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황치성(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제217회 이달의 기자상 후보에는 총 35편의 기사가 출품됐으나 11편만 예선을 통과했다.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대기업 총수의 개인자금 담당 직원이 비자금을 사채로 운용하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청부살인까지 계획한 전모를 파헤친 동아일보(조수진, 김기현 기자)의 ‘200억대 총수 돈 관리 대기업 직원, 몰래 사채로 운용’ 기사가 선정됐다. 다른 매체의 보도와 달리, 후속보도에서도 관련 대기업을 익명 처리한 데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과 그로인한 문제점을 최초 보도한 특종이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동아일보 기사와 경합했던 CBS의 ‘사상 최대 유출…GS칼텍스 1천만명 개인정보 유출’은 사회적 반향이 큰 기사였지만 ‘제보자 확인’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는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의 ‘2008 불임의 사회학’과 경향신문 특별취재팀(배명재 기자 외 7명)의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시대’가 경합을을 벌였으나 경향신문 작품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우리가 늘상 접하고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제임에도 예외적으로 방치돼 있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삶과 민주주의 위기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 주효했다. 8명의 기자를 투입, 서울은 물론 전국에 걸친 입체적 취재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의 실상을 잘 보여줬고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점도 후한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KBS의 ‘MB정부 부동산정책 점검-건설족 전성시대 열리나’와 ‘시사기획 쌈-지역신문, 그들만의 생존방식’, 그리고 CBS의 ‘세계의 에너지대전, 한국의 선택은’ 등 세 편이 본선에 올랐으나 수상작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KBS 시사기획팀에서 출품한 기사는 언론으로선 부담스러운 지역신문의 문제를 파헤치고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한 점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총체적 접근이 아쉬웠다는 평가와 함께 1표 차로 탈락했다.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총 11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경쟁이 치열했으나 대규모 이권사업을 둘러싼 기업과 지자체 간의 유착 의혹과 사업자 선정 절차의 문제점을 파헤친 전주방송 특별취재팀(성지호, 이상윤, 이승환, 권대성, 하원호 기자)의 ‘전주시 유수율 제고사업 입찰의혹’ 기사가 최종 선정되었다. 지자체의 사업자 선정 절차의 투명성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한 사건을 놓고 3개월 동안 40편 이상 끈질기게 보도한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지역기획 신문통신 부문에는 농산물 개방 확대와 함께 식량자급화 문제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농작물 재배와 유통현황, 그리고 그에 대한 정책 현실 등을 집중 취재한 무등일보(김종석, 유지호, 강동준, 양기생, 윤재영 기자)의 ‘막오른 식량전쟁, 위기의 농업 대안 찾자’ 가 선정되었다. 전통적 농도인 전남지역의 식량자원 문제에서 출발한 이 기사는 전국적인 현장 취재를 통해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국가적인 이슈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8편의 작품이 경합을 벌인 지역기획 방송부문에서는 제주MBC(문홍종, 송원일 기자)의 ‘창사특집 HD다큐멘터리 “어메니티, 미래를 설계하라’ 1편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장밋빛 개발의 청사진 아래 자칫 간과되기 쉬운 과잉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도시와 농촌이 고유 특성을 살려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어메니티’ 개념으로 구체화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치밀한 기획 아래 6개월 간에 걸친 국내외 현장취재와 사례분석을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활용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국단위 기획방송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달에는 기자상 수상작이 5편으로 올 들어 가장 적었지만 수상자 수는 22명으로 여느 때보다 많아 합심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비리를 고발한 작품, 그늘진 곳을 들춰낸 작품, 미래지향적 대안을 제시하는 작품 등 수상작들의 면면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이었다.
곧 연말이 다가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 크고작은 갈등이슈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잔뜩 찌프러져있는 서민들의 마음을 따스함으로 녹여내는 기사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황치성(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수상 소감>
송원일(제주MBC)
‘어메니티’가 뭡니까? 취재 과정 내내 들었던 질문이다. 딱 맞는 우리말이 없어 대답하는데 애를 먹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작 기간 내내 ‘어메니티’를 어떻게 우리말로 표현할지 고민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2부작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어떤 공간이 갖는 종합적인 쾌적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어메니티’라는 낯선 개념을 이용해 농촌과 도시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모색하고자 기획됐다.
