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8편
대입 부정 배후에 ‘대치동 브로커’ 있다 중앙일보
대입 부정 배후에 ‘대치동 브로커’ 있다
-중앙일보 선데이국 강홍준 기자
2017년 11월 17일 익명의 제보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서울 강남에서 활동하는 입시 브로커가 수천만원을 받고 장애인증명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학생들을 장애인특별전형을 통해 부정입학시켰다는 내용이었다. 맨 마지막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장애인이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뺐었으니 정유라 입시보다 더 악질적이라고 생각해요.” 필자는 ‘아무래도 그렇지 어떻게 더 악질적일 수 있나’ 라고 생각했다. 장애인특별전형은 농어촌특별전형 등과 함께 사회배려자 전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정원외 전형이다.
제보자를 직접 만나 해당 학교와 부정입학 학생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놀라운 것은 장애인증명서라는 공문서가 위조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어 대학을 직접 찾아가 사실 확인 절차를 밟았다. 대학은 ‘학생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한 대학은 아예 재학 여부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직접 학생을 찾아 학과 사무실이나 강의실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재학 여부가 확인된 이후에도 문제는 또 있었다. 대학은 입시 서류 위조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으며, 공개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교육부는 기자의 요청에 따라 전국 대학의 장애인특별전형 관련 서류 위조 여부를 조사했다. 이처럼 조사가 시작되자 대학이 취재에 협조했다. 위조된 증명서 서류를 제공해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를 원본과 대조하기 위해 위조 서류의 직인이 찍혀 있는 구청 사회복지과를 찾아가 어떻게 위조가 가능했는지 취재했다. 공문서가 위조될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는 멘트도 따냈다. 또한 대치동 학원가를 직접 돌며 부정입학 학생 배후엔 입시브로커 Y씨와 L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자는 입시 브로커가 도주할 경우 부정입학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을 수 있어 경찰청 특수수사과와도 공조했다.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는 12월 24일자(’대입 부정 배후에 대치동 입시브로커 있다, 위변조 쉬운 장애인 증명서 별도 검증 안하는 점 파고들어) , 12월 31일자(장애인전형 부정입학생 수능시험도 부정 응시했다, 입시브로커 자신의 장애인 증명서에 학생 정보 위조) 연속으로 취재 결과를 1면과 3면에 보도했다. 31일자 기사에 나온 입시브로커 Y씨와 L씨는 한 학생 당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도 확인됐고, 이들은 한 달 뒤인 1월 24일 구속됐다.
공문서까지 위조해 대학을 보내는 브로커, 이들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건네는 학부모, 이렇게 얻은 입학증으로 대학생이 된 비장애인 학생.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대학에 가겠다는 건 탐욕일 뿐이다. 이런 부정입학, 오래전부터 있긴 했다. 과거엔 공문서까지 위조하진 않았지만 익숙한 모습이다. 정유라보다 더 악질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최초보도 및 후속보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최초보도 및 후속보도
-JTBC 경제산업부 전다빈 기자
밤 11시경 숙직실 문이 쾅쾅 울렸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사건사고랑은 거리가 먼 나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같이 철야를 서던 김장헌 카메라 기자와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들어서자 경비원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실랑이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다다르자 오열하다 쓰러진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도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부터 꺼내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는 중환자실 입구를 찍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려웠다. 숨을 거둔 아이의 아빠가 펑펑 울고 있었다. “우리 애는 건강했어요. 오전에 갔을 때만 해도 상태가 좋다고 했어요.” 아빠는 이 말을 반복했다. 다른 아빠한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애는 건강했어요...”
아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 아빠들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상황을 설명하러 나온 의료진은 아기들이 미숙아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주치의는 ‘죽을 수 있죠. 미숙아니까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유족들이 병원과 기나긴 싸움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이 사라지기 전 최대한 많이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울며 나오는 그들을 붙잡고 질문하고 듣고 영상을 찍었다. 사망 시각과 부모들에게 이를 알린 시각, 아기들이 있던 위치, 비슷한 증세로 장 수술을 받았던 생존 아이들 부모의 증언 등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회사로 돌아와 선배 이호진 기자와 온라인 속보를 보냈다. 빨리 소식이 알려져야 사건이 묻힐까 걱정하는 유족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 내내 그들은 대형병원에서 기사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내 취재의 부족한 점을 선배인 이한길 기자 그리고 정해성, 최하은, 강희연 기자가 채워 보도가 이어질 수 있었다.
다음날 유족에게서 고맙단 문자를 받았다. 기자 생활 2년 동안 ‘내가 과연 쓸모 있는 기자일까’, ‘나는 내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번 보도를 통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다. 취재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슬픔에 잠겨 있을 유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큰 슬픔이 닥친 와중에도 보도가 나갈 수 있게 도와준 유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교수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중·고생 자녀 ‘스펙’…
교수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중·고생 자녀 ‘스펙’ 쌓아주는 교수들
-국민일보 사회부 이재연 기자
취재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정말 교수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녀가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면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생사람 잡는 것은 아닌가.
