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여순사건 60년 특별기획, ‘잃어버린 기억’ KBS…
<여순사건 60년 특별기획 ‘잃어버린 기억’취재후기> KBS 지창환
우선은 ‘사건 60년’이라는 묘한 시기적 상징성이 기자를 압박했다. 거기에 여순사건은 대다수 언론매체의 관심 밖이라는 사실이 또 다른 책임감을 불러 일으켰다. 해가 거듭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6.10이나 5.18은 물론 제주 4.3까지도 정부가 나서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차원의 사과나 명예회복이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야 마는 역사의 준엄함’을 통렬히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역사의 해석에는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과 도시가 갖고 있는 모종의 정치적인 힘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건이 발생한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기자를 더욱 초조하게 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언론의 기획보도나 학계의 연구논문은 대부분 사건이 일어난 48년 10월 19일부터 계엄군이 14연대 반란군이나 봉기 가담자들로부터 여수와 순천을 탈환한 27일까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사건의 전개과정과 좌우익의 살상 및 잔혹성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군.경토벌대의 민간인 학살은 주목하지 않았다. 기자는 여순사건 발발기에 그치지 않고 10월 28일부터 이듬해 겨울, 더 나아가 50년 6.25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순사건의 전모를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번 보도의 백미는 단연 진압군들이 민간인들을 즉결처분했고 그것이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당시 빨치산 토벌에 참여했던 진압군 중대장은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이 남발되고 있었고 상부에 이의 남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 노병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도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가차원의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당시 진압군 출신 인사의 잇따른 인터뷰 거절에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취재팀에게는 지리한 장마끝에 나타난 햇살과도 같은 증언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유족들은 물론 당시 토벌대로 함께 참여했던 경찰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잇따라 확인되면서 오랜 세월 무감각했던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다큐에서는 또 많은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정리해도 좋겠다고 할 만큼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발굴됐다. 당시 반란에 합세한 뒤 죽음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학생을 찾아가 학생들이 대규모로 14연대 병사들을 환영하거나 합세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당시 학적부 기록 등을 분석해 학교별 학생들의 가담 실태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또 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하며 문단에서 일약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뇌졸중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한 소설가 김승옥씨를 단독 취재해 김씨의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했고, 여순사건 때 사망했다는 사실을 그의 육성과 필담을 통해 확인하고, 아울러 그의 초기 소설을 집중 분석해 이념 갈등과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된 지식인의 절망과 고뇌를 카메라에 담은 것도 매우 큰 수확이었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무고하게 숨진 수만의 조선인 학살’ 사실을 다큐에 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고한’, 그리고 ‘의도된’ 학살을 여순사건 때 민간인 학살과 비교하려는 것이었는데, 취재는 했지만 작품의 일관된 흐름을 위한다는 핑계로 막판에 아쉽게 빠졌다. 엄연한 ‘일본정부의 조선인 학살’ 사실을 숨겨온 일본 정부와 이를 모른 척하는 우리 정부에 분노하고,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한국의 주요 언론을 비판해온 재일 한인역사자료관 강덕상 교수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언론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그리고 수개월동안 그들의 육성과 영상을 채록했다. 그것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몇날 며칠 날을 새우는 편집과 거듭된 재편집 작업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자의 사명감과 작가정신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발품도 발품이지만 관련된 연구논문과 수십여 권의 단행본 독파, 그리고 김승옥의 소설전집까지 통째로 사들여 날을 새운 열정은 이미 책보다는 마이크에 익숙한 방송기자에겐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랬기에 방송이 나간 뒤 전국에서 “60분간 TV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눈물이 북받쳤다.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고생 많았다”는 유족들과 시청자들의 격려가 잇따랐고 당시 가해자들도 역사적인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다큐가 고등학교와 대학의 역사수업에 영상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는 ‘2008년 10대 인권보도상’을 수상하는 행운도 안았다.
