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위기의 친환경 농업, 인증제도 개혁이 시급하다 광…
광주CBS 조기선 기자
전라남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농도이자 친환경 농업의 메카다. 전라남도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면적을 경지면적의 3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할 정도로 친환경 농업을 도정의 최대 역점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어야 하는데 전라남도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 결국 동티가 났다. 친환경 농업 인증심사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해주며 친환경 인증면적 확대에 나선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친환경 농업 인증을 둘러싼 부정과 비리의 중심에는 민간 친환경 농산물 인증기관이 있었다.
친환경 농업 인증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광범위하게 부실 인증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에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취재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전남의 친환경 농업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뿌리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한 달 여 동안의 사전취재 기간 동안 전남의 친환경 농업을 걱정하는 친환경 농업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다. 취재 과정에서 민간 인증기관의 부실인증과 사후관리의 부재에 대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7회에 걸친 기획보도의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검찰에서 친환경 농업 인증기관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부실 인증의 정도가 심각한 민간 인증기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 전방위적인 수사 결과 보도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 친환경 농업을 관리 감독하는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도 보도를 계기로 친환경 농업과 관련한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섰다. 전라남도도 성장 일변도의 친환경 농업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고 제도 개선에 들어갔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친환경 농업 정책의 허점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친환경 농업 인증 문제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게 됐지만 수상의 기쁨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친환경 농업을 위해 묵묵히 땀 흘려온 선량한 전남지역 농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검찰수사로 친환경 농산물 인증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전남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의 신뢰도에 금이 갔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전남의 친환경 농산물이 신뢰를 회복하고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친환경 농산물로 거듭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끝으로 수상의 영광을 함께 고생한 김은태 선배와 함께 나누고 싶다. 또 취재 기간에 업무 공백을 잘 메워 준 광주 CBS 보도국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특별기획 “한반도의 댐 보고서” 울산MBC
“한반도 댐 보고서” 취재 후기
울산MBC 보도국 박치현 부장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어떤 사건이 머지않은 미래에 파멸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소행성 충돌이나 전 세계적 바이오 테러, 갑작스런 지구온난화에 이르기까지 그 가능성은 다양하다.
이런 재앙은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확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0.001%의 확률도 확률일 뿐이지 당장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고 현대 과학으로도 발생시점을 점칠 수 없다.
지금 한반도 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과연 댐은 안전한가? 우리가 마시는 댐에는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취재에 착수, 한반도 댐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자부심으로 댐 현장과 수자원공사를 수도 없이 방문했다.
하지만 자료 접근의 한계에 봉착했다.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가 ‘댐은 국가보안시설’로 자료 공개가 불가능하다며 철저한 비밀에 부친 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큰 사고 앞에는 항상 여러 차례 이상징후가 발견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한반도 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우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 소형댐, 부실공사로 누수가 진행되면서 붕괴위기를 맞은 댐, 정수장의 항생물질 검출 등 각종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필자는 우선 댐 조사 용역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대학교수들을 만나 그 동안 숨겨져 왔던 자료를 수집했다. 수자원 관련 기관의 지인들도 끈질기게 설득, 비공개 문서를 찾아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협조로 비공개 자료를 추가로 입수한 뒤 현장 취재에 들어갔다.
