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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회 (2009년 6월)

수상작 4편 · 출품 후보작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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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4편

심사평

제226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정필모 (KBS 해설위원) 제226회 이달의 기자상은 최근 그 어느 달에 비해서도 출품작이 적었다. 보통 매달 평균 40여 편이 출품됐지만 이번에는 27편만 출품됐다. 이 가운데 9편이 예심을 통과했고 최종적으로 4편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4편이 출품된 취재보도부문에서는 뚜렷하게 부각된 작품이 없는 가운데 연합뉴스 북한부의 ‘소식통 “북한 김정일, 3남 정운 후계자 지명” 등 다수’가 유일하게 본심에 올라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직 사실 여부가 확인이 안 된 만큼 결정을 유보하자는 데 심사위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 기사는 사실이라면 세계적 특종이지만,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가 없었던 만큼 오보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를 주목하고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를 해온 노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4편의 출품작 가운데 3편이 본심에 올라와 최종적으로 한겨레 사회부의 ‘해부,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비록 정보공개청구과정에서 외부의 협력을 받은 것이지만, 접근이 어려운 자료를 입수해 광역자치단체장들의 방만한 업무추진비 사용 사실을 체계적으로 입증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그동안 지역 언론에서 개별적으로 많이 거론된 것으로 신선한 소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밖에 세계일보 특별취재팀의 ‘졸속 개발에 역사가 사라진다’는 4대강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일보 사회부의 ‘심층 리포트: 조기유학 1세대의 현주소’는 ‘스노볼 샘플링(snowball sampling)’ 기법을 활용해 조기유학 1세대의 인생 행로를 최초로 추적, 보도했다는 점에서 각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자는 4대강 문화재 보호 이외도 너무 많은 문제를 다루다 보니 초점이 흐려졌다는 지적 때문에, 그리고 후자는 사회적 의미 부여가 약했다는 지적을 받아 아쉽게도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KBS 탐사보도팀의 ‘시사기획 쌈 “수신고 280조의 그늘” 1부 무전무협’이 본심에 올라왔지만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역 농협의 문제점을 짚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중앙회 차원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9편이 출품된 지역취재보도부문에서는 유일하게 본심에 올라온 GTB 보도국의 ‘부도덕한 신부’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 기사는 접근이 어려운 종교영역에서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사제의 추문을 파헤친 끈질긴 노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기획 신문통신부문에서는 중도일보 지방부의 ‘특별기획,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승리의 길을 가다’가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 언론 기자가 장기간의 현장 취재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노력과 성과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발굴된 새로운 사실에 대한 추가적인 취재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역기획 방송부문에서는 부산 MBC 뉴스총괄팀의 ‘창사 50년 HD특별기획 2부작 - 이중국가: Dual State’가 사회 양극화 문제를 심층적으로 짚었다는 평가 속에 예심을 통과했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를 주로 다룬 1부와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제시한 2부 사이에 논리적 연관성이 약하다는 지적 때문에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했다. 전문보도부문에서는 경인일보 지역사회부의 ‘주한미군의 효순·미선양 추모식’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 작품은 사진 자체가 주는 임팩트는 약하지만 미군이 매년 은밀히 추모행사를 해왔다는 사실을 최초로 포착한 노력과 성과가 심사위원들의 공감을 얻었다. 다만 사진과 함께 현장 스케치나 인터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는 의견도 있었다. 끝으로 최근 들어 출품된 작품 가운데 일부 기사의 제목이 애매모호하거나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용과 주제를 잘 드러내면서도 절제된 제목을 뽑는 데 좀 더 유의해줬으면 하는 게 심사위원들의 바람이다.

출품 후보작

수상하지 못한 작품까지. 원본 사이트에서는 따로 찾아 들어가야 보입니다.