이번보도는 묻혀버릴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특종이 목적이 아니었고 활자보다는 영상이 더 어필하는 시대에 여순사건에 대한 영상기록을 정리해보자는 기획의도가 강했던 만큼 각종 증언채록과 해방전후의 시대공간을 재현한 다양한 영상기록이 제대로 보관되고 활용되길 기대한다. 아무쪼록 이번 보도가 앞으로 ‘여순사건의 진실찾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취재를 함께 해 준 김종윤 선배와 유지향 기자, 그리고 이번 보도를 위해 사상 최악의 혹서를 마다 않고 묵묵히 자리를 메워준 순천방송국 선후배 동료기자와 끝까지 마음으로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끝)
솔깃한 유혹 ‘땡처리아파트’ 부산MBC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솔깃한 유혹 ‘땡처리 아파트’
-부산문화방송 보도제작팀 박상규기자
취재의 단초는 지난 5월 걸려온 취재원의 전화 한 통이었다.
“최근 부산 구서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경매됐는데, 건설사가 분양가 이하로 특정업자에 판매했던 속칭 땡처리 아파트다. 은행들은 사기대출을 당했고, 세입자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
부동산 경기 하락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지만 특히 지방은 그 사정이 심각했다. 부산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지역건설업체는 물론 1군업체들의 고급 브랜드 아파트까지 20-30%까지 ‘땡처리’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땡처리 아파트가 사기범죄에 이용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선 취재진은 해당 아파트의 경매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등기부등본 열람 작업에 착수했다. 경매물량 대부분이 비슷한 시기,특정 은행을 통해 시세보다 높게 평가돼
담보대출이 이뤄졌고, 세입자들 역시 비슷한 시기, 특정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입주한 사실을 확인했다.
취재진은 구서동의 아파트 전체(290가구)로 취재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문제의 땡처리 업자들이 미분양 아파트를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진 연산동과 명륜동, 거제동, 광안동 등 다른 아파트에서 피해사례가 없는지 확인에 나섰다.
문제는 아무 대책 없이 관련내용이 방송될 경우 범죄를 주도한 이들이 모두 잠적하고, 억울한 피해자들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고민 끝에 부산경찰청에 관련내용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아파트 실소유주와 은행대출 금액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등기부등본 열람이 필수였다. 아파트 천500가구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열람하며 시가에 비해 대출금액이 많거나 이와 비슷한 시기에 명의 이전된 아파트를 확인하고 경매와 공매정보를 일일이 확인했다. 또 세입자들과 소재가 확인되는 명의자들을 확보해 설득하고 인터뷰 하는데 5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취재와 경찰의 수사를 통해 건설사로부터 할인된 가격에 아파트를 넘겨받은 업자들이 조직적으로 사기대출을 받고, 아파트를 임대한 뒤 보증금 수억원씩을 챙겨 잠적한 사실이 확인됐다. 확인된 것만, 지난 2년간 부산지역 땡처리아파트 4개단지에서 400여건의 불법대출이 이뤄졌고 300여명이 전세금 사기피해를 당했다. 부산경찰청도 땡처리 조직의 6명을 구속하고 관련자 60명을 입건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건의 외양은 복잡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건설사와 은행 그리고 명의대여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건이었다.부동산 경기침체라는 조건하에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가 이런 사기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끝으로 짧지 않은 기간 취재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주는 이희길 보도제작팀장님과 생생한 영상을 위해 휴일과 야간을 마다 앉고 취재에 임한 입사동기이자 고등학교 동기 박태규 카메라기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혈세지원 하이브리드카, 중고차시장 매물로 직행 …
<지역취재보도부문>
'혈세지원 하이브리드카, 중고차시장 매물로 직행'
경인일보 사회부 최해민기자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관심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고단한 사회부 기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일 것이다.
지난10월 중순. 우연히 중고차 매매시장 근처를 지나다 매물로 진열돼 있던 하이브리드카 한대를 발견하고는 하루 종일 그 차만 생각하게 됐다. '관공서에 주로 공급되던 차인데... 왜 거기 있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여러 가지 취재 아이템을 떠올리게 됐다.
그날 마감을 끝내놓고 인터넷으로 중고차 시장을 둘러보다 수 대의 하이브리드카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것과 대부분 가격대가 2천만원 정도란 걸 알게 됐다. 중고차 딜러의 소갯글에서 '중고차는 아무나 구입이 가능하다'는 말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거다'싶었다.
