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회2부 조성현
「‘잔혹한 납치시도’외 2건」
혜진, 예슬이 유괴 살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주말 오후였다. 제보 전화를 받던 후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느 아파트라고요?” 일산의 한 아파트 주민이라고만 밝힌 남자는 대화를 오래 끌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성추행범 제보를 기다리는 전단지가 붙어있다”는 전화 한 통은 그렇게 3월의 마지막 날을 뜨겁게 달군 보도의 단초를 제공했다.
피해 어린이의 부모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는 오로지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제보 전단을 만들기 위해 직접 관리사무소에서 복사한 CCTV를 공개했다. CCTV 화면을 확보한 뒤 SBS 보도국은 분주해졌다. 납치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충격적인 화면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끔찍한 범행을 고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CCTV 화면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리포트와, 경찰의 안이한 초동 대응을 파헤치는 리포트, 비슷한 상황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리포트에 6명의 기자가 매달렸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경찰이 단순 폭행으로 사건을 대충 넘기려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취재팀 전원이 치를 떨기도 했다.
파장은 컸다. 보도가 나간 직후 경찰은 부랴부랴 수사팀을 대폭 확대해 범인 검거에 나섰고, 유세 중이던 국회의원 후보들이 수사본부를 찾았다. 다음날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책한 대통령은 급기야 현장을 찾아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호통쳤다. 경찰청장이 사과하고 경찰은 납치 범죄에 신속 대응하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쏟아냈다.
범인은 곧 잡혔고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불안하다. 마침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학생들이 성인 음란물을 따라하다가 동료 학생들을 성폭행까지 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상급기관인 교육청은 이를 쉬쉬하려고 하고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를 할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다.
이번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 보도는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 기사였지만, 개인적으론 다시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은 뉴스다. 사회가 질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불안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아닐까. 딸이 받을 충격을 감수하고, CCTV 화면을 전국에 공개한 피해 어린이의 부모가 내린 결단이 소중한 촉매 역할을 했기를 기대해본다.
회차 심사평
제211회 전체 총평
제211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양영유(중앙일보 차장)
이명박 정부 출범 첫 달인 3월에는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내각도 새로 출범하고 4월 총선으로 정치권도 요동쳤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 211회 이달의 기자상(3월)에는 출품작이 41편으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새 정부나 총선, 정치권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일상적인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모두 5편이 뽑혔다. 취재보도 부문 2편,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1편, 지역취재보도부문 1편, 지역기획 방송부문 1편이다. 출품작은 많았으나 심사위원들의 무릎을 탁 치게 할만한 수작이나 사회적 파급력이 컸던 기사는 적었던 것이다. 특히 지방언론사들은 16편이나 신청해 '이달의 기자상'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취재보도 부문은 내일신문의 '국가무선 통합망(TRS사업) 문제점 보도'와 SBS의 '잔혹한 납치시도'가 선정됐다. 3조 5000억원이 들어가는 정부의 TRS사업은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언론이 쉽게 다루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2004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4년간 끈질기게 문제점을 파고든 기자정신이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통합망 시범사업의 부실과 1000억 원대의 무전기 납품 담합 문제를 세밀하게 보도해 감사원의 감사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도 많았다.
잔혹한 납치시도는 아동 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사회 이슈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어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를 폭행하는 생생한 장면이 담긴 CCTV를 단독 입수해 방영한 것은 일부 센세이셔널 한 측면도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반향이 컸고 부실한 경찰 수사의 문제점를 짚고, 아동폭력을 사회 아젠다로 만드는 방점을 찍었다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은 논의가 가장 뜨거웠다. 본선에 5편이 올라왔지만 조선일보의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낙점됐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자격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방송과 신문 제작을 동시에 한 새로운 시도(크로스미디어)를 했고, 작품의 완성도도 높다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문제는 생생한 영상이 작품의 핵심인데 특별취재팀에 참석한 방송제작팀의 PD와 AD를 제외하고 신문제작에 참여한 기자 두 명에게만 상을 주는 것이 합당하느냐는 것이었다. "특별상을 주자" "기자협회 회원이 아닌 사람에게 이달의 기자상을 주는 것은 안 된다" "기자 두 명만 상을 신청했으므로 두 명을 대상으로 하는 게 옳다" 등등-. 이달의 기자상 심사과정에서 이렇게 논의가 분분했던 사례도 드문 일이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밀착, 잠행취재와 현장성을 살린 영상미가 돋보였지만, 신문을 통해서도 충분하게 내용이 전달됐다는 점을 인정하자"고 뜻을 모았다. 기획보도 부분의 '치솟는 물가에 서민 시름'과 '휴대폰 유통가격의 비밀', '소방관이 쓰러진다.'등 세 작품은 아깝게 탈락했다.
지역취재 보도부문은 출품작은 16편이나 됐지만 내용이 진부하고 완성도도 떨어져 경인일보의 '도청과 통화하면 녹취 당한다' 한편만 살아남았다. 이 작품은 국가권력의 인권침해 고발이라는 난제를 도청 측의 조직적인 취재 거부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쓴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도청이 녹취 서버를 시범운영한 사실까지 취재했다는 호평을 받아 심사위원 대부분이 후한 점수를 줬다.
지역기획 방송부문에 뽑힌 대전CBS의 '그들도 우리이웃…철거민'은 방송에서도 짧은 분량을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잘 다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철거민 문제는 그동안 여러 지역에서 다뤘던 내용으로 새로운 보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철거민은 우리이웃의 모든 문제로 특히 무분별한 개발사업이 도시빈민만 양산하고, 일부 공무원들의 투기대상으로까지 악용되는 실상을 잘 짚었다는 점에서 수상작이 됐다.
기획보도 방송부문과 지역기획 신문통신부문, 전문보도부문은 아쉽게도 수상작이 나오지 않았다. 취재보도 방송부문은 '환자 울리는 약값, 한국은 '봉이다(SBS)'와 '끝나지 않은 고통, 어린이 유괴 살해(CBS)' 두 편이 출품됐으나 내용이 평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보도 부문은 사진 세편과 코리아타임스의 외국인교수협회 추진 기사가 쓴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