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범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 / 한국언론재단 사업팀장
어느 때라고 다를 바 없겠지만 타인의 작품을 심사한다는 일은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결정내용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번 달 최종심사는 심사위원 전원이‘기자償이제시하는 언론象과 기자상의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제44회 기자포럼에 참석, 이달의 기자상에 대한 쓴 소리를 듣고 난 직후여서 긴장 강도는 더했다.
포럼에선「2003년 중앙일보‘지금은 노조시대’」,「2004 한국경제‘HSBC 제일은행인수’」, 「2005년‘동아일보 이기준 인사검증보도’」등 논란이 되었던 수상작에 대한 원인진단과 여러 대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재심제도나 최종심사에 오른 응모작에 대한 인터넷 공개를 통해 선발 후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매달 수여하는 현행 기자상을 대폭 축소해 희소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수많은 언론상 가운데 유독 논란이 이는 것은 이달의 기자상이 갖는 권위 때문이라는 진단은 심사위원들에겐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 번 달 출품작은 8개 부분에 47건이었다. 경인일보가 응모한 2건의 기사가 최종심에 올라 2건 모두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아 수상작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지역취재보도 부분에 응모한‘어느 청각장애인의 죽음’과 지역기획 신문·통신부분에 도전한‘땅값부추기는 기획부동산’이 그것이었다. 전자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청각장애인의 생명까지 앗아간 애달픈 사연으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후자의 경우 일부 심사위원들이 취재를 위해 기획부동산회사에 취업까지 하면서 부정을 폭로한 것이 기자윤리에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이의제기가 있었지만 선정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되지 못했다.
부산일보도 경인일보에 버금가는 개가를 올렸다.‘부산항운노조 전면수사 착수 및 후속보도’로 중앙언론과 취재보도부분에서 경합했다. 경향신문의‘이헌재 경제부총리 부동산 투기의혹 추적보도’와 세계일보의‘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불·편법 기부 추적보도’와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 언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탐사보도를 선도하고 있는 세계일보의 눈부신 수상 빈도도 돋보였다. 하지만 1면에 실리지 않았다는 점이 감점요인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보도 역시 지난 달 한겨레신문의 수상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이 전장관의 낙마에 결정타를 입힌 현장취재는 유일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CBS의‘200억원 들여 설립한 최신 학교에 학생은 8명’이란 보도와 MBC의 강동석 건교부 장관 아들 채용비리 의혹보도, 동아일보의‘최영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부동산 투기보도 등도 최종심에 올랐지만 아깝게 심사위원 과반수 득표에 조금 미달돼 아쉽게 탈락했다.
기획보도부분은 매일경제의‘유통횡포, 제조업 울린다’라는 기사와 서울경제의 ‘기로에선 외환관리’등 두 경제지에서 응모한 작품이 치열한 경쟁을 버려 수상의 영예는 전문성이 조금 더 요구되는 분야를 다뤘다는 평가를 받은 서울경제에 영예가 돌아갔다. 매일경제는 지난 2월‘외국자본 심층해부’로 기사가 아깝게 선정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바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하지만 일부 심사위원들은 매일경제가 거대 유통업체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는 점은 수상여부를 떠나 높은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주장을 펼쳐 많은 심사위원들의 동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목포 MBC는 지역취재보도부분에서‘먹통 조난 신호기’로, 지역 기획방송보도 부분에선‘자연의 경고, 바다가 뒤틀린다’라는 두 응모작이 모두 본심에 올랐지만, 두 작품 모두 최종심을 통과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전문보도 사진부분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한국일보의 '열정·끈기의 1년...로봇, 악수를 청하다’라는 작품은 사진기획도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진 점이 높은 점수를 받게 했다.
수상작 7건 가운데 3건의 지역일간지 모두가 심사에 참여한 10명중 9명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얻은 영예여서 그 의미는 더했다.
경인일보 이윤희 기자
`땅값 부추기는 기획부동산' 시리즈는 어느 부동산공인중개사의 따끔한 충고에서 시작됐다.