소식통 “北 김정일, 3남 정운 후계자 지명” 등 다수
후보 1-01 취재보도부문 연합뉴스 북한부 최선영·장용훈
‘노예 계약’ 강요하는 법률가들외 1편
후보 1-02 취재보도부문 KBS 사회팀 이수정*·최경원
서울대 ‘폴리페서 규제’ 결국 용두사미
후보 1-03 취재보도부문 연합뉴스 사회부 황철환
감찰부까지 동원 중국산 제품 사라. 중 바이차이나 갈수록 노골화
후보 1-04 취재보도부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오광진
졸속 개발에 歷史가 사라진다
후보 2-01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염호상·박성준*·엄형준·조민중
시사기획 쌈 ‘수신고 280조의 그늘’ 1부 무전무협
후보 2-01 기획보도 방송부문 KBS 탐사보도팀 박중석*·정수영*·안정환
미·중 G2 시대
후보 2-03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매일경제신문 국제부 윤경호·최경선·장종회·채수환·박준형*
심층리포트: 조기유학 1세대의 현주소
후보 2-04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조선일보 사회부 염강수·이석호*·박승혁*·채민기·한경진
내 아들, 강철아 어디에 있니
후보 4-01 지역취재보도부문 전남매일 사회부 김경인*
건강보험공단, 전산오류 5년 방치, 최초 보도
후보 4-02 지역취재보도부문 TJB대전방송 보도국 노동현·김경한*
김태호 도지사 ‘좌파발언’ 대소동
후보 4-03 지역취재보도부문 KNN 경남본부 전기득*·손용식
신고리원전 부실공사 우려
후보 4-04 지역취재보도부문 세계일보 전국부 전상후
평택 브레인시티 부실한 사업시행자 논란
후보 4-05 지역취재보도부문 경기일보 정치부 최용진
경찰 ‘시간외수당 조작’ 고발
후보 4-06 지역취재보도부문 KBS대전 보도국 황정환*·서창석·임태호
경주 방폐장 안전 심각
후보 4-07 지역취재보도부문 KBS대구 보도국 신지원*·김정덕
국내 최초 80억 인공해수욕장 폐쇄 위기
후보 4-09 지역취재보도부문 KBS광주 보도국 김광진·정사균
땅을 찾는 사람들... 기획시리즈
후보 5-02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중부매일 기획취재팀 이민우*·김미정
김순제와 우리 혼이 담긴 뱃노래
후보 5-03 지역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기호일보 사회부 최유탁
홈플러스 3천억 지역기여
후보 6-01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TBC 보도국 박영훈*·김낙성*
대전MBC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1그램의 기적”
후보 6-02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대전MBC 뉴스센터 최기웅·여상훈
부산MBC 창사 50년 HD특별기획 2부작 ‘이중국가:Dual State’
후보 6-03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부산MBC 뉴스총괄팀 민성빈·김효섭*
발언수를 통한 18대 국회의원 1년 점검
후보 6-04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춘천MBC 보도팀 박대용
‘근거 없는’ 비자 규정 헌법 재판소 간다
후보 7-02 전문보도부문 코리아타임스 사회부 강신후*

