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부산교도소에 갇힌 수감자들의 인권 국제신문 사회1…
(200회)부산교도소에 갇힌 수감자들의 인권/국제신문 사회1부 조미령
교도관들이 수감자를 폭행했다?
수감자가 교도관을 폭행했다는 뉴스는 봤지만 교도관이 수감자를 폭행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말썽을 부리는 수감자를 말리다 주먹이 날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어느날, 제보가 날아들었다.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부산교도소에서 공공연하게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공식적인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교도관에게 욕설을 하며 소란을 피우다 교도관의 얼굴을 들이받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은 혐의로 구치소에 이감된 한 수감자를 법률 구제하기로 했다.
변호사들은 왜 교도관을 때린 수감자를 구하기로 했을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에 접수된 진정 내용이 하나같이 '교도관들의 가혹행위'를 문제삼고 있었다. 변호사들은 단순한 '주먹 한 방'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 법률 구제하기로 한 수감자 역시 평소 교도관들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사건 당시에도 가혹행위로 인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단순 폭행이 아니라 4~5명이 수감자 1명을 두고 집단폭행한다는 진술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부산교도소측은 "해당 수감자는 전과 36범"이라며 "믿을 만한 얘기가 못된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부산교도소내 가혹행위의 진실은 무엇일까?
부산변호사회 인권위 소속 변호사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사 방향을 잡았다. 변호사들이 국가인권위와 교도소 및 구치소 입감자 면회를 통해 얻어낸 소스로 기사를 엮었다. 교도관을 밀착취재해 교도소 내 구조적인 문제와 교도관의 열악한 사정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2% 부족했다. 보도 3일째, 기대하지 못한 출소자들의 제보가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인터뷰 전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출소자들은 "진짜 우리가 봐도 너무 합니다"라며 참혹한 현실을 전했고 이들의 인터뷰를 보도한 이후 기사의 반향은 컸다. 법무부의 감찰 결과 교도관들에 의한 수감자들의 인권 침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보도는 마무리됐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교도소 내 사정에 관심을 갖고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수감자들의 얘기를 밀도있게 전한 기회가 됐다. '수감자의 인권도 인권이냐'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사회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서 기뻤다. 마지막으로 신분을 노출하면서까지 교도소내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 준 제보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창사48주년 특집4부작 “삶, 죽음, 그리고 사망이후…
(200회)창사48주년 특집4부작 “삶, 죽음, 그리고 사망이후보고서”/부산MBC 사회부 조수완
엄마의 임종 순간을 지켜보던 아들...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남편...
아들의 죽음에 정신을 놓았던 어머니... 이밖에 자신의 죽음을 카메라 앞에서
힘들게 공개했던 분들로 인해, 이 기사(작품)가 완성 될 수 있었다.
멋모르고 겁 없이 시작했던 죽음을 소재로 한, 4부작 다큐멘터리! 주위 분들은, 반신반의하며 만류를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소재를 영상으로 어떻게 구체화 시킬 것이냐” 와 “섭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였다.
이런 걱정은 첫 촬영부터 현실로 다가왔다. 죽음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려한다. 여기에 임종 순간까지 촬영하고, 당사자의 마지막 느낌과 생각을 인터뷰하려고 한다고 하니, 대부분이 고개를 흔든다. 1명을 섭외하기위해 10여명을 설득해야 했고, 제작 의도와 방향을 그때마다 삼고초려 하듯 설명해야 했다.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상여 행렬과 상갓집 그리고 입관 모습 등, 하나하나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 할 만큼, 어려운 섭외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또 하나! 해외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촬영에 성공한 화장터의 모습, 운 좋게 접하게 된, 인도네시아에서의 염하는 모습과 상여행렬! 이런 것들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모두가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만약 이런 모습들을 영상에 담지 못했다면, 작품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로서도 전혀 접해보지 못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임종의 순간, 한 줌의 연기로 사라져가는 전 과정을 눈으로 목격했다. 수많은 죽음의 현장!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죽음은 결국 삶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그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내가 기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들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 지금도 그런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고발*정보기사, 탐사보도 등 모두 좋은 기사이지만,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음의 이야기 또한 의미 있는 기사며, 언젠간 우리가 추구해야할 기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기사(작품)였지만, 이달의 기자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리며, 무엇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촬영을 허락해 주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출연자들과 누군지 알 수 없는 주검의 주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권력’ 포털 대해부 서울신문 기획탐사부 이창구
(200회)‘E-권력’ 포털 대해부/서울신문 기획탐사부 이창구
지난해 11월 어느날.대학 후배가 우메다 모치오가 쓴 ‘웹 진화론’이라는 책을 건냈다.체질적으로 인터넷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온 터라 탐탁치 않았으나,후배의 성의가 가상해 출퇴근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고,오프의 틀에 갇혔던 내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잇따라 3번을 읽고 난 뒤 문뜩 떠오른 질문은 “한국의 검색엔진들은 과연 ‘웹 2.0’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가.”였다.“혹시 내가 포털이라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의 말단 종업원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12월부터 포털을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인 권력을 파헤치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다른 아이템에 밀리고 밀리다 2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포털들이 어떻게 언론사의 기사를 재가공해 누리꾼을 유혹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포털 ‘뉴스박스’를 캡쳐해 원래 기사와 비교하는 단순무식한 작업을 보름간 진행했다.
