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무법(無法)의 전당 연합뉴스
전문(사진)보도/'無法의 전당' / 연합뉴스 사진부 김주성 기자
폭력과 불법이 난무했던 그날이 벌써 40여일 전이다.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분노에 가득 찬 눈빛, 거침없는 욕설... '이것도 기록해야 할 우리의 역사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 앞은 난장판 이었다. 국회 복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카메라와 펜들 앞에서 '그들만의 정치행위'는 떳떳했다. 그날 난 난장판 국회에서 가장 난장판다운 모습을 기록해 전했을 뿐이다.
그들은 누가 먼저 무법행위를 했는지, 누구의 주장이 더 정당한지에 대해 국민들이 가려주기를 원했겠지만 국민들은 시선은 차가웠다. 본회의장이 입법을 위한 논의의 장이 아닌 '점거의 대상'이 되곤 했던 국회의 모습을 보아온 국민들은 이제 냉소를 보냈다.
난장판이 벌어졌던 작년 12월 18일부터 세계 각국의 언론은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혹은 조롱하는' 기사를 써내고 있다. 언론들은 마치 증거자료 내밀 듯 그날의 '무법의 전당' 사진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 네 사진이 나라망신 시키는데 일조했어"라는 농담 섞인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사실 뉴스통신사 사진기자에게 여러 타매체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사진이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를 비판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 정치인들의 자성과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했다면 사진기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해외 언론의 한국 정치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을까. 각 정당들은 연말연초 되풀이되는 폭력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방법을 두고 여야간 시각차는 여전하다. 적어도 ‘폭력방지 입법을 두고 또다시 폭력국회로 가는 길은 없겠지’라고 기대해 본다.
무너지는 버스 준공영제, 혈세 1700억 샌다 대구M…
“준공영제는 버스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제도다.”
지난 5월 버스노동자 협의회 운전기사들은 화가 나 있었다. 버스 준공영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방송국 기자가 사무실을 찾았다는 소식에 운전기사들은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취재는 그렇게 출발했다. 버스 운전기사들의 인건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당하게 지급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만 며칠이 걸렸다. 연차 수당 등의 인건비 부당 청구 규모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월급명세서를 확보하면 밤을 새더라도 인건비 부당 청구 금액을 확인해 볼 참이었다. 하지만 대구시는 취재진의 요청과 정보공개청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취재진은 오기가 발동했다. 버스 준공영제의 세금 누수와 구조적인 문제점, 대구시의 관리, 감독 실종에 따른 퍼주기식 지원, 버스개혁위원회의 한계, 공동운수협정 미체결 등 취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번 취재는 버스 준공영제의 지난 3년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데 집중됐다. 과거를 추적하다보니 확보한 자료가 방대했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버스 준공영제의 숨겨진 치부를 하나하나 벗겨나가면서 무한한 보람을 느꼈다.
취재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준공영제 시행 3년이 향후 성패를 가르는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대구시와 대구시의회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일반 시민들에게 이르기까지 서민의 발인 버스 정책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 이번 보도의 가장 큰 수확이다.
버스 준공영제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갈 길이 아직 멀다. 대구의 거대
교통 정책의 하나인 버스 준공영제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역의 모든 언론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끝으로 지난해 12월 말부터 보름 남짓 혹한의 추위 속에서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 법안에 맞서 상경 투쟁을 벌인 보도국 선후배님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후배를 대신해 리포트 제작을 손수 해주신 김환열 뉴스취재팀장님, 김현수 영상팀장님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
특별기획 - ‘검은 폐’를 가진 사람들 KBS춘천
'검은 폐’를 가진 사람들
송승룡 (KBS춘천총국)
24시간 당직 근무를 끝낸 뒤 집에서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던 어느 오후. 단잠을 깨우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수상 소식을 접했다. 기뻤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진폐의 아픔과 진실을 단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릴 수 있게 돼서 기뻤다. 가슴이 아렸다. 타인의 고통을 전하고 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그랬다.
취재에 나설 때마다, 항상 많은 고민과 갈등이 뒤따른다. 내 취재 방향이 올바른가? 정말 가치 있는 취재인가?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봐야하나?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번에 진폐환자 문제를 취재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 이런 질문을 더 많이 해야했다. 취재를 거부당하기 일쑤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곤 했다. 취재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병원에 있는 진폐환자는 나이론 환자, 병원 밖에 있는 진폐 환자는 진짜 환자'라는 그동안 들었던 단순한 이분법은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동안 기자로서 가져왔던 자만과 허영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다시 시작하자. 처음부터.' 취재 방향을 전면 수정했고, 촬영도 다시 시작했다. 진폐환자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함께 먹고 잤고, 고민했다. 진폐환자들의 시위가 계속되면서 방송 직전까지 촬영이 계속됐고, 원고를 수정해야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지금도 진폐환자들은 계속 갈등하고 있고, 관련 기관과 단체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와중에서, 진폐법 개정안은 제자리만 멤돌고 있다. 방송에 담아 낸 것 보다는 담아낼 것이 더 많이 남아있다. 숙제다.