한반도 댐은 예상보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댐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홍수나 지진 때 우리나라 댐이 어느 규모의 충격에 붕괴될 수 있는 지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수자원공사가 댐 안전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는 반론을 얻어냈다. 이에 수자원공사는 방송 자제 요청 공문을 보내왔고 시뮬레이션에 참여한 교수들의 자질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취재에 참여한 교수들은 국내 몇 명 안 되는 댐 전문가들로
수자원공사의 용역을 맡은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용역 결과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편향확증(Confirmation Bias -자신의 생각과 모순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의 심리학 용어)이 예기치 못한 댐의 대형사고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소양강을 비롯한 대형 댐들은 홍수에 매우 취약하다. 기상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하루 가능 최대 강수량(PMP, 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은 1000mm이고 이런 비는 언제든지 내릴 수 있고 이럴 경우 대부분의 댐은 물이 넘치면서 붕괴되는 것으로 이번 취재 결과 드러났다. 수자원공사는 취재팀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해 공포감을 조성한다며 한반도 댐 보고서 내용을 뉴스 피크(news peak - 애매한 표현을 통해 여론을 조장한다는 뜻) 쯤으로 애써 무시했다. 국토해양부의 젊은 연구원들은 달랐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취재했다며 격려를 했다. 댐의 수질관리도 위험수위를 훨씬 넘었다. 광산 중금속 폐수가 유입되고 중금속에 오염된 물고기를 주민들이 먹고 있었다. 의약품 남용과 항생제 과다 사용으로 정수장과 한강, 낙동강, 금강 등에서 여러 종류의 항생물질이 검출됐다. 이런 오염된 물이 우리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후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댐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겉모습은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속은 병들고 힘이 없었다. 우리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댐의 그늘이 예상보다 심각했다. 취재를 하면서 한반도 댐의 소리 없는 경고를 똑똑히 들었다. 창 밖의 바람을 방안에서 바람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댐이 안전하다고만 주장하는 수자원당국에 진실의 창문을 열고 댐과 대화해 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댐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댐을 활용 해법도 우리가 찾아야 하다. “한반도 댐 보고서”는 우리 댐의 미래를 담은 다큐멘터리로써 자연과 따뜻한 동행을 하고자 했다.
고마워요 당신의 땀방울 광주일보
취재후기-‘고마워요 당신의 땀방울’(외국인노동자의 삶과 꿈)
이은미 광주일보 문화부 기자
오리발만 주면 태평양의 참치를 모두 쓸어오겠다던 모 참치회사 신입사원의 패기를 닮고 싶었던 때가 불과 2년전이다.
방향을 잃은 나침반 처럼 하루하루 마감을 향해 겉돌고 있던 차에 들려온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식은 3년전 영화배우 황정민의 ‘밥상 수상소감’까지 떠오르게 만들었다.
선배들이 차려준 밥상을 안고 소화가 됐는지 배탈이 났는지 느낄 틈도 없이 정신없이 1년을 달리면서 느꼈던 고단함을 한 방에 날릴 수 있었다.
광주일보의 연중 탐사보도물인 ‘고마워요 당신의 땀방울’ 취재는 결코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채희종·나명주·윤영기·김대성·최경호·안현주 선배 모두 각 부서에서 일을 하며 탐사보도를 위해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시리즈의 특성상 외국인노동자들의 일정에 맞춰 현장취재를 진행하다보니 심층취재팀원 모두가 쉬는 날도 반납한 채 취재에 매달려야 했다.
빠듯한 취재시간과 통역 및 전문가 섭외, 해외취재 준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는 취재원들의 인식전환이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강제추방에 대한 공포감을 드러냈으며, 상당수 업체 사장들도 ‘악덕업주의 횡포 문제’ 등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인터뷰 자체를 거부했다.
오랜 설득 끝에 간신히 취재약속을 잡았지만 또다시 의사소통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매번 취재 마다 스리랑카, 네팔, 몽골 등 각 나라 언어에 능통한 통역전문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인터뷰에 응하고도 사진찍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끊임없는 설득작업은 취재 과정 내내 풀어야 할 과제였다. 또 어렵사리 통역을 구하고도 해당 업체사장의 눈치를 보느라 좋다는 말만해 그들의 실상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하지만 5월부터 진행된 해외 취재 및 보도 과정을 지켜보니 이같은 숙제는 차라리 ‘배부른 고민’이라는 생각 조차 들었다.