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4편

주한미군의 효순.미선양 추모식 경인일보
최재훈 기자 "매년 6월이면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지난 2002년 6월 13일 오전 경기북부에 주둔한 미2사단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묻혀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효순·미선양의 안타까운 희생이 경인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온 국민들은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한미행정협정(SOFA)개정 등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주한 미군들은 그 해 9월 사죄의 의미를 담아 사고현장에 추모비를 세웠다. 또 추모비를 인정하지 않는 시민단체의 반발 등으로 인해 매년 미군들의 공식적인 참배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이런 반미감정 등으로 주한 미군들은 효순 미선이 추모비를 극비에 참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매년 추모비를 찾았으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지난 2009년 6월. 매년 그랬지만 올해는 더욱 극한 상황이었다. 말초신경마비로 인해 병원에 입원중이던 나는 새벽시간에 외출증을 받아 추모비로 향했다. 또 주한미군의 효순·미선양 추모식을 포착을 위해 1일부터 매일 오전 6~10시까지 추모비 인근 산속에서 미군들을 기다렸다. 10일 오전 6시 40분께 추모비에는 두 여중생 부모님들이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 최기자 왔어? 또 무엇을 취재하려고...!"라며 반겼다 부모님들은 "미군들이 추모비를 세웠다는 이유로 모 시민단체들이 추모비를 홀대하고 또 추모비를 평택으로 보내야 한다네... 요즘 우리 가족들 마음이 무거워..."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오전 8시10분께 미군 장병 50여명이 차에서 내려 추모비로 향하고 있었다. 순간 인근 산으로 몸을 숨겼다. 미군들은 추모비 앞에 둥그렇게 모여 한 부사관으로 부터 2002년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기시작했고 정확한 표정을 잡기 위해 카메라와 함께 추모비로 향했다. 주한 미군들은 모두 굳은 표정에 잠겼고 일부 장병은 눈시울을 붉혔다. 또 이들이 추모비를 정리하는 손길에는 효순·미선양을 애도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자 한 미군이 나에게로 다가와 "기자냐"며 물어왔다. 순간 기자라고 답하며 않될 것 같아 무조건 "I... can't speak... English..."라며 반벙어리처럼 더듬거리며 답했다. 당시 나는 왼쪽 얼굴 말초신경 마비로 인해 눈물이 흘러내리는 등 입이 돌아간 상태라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미군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았다. 사진 촬영이 끝난 나는 조심스레 미군들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미2사단 캠프 스탠리 소속으로 모두들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끝까지 미군들 옆에서 질문한 끝에 한 장병이 "말로만 듣던 사고현장과 추모비를 찾아 와 보니 당시 두 여중생의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한국 국민들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몸소 느끼게 됐다"며 "7년전 당시 미국에서 한국 국민들의 촛불시위와 미2사단 앞 등에서 시위하는 것을 TV를 통해 봤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또 "앞으로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희망한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특별기획,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승리의 길을 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승리의 역사를 가다’를 기획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근대사학계는 물론 뜨거운 이념논쟁까지 불러온‘건국 60주년 파동’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근ㆍ현대사에 대한 호기심 半, 지식욕구 半으로 틈틈이 관련자료를 찾고 전문가와 의견을 나눴다. 다행히 취재기자가 근무하는 천안은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등 관련 학자는 물론 풍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나의 질문에 귀찮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환대해줬다. 대화는 진지해졌고 관련서적과 논문이 쌓이면서 임시정부의 역사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기자로서의 욕심이 생겼다. 현지취재는 한국기자협회에서 2006년 1년간 중국연수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취재지원에 대한 주체적 역량이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과 지원시스템에 한 달이 넘는 장기취재와 체류비는 지방지가 자체 부담하기에 만만치 않은 관문이었다. 당시는 달러환율도 살인적으로 치솟는 상태였다. 여러 곳에 취재계획을 통해 지원을 요청했고 마침 천안의 김구재단에서 임시정부 90주년과 백범 서거 60주년 관련 시리즈기사라면 취재비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들은 자료지원에 참여해줬다. 다만, 김구재단의 이사장이 현역 정치인이란 점이 걸렸지만“기사내용에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선뜻 받아줘 부담을 줄여줬다. 중국에는 상하이 대신 항저우(杭州)로 입국해 첫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는 예견했던 것처럼 역시나였다. 하루하루가 트러블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입국하자마자 영상취재용 6㎜카메라를 압수당했고, 취재기간 내내 장비는 수시로 중국 관리와 군인들에게 빼앗겨 그때마다 필름을 되찾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되풀이됐다. 1차 취재는 2009년 1월3일부터 24일까지, 2차 취재는 2월 6일부터 15일까지 32일간 도시 간 이동거리(철로기준) 9400㎞, 지역 내 이동거리(운행기준) 2100㎞ 등 1만1500㎞ 구간에서 진행됐다. 하루 평균 359㎞씩 항일유적을 따라 이동하며 직접 보고 기록했다. 113개소의 항일유적도 확인했다. 확보된 자료사진은 1000여 장, 동영상은 1000분 분량이다. 광복군 OSS대원들의 낙하산 훈련지가 취재진에게 처음으로 확인돼 시리즈 제10회‘우리의 힘으로 광복을’편에서 공개됐다. 정부조사 일부 유적이 엉뚱한 곳임을 찾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돌보는 이 조차 없어 폐허로 방치돼 쓰레기장이 된 애국지사들의 묘역에서는 할 말을 잃고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보도와 함께 독립기념관은 창사 남목청에 관련자를 보내고, 쿤밍 육군강무당에 연락을 취하는 등 빠른 대처를 했지만, 충칭의 애국지사 묘역과 광복군 사령부에 대한 문제는 예산문제로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90년 전. 자주민임을 선언한 3.1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거쳤다. 이는 미래 통일조국의 법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취재기자가 이번 취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끝으로 이번 취재에 도움을 준 김구재단 김호연 이사장과 독립운동사연구소 김용달 수석연구위원을 비롯한 이동언, 조범래, 이명화 연구위원들, 그리고 빈자리를 말없이 메워준 천안본부 동료 기자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