먼저 환경부의 하이브리드카 보급 사업을 알아봤다. 차량 가격은 2천400만원이고, 정부는 이들 구매기관에 1천400만원을 국비로 지원하고 있었다.
이 차량을 2천만원 가까이 중고차 매물로 내놓은 기관에서는 국비 보조금과 자부담 1천만원으로 차량을 구입한 뒤 중고차로 되팔아 1천만원 가까운 매매차익을 챙기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쌀 직불금 파문으로 혈세누수에 대해 국민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차량을 보유할 수 있는 공공기관에선 말 그대로 '하이브리드카 재테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량이 어디서 얼마나 흘러나왔는지 추적을 시작했다. 평소 알고지내던 중고차 매매상과 정보기관, 수사기관 등 인맥을 총동원해 경기도와 서울, 수도권 내 매매상들을 모두 뒤진 결과 7대의 차량이 매물로 나와있고, 이미 7대의 차량의 소유권이 이전됐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초 보도 직후 환경부에서는 곧바로 본보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였다'며 앞뒤 가릴 것도 없이 파문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관련 사업의 미흡했던 지침은 수정돼 하이브리드카 전매가 3년간 금지됐고, 기 매매자들에겐 보조금이 환수처리됐다.
1주일 내도록 하이브리드카 파문이 1면을 장식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부 기자로서 지역언론의 가능성과 한계점을 깨닫게 됐다. 먼저, 지역사회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인맥을 동원했을 때의 그 취재능력이 가능성이었고, 취재원이 중앙정부기관일 경우 그 취재영역이 한계점이었다. 환경부에서는 '지역언론은 상대도 안한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올바른 예산집행을 위한 언론의 견제 역할에 대해 중앙정부의 대응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취재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배상록 사회부장과 항상 기자로서 갈 길을 제시해 주시는 왕정식 선배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특히 이번 상은 최근 겪었던 개인적인 갈등의 끝에 좌절하지 않고 분발했던 결과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특별기획 ‘기후변화 조용한 재앙’ 국민일보
‘기후변화, 조용한 재앙’ 시리즈는 3월 초에 시작됐다. 매주 한 면씩 8개월간 지속됐다. 임항 환경전문기자가 머리가 되고, 탐사기획팀이 수족이 돼서 전담팀을 만들었다.
우리는 먼저 한반도의 기후변화 상황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기후변화는 이미 익숙한 용어였지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실감되지 않는 용어였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지금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수면상승으로 잠식돼가는 동해안, 아열대성 질병이 확산되고 있는 휴전선 인근을 밟아 나갔고, 쌀 과일 등 농산물과 해산물, 그리고 꽃과 나무의 식생 변화를 관찰했다. 위기는 분명해 보였다. 한반도 생태계는 식은 땀을 흘리며 신음하는 중이었다.
그 신음 소리를 우리가 들었던가? 아마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생물학에서 경제학까지, 쌀에서 빌딩까지, 개인의 생활습관에서 국제관계까지 포괄하는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어 나가면서 간신히 글을 뽑아내던 지난 8개월을 설명할 수 없다.
한숨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면서 기자의 전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문제들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기후변화가 그렇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렇다. 지난 여름의 광우병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파악되지 않고, 좀처럼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전문성으로 무장하지 않은 기사는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거나, 해결에 기여하지 못 하는 얘기가 되기 쉽다. 매번 기사를 내놓을 때마다 표적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헛방만 날리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를 떨치기 어려웠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현장을 지키며 환경보도의 전문성을 확보해온 임항 선배가 없었다면 우리 시리즈는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연중시리즈는 종종 늘어졌고,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특정 주제에 대해 압도적인 컨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매주 한 면이 확보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 신문은 기후변화라는 주제에 관한 한 어느 매체보다 많은 기사를 축적할 수 있었다. 또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장기 해외취재도 가능했다. 하반기 들어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말이 유행하게 되면서 우리 기사를 찾아 읽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기후변화 코너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들의 한 해 노동이 이 상으로 위로를 받는다. 초라한 연말 송년회에 촛불 하나가 켜진 느낌이다. 부끄럽기도 하다. 실수와 속단, 근시안 등 문제가 가득한 저 기사들은 남아서 오래도록 우리를 부끄럽게 할 것이다.