지난 2월말 서울공항주변은 이전설로 들썩거렸다. 이미 발빠른 투자자들은 한번 이 지역을 훑고 지나간 후였지만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이전에 대한 소문은 일대 부동산을 들끓게 했다.
이러한 지역분위기를 취재하고자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았을 때였다. 취재를 위해 들른 A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전화상담으로 바쁜 때였고 통화를 마친후 다짜고짜 `지금 이곳의 땅값이 얼마나 오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땅을 쪼개 파는게 더 큰 문제다'라며 운을 뗀후 기획부동산의 심각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개발호재가 있는 곳에 기획부동산이 난립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피해가 일반 서민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경제적으로는 물론 부부가 갈라서야 할 심각한 가정적 위기까지 불러온다는 것에 대해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부업을 위해 기획부동산업계에 뛰어든 주부들, 소액으로도 부동산에 투자할수 있다는 말에 속아 발을 들여놓은 투자자들, 모두가 피해자라는게 충고의 핵심이었다.
본격적인 취재는 3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기획부동산업자들을 만난다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결국 여러 경로를 수소문하다 잠입취재라는 방식을 택하게 됐다.
잠입취재는 3월15~18일까지 4일간 이뤄졌다. 첫날 면접후 합격통보를 받아 이튿날부터 실전 업무에 들어갔다. 근무지는 기획부동산이 밀집해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역 부근 S기획부동산. 이곳은 200평 남짓한 사무실에 직원이 130여명으로 중견업체에 속했다. 대부분이 30~50대 주부들로 이뤄졌는데 5%정도만 남자직원이었다.
기본급 100만원에 개인성과에 따라 인센티브가 제공됐으며 3개월동안 일정수준의 성과(분할판매 실적)를 내지 못할 경우,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이런 부담이 직원들을 경쟁으로 내몰았고 전화마케팅은 물론 자신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나 친인척 등에까지 기획부동산으로 끌어들였다. 경쟁이 심화되며 자신의 돈을 투자해 성과를 내는 직원도 여럿있음을 알게 됐다. 같은날 입사한 한 주부는 “여기가 벌써 5번째인데 2곳에선 5개월동안 근무하고 한푼도 못받아 오히려 적자에 허덕였다”며 “친인척 등을 동원해 어렵게 계약을 성사해도 인센티브조차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허다해 어찌보면 기획부동산의 배만 불리고 고객이나 직원 모두 피해를 보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잠입취재이후 만난 10여명의 기획부동산 피해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여유로운 가정이 아니었다. 남편 몰래 모아놓은 쌈짓돈을 투자한 50대주부, 창업보다 위험부담이 적을 것으로 생각해 퇴직금을 투자한 50대 전직 회사원, 농사일로 어렵게 모은 돈을 투자한 농부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단기적으로 큰 차익을 남기려던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처럼 재테크의 한 수단으로 이를 택했을 뿐인데 그 대가치고는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한 피해자의 하소연은 다시금 생각케 하는 바가 많았다.
(3월) 기획보도 기로에 선 외환관리 서울경제
서울경제 경제부 김영기기자
일반 국민들은 외환시장을 단순히 돈의 거래로 생각한다. 환율은 기껏해야 시장 주체들간의 머니게임으로 인식된다. 한국은행의 ‘보유 외환 다변화’로 국제 금융시장에 쇼크가 일어났지만, 우리의 언론들은 대부분 각국의 통화를 둘러싼 거래의 산물로만 취급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국제금융시장은 단순히 돈을 가진 투자자들의 거래 장터가 아니다. 그 속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실체가 들어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음모’라고나 할까.
