점이 뿌듯합니다.
보도의 가치를 믿어주고 끝까지 지원해 주었던 부장과 팀장, 그리고 실은 밤을 새가며 현장을 지켰던 후배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정원, 경찰, 여권 3각 커넥션 등 국정원 댓글사건 연…
국정원, 경찰, 여권 3각 커넥션 등 국정원 댓글사건 연속보도
한국일보 강철원 기자
이제는 언론인 사이에서도 잊혀져 가고 있지만 한국일보 기자들은 8월12일 업무에 복귀했다. 지난 6월15일 사주와 경영진의 부당한 편집국 폐쇄에 맞서 투쟁에 돌입한 지 두 달만이다. 두 달이라는 기간은 기자들에게 상당히 긴 공백이다. 현장감각도 떨어지고 취재원들도 떨어져 나가기 십상이다.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들에게, 정상적인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언론사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취재원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이 같은 악조건을 극복하고 지난 8월30일 ‘이석기 의원 참석 비밀회합 녹취록 단독 입수 보도’로 제276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일부에서는 “한국일보가 정권에 잘 보이려고 중도를 포기하고 보수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녹취록 전문이 실린 9월2일 한국일보는 좌파와 호남, 여성 비하발언을 인터넷을 통해 3,500여건이나 게시해 물의를 일으킨 아이디(ID) ‘좌익효수’가 현직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함으로써 국정원의 일탈행위가 조직 차원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의미 있는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석기 의원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발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을 비판하는 이 같은 보도는 흐름과 안 맞는 기사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받았다.
9월11일 한국일보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사건이 발생한 12월11일부터 경찰이 허위수사결과를 발표한 12월16일까지 엿새 동안 국정원 2차장 산하 국내담당 간부들이 서울경찰청 고위간부 및 여권 핵심인사들과 집중적으로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이틀에 걸쳐 단독 보도했다. 댓글 작성 부서인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이외에 국내담당인 2차장 산하 간부들이 경찰 수사에 깊이 관여한 것은 물론 여권과 교감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진보성향으로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이 없는 회사라 좌파성향이 강해졌다는 해석도 곁들여졌다. 불과 2주도 안 돼 보수신문이 진보신문으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이치에 맞는 주장인지 묻고 싶다.
한국일보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독자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을 언론 본연의 사명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진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진실의 영역에 보수나 진보와 같은 정치적 개념이 끼어들 여지는 단 1%도 없다.
조악한 보고와 기사를 잘 키워서 작품으로 만들어 준 이희정 사회부장과 황상진 국장, 이계성 편집국장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