제1부는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찾기에 나선다. 농촌 어메니티는 유럽에서 농업이 위기를 맞자 새로운 대안으로 ‘농업’ 대신 ‘농촌’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농업시장이 개방되면서 농업생산성을 늘려도 농가 소득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자, 공간 개념을 도입한 ‘어메니티’를 끌어와 농촌의 종합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농촌의 경관과 전통, 주민들의 삶의 모습, 그동안 버려졌던 돌담 같은 모든 것들이 농촌다움을 살리고 농촌관광과 연계하면서 지속가능한 농촌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제2부는 지역의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우리나라 지역 도시들은 서울처럼 고층 건물과 넓은 도로로 대표되는 붕어빵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간, 편리하고 친환경적이며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이른바 도시 어메니티의 4가지 요소를 담아내는 상징적인 도시 공간을 창출하지 못하면 도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요즘 지역언론의 현실은 심각하다. 중요한 광고주이자 협찬처인 자치단체와 기업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하고 개발지상주의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준 제주MBC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쉽지는 않겠지만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을 지키기 위한 지역방송의 힘찬 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막오른 식량전쟁, 위기의 농업 대안 찾자 무등일보
"식량자급, 우리 농산물은 지켜내야"
먼저 6개월 동안 귀찮고 힘든 일을 묵묵히 해 낸 후배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여름철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고 논과 밭은 물론 일면식도 없는 강원도 옥수수시험장, 경기도 참깨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대안찾기에 발품을 판 그들이다.
기자상은 차지하고라도 '막오른 식량전쟁, 위기의 농업 대안을 찾자'는 농도 전남을 독자로 한 언론으로서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었다.
FTA와 무한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 농업은 설땅을 잃고 있다.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우리의 곡물자급률도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농업 자체를 백안시 하고 있다.
그러다 연초 고유가와 국제 메이저 곡물들의 농간 등으로 곡물가 급등하면서 농업을 되돌아 보게 했다. 식량 자국 보호주의는 언제든지 '곡물이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이다.
'막오른 식량전쟁, 위기의 농업 대안찾자'란 기획 시리즈는 수입개방 여파 등으로 농업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자급의 중요성과 함께 우리농산물을 지켜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시작됐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이 고작 27%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실정에서 전 세계 식량대국들이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되고 수출을 규제하는 등 식량 무기화로 위기가 올 경우 그 타격은 '무한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여 동안 3부로 나눠 서민경제는 물론 설땅잃은 신토불이, 현주소와 대안 등을 3부로 눠 식량생산의 주체인 전남과 강원 등을 돌며 주식인 쌀과 옥수수, 콩, 보리, 깨 등 주요작물들에 대한 정책 현주소를 진단했다.
본보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보니 강원도옥수수시험장을 비롯해 인천의 참기름 가공공장, 주요 작목별 관계자와 농민 등 그동안 본보 취재에 적극 협조해주신분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취재중 놀란 사실은 당국자들이 곡물자급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작목을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쌀 이외에는 품목은 수입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국회 또한 농업을 외면하고 있다. 각종 식량관련 법률들이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면서 해외사례분석 등 미진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보완취재를 통해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에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일면식도 없는 취재진에게 도움을 준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김종석기자
전주시 유수율 제고사업 입찰의혹 집중 취재 전주방…
"전주시가 1,350억 원이나 들어가는 사업의 적격업체를 바꾼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회사 내부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전주시 상수도 유수율 제고 사업 입찰비리 의혹에 대한 취재는 이상윤 기자의 첫 보도로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심지어 '전주방송이 왜 그래'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예상을 넘어선 반응에 '진짜 뭔가 있다'라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기자 인력이 빠듯해 쉽지 않았지만 5명의 기자로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그러나 취재는 순탄치 않았다.
전주시 관계자들은 전주방송 기자라면 무조건적으로 취재를 거부했고 사법기관은 시늉만 낼 뿐 수사에는 소극적이었다.
또 지역 언론들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전주시와 전라북도의 갈등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전주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와 함께 전례가 없는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해 전주방송을 골탕먹이려는 의도까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입찰 비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전주방송의 외로운 취재는 계속됐고 평가위원회의 속기록 전문과 녹취록을 입수하면서 취재는 속도를 더해갔다.
이후 석달 동안 객관적 자료와 근거를 앞세운 40여차례의 보도가 이어졌고 전주시는 잘못을 인정해 사과와 함께 언론중재 요청도 스스로 취하했다.
당초 목표한 입찰 번복 과정의 진실과 대가 제공 여부를 밝히지 못했지만 무원칙하게 이뤄져온 지역의 관급공사 입찰에 경종을 울리는 일대 사건이 됐다.
각종 어려운 취재환경과 주변의 질시, 그리고 결과에 대한 압박감을 극복해가며 취재에 나선 특별취재팀 기자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누구보다 낮에는 발로 뛰고 밤에는 정보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목운동을 열심히 한 이상윤 기자의 취재 열의에 박수를 보낸다.
특별취재팀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을 덜어주고 격려해 준 동료 기자들도 여섯번째 특별취재팀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전주방송 특별취재팀)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시대 경…
이달의 기자상 수상 후기
지난 4월초 노동담당 기자는 '정규직 없는 공장'이라는 단발성 아이템을 발제했다. 이 소박한 아이템은 그러나 조호연 당시 사회에디터(현 기획탐사에디터)에 의해 비정규직 문제 전반을 다루는 기획으로 범위가 대폭 확장됐다. 조 에디터는 담당 기자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이 가능한지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된 비정규직 관련 기사를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사들은 대략 네 가지 각도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했다. 먼저 통계수치를 인용해 비정규직의 양적 팽창을 다뤘다. 또 투쟁하는 사업장의 사례를 통해 비정규직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보도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비정규직법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짚었다. 끝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은 무엇인지 검토했다.