부도덕한 신부 GTB강원민방
강원민방 후기 조기현 기자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 A신부가 수년간에 걸쳐 여신자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무작정 사실 확인에 나섰다. 당시 A신부가 근무했던 성당 수녀를 만나 오랜 설득 끝에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 여성들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여신자들의 동향을 알만한 당시 성당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한명씩 접촉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A신부와 여신자의 성관계를 목격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20여일에 걸친 추적 끝에,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여성들과 그들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어렵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사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한 여성이 모든 것을 털어 놓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어려운 시절 도움을 줬던 신부, 그녀가 신부에게 느낀 사랑, 신부가 찍었다는 알몸 사진과 그것을 미끼로 이어졌던 성폭행, 도망갈 때마다 자신을 찾아왔던 신부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매처럼 지내던 다른 여신자들과의 성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배신감 등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백들이 이어졌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제복을 입고 있는 A신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 뒤 이틀사이 2명의 여성들이 더 A신부와의 성관계 사실을 확인해 줬다.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고, 천주교가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천주교 관계자들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하지만 취재팀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A신부는 취재팀에게 먼저 연락을 해 잘못을 시인했다. 다음날 밤, 진실의 힘은 전파를 타고 성역을 넘었다. 진실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고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신 이이표 국장님을 비롯한 선배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고단한 취재 과정에서 힘들어 할 때, 항상 곁에서 중심을 잡아주신 최백진 선배께 특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의를 위해 휘두를 수 있는 칼과 약자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라는 것을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기자가 휘두르는 펜의 힘을 몸으로 느끼는 계기가 됐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진중함이 몸에 배도록 노력하며 기자의 길을 걸어갈 것을 약속한다. GTB 강원민방 보도국 식구라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해부,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한겨레신문
한겨레 권오성 기자 ‘해부,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획에서 다뤘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명자료를 보내왔다. 대부분 해명자료가 그렇듯 이 해명자료 역시 ‘사정을 알고 보면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잘못된 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년 하반기는 당시 도정 최대 현안사업들의 국가예산 확보가 집중되던 시기. 이 사업들은 우리 자치단체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핵심사업으로… 우리 자치단체에서는 지휘부는 물론 관련 실무부서의 공무원들까지 국회, 중앙부처, 전문가 등을 전방위적으로 방문하여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해왔음.’ ‘결과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동안의 과정에서 도청 지휘부와 실무 공무원들에게 업무부담과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 특히, 많은 공무원들이 공식 경비를 넘어 개인적인 사비를 털어 업무를 추진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해명자료는 업무추진비가 국회, 중앙부처 관계자들에게 지급된 것처럼 잘못 기재되었을 뿐 사실은 이토록 고생한 공무원에게 격려금 조로 지급됐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해명자료는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파견된 공무원들은 ‘생 고생’을 했을 것이다. ‘우리 고장’을 포함한 시·도의 발전을 위해 발에 땀나게 뛰던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한 대학교수(행정학)는 “업무추진비는 투명성과 함께 생산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봐야죠. 도지사가 사리사욕을 위해서 업무추진비로 부인 자동차를 산다던가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도정 사업을 위해 중앙부처 공무원과 만나 협조 요청을 하고 밥 먹는 건 지자체를 위해 쓸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사업을 위해 지방 공무원들이 ‘자기 돈’ 써가며 서울에 올라와 과중한 업무를 뛰고, 업무추진비를 편법적으로 끌어다 메꾸게 만드는 한국의 상황이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 일부는 국회나 중앙부처 관계자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으리라는 의심도 가시지 않는다. 이쯤되니‘부적절한 업무추진비’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보다 중요한 어떤 문제의 '현상'이 아닐까 싶다. 지자체의 업무추진비는 지금 지방자치제의 수준이라는 윗물에서 흘러 내려와 고인 아랫물의 현실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결국 우리 고장 위한 좋은 일’이라는 명분으로 현장 공무원들에게 위법·편법적인 쓰임을 반복해서 체험하게 하는 제도 역시 문제다. 정말 필요한 예산이라면 업무추진비가 아니라 사업 예산에 편성해 두는 게 옳다. 아무튼 부족한 기획에 큰 상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기자상 지원 마감 시간에 부랴부랴 넣은 것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원해 보라”며 독려해 주신 편집국의 선배들께 감사 드린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못 받았을 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앞서 기획을 진행하다가 자리를 옮기면서 믿고 맡겨준 송경화 기자, 함께 고생한 김민경 기자, 그리고 더 고생하신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 분들께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