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9편
‘성완종 최후의 인터뷰’ 및 ‘성완종 리스트’ 파…
(296회) ‘성완종 최후의 인터뷰’ 및 ‘성완종 리스트’ 파문
경향신문 정환보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인터뷰 상대로 경향신문을 택했다.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나, 나중에 아실 테니까. 잘 좀 다뤄주십시오. 깨끗한 정부, 진짜 박근혜 대통령이 깨끗한 사람을 앞으로 내세워서 깨끗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잘 좀 다뤄주십시오.” 이 부탁을 제대로 들어줄 언론사로 경향신문을 지목한 것이었다.
삶의 마지막 길을 오르며 그가 내려다 놓은 팩트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내용 자체의 중량감도 압도적이었지만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또한 만만찮게 무거운 주제였다.
그로부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 편집국 간부들은 시시각각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최후의 인터뷰’ 대상으로 경향신문이 지목된 순간부터 기사 작성과 보도, 후속 보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경향신문 편집국은 물론 전 사원들이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그랬기에 결과물이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첫 기사가 나간 다음날 모든 신문이 1면 톱 기사와 사설 첫머리로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했다. 그러는 사이 경향신문 기자들은 성 회장 증언의 전후 정황 확인과 당사자 해명을 듣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1차, 2차, 3차…. 보도 횟수가 더해갈수록 ‘리스트’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말바꾸기’를 거듭했다. 권력자들도 초라하고 궁색했다. ‘일인지상 만인지하’라는 국무총리는 사실상 ‘최단명’이라는 불명예만 기록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뿌리 깊은 ‘돈과 정치권력’의 공생 관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결별을 고할지, 아니면 ‘면죄부’를 받을지는 검찰 손에 달려 있다. 아니 어쩌면 망인(亡人)이 숙제를 남기고 떠난 우리 언론 모두의 몫인지 모른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막말 e메일 경향신문
(296회)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막말 e메일
경향신문 홍재원 기자
재벌그룹이 대학을 인수하면 어떻게 될까.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e메일 내용이 이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3월,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긴급토론회’를 열겠다고 하자 “그들(반대파 교수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적어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보냈다.
“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는 대목에서 이같이 섬뜩한 막말이 나온 배경을 알 수 있다. 대학에 돈을 냈으니 ‘총수’로서 마음대로 하는게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그는 “(교수들을) 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지, (보직교수) 여러분은 아직도 그들을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총수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학 교수는 악질 노조며, 이들의 목을 가장 고통스럽게 쳐야 마땅하다는 생각. 그의 ‘민낯’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박 전 이사장은 보도가 나간 날 곧바로 모든 직을 버렸다. 대학 이사장 자리 뿐 아니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도 물러났다. 후속 기사를 고민하던 그 시각, 박 전 이사장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박 전 이사장의 e메일 내용 일부를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학내 ‘침묵’을 이해하는 일이다. 교수들과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심지어 e메일을 받은 총장과 교수들도 그동안 아무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적잖은 학내 구성원들은 생각보다 큰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재벌이 가진 ‘돈의 힘’에 관한 기대 말이다. 대학은 침묵하며 기대하는 것 같다.
보잘 것 없는 노력을 격려해준 기자협회와, 늘 지원해주는 경향신문 선배·동료들에게 무한히 감사드린다.
성완종 다이어리 JTBC
(296회) 성완종 다이어리
JTBC 조택수 기자
기자들에게 법조는 어려운 출입처 중 하나다. 알려고 하는 사람들과 알려주지 않으려는, 아니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부대끼기 때문이다. ‘수사 보안’이 명분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게 된다.
이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그리고 이어지는 정관계 로비 의혹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뒤늦게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녹취록이 공개되고 난 뒤 여론의 눈치를 살핀 결과다. 역시 철통 보안이었다. 이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렇다고 검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부에서 시청자는 고려하지 않은 무의미한 특종 경쟁이라고 비판하는 취재경쟁을 다시 해야 했다. 성 전 회장이 생전에 누구를 만나 어떤 로비를 했는지, 본인이 돈을 줬다고 한 사람들은 왜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야 했다.
특별취재팀이 꾸려졌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은 검찰의 입, 그리고 경남기업 주변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리고 JTBC 특별취재팀의 손에 성 전 회장의 일정표가 들어왔다.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면식이 있는 정도라고 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실장, 인연이 없다던 이완구 전 총리, 잘 모른다던 홍문종 의원 등과의 만남이 줄줄이 기록돼 있었다. 선물을 받은 리스트까지 있었다.
뿐만 아니다. 청와대 전·현직 실세, 금융권 인사들도 예외 없이 일정표에 올라 있었다. 이 보도로 소극적이던 검찰의 수사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사에 중요한 단서와 동인을 제공한 것이다. 특별취재팀은 이후에도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 수사와 관련해 결정적인 보도를 다수 내놓으며 검찰을 견제하고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수사도 취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동여맨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뒤바뀌는 수사는 없는지, 그리고 시청자들이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없는지를 찾기 위해서다.