새로운 한 해가 온다. 내년엔 또 어떤 이야기를 내놓아야 할 지 머리가 아프다.
<국민일보 탐사기획팀 김남중 기자>
중국 유학생 실태 관련 연속보도 KBS
정인성 KBS 베이징 특파원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다음 학기부터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중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한 학부모의 이 말이 이번 취재의 발단이 됐다. 학원은 왜 다녀야 되지? 학원비는 왜 그렇게 비싸지? 베이징 특파원 생활 2년반이 넘은 나도 모르는 학원 문화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취재가 결국 중국 명문대 입시를 둘러싼 한국 유학생의 실태로 확대됐다.
학부모와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평소 알고 지내던 베이징대,칭화대 후배들은 물론 학원,학교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접촉하다보니 당초 생각했던 것 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평균 10대 1이 넘을 정도로 과열돼 있었고이 틈새를 노린 학원들이 중간에 끼어 들어 학생들을 고등학교에서 빼내서 자체 기숙사에서 관리하면서 학생 한명당 일년에 3천만원 가량의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학원 문화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명문대 합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선택하고 있었고, 입시에 필요한 졸업장와 성적 증명서는 학원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천5백만원, 학원에는 3천만원 가량을 떼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했고, 학원비 때문에 귀국을 결심할 만도 했다.
베이징대 예과반은 한술 더 뜨는 비리의 온상이었다.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외국 인을 위해 베이징대가 만들었다고 하지만 순전히 기부금을 받아 학교 재정에 사용하기 위한 편법 수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년 학비와 기숙사비(무조건 기숙사에 들어가는게 입학 조건)는 2천만원에 육박했다. 여기에 예과반이 시험 치르지 않고 베이징대에 입학할 수 있는 창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과반 입학 경쟁률만 6,7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코스였고. 그리고 여기에 한국인 브로커들이 개입해 돈을 받고 서류 위조 등 각종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베이징대 4학년생인 한국인 브로커는 예과반 입학에만 기본 소개비가 6백만원, 자격이 안되는 학생은 천만원, 베이징대 입학 보장까지는 4천만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간 베이징대에서 중간 탈락율이 6,70%나 될 정도로 졸업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백태는 최고 명문대에 입학해야 한다는 학생, 학부모의 강박관념과 이를 교모히 이용한 학원,학교,브로커가 만든 합작품이었다 1위안에 130원하던 환율이 지금은 220원까지 오르면서 묻지마 유학은 차차 정리되고 있다. 베이징시와 대학 당국에서도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유학생 입시도 엄격해지고 있다. 보도한 보람을 느낀다.
인터뷰한 취재원들은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화면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를 약속받고야 응했다.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끝으로 이번 취재를 처음부터 함께한 현지 카메라맨인 장명권씨...기자협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기자상을 함께 수상할 수 없었지만 다시금 감사를 전하고 싶다.
공정택 교육감, 학원쪽에서 7억원 이상의 선거자금 빌…
기자는 ‘두눈’으로 세상을 봐야 <이현주 기자>
교육감 선거 비용 관련 의혹은 주경복 후보를 대상으로 먼저 불거졌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주 후보의 자금을 전교조가 대부분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검찰 수사까지 착수되는 등 교육감 선거비용 비리의 초점은 주 후보에게 맞춰져 있었다.
취재의 시작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일부 언론들은 낙선 후보인 주경복 후보‘만’ 때리고 있었다. 이미 밝혀진 주경복 후보의 의혹거리보다 훨씬 농도 짙은 ‘학원유착설’이 돌고 있는 공정택 교육감에 대한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비용 문제가 정파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었다.