이 기사들로 현실을 모자이크해보니 곳곳에 공백이 보였다. 이를테면 비정규직이 850만을 넘어섰다는 통계수치는 비정규직화가 우리사회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투쟁하는 사업장의 사례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비정규직 문제를 특수한 사업장 혹은 계층의 문제로 제한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간극을 해소하려면 비정규직이 일반적으로 처한 삶의 조건을 먼저 그려낸 바탕 위에서 비정규직 각자의 처지에 따라 반응이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법·제도·정치·운동적 요인과 어떻게 맞물려있는지 분석돼야 현실에 대한 입체적 진단이 가능해진다.
비정규직 집중기획은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4월 중순, 국장단은 비정규직 기획을 2008년 대형기획물로 갖고 가기로 결정했다.
취재는 기획안 마련을 위한 사전취재와 기사 작성을 위한 본 취재로 나뉘었다. 사전취재 단계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각종 자료 수집과 전문가들 인터뷰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본 취재는 기획 의도에 맞는 사례를 발굴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예상대로 취재는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쉽게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얘기가 기사화될 경우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컸다. 사례 발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공·사적으로 알고 있는 지인들을 직접 취재하거나 그들에게 소개를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사람에게 또 소개를 청하는 '다단계형' 취재가 기본이었다.
이번 기획의 취지는 "비정규직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당초 의도대로 비정규직 문제가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나와 형제와 이웃의 문제라는 것,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0억대 총수 돈 관리 대기업 직원, 몰래 사채로 운용…
8월 초였다. 10여년 전 사건기자 때 만난 한 지인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경찰에서 대기업과 조직폭력이 연계된 사건을 수사 하는가 보더라구.”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툭 내뱉은 것이었지만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별 것 아닌 실랑이가 재벌 총수의 보복 폭행일 수도 있는 것이 사건 기사의 특성이 아닌가.
그 뒤부터 아주 가끔 사건기자 시절 옛 취재원을 접촉할 때면 “조직폭력과 연계된 대기업 수사는 어떻게 되가나요?”라고 묻곤 했다. 그냥 넘어가자니 찜찜했고, 사건팀에 토스를 하자니 얼개는 알아야 했다.
하지만 진척은 쉽지 않았다. 정치부 소속 외교부 출입기자가 사건기자 시절 지인들을 만날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고, 만난다 하더라도 질문의 수준이 ‘서울의 김서방 찾기’식을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잊을 만 하던 9월 초. 사건기자 때 만났던 한 취재원은 “한 대기업 총수가 측근에게 돈을 맡겼는데, 이게 조직폭력과 연관이 됐다네”라고 했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진일보 된 바로 그 내용이 아닌가.
추석연휴를 앞두고 안부인사차 접촉한 한 정치권 인사는 “요즘 C기업 이모 회장한테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혹시 들어봤어?”라고 했다. 기업체 이름을 모르던 내게는 가슴이 쿵쿵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9월 20일. 토요일 아침 8시 경찰에 있는 한 지인의 목소리는 흥분돼 있었다. “얼마 전 C기업에 대해 물어본 것 있지? 야, 정말 그런 사건이 있더라. 회장 자금을 관리하던 직원이 사채로 자금을 운용하다 떼이게 되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살해 청부를 하려 했다나봐. 서울경찰청에서 한데.”
9월 23일 출입처인 외교부 근처인 서울경찰청에 커피를 마시러 간 것을 끝으로 그 간의 상황을 사회부 사건팀장인 김기현 시경캡에게 토스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혹시 엠바고가 걸리지는 않았나요?” 오지랖 넓은 선배를 타박할 법도 하건만 김 캡은 C기업 회장의 측근이 관리하던 자금의 규모 등 세부적인 사안을 꼼꼼이 점검하고 확인해서 이를 9월 24일자에 단독기사로 작성해 실었다.
기자 생활 만 12년 중 3분의 1인 꼬박 만 4년 간 사건기자였다. 출장가방을 준비해놓고 살인, 방화, 무장공비 침투, 수해, 여객기 추락사고 등 사건사고를 쫓아다녔다. 길거리나 ‘뻗치기’ 대상자의 집 앞에서 신문지를 펴놓고 자장면을 시켜먹고, 경찰서 숙직실에서 출퇴근을 했다. 고단했지만 그 때 그 시절은 지금도 값진 기자로서의 내 삶의 밑천이다.
다시 한 번 선배의 토스를 멋진 단독기사로 승화시켜준 김기현 시경캡에게 감사드린다. '막내기자'격인 사건기자들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동아일보 정치부 조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