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213회) 다민족 다문화 시리즈 / 매일신문
<취재후기>
“세상은 변했는데, 사람(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1. 경북의 한 농촌. 20대 후반의 베트남에서 온 신부가 국수를 말아 머리에 이고는 총총걸음으로 들녘으로 향한다. 그녀의 등에는 젖먹이가 업혀있다.
#2. 대구의 한 염색공장. 시커먼 피부의 스리랑카 노동자가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염료에 천을 밀어 넣고 있다. 공장에는 중국에서 온 동료까지 5명의 외국인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3. 대구의 한복판인 동성로. 무리를 지은 외국인이 노점 리어카의 옷을 살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건네며 한 벌씩 옷을 고른 뒤 셈을 치른다.
2008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농촌에는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들로, 도시에는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그들의 자녀들이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뛰놀며 공부하고 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 그 속에 한 발짝만 발을 내밀면, 잔혹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못사는 나라에서 시집왔다는 것으로 우리는 때리고 욕을 하며, 멸시의 눈길을 보낸다. 마치 노예를 부리듯 그들이 도망이라도 갈까봐 감시하고, 주위에 울타리를 쳐버린다.
2008년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취재팀은 우리와 함께 살면서도 교집합을 이룰 수 없는 외국인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중국·고려인동포, 새터민, 화교 등과 더 나아가 그들의 2세의 삶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다민족, 다문화’ 시리즈는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있는 ‘단일민족’의 자부심(?)을 깨보자는 의기로 시작됐다.
우선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야 했다. 경북 문경에서 만난20세의 베트남 신부는 만삭의 몸을 하고선 취재진에게 “베트남 음식이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상담소에서 만난 30대의 베트남 여성은 서툰 한국어로 연신 “도와주세요”라고 울먹였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우리의 편견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다문화정책 역시 우리의 시각과 입장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낙담만 할 수는 없었다. 현실만 보여주고, 또 그렇게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만큼 ‘다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개선과 대안이 절실해보였다.
취재진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 일찍이 다민족, 다문화 정책을 진행해온 유럽과 호주, 대만, 일본 등으로 날아가 그들이 펼치고 있는 정책의 장·단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자치단체와 머리를 맞대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시민사회단체의 모범 사례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한걸음씩 다가가는 법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자식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봐하는 걱정들로 취재가 쉽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은 만나기를 꺼리고 눈치를 봤다. 더 많은 사연을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 뒤로 그들이 당당한 시민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간 후 한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 “며느리가 도망칠까봐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 보내지 않았는데 생각이 잘못됐다”며 앞으로는 진짜 며느리처럼 대하겠다는 말을 취재진에게 들려줬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는 진행형이다. 이 할머니처럼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연다면 적어도 피부 빛이나 자라온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나’와 ‘너’를 구별하는 잣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회차 수상작 2008년 5월
제213회(2008년 5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