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회) 숨어사는 아이 2만명
중앙일보 최종권 기자
“삼촌 친구 있어요? 우리는 없어요.”
지난 7월 충북 음성의 한 외딴 마을에서 만난 자혼기르 형제가 웃으며 물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부모와 만나 인터뷰를 할 때도, 좋아하는 햄버거를 선물로 줬을 때도 줄 곧 아무 말이 없던 아이였다.
말이라도 붙여 볼 요량으로 차 트렁크에 있던 축구공을 꺼냈다. 한참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같이 놀았다. 늘 동생과 둘이서만 놀았던 자혼기르에게 나는 첫 한국인 친구였던 셈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 사회에는 자혼기르 형제처럼 숨어사는 아이들이 2만명이 있다. 젖소농장 옆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사는 무국적 신분의 3살 디누리.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대학에 갈 수 없는 17살 앤. 3개월여 동안 취재팀이 만난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이번 기획은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인권 문제를 다뤘다. 키울 수 없어 버려지는 아이들과 신분세탁을 통해 본국에 보내지는 이른바 ‘아기 택배’라는 부작용도 담았다.
보도 후 ‘죄는 없지만 불법은 불법’이라는 우려 섞인 의견도 있었다. 반면 아이들을 돕겠다는 수십 통의 이메일이 취재팀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이번 보도가 미등록이주아동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앞서 아동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그들의 인권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아이들의 실상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세이브더칠드런 등 전국의 외국인인권보호센터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또 아낌없는 조언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권혁주 부장과 기획팀 선후배 동료들에게도 영광을 돌린다.
회차 심사평
제301회 전체 총평
제301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2015년 9월)
동아 ‘김무성 사위 마약투약 사건…’ 의혹의 끈 놓지 않은 추적보도 호평
제301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총 50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심사위원회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모두 7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취재보도 1부문의 SBS ‘美, 핵심기술 이전 거부…길 잃은 한국형 전투기’ 보도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이 질의한 내용 중 핵심 부분을 SBS가 단독 포착해 취재파일로 작성한 기사였다. 심사에서는 “이 기사가 당일 SBS 메인뉴스에 보도되지 않았고, 블로그 성격이 있는 온라인 취재파일로만 작성됐다”, “메인 뉴스 보도는 이튿날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뒤 이뤄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방송 관행상 8시 메인 뉴스 아이템으로 선정되는데 한계가 있고, 해외 언론에선 디지털 퍼스트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취재파일을 쓴 뒤 타 매체 보도 등 반향을 보고나서 방송하는 최근 ‘디지털 뉴스 콘텐츠 제작 과정’의 선순환 구조를 존중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같은 취재보도 1부문의 동아일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의 마약투약 사건 수사 및 재판 봐주기 의혹 추적’은 항간의 “정치제보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킨 ‘발로 뛴’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안의 성격을 파악하고 경위를 끈질기게 추적한 수작이었다. 취재기자가 의제를 설정하고, 깊이 생각하며 취재한 흔적이 엿보였다. 극비리에 올린 결혼식과 마약을 투약한 이와 사위가 동일인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의혹의 끈을 놓지 않고 후속 내용을 추적 보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취재보도 2부문의 JTBC ‘순위 조작? ‘음원 사재기’ 실체 추적해보니’ 기사는 오랜만에 나온 문화 부문 출품작이다. 국내 가요계에 만연한 음원 사재기 실태를 끈질기게 추적 고발해 호평을 받았다. 과거 음원 사재기 문제는 한 차례 사회 이슈가 됐던 사안이지만, JTBC 보도는 새로운 사재기 수법과 관련 증언을 밝혀내고 실제 사재기 현장을 보여주는 등 방송 보도의 장점을 살린 점이 돋보였다.
기획보도 부문의 중앙일보 ‘숨어사는 아이 2만명’은 기획의도와 취재 모두 호평을 받았다. 돈을 벌기 위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 태어난 미등록 아이들에 초점을 두고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부분을 들춰내고, 다문화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충실한 기획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쉬움이 있다면 기획이 단 2회에 그쳤고, 꼼꼼한 취재를 통해 법령 개정을 촉구하고 ‘한국 출생아들은 모두 한국 국적 주자’는 캠페인으로 이어지도록 여론을 형성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이런 부류의 기획은 감성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한 팩트를 토대로 감동과 울림이 있는 기사를 만들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지역취재보도부문의 연합뉴스 전북취재본부 ‘서해대학교 이사장 146억원 횡령 비리’는 정확한 제보를 토대로 열심히 취재한 기사다. 결정적 내용과 팩트는 모두 제보였다. 그러나 보도내용이 수사를 이끌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든 기자의 노력이 배어있는 기사였다.
같은 지역취재보도부문의 TBC ‘알코올 중독 환자 술판, 방치하는 치료 병원’은 과거 유사한 기사가 출품된 적이 있으나, 영상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방송의 장점을 잘 드러낸 수작으로 평가됐다. 병원이 수입 때문에 환자를 방치하는 현실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의미 있는 기사라는 호평을 받았다.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의 부산일보 ‘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은 지방신문이 보도해야 할 책무를 제대로 수행한 좋은 기사다. 돈을 쏟아 붓고도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줬다. 공공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기사의 미덕은 주민들의 워딩을 넣은 것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대안 제시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종합적으로 취재한 흔적이 녹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깝게 탈락한 SBS의 ‘‘지뢰도발’ 다쳤는데 한 달 넘자 “돈 내라”’는 기사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기사였다. 군 병원의 치료시설과 의료환경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상황, 군·경찰의 군병원에 대한 불신의 배경을 제대로 짚어준 작품이었다. YTN의 ‘불곰사업 러시아 헬기 엔진 폭발…잇단 도발에도 늑장대응’, JTBC의 ‘문화계 정치검열 파문’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아쉽게도 수상권에 이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