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219회) 여군 군악대장 무죄 확정 /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 이순혁 기자
“대명천지에 설마 그런 일이….”
지난 4월 초 어느 나른한 주말. 전날의 과음 후유증으로 한참 낮잠을 자다가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용이 너무 황당했다.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군 대위가 상관에 대한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유죄가 선고될 것 같다. 여군 대위는 상관으로부터 스토킹을 받았다는데, 군에서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거듭 황당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좀 심한 얘기였다. 하지만 ‘관찰자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기자의 본능같은 것이 작동했다. 조심스레 취재를 시작했다. 당사자인 육군 ××사단 군악대장 박아무개 대위의 친구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 접촉을 조심스러워하던 박 대위의 변호인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설마’라고 생각했던 전언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위를 사단 헌병대에 남몰래 수사의뢰한 당사자는 바로 박 대위의 상관인 송아무개 소령이었다. 사단장은 ‘남자친구와 사귀지 않기’ 등을 담은 각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고, 한달 수백통의 문자를 보내는 등 송 소령의 스토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장만 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송 소령이 수사의뢰한 내용들은 정말로 죄가 되는 내용들이었을까? 아니었다. 수사의뢰된 수십가지 혐의 대부분 범죄혐의가 성립되지 않아 군 당국 스스로 기소조차 못했다. 헌병대의 조사를 받고 있던 박 대위의 행동이나 태도에서 꼬투리를 잡아 이를 기소하고 유죄로 선고한 것이다.
사실, 기자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났다. 군에 다녀온 남자로서 창피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팩트 위주로 기사를 쓰자’고 다짐했다. <한겨레21> 705호(4월15일 발행)에 첫 보도가 나간 뒤, 송 소령과 박 대위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더 들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여성단체들과 인권활동가, 임종인·차혜령 변호사 등이 나서 대책위를 꾸리고 박 대위를 도왔고, 대법원은 지난 11월 박 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숨이 나왔다. 과연 복직한 박 대위는 군 생활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까? 주변 남성 군인들의 이상한 시선과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없을까? 승진 누락 등 눈에 보이지 않은 불이익은 없을까?
한숨을 쉴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전 군 관계자가 전언하길, 사건 뒤 후방지역 군 부대에 배속된 송 소령은 잘 지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부대 구성원 아무도 그가 ‘스토킹 가해자’인 그 송 소령인줄 모른다나.
상을 받고도 부끄러움과 한숨이 앞선다.
이 회차 수상작 2008년 11월
제219회(2008년 11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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