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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유독물 공장 지도 공개
취재후기
(280회)‘우리 동네 유독물 공장 지도’ 공개 / YTN
‘우리 동네 유독물 공장 지도’ 공개
YTN 함형건 기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우리는 왜 10년,20년 전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취재하고 일해야 하나?"
지난 여름 사내 후배들과 함께 처음 데이터 저널리즘 스터디를 하면서 꺼냈던 말이다. 제보나 외부 발표 자료에 주로 의존하는 취재 방식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사안을 더 넓고 더 깊게 추적하고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험해보는 게 우리의 관심사였다. 틈나는대로 공부하고 준비하다가 방송제작에 실제로 활용히게 된 데이터 저널리즘 도구들.
국내 언론계에 전혀 새로운 취재기법은 아니더라도 몇가지 특이한 방식을 거쳤다. 먼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데이터 분석 과정, 이를테면 지리정보시스템이나 사회관계망 분석을 가능하면 현장취재기자의 손으로 직접 수행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야 사내에 더 실질적인 역량과 경험이 축적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스터디 모임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그램 제작까지 전 과정이 기자들의 자발적인 흐름으로 진행됐다는 점도 특징적이었다. 20년 가까이 24시간 속보 중심으로 가동되온 뉴스 공장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제작이었지만 결국 보도국 틀을 벗어난 파일럿 프로그램 형식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문제를 주제로 삼은 건 과거 환경분야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 큰 피해가 나는 사고가 있어야 비로소 관심을 갖는 보도행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접근하면 사전예방성격의 실증적인 보도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어디에 얼마나 유독물 취급 사업장이 있고, 주변엔 어떤 시설이 있는가? 문제는 뭔가?
오랜 기간 학습했던 GIS를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매핑과 분석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전 단계인 공공 데이터를 원하는 형태로 정리하고 걸러내는 과정이었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 공개시스템에서 유독물 사업장만을 추려내 위치 정보 2800여개를 빼내고, 다시 각 사업장에서 보고한 유독물질 정보를 별도로 추출해 전체 데이터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별도로 입수한 지난 10년간의 화학사고 발생 내역과 위치정보도 수작업으로 정리해나갔다. 전국 어린이집 4만여 곳을 비롯한 보육시설과 교육시설의 데이터 중 위치정보가 불분명한 내용을 바로잡는 작업도 병행했다. GIS 전문소프트웨어 2가지로 교차 검증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해보였다. 전국 유독물 취급 사업장 2800여 개 반경 500m안에만 어린이집 1,558개가 위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도 수두룩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당시 당국이 공장 주변 1.4km를 위험반경으로 설정한 데 비춰 일단 유독물 공장 주변 500m는 최소한의 관심반경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사실상 유해화학물질 취급 공장 주변에 마음놓고 주거지와 교육시설을 세울 수 있게 방치하다시피한 허술한 법규가 문제였다.
현장 취재를 통해 공장 지대 주변의 학교와 주민들을 취재해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나아가 유독물 취급 사업장의 정보를 인터랙티브 지도로 만들어 인터넷 상에서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공장 위치와 500m, 1km 반경의 보육·교육 시설 뿐 아니라, 공장에서 취급하는 유독물질 내역, 유독물질 독성정보와 대응요령을 제공했다. 화학사고 150여 개 지점의 위치와 사고내역, 관련 동영상 보도 내용도 추가했다. 6만 여개 지점이 데이터 지도에 표현됐다.
보도가 나간 뒤, 정부보다 언론이 먼저 앞서 각 지역 주민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가공해 제공했다는 전문가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일단 정부가 올해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만들 예정인 화학물질 장외영향평가제도가 관건이다. 얼마나 구속력있고 효과적인 안전장치로 활용할지를 주민과 기업이 모두 고민해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제작과 보도를 하면서 새삼 느낀 건 협업의 중요성이다. 데이터 정리와 분석 뿐 아니라 실감나는 방송 전달을 위해서는 그래픽 제작에도 상당한 공력이 들어가야 했고, 현장 취재와 인터넷 데이터 지도 제작을 병행하면서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특히 유독물 공장 지도 제작은 컴퓨터 활용보도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수작업을 필요로 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국내 언론계에 미래의 대안적 취재기법으로 데이터저널리즘이 종종 거론되고 있지만, 국내 공공데이터 환경은 아직 열악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양질의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기엔 공공데이터의 양과 질이 미흡한 수준이다.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관심도 막연한 환상도 아닌 체계적인 지원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격상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종료됐지만, 성탄절을 비롯한 휴일도 반납하다시피하고 기획과 취재 제작에 묵묵히 땀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기사식당 뉴스전'제작진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회차 수상작 2013년 12월
제280회(2013년 12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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