확신 없이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자녀가 연구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다. 대부분은 단순 작업을 담당했다고 인정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평범한 고등학생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신 적이 있느냐”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준 교수는 없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이후 기사는 그 원칙이 다시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부모가 교수란 이유만으로 더 손쉽게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교육부 조사로 이런 악습이 뿌리 뽑히길 기대해본다.
혼자 쓸 수 없었던 기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지도해주신 캡과 단어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다듬어주신 사회부장, 차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격려와 조언 아끼지 않은 선배와 동기들, 민감한 기사에 기꺼이 자문해준 여러 학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진안 가위박물관 유물 구입 의혹 JTV전주방송
진안 가위박물관 유물 구입 의혹
-JTV전주방송 시사기획팀 하원호 기자
마이산에 ‘가위박물관’이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취재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진안군은 가위수집가로 알려진 이모 씨의 가위 113점을 4억4천만 원에 구입했다. 감정기관의 감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가위도 팔고 박물관 운영권도 챙겼다. 냄새가 났지만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취재를 접어야 할까 망설이던 순간 ‘빙고’. 수십년간 해외를 돌며 모았다던 진귀한 가위들이 사실은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판매됐을 줄이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린 구글링의 성과였다. 더 단단한 팩트가 필요했다. 영국의 판매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고객 정보라며 입을 열지 않았다. 간곡한 설득 끝에 ‘가위박물관을 만든다는 한국인 남자’에게 가위를 팔았다는 답을 얻었다. 가윗값도 턱없이 부풀렸다. 인터넷 쇼핑으로 수십, 수백만 원에 산 가위를 진안군에는 수백, 수천만원에 팔았다.
확실한 물증을 손에 쥐고 전방위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감정평가도 엉터리였다. 두 개의 감정기관이 내놓은 가위 113점의 감정가가 10원 한 장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속속 드러나자 성난 군민들은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 진안군은 뒤늦게 박물관 운영권을 박탈했다. 진안군수는 친분이 있던 이씨의 말만 듣고 수십억 예산을 들여 가위박물관을 지었다. 물론 타당성 조사도 했다. 하지만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진짜 ‘타당성’을 따지지 않는다. 허망한 숫자놀음으로 장단을 맞춘다. 결국 운영비조차 댈 수 없어 결국 세금을 쏟아 붓는다. 이런 악순환이 무한 반복된다. 이런 곳이 진안 가위박물관뿐일까.
이번 기사는 전주방송 심층취재팀의 첫 작품이다. 가뜩이나 일머리 부족한 나를 채근하지 않고 지켜봐 주신 국장님, 묵묵히 데일리 아이템을 채워준 JTV 보도국 식구들 덕분에 시간을 갖고 꼼꼼히 취재할 수 있었다. 이 상의 진짜 주인은 그들이다.
뇌성마비 오진 세가와병 경북일보
뇌성마비 오진 세가와병
-경북일보 사회부 배준수 기자
팔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가 없어서 10여 년을 누워 지내다 스스로 두 발로 걸은 스무 살 서수경(가명)씨의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이기도 하고 기적이기도 했습니다. 뇌성마비라는 잘못된 진단을 받을 당시 의학기술로는 ‘도파반응성 근육긴장 이상’(세가와병)이라는 병증을 쉽사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기구하기만 한 수경씨의 처지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이 사연을 보도한 뒤 수경씨와 같이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고통 속에 지내다 세가와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도파민 복용 두 시간 만에 우뚝 선 박예빈(33·여·가명)씨 가족도 제2, 3의 기적의 주인공이 나타나길 바라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수경씨와 예빈씨의 사연은 세가와병이 의심되는 뇌성마비 환자나 가족에게 한줄기 희망이 됐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1일 자 첫 보도가 나간 이후 전화와 이메일을 통한 환자와 가족의 문의가 빗발쳤고, 지금도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장도 전화인터뷰를 통해 "환자나 가족들이 뇌성마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이라는 영광은 용기를 내어 취재에 응해준 서수경씨와 박예빈씨에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의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는 직분으로 현장을 누비는 동안 이런 해피 바이러스를 세상에 계속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군의원 5년 만에”…일가족 3명 줄줄이 공무원 채…
“군의원 5년 만에”…일가족 3명 줄줄이 공무원 채용 의혹
-JTV전주방송 보도국 정원익 기자
“완주군의원이 된 지 5년 만에 며느리와 제부 그리고 아들까지 일가족 3명이 완주군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완주군의회 부의장 이향자 의원의 얘기였다. 청년실업이 극심한 요즘, 그야말로 대단한 취업률이었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취재가 시작되자 하나씩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011년 며느리가 가장 먼저 기간제 공무원으로 채용돼 7년째 근무 중이었다. 2년 뒤에는 여동생의 남편 즉 제부가, 다시 2년 뒤에는 아들이 잇따라 환경미화원으로 합격했다. 완주군 환경미화원에 대한 처우는 7급 공무원 수준으로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도 마치 계획된 듯 2년에 한 명씩 착착 자리를 꿰찼다.