베트남·필리핀·네팔 등 5개국에 대한 해외 취재는 현재 고용허가제하의 우리나라 인력송출 시스템의 허와 실을 총 망라했다. 취재 시스템 부재와 현지 브로커들의 방해 속에서도 한국 입국의 첫 관문인 한국어시험부터 한국행을 위한 노동자들의 경제적 손실 및 인권유린의 현장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국내 언론 최초로 해외인력송출시스템에 대한 현지 심층취재를 감행했다는 것 자체가 지방지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번 시리즈를 통해 드러난 인력송출시스템의 문제점 등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끝으로 척박한 지역신문의 환경 속에서 기자로 단련시켜 준 선배들은 물론, 가족과 동기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건설현장의 가려진 진실 ‘하루에 2명, 예고된 죽음’…
-건설 현장의 가려진 진실 하루 2명, 예고된 죽음
김대원 기자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 20층 아파트 건설 현장. 서있기조차 힘들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밑을 보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아찔한 고공에서 건설노동자들은 무거운 철근을 옮기고 있다. 그래도 여름이면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한 노동자의 허탈한 웃음에 취재 도중 힘들다고 말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취재진이 파악한 건설노동자 수는 대략 300만 명(노동부나 통계청 집계보다 약 70-120만 명 더 많다). 4인 가족으로 보면 약 1200만 명,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이 건설 노동에 삶을 의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건설현장에서 지난 10년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공식적으로 한 해 평균 658명, 날마다 2명꼴이고 그 수는 해가 지나도 줄지 않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도 은폐되거나 공상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건설 현장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안전사고다.(사실 ‘안전’ 사고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정부나 기업은 선진국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본 따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는 적극 도입하면서 정작 건설 현장의 기본인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선진국 제도를 따를 의지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아는 이웃의 누군가가 당장 내일이라도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 있고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등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누구도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는 온 국민이 관심을 쏟았지만 정작 내 이웃, 내 친척인 건설 노동자들이 하루 2명씩 죽어 나가는 상황을 남의 일인 양 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건설 현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한 나이든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이판, 사판 공사판이란 말이 있는데 이판, 사판 이게 죽음을 넘나드는 일이에요. 이판은 지금 살아있는 세상이고, 사판은 죽는 판 이예요. 죽음을 넘나드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는 게, 이 공사판 이예요 !’
흔히들 ‘할 일 없으면 노가다나 하지’ 라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곤 한다.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 앞에 얼마나 그 말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무기수의 “진범조작” 사건 진실 추적 동아일보
8년 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당시 동아일보 법조팀은 외로웠다. 다른 어떤 언론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팀은 꿋꿋이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검증했고,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2000년 말 한 노인이 동아일보 법조팀을 찾아왔다. 1972년 9월 강원 춘천시 초등학생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5년을 복역하고 모범수로 출옥한 정원섭(74) 씨였다. 그는 “고문과 협박 때문에 허위 자백을 해 무기수가 됐지만, 죽기 전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유죄의 증거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에 나섰다.
취재팀은 변호인단과 함께 3개월 동안 1000장이 넘는 사건 기록과 빛 바랜 1, 2, 3심 판결문을 꼼꼼히 읽고 분석했다. 그리고 강원 춘천 홍천, 충남 천안, 경남 진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정 씨를 수사한 경찰관들과 정 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증인들, 검찰 관계자, 재판부, 부검의 등을 일일이 만났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경찰이 잠을 안 재우는 고문과 협박을 해 어쩔 수 없이 거짓 증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수사경찰관 및 검찰 관계자들은 대부분 고문과 협박을 부인했지만, 일부 경찰관은 “정 씨가 없는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사실상 시인했다.
취재팀은 이를 2001년 3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1면과 사회면 등에 9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정 씨와 변호인단은 취재 기록을 서울고법의 재심청구 사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심 사유의 형식상 문제를 들어 기각했다. 그러나 정 씨와 취재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 씨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취재팀은 취재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의 재심 권고를 받은 춘천지법은 올 7월 재심 결정을 했고, 11월28일 무죄를 선고했다. 정 씨는 무죄 선고 직후 “무고함을 끝까지 믿어준 동아일보와 취재팀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취재로 검경 등 수사기관의 적법한 수사절차와 ‘수사 결과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법원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도 호소할 길 없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확인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됐다.
8년 동안 취재팀의 신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취재팀을 이끌었던 이수형 법조팀장은 퇴직해 한 기업의 법무팀에서 임원으로 근무 중이고, 신석호 이정은 기자는 각각 정치부와 국제부로 옮겼다. 이명건 기자는 정치부를 거쳐 법조팀장이 됐다.
여군 군악대장 무죄 확정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 이순혁 기자
“대명천지에 설마 그런 일이….”