심층진단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앙일보
(296회) 심층진단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앙일보 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이지상 기자
“뻔한 정치 기획 기사에서 탈피해보자”
지난 3월 기획팀이 모인 자리에서 6명이 머리를 맞대 내린 첫 결론이었습니다. 때마다 쓰던 정치 기획을 하나 더 보탠다면 국민들의 ‘정치 혐오’만 심해질 거란 생각에서였습니다. 공허한 기획보단 대한민국 국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자며 호기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뻔함’을 탈피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이미 국회를 진단하는 기획은 차고 넘쳤습니다. 6명 모두 기획이 끝날 때까지 ‘뻔함’을 탈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혀여만 했습니다. 김경희·안효성 기자는 기사에 맞는 현장을 찾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들고 논과 밭을 찾아다녔고, 현일훈 기자는 ‘국민정서법’ 취재를 위해 해당 법안은 물론 관련된 모든 속기록을 찾아봤습니다.
강민석 팀장과 강태화 기자는 기획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디어 발제와 구성, 취재 및 기사 작성까지 도맡아 진행한 기획팀의 큰 기둥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 ‘하나라도 더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달 가까이 계속된 주7일 근무 및 야근을 견뎠습니다. 중앙일보 생활정치지수(JPI)의 탄생은 한국정치학회와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보도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많은 응원과 동시에 일부 국회의원들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경쟁 일간지 사설에 우리의 기사가 인용되고, 타사에서 우리 기사 의도를 분석하는 해설 보도를 내놓는 유례없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도는 아직 미완입니다. 본지 기획보도 하나만으로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대한민국 국회’는 움직이기 힘든 거대 공룡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언론과 함께 우리의 기사가 현실을 바꾸는 데 조금의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사례를 제보해준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독도 밀약설을 추적하다 KBS
(296회) 독도 밀약설을 추적하다
KBS 이재석 기자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앞둔 1965년 1월, 한국과 일본 정부가 독도를 둘러싸고 은밀한 합의를 했다는 게 이른바 ‘독도밀약’이다. ‘밀약’이라는 명명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어찌됐건 그것이 말 그대로 몰래 맺은 약속이라면, 더군다나 한·일 두 나라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면, 그 반박 근거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독도 밀약설이 내용의 중대성에 비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당사자들의 증언만 있었을 뿐 일종의 ‘야사’ 또는 ‘설’로만 취급돼 온 것이다.
취재진의 ‘추적’은 어떤 특정인의 흔적을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 외무성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사무관이 남긴 방대한 기록에 접근했고, 거기에 독도밀약의 실체를 사실상 입증해 주는 중요 문서가 담겨 있다는 걸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독도 밀약설 가운데 잘못 알려진 부분을 교정할 수 있었고, 밀약의 내용이 담긴 공문서의 행방까지도 특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 또 다른 수확이었다.
50년 전 일이다 보니 당사자들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되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직·간접적 관여자는 김종필 전 총리뿐이다. 하지만 이 노회한 정객이 최근 전하고 있는 회고는 별다른 기대를 갖지 못하게 한다. ‘방송쟁이’가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사료를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다른 기회를 통해 방송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사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기자들의 관심을 덜 받는 역사 분야에서 잘했든 못했든 어찌됐건 무언가를 생산했다는 점을 격려하고자 심사위원들이 상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감사드린다.
영종 난민센터 아동들 다문화 ‘한누리학교’ 간다…
(296회) 영종 난민센터 아동들 다문화 ‘한누리학교’ 간다
경기일보 김 민 기자
경기일보가 보도한 3월18일자 ‘배움의 꿈마저 잃어야 하나요?…방치된 난민아동들의 ‘눈물’’ 기사부터 4월28일자 ‘영종 난민센터 아동들 다문화 ‘한누리학교’ 간다’ 기사에 이르기까지 9차례에 걸쳐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내 학년기 난민신청자(난민 아동)의 교육 문제를 다루면서 느꼈던 부담감은 매우 컸다.
문제 제기를 한 이후부터 40여일이 지나도록 난민 아동의 교육 문제는 좀처럼 해결 국면을 맞지 못한 채 답보 상태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난민 아동의 한누리학교 취학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의 많은 교육계 인사가 경기일보와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준 덕택이다. 난민 아동의 영종초 취학이 영종 지역주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높아 다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 김중훈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한누리학교 취학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한 심창용 경인교대 교수와 노현경 전 인천시의회 교육위원 등은 경기일보의 보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 됐다.
취재 과정에서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지역주민 반대로 학년기 난민신청자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해외 사례를 찾아봤으나 전혀 찾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인천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내 학년기 난민신청자의 교육 문제는 경기일보의 꾸준한 취재·보도와 교육계 전문가 및 관계기관의 협조 속에 한누리학교 취학이라는 해결책을 찾으며 결국 일단락됐다. 또한,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가 소재한 인천의 지역언론으로서 경기일보가 난민인권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취재계획을 세울 때부터 보도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경기일보 선배들과 동료 기자들에게 수상의 영예를 돌리고 싶다.
