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라는 마음으로 취재했던 역사교과서 수정이 결국 저자의 동의 없이 뜯어고쳐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솔직히 참담했다. 이미 6년 동안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를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뜯어 고치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기력했지만 지금 쓰는 역사교과서 관련 보도가 먼 훗날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기록자’의 심정으로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 막바지인 12월4일 MBC <100분 토론>에서 역사교과서 문제가 다뤄졌다. 토론회에서 새로운 내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챙겨봤다. 토론 중간에 일반 시민들의 여론이 궁금해져 시청자게시판을 보는데, 한 문장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정부는 4·19를 폄하하는 영상물이나 학교에 뿌리면서, 무슨 역사교과서 수정이냐’는 내용이었다. 역사교과서 수정을 강행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역사교사를 통해 <기적의 역사>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입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작한 80여개 영상물의 내용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4·19 민주혁명을 데모로 폄하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에만 초점을 맞춰 사실상 독재정치를 미화하고 있었다. 반면 5·18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부분의 역사는 완전히 빠졌다. 또 2000년대 남북정상이 55년 만에 만난 정상회담은 빠져있는 대신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인 ‘청계천의 오늘과 내일’이 담겨 있었다. 교과부는 왜곡에 가까운 이 영상물을 전국 초·중·고교에 1만개 가량 뿌렸고 교과시간이나 재량시간에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영상물에 대한 교과부 입장을 묻자, 첫 반응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다. 우리 사회가 지나간 역사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중요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면 그것은 독재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고 정부 부처들은 앞 다퉈 ‘우편향’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이번 ‘4·19 데모’ 폄하 영상물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이런 정부 내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미군정기를 민주주의의 모태라고 하는 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책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한 것이 드러났다.
역사의 시계바늘이 자꾸 거꾸로 돌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회차 심사평
제220회 전체 총평
제 220회 이달의 기사상 심사평
신상순 한국일보 편집위원
2008년 마지막인 12월 기자상 후보작으로 모두 7개 부문 42건이 출품되었으며 1차와 2차를 통합해 심사 하였다. 예선을 통과하는 점수를 받은 출품작은 16건으로 이중 5개 부문에서 8개작이 수상작으로 선정 되었다.
취재보도부문의 수상작인 ‘교과부 제작 영상물 4.19를 데모로 폄하’(한겨레신문 교육 팀 김소연 기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각 급 학교에 배포한 ‘기적의 역사’라는 영상물을 놓치지 않고 분석하여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역사의식을 날카롭게 지적 하였다. 정부가 영상물을 회수 하고 문화부 장관이 관련 단체에 사과를 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낸 특종으로 평가되어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두 개 작품이 수상 하였다. ‘탐사기획 헌법 30조를 아십니까’(세계일보 특기팀 염호상,박성준,조민중,양원보기자)는 범죄피해자 구조제도 가 허점이 많아 범죄 피해자들이 범죄자들 만큼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알리고 이를 개선할 방법을 제시해 완성도 높은 기획물로 평가 받았다. ‘노숙자와 함께 쓴 2008 노숙자 리포트’(서울신문 이경주,장형우기자)는 노숙자가 직접 참여해 기사를 작성하고 설문 조사를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점과 기자의 발품이 인정받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기사보고서에 비해 정작 신문기사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역 취재 보도부문 에는 12개 작품이 열띤 경쟁을 벌여 두편이 선정 되었다. ‘무너지는 버스 준공영제, 혈세1700억 샌다’(대구 MBC 사회부 박재형, 방송본부 김경완,윤종희기자)는 단신에서 시작 끈질지게 준공영제의 허점을 캐내어 마침내 제도 개선을 이루어낸 작품으로 기자들의 문제의식이 돋보였다. ‘교육청 2백억 엉터리 방송사업’(KBS 부산 보도팀 노준철,권태일 기자)은 교육청 예산 집행 행태를 꼼꼼하게 취재하여 합리적이지 못한 업체 선정 과정과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방송장비의 성능을 비교분석하여 혈세 낭비가 불가피 했던 교육청 사업을 정상화 시켜 지역 언론의 사회적 감시 기능을 충분히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기획 방송부문 의 수상작 ‘검은 폐를 가진 사람들’(KBS춘천 보도국 송승룡,최중호기자) 은 그동안 단편적인 보도로만 알려져 있던 진폐증 환자들의 실상과 그들을 치료하는 정부의 제도적인 문제점을 잘 지적 한 수작 이였다.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취재원을 설득한 완성도가 높은 화면도 호평을 받았다.
‘끝나지 않은 재앙’(대전 MBC 취재부 최기웅,카메라 취재부 여상훈기자)은 피해 주민들의 정신적인 문제점을 해외취재와 설득력 있는 영상으로 풀어나간 탄탄한 구성으로 이런 사고 사건이 다시 일어 났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참조 할 작품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전문보도부문 의 ‘무법의 전당’(연합뉴스 사진부 김주성기자)은 한미FTA 법안 상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의원들의 거친 몸싸움 으로 전쟁터로 변한 국회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하여 표현 하였다. 이 작품은 ‘뉴스적인 가치와 사진적인 가치’가 우수한 보도사진이라는 호평을 받아 오랜만에 사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탈락한 작품들 중에도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 CBS 의 노력이 없었으면 묻힐 가능성이 있는 기사로 평가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박연차 씨와 15억 돈거래 확인’ (CBS,사회부 이재웅기자외), 전설적인 인물을 세상에 새롭게 소개한 ‘새로쓰는 요산 김정한’(부산일보 문화부 이상헌기자 )와 ‘제주바다 황색경보, 그 후 10년’(제주 MBC 송문희기자 외)등은 득표수가 모자라 수상에 실패 했으나 기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수작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