비록 이 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취재 기간 내내 함께 먹고 자며 고생한 취재진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임병수 작가님, 이유미, 이천행 감독님, 김상현 선배님, 김승준, 민선영 씨 고맙습니다. 또, 함께 고민하고 원고를 다듬어주신 조병관 보도국장님을 비롯해 KBS춘천방송총국 보도국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검게 변해버린 폐 때문에 고통스런 삶을 살고 계실 모든 산업 전사들, 진폐 환자분들께 이 상을 바칩니다.
교육청 2백억 엉터리 방송사업 KBS부산
교육청 2백억 엉터리 방송사업 고발 보도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정치인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영화 ‘브이 포 밴데타’에서 흘러나온 이 대사는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5년을 버텨온 내 삶을 다시 조명케 했다.
취재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고민과 판단.
또 불법과 합법, 그리고 편법.
아무리 좋은 포장재료를 썼어도 기본재가 엉터리라면 누구에게 좋을까.
그동안 내 취재일기는 좋은 포장재만 보고 안일한 취재만 해온 게 아니었을까
억눌려 있었다. 이번 취재는 그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 계기가 됐다.
부산시교육청은 200억 원 대 방송장비 교체사업을 진행하면서
그 흔하디흔한 보도자료 한 번 뿌리지 않았다.
일선 학교의 낙후된 방송장비를 교체한다는 멋진 포장이었는데, 왜 자랑하지 않을까.
이런 가운데 학교 안팎에서 들려온 푸념은, 취재기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3년밖에 안된 멀쩡한 학교 방송장비를 뜯어내고,
교육청이 시키는대로 방송장비를 전면 교체하라니...”
이 무슨 꿍꿍인가.
무려 2백억원의 예산을 들인 학교 방송장비 교체사업.
교육청은 “올해가 지나면, 국고에 반납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써야 할 돈이지 않느냐”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자료도 없었고, 마땅한 취재원도 없었다.
그러나 파헤쳐보고 꼭 이면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취재가 시작됐다.
불법과 합법, 그리고 편법...
교육청 사업에 관한 자료를 일일이 모으고 조사하면서,
불법이라고는 찾아낼 수 없었다.
혹자는,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구태여...”라는 말로 기자의 취재를 애써 달랬다.
정확하게는 197억 원의 교육청 사업권을 한 특정업체가 독식하는
구도가 형성됐는데, 과정상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수의계약한 것도 아닌데...
어쩌면 문제는 간단했다.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특정업체에 편법으로 사업권을 밀어준 것이었다.
우여곡절 보도로 인해,
교육청의 방송장비사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멀쩡한 방송장비를 가진 학교의 장비교체 계획은 없던 일로 수정됐다.
앞으로 교육청은 어느 기관보다 공공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할 기관임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보도로, 취재기자도 불법과 합법, 그리고 편법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야간 당직근무 후 피곤할 텐데도, 일선 학교의 방송장비 영상을 책임져준 권태일 촬영기자에게 감사드린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4시간이 넘는 녹취파일을 찾아 음성변조까지 일일이 마쳐준 모습은 프로였다. 그리고 취재기자가 고달플 때, 기자협회 회의까지 열어 사기를 북돋워준 부산기자협회 선후배, 동기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노숙자와 함께 쓴 2008 노숙자 리포트 서울신문
<노숙자와 함께 쓴 2008노숙자리포트>
서울신문 사회부 이경주, 장형우 기자
"노숙인들은 더 이상 기부천사를 위한 배경화면, 도움과 기부의 손길의 목적어로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빈곤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으로만 여겨졌던 영등포의 노숙인, 기초생활보호수급대상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기자들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영등포의 빈곤층들은 사회적 편견과 냉대 속에서도 '주어'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각 언론들은 본격적인 경제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의 손길도 줄어들었다는 주제의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영등포 빈곤층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과 자선의 손길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 먼 자선'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었고, 빈곤의 굴레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원했다. 물고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를 되찾기를 열망했다.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노숙을 탈출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노숙인들을 만났다. 빈곤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빈곤의 실체와 그 악순환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기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편집국은 노숙인 이야기를 진부하게 여겼다. '이맘때면 또 나오는 아이템이겠거니.'라며 기자들의 취재결과를 애써 무시하려했다. 하지만 이 기획기사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논란에 휩싸였고, 서울시는 노숙 및 빈곤층 지원책의 방향을 전환해 보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추상적 관념일 뿐,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길의 시작은 그들과 함께 서서 동일한 시선으로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 후배 기자들에게 깨우쳐 준 사회부 사건팀장인 이창구 캡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또 편집국에서 무시했던 기사를 들고 데스크들을 끊임없이 설득해 주신 것에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 기획취재로 생길 수밖에 없는 두 기자의 공백을 메우는 수준이 아니라 큼직한 특종기사를 쏟아내 빈틈을 느낄 수조차 없게 해 준 사건팀원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많은 정보와 바른 방향을 설정해 준 '영등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임을 자임하는 햇살보금자리 박철수 팀장과 팀원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용산 철거촌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 서민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감시자로서의 언론인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탐사기획 ‘헌법 30조를 아십니까’ 세계일보
<세계일보 조민중 기자>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누가 보상해줄까.’