호남선 KTX 차체 파손 ‘구멍난 안전’
(296회) 호남선 KTX 차체 파손 ‘구멍난 안전’
광주일보 백희준 기자
‘청테이프 KTX’ 사고 발생 즉시에는 사안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없었다. 열차가 출발한 지 16분만에 정차를 한 뒤 최고 시속 300㎞를 내는 열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운행 지연에 대한 안내 방송은 수차례 이어졌지만 제 속도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종착역에 도달하기 바로 전 “테이프를 붙이는 조치를 취했다”는 승무원의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긴장감이 돌았다. 열차에서 내려 파손된 부분을 확인해 보니 8조원의 예산을 들였다는 호남선 KTX 차체에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를 포착한 사진과 함께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KTX에는 청테이프를 붙이고 달리니 비행기에는 딱풀도 바를 기세”라며 조롱 섞인 반응이 잇따랐다. 400여 명이 탄 열차에 대한 안전 조치가 고작 청테이프 땜질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나라 ‘안전 불감증’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됐다.
호남선 KTX는 기간산업일 뿐 아니라 호남지역 경제에 중대한 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대한 지역민의 기대 또한 크다. KTX는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앞으로도 철도 안전 관리의 허점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
까마득한 선배가 “그 보도는 네가 ‘올챙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이번 수상을 통해 ‘초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게 기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들어왔다. 수습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뒤의 수상이라 부담이 크다. 타성에 젖지 않고 사건의 원인과 내막을 파헤치라는 응원과 채찍으로 이번 수상을 받아들이겠다.
시각장애인들 길바닥 언어를 잃다 한국일보
(296회) 시각장애인들 길바닥 언어를 잃다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도로 위 교통 표지판이 하나 같이 흐릿하거나 잘못된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면 운전자에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정표만을 믿고 가는 초행길이라면 더더욱 큰 일이다.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에게 길 바닥의 유도블록은 곧 이정표다. 보통 일직선 모양은 ‘이 방향대로 진행’을, 동그라미 여러 개는 ‘방향이 바뀌거나 갈라짐, 또는 전방에 장애물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서울 도심 거리에 설치된 이 시각장애인용 이정표 상당수가 엉터리다. 유도블록을 따라 걸어보면 꼭 필요한 곳에는 없거나 블록 모양이 갖는 의미를 무시한 채 주먹구구로 설치한 곳이 적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비장애인의 눈높이로 설치하고 관리해온 까닭에 맞춤법부터 방향 지시까지 엉망인 경우가 허다하다.
명동의 사정은 경기 고양시의 경우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구조상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중앙차로 버스정류장 10여 곳에서 유도블록 수백 개가 뜯기거나 깨져 있었다. “이미 파악은 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당장 교체가 어렵다”는 시청 관계자의 뻔뻔한 해명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 장애인 정책의 민낯 그 자체였다.
감격스러운 수상 소식에 잊고 있던 숙제가 떠올랐다. “기사와 함께 올려주신 동영상은 시각장애인들이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주시어 음성 멘트를 넣어 주십사…”
보도 직후 배달된 독자 편지는 나 역시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문제의 동영상 수정작업은 여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목청 높여가며‘장애인에 대한 배려’운운하더니 그새 유도블록 따위 관심도 없는 대다수 비장애인 중 하나로 돌아간 건 아닌지, 부끄러운 고백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한다.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아이들의 방’ 오마이…
(296회)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아이들의 방’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사회부 기자로 배치된 지 1년8개월 중 1년 동안 세월호 이슈를 취재했다. 참사 발생 후 희생자 수가 늘어날 때마다 임시분향소 안에 차곡차곡 채워지던 영정사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희생자 부모들이 아이들의 영정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소리가 여전히 귀에 들린다. 안주현, 오영석, 유예은…. 이젠 아이들 이름과 얼굴을 외울 정도다.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데에는 분명 언론의 잘못이 있었다. ‘언론이 세월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유족 산하 단체인 ‘기억저장소’가 희생자들의 방과 생전 기록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산과 서울을 오가며 유족과 기억저장소, 참여 사진가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 기록을 온라인에 실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사진부와 그래픽, 개발팀 선배들과 힘을 합쳐 온라인에 가장 최적화된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를 만들고자 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짧은 메모 형태의 기록을 받아 읽기 쉬운 문장으로 다듬었고, 희생 학생들의 방 사진을 들여다보며 특성을 파악했다. 숫자로만 접했던 수백 명 희생자들이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04명의 빈 방이 생겼고, 304개의 꿈이 사라졌다”는 전시회 설명글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참혹한 사실이다.
그래서 상을 받고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참사 초기,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내게 “제 딸 찾으면 인터뷰할게요”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직도 그 딸은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자 허다윤 양의 아버지를 언젠가 인터뷰하는 날이 올까. 기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일 수 있지만, 유족들을 취재하면서 가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을 취재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좋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