첫 번째 목표로 삼은 이 의원의 아들이 채용비리의 핵심이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군수 내부 결재까지 받은 채용 조건을 뒤바꾸면서 이 의원 아들의 채용을 도왔다. 이 의원은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제부가 환경미화원에 채용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는 사실만 인정하며 버텼다.
첫 보도 뒤 곧바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한 달 뒤 완주군과 완주군의회를 압수수색하고, 담당 공무원과 이 의원을 불구속 입건한 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여론의 비난과 부의장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이 의원은 첫 보도 38일 만에 부의장직을 내려놓고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3선에 의장직을 노리던 여성 의원이 나락으로 떨어진 셈이다.
청경 5천만 원, 환경미화원 3천만 원 등 직종에 따라 뒷거래가 이뤄진다는 소문은 어느 자치단체나 무성하다. 특히 선거 캠프와 줄이 닿아있다면 언젠가는 비슷한 직종에 채용된다는 얘기가 많다. 이같은 채용 비리에 대한 취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정보력으로 제보를 전해주신 보도국장님을 비롯해 늘 가족같은 JTV 보도국선후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연중기획 시리즈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연중기획 시리즈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경인일보 사회부 김민재 기자
경인일보 2017년 연중기획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남한에 정착한 실향민의 분투기다. 또 영영 사라질지 모르는 옛 북한의 이야기를 실향민을 통해 끄집어낸 '기록'이기도 했다.
취재팀이 만난 17명의 피란민 할아버지, 할머니는 인천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전쟁 후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에서 실향민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의 일부분으로 자리했다. 연안부두 어시장 상인부터 소래포구 쌀장수, 부평 벽돌공장 인부, 강화 인삼밭 농부, 영흥도 염부, 미군부대 잡부, 인천시청 공무원까지. 인천의 어느 곳 하나 실향민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맨손으로 일궈낸 그들의 분투기는 인천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가 됐다.
전쟁 직후 20~30대 청년이었던 실향민들은 이제는 80대가 넘은 노인이 됐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기억 저편에서 사라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지면에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2017년 연중기획 주제를 '실향민'으로 정한 이유였다. 인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2010년 7천105명에서 2017년 4천919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실향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4개국 67일 추적기-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시사…
4개국 67일 추적기-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특별상)
-시사IN 국제팀 김영미 편집위원
취재의 시작은 단지 면피였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에 만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인 허영주, 허경주 자매가 우루과이로 취재 가달라는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떠난 취재였다. 한국에서 떠날 때 나는 이 기사를 위해 뭘 기획할 수도, 아니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한국 언론 중 누군가가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 8명의 흔적을 찾아 최선을 다했다고만 기록되어도 좋다는 “면피”에서 이 취재가 시작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 31일 우루과이에서 동쪽으로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한 광석운반선이다. 그 배에 있던 선원들 중 한국인 8명과 필리핀 선원 15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내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만난 지난 여름 그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실종자 재수색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이 조명받지 못한 이유는 사건직후 대선이라는 큰 정국에 잊혀졌다. 사고 해역이 너무도 먼 망망대해라 취재진 접근이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전 정권 말기 권력 공백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조차 흐지부지됐다.
나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프랑스 4개국을 두 달에 걸쳐 돌며 이 불운의 선박에 탔던 선원들의 행적을 좇았다. 생존한 필리핀 선원의 최초 증언을 확보했고 스텔라데이지호가 마지막으로 출발한 브라질의 항구를 찾았다. 그 취재 과정에서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의 생사를 확인하고 국가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은 국가가 그 역할을 하는가를 감시하는 의무를 가졌으며 나는 이 기본에 충실한 취재를 하고 싶었다.
긴 취재가 끝나 보도가 나가고 국가는 움직였다. 해양수산부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건지는 TF 팀이 꾸려지고 기술검토에 들어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블랙박스를 수거하는 것은 다시 사고 원인을 분석하여 재발할지 모르는 제2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 TF팀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이 같이 참여한다. 첫 미팅 후 가족 대책위 대표 허영주씨는 “처음으로 정부 관계자가 우리 가족들과 진심으로 회의를 한다고 느꼈다”고 기뻐했다. 나의 기사가 스텔라데이지호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와 언론이 최선을 다했다는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