포털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는 요청에 이현세와 같은 유명 만화가들이 앞다퉈 좌담회를 자청했다.유력 대선후보 주자들은 포털에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포털에 납품하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중소 컨텐츠 업체들의 하소연도 물밀듯이 몰려 왔다.
아쉬운 점도 많다.포털의 횡포를 고발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우리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게 된 인터넷이 과연 바른 방향으로 진화되는냐를 확인하고 싶었다.그런데 요즘 나오는 정부 대책이라는 게 대부분 ‘포털 때려잡기’식이다.여기저기서 포털을 욕하니까 ‘면피성 대책’을 남발하는 것은 아닐까?포털이 재벌의 구습을 빼닮을 때까지 방치하거나 혹은 후원한 정부였다.설익고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규제보다 인터넷 정신이 무엇인지,우리 포털은 그 정신과 얼마나 다르게 퇴화됐는지를 공부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보도 연합뉴스 사회…
(200회)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보도/연합뉴스 사회부 사건팀 공병설
4월 중순 좀처럼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아들의 복수를 하려고 경호원과 조폭 등 수십 명을 데리고 북창동 술집에 나타나 술집 주인과 종업원을 집단 폭행했고 경찰도 이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으나 확인이 쉽지 않았다. 취재 사실이 알려지면 관련자들의 입을 막아 버릴 까봐 한화나 경찰에 앞서 피해자들을 찾아 나섰다.
어렵사리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해 접촉을 시도했으나 취재에 거의 응하질 않았다. 며칠 간 전화와 대면 취재를 시도했는데 처음엔 피해사실을 부정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말을 바꾸거나 아예 입을 닫았다. 결국 피해자의 지인과 북창동 취재를 통해 소문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경찰 취재에 들어갔다. 수사 중이란 사실을 줄곧 부인하던 경찰은 그동안 취재한 것을 풀어놓자 그제서야 그런 사건이 있다느 것을 시인했다. 확인 결과 경찰은 광역수사대에서 남대문서로 넘겨 사건을 덮으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피해자 연락이 안돼 진술 확보도 힘들다. 내사종결해야 할 것 같다. 현재로선 완전히 뜬소문 수준이어서 기사 쓰면 위험할 거다”라고까지 했다. 한화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진실이 묻혀 버리지 않게 하려면 기사 송고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실을 부인하고 경찰도 수사 의지를 안 보이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했다간 진실이 고스란히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4월24일 연합뉴스의 첫 보도가 나가자 모든 언론 매체가 뒤따라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연일 속보가 이어졌고 날이 갈수록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조폭 동원, 한화의 로비 시도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졌고 결국 서울경찰청장이 옷을 벗고 경찰청장의 사퇴요구가 잇따르는 등 늑장수사의 후폭풍이 경찰에 휘몰아쳤다.
돌아보면 처음에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설마, 사실이 아니겠지'란 판단에 확인에 나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 자체가 없었을 테고 한달 반 동안 팔짱을 끼고 있던 경찰도 본격 수사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가 나간 뒤 경찰 고위간부가 연합뉴스에 전화를 걸어와 해법을 묻길래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조직 차원의 위기에 몰릴 것임을 경고하자 “2-3일 안에 끝낼 각오로 수사에 임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어 자칫 흥밋거리로 접근하기 쉽지만 우리 사회 최대 권력의 하나인 재벌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 얼마나 무자비하게 대응하는지 보여준 계기가 됐다. 부정(父情)이 무엇인지, 재벌의 역할은 무엇인지...이런 생각에 김 회장의 구속을 지켜보는 연합뉴스 사건팀원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반 FTA” 분신 한겨레 사진부 이종근
(200회)“반 FTA” 분신/한겨레 사진부 이종근
상이란 받으면 좋은 것이 틀림없다. 이 분 저 분한테 들리는 축하소리, 그저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결과물이 좋다고 모든 과정이 좋을 리 없겠지만, 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자협회에서 시상하는 이달의 기자상에 이번 경우를 포함해 두 번째 받는다. 지난 2004년 고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살해되었던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동생의 모습을 취재 한국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번 경우는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한 노동자의 분신을 취재해 수상을 하는 영광을 얻었다.
두 취재물의 공통점을 보면 내겐 꽤 곤혹스럽다. 먼 이국땅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갔다 예기치 못한 자신의 운명을 대신 한탄하며 울부짖는 동생의 모습과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자신이 몸뚱어리를 던지며 자유무역협정을 막으려 했던 한 노동자의 몸짓. 울부짖는 동생과 불구덩이 속에 있는 노동자와 나와 현실적인 거리감은 초점거리 0.5미터에서 5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카메라 뷰파인더로 느낀 현실적인 거리는 아득했다. 사진 속에 나온 두 분은 이제 이 세상 분이 아니다. 두 번의 경우가 모두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 셈이다.