서울경제의 ‘기로에 선 외환관리’ 시리즈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다. 통화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여기에 낀 한국의 모습. 여기에는 거대한 패권주의가 숨어 있고, 그것은 군사 무기를 갖고 총구를 겨누는 것 이상의 암투가 숨어 있다. 투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외환시장은 ‘총성 없는 싸움’의 정형이었다. 경제적 게임이란 표현은 너무나 협소하다. 국가간의 통화 전쟁, 그것은 엄연한 정치적 게임이었다.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예고판이고, 여기에는 다국적 기업들의 로비에 휘감겨 있는 의회 등 정치인들의 치열한 대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투기 자본들은 어쩌면 국가간의 패권 다툼의 틈을 비집고 이익을 챙기는 아주 좁쌀만한 경제 행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시리즈를 진행하는 동안 정부 당국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덕수 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다소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외환 당국인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간에는 주도권 다툼이 여전하다. 우물안의 개구리라고나 할까. 위안화 절상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의 당국자들은 근거에 없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낙관론이 관습처럼 자리잡고 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곳곳으로부터 많은 글귀들이 들어왔다. 우리 정부의 안일함을 질책하는 글귀부터 보다 더 치열하고 깊이 있는 글을 원하는 격려의 글까지. 모두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우리 당국자들의 변화된 모습이다. 시장은 외환 정책을 책임지는 당국자들보다 뛰어나다. 우리의 당국자들에게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 금융시장에는 거대한 변화의 몸짓들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환율 1,000원을 사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통화 주권을 회복하는데 총합을 모으지 않으면 어느날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재앙의 그림자가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
(3월) 취재보도부문 이헌재부동산거래 의혹 경향신문
이헌재부동산거래 의혹
경향신문 강진구
이헌재 전부총리가 부동산투기의혹으로 물러난 지난 3월 초순 재경부의 한 간부와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경향신문이 1주일간 계속해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때마다 꼭꼭 전화를 걸어 `이제 그만하고 크게 멀리보라'고 훈수를 둬온 사람이었다. 그는 “기자로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며 안타까움을 표시한 뒤“우리국민들은 또 한명의 아까운 영웅을 잃어버렸다”고 장탄식을 했다.
이전부총리가 영웅인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재경부 조직이 받은‘이헌재쇼크'는 상상이었다. 이전부총리 퇴임 후 `미운털'이 박힌탓인지 한동안 재경부 기자실에 배달되는 스크랩에 경향신문 기사는 번번히 누락됐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실무자들까지 “이부총리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주는 신뢰는 대단한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원망하는 눈치였다. 한마디로 재경부내에서 경향팀은 경제부 기자로서 기본적인 소양이나 유연함이 부족한 `알카에다'였다. 타사출입기자들도 “공무원들도 인간인데 언론이 너무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기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기자다움'이 아닐까 싶다.
경향신문 재경팀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은 위장전입의혹 보도직후 나온 한 장의 보도해명자료였다.
`위장전입은 과거 20년 전일이고 부총리 취임 후에는 단 한 건의 부동산거래도 없었다' 재경부의 해명은 너무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자료배포직후 후배와 함께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게다가 취재를 하면 할 수록 경제사령탑으로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비정상적인 거래관행이 드러났다. 등기부등본상 16억짜리 땅을 사들인 사람은 7천만원짜리 전세아파트에 사는 트럭운전사였다. 그는 확인취재과정에서 2번씩이나 “관청에 내는 계약서는 실거래가보다 다소 낮은 금액으로 작성되는 게 관행 아니냐”며 `다운계약서'의 존재를 시인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을 포함해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여권내부의 분위기는 진상규명보다는 `나는 결백하다'는 이전부총리를 감싸기 급급했다. 우여곡절끝에 이전부총리가 사건발생 1주일만에 결단을 내렸고 이제 2달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4일 노대통령이 주재한 국정과제회의에서는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양도세에 대한 전면적인 실가 과세전환'이 발표됐다. 만약 이중계약서 작성의혹을 받고 있는 이전부총리가 경제사령탑으로 앉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방침이 발표됐다고 상상해보자. 국민을 설득시키는 힘은 특정인의 영향력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도덕성과 신뢰에서 나온다. 이헌재쇼크는 개인에게 불행이지만 우리사회가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로 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성장통이다. 아직도 `잃어버린 영웅'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우리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