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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취재후기
(221회) 한상률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 헤럴드경제
몇년 전 일본 아사히신문을 찾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넓은 편집국에, 백발의 노(老)기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40대 중후반이면 현장을 떠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연식(?) 오래 되고, 인물 안 되고, 개인기까지 달리는 나같은 ‘선수’는 곤란할 때가 많다. “아니, 왕고참께서 어찌 취재를?”하며 애통(?)해하는 이들을 종종 목도하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태어나도 신문기자가 돼, 눈썹 휘날리며 현장을 누비고, 찰진 뉴스를 독자들에게 빠르게 전하고 싶으니 말이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이번 ‘그림로비 의혹’특종은 오랜 현장경험과, 이를 토대로 닦은 네트워크 때문임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보도의 출발은 새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내 찻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인사가 “전(前) 국세청장이 받은 그림이 화랑가에 나왔다는데 혹시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라 내용을 캐물었지만 그 인사는 더 이상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설(說)일 수도 있었으나 궁금함을 참지 못해 연신 전화통과 씨름했다. 그러나 휴일이라 진척이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1월12일 월요일 아침, 오전 6시반에 출근해 조간을 체크하던 중 ‘전군표 前 청장 뇌물성그림 매물로 나와’라는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그림을 매물로 내놓은 전 前 청장 부인과 수차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안됐다”는 대목에선 보다 진일보한 ‘팩트 확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파헤쳐보면 무언가 ‘똑 부러진 게’ 나올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이에 곧바로 그림이 매물로 나온 것으로 지목된 평창동 화랑가를 취재했고, 한 화랑주로부터 “문제의 그림을 보관 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를 통해 그림의 입수경위와 위탁자를 취재한 후, 기자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는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이미정씨)을 설득한 끝에 단독인터뷰를 하게 됐다. 이 씨는 “오늘 조간에 남편이 모 화랑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그림을 받은 것처럼 보도됐는데 정말 분통 터진다. 사실은 남편의 부하직원이었던 한상률 당시 차장이 ‘정적인 TK출신 인사를 제거해달라’며 건넨 것인데 말이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현직 국세청장이 인사청탁과 함께 상관에게 그림을 건넸다는 증언은 기자의 귀를 의심케 하는, 메가톤급 폭로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증언의 신빙성이 관건이었기에 그림을 받은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어떤 방식으로 건넸는지를 두번, 세번 체크했다. 그러자 이씨는 당시 상황을 아주 소상하고도 생생하게 털어놓았고, 이 내용은 1월12일 석간 헤럴드경제 1면과 3면에 단독보도되며 엄청난 파란을 몰고왔다.
‘그림로비’라는 반갑잖은 신조어를 탄생시킨 이번 사건은 요직을 둘러싸고 로비와 뇌물상납 의혹이 여전한 국세청의 부정적 면모가 또다시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에 많은 언론이 국세청의 환골탈퇴를 촉구했고, 감사원의 집중감사와 정부의 쇄신작업이 한창이다. 따라서 국세청은 더 이상 구두선이 아닌, 진정한 개혁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이영란/헤럴드경제 라이프스타일부 기자
이 회차 수상작 2009년 1월
제221회(2009년 1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