그날 우연히 나간 취재현장, 교대로 나간 현장이라 오전부터 현장에 없어서 긴장감이 떨어져 있었다. 협상장인 하얏트호텔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돌발적으로 벌어진 상황이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모퉁이를 돌아 뛰어 가보니 그이의 온몸은 벌써 화염으로 뒤 덮여 있었다. 마침 경찰들이 뛰어가 간이 스프레이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처음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다시 대형 소화기를 가지고 와 급히 불을 껐지만, 너무 늦었다. 그사이 불은 계속해서 그분의 몸을 타고 들었고, 머릿속 깊은 곳까지 화기가 미쳐겠지만, 그 순간에도 ‘한미 에프티에이 중지’를 외쳤다. 너무나 무서웠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것도 그렇지만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구나.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고, 아니면 뛰어가 불을 끄는 것이던지 119에 전화하던지.......
‘케빈 카터’. 대개는 그 이름보다 1994년의 퓰리처 수상작인 「수단의 굶주린 소녀」의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독수리 앞에 엎드려 있는 그 사진.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카터다.
이 사진이 발표되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덕분에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카터가 상을 수상하자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먼저 소녀를 도와야 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한 부담이 컸을까? 무거운 역사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는지 그는 1994년 7월, 친구와 가족 앞으로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러나 최근에 나온 한 책에 따르면 “사진을 찍었던 순간의 상황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현장에 있었던 동료 조아오의 진술에 따르면 사진을 찍었던 순간에 아이의 엄마가 옆에 있었으며, 독수리 역시 우연하고 찰나적인 등장이었던 것이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이런 황당한 상황 속 사진 한 장이 재능 있는 사진작가를 자살로 몰고 간 것이다. ”
정말 극적인 사진과 그 전도가 양양한 사진기자의 운명 치곤 너무 허탈할 뿐이다.
그 분이 다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병실도 찾아갔었다. 그렇지만 이제 바람은 바람일 뿐, 현실은 달랐다. 적어도 내 기도와 달리 4월 15일 보름 만에 54년의 한 많은 세상을 사시다 떠나셨다. 빈소에서 본 그분의 영정사진 속 모습은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계셨다. 자기의 몸을 불사른 그런 모습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삼촌이나 아저씨같은 푸근한 웃음 띤 보통사람의 모습이었다. 사진 속의 그 분은 그렇게 웃고 있지만 그런 사진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무거울 뿐이었다.
이제 그분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마음의 빚을 우리는 풀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며, 우리에게 과연 국익은 어떤 것이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
나는 그 분을 확신범으로 생각한다. 물이나 불에 데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고통을. 그 당시 뿐만 아니라 그 뒤에 겪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확신이 있지 않고는 그런일을 하기란 불가능할 듯 보인다. 그 확신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 분에게 만큼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했을 것이다. 삶, 가족, 친구들만큼 중요한 것은 아마 자신일 것이다. 온몸이 화마가 뒤 덮여 있는 가운데도 외쳤던 그 소리는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이 왜 그렇게 외쳐야 했던 것도 마찬가지리라. 그런 현장을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내 일이다. 그 일이 지금처럼 슬픈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 오늘도 내일도 꿋꿋이 현장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사진기자의 숙명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생각했다. 저번 한국기자상을 타고 수상 소감을 밝힐 때 다음 번에는 독자들과 사람들에게 희망이 샘솟고, 사진을 보면 환한 함빡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그런 취재를 해 결과물을 신문에 싣고 싶고, 그런 사진으로 상을 받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아마 평생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노력은 해야겠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80조 보험시장 유혹의 덫 KBS 시사보도팀 박종훈
(200회)80조 보험시장 유혹의 덫/KBS 시사보도팀 박종훈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보험 민원이 많은 것일까? 우리 보험 시장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과연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취재팀은 이 같은 단순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보험 시장을 대상으로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보험은 결국 불안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드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다. 특히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사기죄로 구속시키겠다는 협박을 들었던 보험 가입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보험사가 아무리 선량한 가입자나 보험사고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도 보험사가 책임을 진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거꾸로 보험사가 고객을 상대로 사기를 쳐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 보험 시장은 보험사에게만 너무나도 유리하게만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 보험시장은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된 것일까? 그 책임은 물론 1차적으로 보험사에게 있다. 보험사가 자신의 고객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처럼 고객들이 벼랑 끝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금융감독원의 감독체계에 있었다. 금융감독원 소비자 보호 센터의 창구 직원은 대부분 보험사 직원이다. 이 때문에 고객들이 금융감독원 소비자 보호 센터로 보험사의 문제를 고발할 경우 그 내용은 즉각 각 보험사로 전달된다. 또 취재 결과 금감원으로 파견된 이들 보험사 직원들은 보험사 입장에서 고객을 설득해 보험금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보험사기조사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의 사기는 전혀 조사하지 않고 고객의 사기만을 보험사 대신 조사해 준다. 더구나 금융감독원의 보험사기 조사실 직원의 절반이 보험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다. 결국 보험사기조사가 가입자보다는 보험사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