본보의 탐사보도 ‘헌법 30조(범죄피해자 구조권)를 아십니까’는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을 법한 평범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범죄 현장을 접해온 팀원들은 관심은 있었지만 아무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때맞춰 지난해 11월 ‘범죄피해자 인권대회’가 열려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범죄피해자들을 만나는 것부터 벽에 부닥쳤다. 보복 범죄를 우려한 피해자, 범죄의 충격으로 자취를 감춘 피해자들이 비일비재했다. 당사자와의 면담이 취재의 핵심이라고 판단한 팀원들은 그동안 인연이 된 취재원과 경찰, 관련 단체 등을 총 동원하고서야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들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들의 현실을 전달하는 것만이 기사의 목적은 아니었다. 이들을 어떻게 포용해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국내 범죄 피해자 인권 제도를 들여다 봤고, 논문과 보고서 등에 나와 있는 일본·미국 등 외국의 사례를 연구했다.
범죄 피해자는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는 피해자 구조권을 명시한 ‘헌법 30조’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피해자들의 권리를 아예 방치해 놓고 있었다. 살인 등 흉악 범죄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는 그 아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하지만 이들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지원은 지난 18년 동안 최고 1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마저 받아가는 이가 드물어 정부예산은 매년 남아돌았다. 피해자들은 범죄자의 처벌을 법에 호소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삭일 뿐 경제적·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움은 전혀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취재는 탄력을 받았다.
기사가 나간 직후 법무부는 사망 1000만 원, 중장해 최고 600만 원으로 동결돼 있는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2009년 최고 3000만 원을 시작으로 3년 내 5000만 원, 5년 내 최고 1억 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받은 전국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대한 개선작업도 시작됐다. 범죄 피해자들이 증인신문, 피고인 신문 등에서 피의자를 직접 신문하고 사실·양형 관계에 대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게 되는 등 형사 재판 참여도 가능하게 됐다.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느라 바쁜 가운데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은 편집국장과 선후배, 동료가 없었으면 이번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계일보 식구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취재팀은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다. 좋은 취재환경을 만들어준 회사에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보도가 범죄 피해자 인권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두 배다.
교과부 제작 영상물 4.19를 ‘데모’로 폄하 한겨레…
“설마…”라는 마음으로 취재했던 역사교과서 수정이 결국 저자의 동의 없이 뜯어고쳐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솔직히 참담했다. 이미 6년 동안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를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뜯어 고치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기력했지만 지금 쓰는 역사교과서 관련 보도가 먼 훗날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기록자’의 심정으로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 막바지인 12월4일 MBC <100분 토론>에서 역사교과서 문제가 다뤄졌다. 토론회에서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챙겨봤다. 토론 중간에 일반 시민들의 여론이 궁금해져 시청자게시판을 보는데, 한 문장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정부는 4·19를 폄하하는 영상물이나 학교에 뿌리면서, 무슨 역사교과서 수정이냐’는 내용이었다. 역사교과서 수정을 강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역사교사를 통해 <기적의 역사>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입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작한 80여개 영상물의 내용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4·19 민주혁명을 데모로 폄하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에만 초점을 맞춰 사실상 독재정치를 미화하고 있었다. 반면 5·18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부분의 역사는 완전히 빠졌다. 또 2000년대 남북정상이 55년 만에 만난 정상회담은 빠져있는 대신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인 ‘청계천의 오늘과 내일’이 담겨 있었다. 교과부는 왜곡에 가까운 이 영상물을 전국 초·중·고교에 1만개 가량 뿌렸고 교과시간이나 재량시간에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영상물에 대한 교과부 입장을 묻자, 첫 반응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다. 우리 사회가 지나간 역사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중요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면 그것은 독재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고 정부 부처들은 앞 다퉈 ‘우편향’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이번 ‘4·19 데모’ 폄하 영상물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이런 정부 내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미군정기를 민주주의의 모태라고 하는 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책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한 것이 드러났다.
역사의 시계바늘이 자꾸 거꾸로 돌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