지난 4월 초 어느 나른한 주말. 전날의 과음 후유증으로 한참 낮잠을 자다가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용이 너무 황당했다.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군 대위가 상관에 대한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유죄가 선고될 것 같다. 여군 대위는 상관으로부터 스토킹을 받았다는데, 군에서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거듭 황당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좀 심한 얘기였다. 하지만 ‘관찰자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기자의 본능같은 것이 작동했다. 조심스레 취재를 시작했다. 당사자인 육군 ××사단 군악대장 박아무개 대위의 친구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 접촉을 조심스러워하던 박 대위의 변호인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설마’라고 생각했던 전언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위를 사단 헌병대에 남몰래 수사의뢰한 당사자는 바로 박 대위의 상관인 송아무개 소령이었다. 사단장은 ‘남자친구와 사귀지 않기’ 등을 담은 각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고, 한달 수백통의 문자를 보내는 등 송 소령의 스토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장만 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송 소령이 수사의뢰한 내용들은 정말로 죄가 되는 내용들이었을까? 아니었다. 수사의뢰된 수십가지 혐의 대부분 범죄혐의가 성립되지 않아 군 당국 스스로 기소조차 못했다. 헌병대의 조사를 받고 있던 박 대위의 행동이나 태도에서 꼬투리를 잡아 이를 기소하고 유죄로 선고한 것이다.
사실, 기자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났다. 군에 다녀온 남자로서 창피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팩트 위주로 기사를 쓰자’고 다짐했다. <한겨레21> 705호(4월15일 발행)에 첫 보도가 나간 뒤, 송 소령과 박 대위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더 들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여성단체들과 인권활동가, 임종인·차혜령 변호사 등이 나서 대책위를 꾸리고 박 대위를 도왔고, 대법원은 지난 11월 박 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숨이 나왔다. 과연 복직한 박 대위는 군 생활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까? 주변 남성 군인들의 이상한 시선과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없을까? 승진 누락 등 눈에 보이지 않은 불이익은 없을까?
한숨을 쉴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전 군 관계자가 전언하길, 사건 뒤 후방지역 군 부대에 배속된 송 소령은 잘 지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부대 구성원 아무도 그가 ‘스토킹 가해자’인 그 송 소령인줄 모른다나.
상을 받고도 부끄러움과 한숨이 앞선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및 노건평씨 관련 의혹 등 ‘친…
“검찰이 농협 관련 수사를 하는 것 같더라.”
8월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취재원’이 넌지시 던진 말에 솔깃했다. 농협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각종 기사와 국회 회의록 등을 모조리 뒤졌다. 유난히 농협의 알짜 자회사였다가 태광실업에 팔린 ‘휴켐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몇 주째 같은 질문만 반복하던 기자에게 검찰 관계자가 성가신 듯 말문을 열었다. “‘농협사랑지킴이’가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을 진정했다.”
그 즈음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중인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이 정권 교체기에 사면을 받으려다가 좌절돼 상당히 낙담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특수2부가 정 전 회장을 소환 조사한 것도 포착됐다. 검찰은 정 전 회장 보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수완’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검찰의 휴켐스 헐갑 매각 의혹 수사’라는 첫 보도가 올 8월20일자로 나갔다. 박 회장과 관련한 다른 제보들이 모일만큼 첫 보도의 힘은 대단했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거액의 탈세가 포착됐다” “박 회장이 세무조사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9월 중순 검찰이 아닌 국세청이 이례적으로 박 회장을 출국 금지한 사실이 추가로 포착됐다.
그리고 태광실업의 세무조사가 12월5일까지 연장됐다는 소식이 들리던 11월 중순. 또 다른 ‘취재원’이 “박 회장 수사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전언을 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만했다. 수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인 11월19일 대검 중수부가 옛 세종증권의 대주주였던 세종캐피탈을 압수 수색했다. 수사팀은 “박연차의 ‘ㅂ’자도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검찰 수사가 머지않아 박 회장을 향하리라고 확신했다.
박 회장과 세종증권. 두 단어의 관련성을 찾기 위해 전화를 돌렸다. 박 회장이 세종증권 주식을 차명으로 산 것이 수사 대상이라는 얘기가 들렸다.
11월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정화삼 씨 형제가 ‘알선’수재 혐의로 체포됐다. 청탁 대상을 찾아야 했다. 얼마 뒤인 23일 누군가가 “노건평 씨가 정 전 회장과 정 씨 형제들과 아주 가깝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날 밤 늦게 한 검찰 관계자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다음날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의 이름이 동아일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친노게이트’의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본보 보도 이후 박 회장과 노 씨가 모두 구속됐지만 검찰 수사와 동아일보 기자들의 취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아일보 사회부 법조팀 정원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