우리는 공정택 교육감과 주경복 후보의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모두 입수해 분석에 나섰다. 분석 결과 공 교육감의 선거 비용은 수입 내역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학원업자들에게 빌린 7억여원. 1번이 아닌 여러 번에 거쳐 비용을 차입했기에 금액을 계산기로 두드려가며 확인에 확인을 또 거듭했다.
일주일에 걸쳐 공 교육감과 주 후보의 선거비용 분석 결과를 정리했다. 두 후보에게 돈을 준 수십명의 사람들 중 신분이 확인된 사람을 추리고,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고려해 본인에게 확인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첫 번째 기사인 <공정택 교육감, 학원쪽에서 7억원 이상의 선거자금 빌려>가 출고됐다.
그날 이후에도 분석 작업은 이어졌다. 이후 적게는 몇십만원, 많게는 몇백만원의 격려금을 제공한 사람들 중에 현직 교장들이 수십명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또 학원관계자에게 지원받은 돈이 대출을 포함해 7억여원이 아닌 18여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2번에 걸쳐 보도할 수 있었다.
기자는 남들보다 권력에 쉽게 접근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자가 그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다만 가장 먼저, 가장 거리낄 것 없이 접근한 것이 ‘특종’을 낳았다. 기자는 사회현장에 대해 ‘외눈’을 떠서는 안 된다는 간단한 취재 공식이 빛을 본 기사였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불법 수령 사태 국민일보
쌀소득보전직불금 관련 첫 제보가 입수된 시점은 사회부 사건팀에 근무하던 지난 2007년 6월쯤이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감사원이 쌀직불금 관련 감사를 진행했고, 고위공직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알려왔다. 당장 취재에 착수했다. 감사원과 청와대에 자료 존재 여부를 확인했고, 공개가 가능한지 여부도 따져보았다. 한 달 넘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정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청와대와 감사원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묵혀두었던 쌀직불금 취재가 다시 시작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사회부 경찰팀에서 정치부 정당팀으로 출입처를 옮기면서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쌀직불금 문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마침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 등과 함께 감사원과 농림수산식품부에 감사결과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 다행이도 감사원과 농림부는 1년간 잊혀졌던 쌀직불금 감사 자료들을 하나 둘 공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사회부 사건팀은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의 강원도 땅 매입 관련 의혹을 취재하던 과정에 쌀직불금 문제에 직면했다. 현지 농민들은 “많은 공무원들이 불법을 저지르며 쌀직불금을 받아간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사건팀은 즉시 지난 4월 재산 현황이 공개된 고위공무원 중 논·밭을 가진 36명을 대상으로 직불금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 이봉화 전 차관이 지난 2월 본인 명의 소유 농지에 쌀직불금을 신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첫 보도는 11월2일자 신문부터 시작됐다. 본보는 ‘공무원 4만여명을 포함해 최소 17만명이 쌀직불금을 부당 수령했다’는 사실을 감사원 자료를 인용 최초 보도했다. 사회부는 6일자 신문부터 ‘이봉화 차관의 쌀직불금 신청’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7일자에는 ‘이봉화 차관,쌀 직불금 신청 때 허위 자경(自耕)확인서 제출’을 보도했다. 15일자에는 ‘서울·과천 거주 공무원 520명 쌀직불금 수령’ 기사를, 16일자에는 ‘올해도 쌀직불금 22만여명 부당수령 의혹’ 기사를 각각 단독 보도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가예산 수천억원이 ‘눈먼 돈’처럼 공무원과 도시 거주 지주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 공개될 때마다 철저한 진상공개를 요구하는 메일이 빗발쳤다.
직불금 사태는 단순한 한때 보도로 끝이날 사안이 아니다. 부당하게 직불금을 수령한 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 인사를 벌하고,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에서는 현재 쌀직불금 국정조사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여야는 정치적 손익계산에만 골몰하고 있고, 그사이 국정조사는 파행을 거듭하며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정조사를 통해 정치권이 쌀직불금 부당 수령자 처벌과 제도개선을 모두 처리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또 그래야만 쌀직불금 부당수령 사태에 항의해 도청앞에 나락 가마니를 쌓고, 수확기의 벼를 태운 농민들의 울분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