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K - 폐기물 계란이 과자에 빵에 KBS
(294회)취재파일K - 폐기물 계란이 과자에 빵에
KBS 양성모
예나 지금이나 언론사에게 제보는 중요하다. 정보공개 청구가 간편해졌고, 데이터저널리즘이 발전하고 있지만 전화나 인터넷, 혹은 SNS로 접수되는 제보는 여전히 취재의 단초를 제공한다. 특히 각종 영상 기기가 일반화 하면서 방송사가 제보에 의존하는 경향은 두드러지고 있다.
본 기사의 제보는 KBS의 통합 제보시스템에 접수됐다. KBS뉴스 홈페이지를 이용해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제목부터 이상했다. '○○ 공장의 문제'. 본문을 읽었지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문구마다 특수문자가 가득했다. '★★★에 있는 공장에서 ♡♡♡을 이용해 ●●●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식이었다.
내가 제보 게시판에서 이 글을 읽은 건 접수되고 사흘이 지나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흘 동안 암호 같은 이 글을 읽고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자는 없었다. '뭐 이런 제보가 있나' 하면서 넘기려던 차에, 마지막 문장이 눈에 띄었다. '오랜 기간 고민했습니다.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빨리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했지만 제보자는 한사코 말하길 거부했다. 직접 만나기 전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보자를 만난 건 다음날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그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2년에 걸쳐 찍은 5기가 분량의 동영상과 사진이었다.
핵심은, 계란 가공과정에서 나오는 폐수를 다시 공장 내부로 끌어들여 정상 제품에 섞는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취재가 진행되면서 하나 둘씩 사실이 확인됐다.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방송이 나간 뒤 사내에선 내가 VJ를 잠입시켜 공장 내부를 촬영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동영상은 생생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말하지만 이 경우는 '운구기일(運九技一)'이다. 일(一)을 채운 건 수수께끼 같은 제보의 마지막 문구를 눈여겨본 호기심이었다. 고민 끝에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기자를 끝까지 믿어준 제보자에게 감사한다. 이 상은 그가 받아야 마땅하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언론 외압 발언 보도 KBS
(294회)이완구 총리 후보자, 언론 외압 발언 보도
KBS 윤 진
* 기자와 정치인-불가근 불가원 *
특종상 신청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한참 생각했다. 문제의 발언을 녹음한 사람도 아니고, 발언이 나온 점심 식사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녹음 파일 보도로, 본의 아니게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후배 기자도 떠올랐다. 그래도, 기사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받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기사에 대한 정치적 공격, 취재 과정에 대한 의도적인 폄훼가 있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 기자상 신청과 평가 과정을 통해, ‘할 수 있는’ 얘기는 하고 싶었다.
근거 없는 소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경협 의원실에서 KBS에 녹음 파일을 먼저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었다. 2월6일, 내 발로 찾아가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처음부터 녹음 파일의 존재를 안 건 아니었다. 청문회 취재를 하다 녹음 파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한나절에 걸친 설득 끝에 녹음 파일 전체를 건네 받을 수 있었다. 무슨 얘기가 오간 건지, 발언의 전후 맥락은 무엇이었는지,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전화로, 문자로, 직접 찾아가 읍소를 하며 거듭 거듭 요청했다.
기자에게 정치인이란 어떤 대상일까? 정치인에게 기자는 어떤 대상일까? 이 기사를 취재하고 제작할 당시, 또 기사가 나간 이후 불어오는 후폭풍 속에서 끊임없이 자문했던 질문이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국민 앞에서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할 의무, 후보자와 기자 사이의 인간적 관계, 두 사안이 명확히 대척점에 서게 됐을 때,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 기사는 1분 20초에 불과했지만, 번뇌의 시간은 길었다.
1분20초 리포트가 나간 뒤, 예상했듯 후폭풍이 거셌다. 내 마음 속에도 폭풍이 일었다. 녹음파일을 얻고, 리포트를 만들고, 뉴스가 나갈 때까지는 오로지 있는 그대로 실수 없이 보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상 뉴스가 나간 뒤, 미처 생각 못 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특히, 어제까지 웃으며 만났던 취재원에게 오늘은 칼을 들이밀고 있구나,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 기사가, 언론의 자유가 왜 지켜야 할 가치인 건지, 우리 사회가 진지한 성찰을 해 보는 계기가 됐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인천 깡통주택 사기사건 한겨레신문
(294회)인천 깡통주택 사기사건
한겨레 윤형중
처음엔 새로 알게된 통계 하나를 보도할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소액임차인을 상대로 한 배당이의 소송의 추이입니다. 딱 봐도 용어부터 어렵습니다. 하지만 꽤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부동산 자산이 경매로 처분되고 나서 낙찰금이 채권자들 사이에서 배분이 되는데, 그 배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배당이의 소송'입니다. 그런데 인천지역에선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우리의 임대차보호법에 소액임차인에게 보장하는 최우선변제권을 믿고 있던 소액임차인들이 불리한 판결을 받고서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내쫓기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깡통주택인줄 알고 입주하면 최우선변제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천지방법원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은 이런 비슷한 유형의 재판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인천 지역의 배당이의 소송이 다른 지역에 비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를 건네주며 사건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분명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를 어떻게 보도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생생한 사례를 함께 제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싶었습니다. 제보자인 부장판사에게 관련 사례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판사들이 관심을 가진 기폭제 역할을 했던 한 사건을 일러주었습니다.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재판 기일에 맞춰 법정을 찾았습니다.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정보를 일러주었습니다. 비극적 사건을 겪은, 문제의 '깡통주택' 주소였습니다.
처음부터 '사기 사건'을 취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례를 깊이 있게 취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고, 비슷한 유형의 피해자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수십장 뽑아서 분석하고, 법원 홈페이지에서 사건 정보와 관련 판례 분석 등을 살펴보니 이 사례의 이면엔 뿌리 깊은 부동산 복마전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수사기관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한 이들의 사기행각과 위법여부를 파악하고자 현장을 뛰고 사람을 찾고, 만나러 다녔습니다. 다행히도 첫 기사가 나간 직후 검찰은 바로 수사를 착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검찰 수사의 결과는 그로부터 3개월 뒤에 나왔지만, 그 사이에도 기사를 보고서 문의와 제보를 해오는 독자들은 수십명에 달했습니다. 생각보다 부동산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이번 취재는 전월세를 전전하며 임대차계약서를 여러번 작성한 기자의 개인적인 경험도 꽤나 도움이 됐습니다.
충분히 취재할 시간을 허락하고, 취재에 여러 조언을 해주신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와 남종영 토요판팀장,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