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국정원이 사이버사령부에 심리전 지침 내렸다 한겨…
국정원이 사이버사령부에 심리전 지침 내렸다
한겨레신문 하어영 기자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 쌍둥이같은 두 사건을 바라보면서 둘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라는 의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취재 초기 국방부 당국자로부터 들었던 군 사이버사령부에 국정원 직원들이 수시로 출입한다는 말은 의심을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찾기 힘들었을 뿐입니다. 사이버사의 존재자체가 비밀인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과의 관계를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로 보였습니다.
자사 국장단의 배려로 국정원 취재를 1년 가까이 진행해온 사회부의 정환봉 기자와 팀을 이뤘습니다. 국정원을 취재하던 기자와 군 사이버사를 취재하던 기자가 만나면 당연히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는 주변 기대와 달리 3주정도는 사람을 만나는 작업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원초적인 취재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관계는 무엇일까. 무조건 사람을 많이(또는 자주) 만나자. 그것만 보고 달리자.
긴 기다림끝에 입질하는 찌를 바라보는 심정이었을까요. 진실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 있었지만, “국정원 직원이 사이버사령부에 지시내용을 건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익명의 취재원이니 복수로 확인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자고 정 기자와 서로 다짐했습니다. 협조요청이 과연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느냐 또한 더 들여다봐야할 대목이었습니다. 만나고 또 만나고…. 그렇게 2주정도를 더 묵혀 나온 보도가 “국정원이 사이버사령부에 심리전 지침 내렸다”입니다. 이 보도 뒤 개별로 존재하던 국정원, 군의 대선개입 의혹이 하나의 의혹으로 묶이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으로 프레임이 확장됐습니다. 특검 요구는 더 명분을 얻게 됐습니다.
그 사이 국정원 사건은 검찰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베일을 벗게 됐고, 사건이 조금씩 진실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품게 됐습니다. 하지만 군 수사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국방부장관의 지시를 받아 수사를 진행하던 조사본부는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정무적인 판단이 남았다”는 게 내부적인 이유였습니다. 조직 범죄로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국방부 내부에서 오가는 이견도 감지됐습니다. 목표는 다시 정해졌습니다.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정치개입이 개인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 활동이었음을 밝혀보자는 뜻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정보공개청구, 국회, 기존 취재원 등 가능한 모든 라인을 가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심리전단의 인원이 2배로 급증했다는 사실을 밝혀줄 자료에 접근하게 됐습니다. 군에서 조직 구성원을 두 배로 늘린 다는 것은, 특히 국방부장관 직할부대의 인원이 두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곳은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심리전단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기사가 “대선 두달전 사이버사 심리전단 인원 두배로 늘렸다”입니다.
결국 조사본부는 결국 심리전단 차원에서의 정치개입은 있었다는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정치개입은 있었으나 선거개입은 없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경찰 단속에 걸린 음주운전자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도 수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답답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것입니다. 취재는 멈추지 않습니다.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의심 아들 정…
청와대 행정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의심 아들 정보 유출 개입 보도
한겨레신문 서영지 기자
“영지야 기자회견 짧게 챙기고 서초구청으로 가라.”
11월 27일. 그날은 정확히 말하면 수습 4개월 째, 강남라인에 배치 받은 지 3일 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서초동에서 기자회견을 챙기고 있는데, 선배로부터 한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서초구청으로 달려갔습니다. 채동욱 혼외의심아들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이 사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서초구청에 모여 있는 기자들을 보고 그 무게를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소위 말하는 ‘뻗치기’를 하면서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다만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정보기관이 개입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따라붙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됐다는 정황을 파악하기까지 5일 동안 심장이 떨리고, 무너지는 순간이 반복됐습니다. 실수할까봐 안절부절못하는 ‘수습’에게 잘했다는 일진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고, “큰 사건이니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붙어보자”는 말에 욕심도 생겼습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이 글을 쓰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습을 뗀지 이제 한 달이 됐고, 좋은 선배를 만나 운 좋게 상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안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입니다. 국정원 정보관이 개인정보유출에 이루어진 서초구청과 강남교육지원청에 모두 개입된 사실이 포착됐지만, ‘윗선’을 밝히기 위해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 윗선이 밝혀질 때까지 지금처럼 묵묵하게 할 일을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24시팀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대문학 유신 언급 작품 연재 거부 연속 보도 경향…
현대문학 유신 언급 작품 연재 거부 연속 보도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문학과지성사, 1977)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말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한 울림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학이 억압의 정체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판관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억압의 주체가 돼버린 참담한 사건이 지난해에 벌어졌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은 지난해 9월호에 현직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을 실었다. ‘현대문학’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0년대에 쓴 수필 4편도 함께 수록했다. 최고 권력자 또는 그 측근들을 수신 대상으로 삼은 ‘박비어천가’임에 분명해 보였지만, 확증이 없었다. ‘현대문학’으로서는 ‘원로 문학평론가가 보내온 글을 실었을 뿐’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 입맛이 씁쓸했지만, 이 사건은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이것이 우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문학’ 측의 적극적 의지가 개입된 사건이었음이 드러난 것은 몇 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이었다.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예심이 그 계기였다. 심사를 위해 모인 젊은 문인들은 그 즈음 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던 소설가 이제하씨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말했다. ‘유신’과 ‘87년 민주화항쟁’이라는 단 두 단어 때문에 ‘현대문학’ 측이 이씨의 소설 연재를 거부했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또 ‘현대문학’ 9월호에 실린 이태동 교수의 글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한 비평가의 글에 대해 ‘현대문학’이 수정 요구를 했다는 얘기도 했다.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이제하씨·해당 비평가와 통화했다. 사실이었다.
보도의 규모를 이틀 연속 1면 기사로까지 키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베테랑 문학기자인 경향신문 한윤정 문화부장이 확보하고 있던 소설가 정찬씨의 이메일이었다. 정씨도 정치적 언급을 이유로 연재를 거부당했다. 그의 제보를 통해 소설가 서정인씨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것은 ㈜현대문학 오너인 양숙진 ‘현대문학’ 주간이었다. 이 모든 일이 문제의 9월호 발간을 전후한 시점에 벌어졌다.
양 주간은 문학을 사유화하고 문인들을 모욕했다. 경향신문 보도 후 일어난 젊은 문인들의 ‘현대문학’ 거부 선언, ‘현대문학상’ 수상 문인들의 수상 거부, ‘현대문학’ 주간과 편집위원들의 전원 사퇴는, 뒤늦긴 했지만 마땅하고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보도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윤정 부장의 두뇌와 손끝에서 이뤄졌다. 바이라인을 단 기자가 한 일은 일부에 불과하다. 문화부 선배들은 어리숙한 후배 기자를 시종일관 격려하고 다독여주었다. 부장을 포함한 문화부 선배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 어떤 좋은 기사도 혼자 힘으로 쓰여지는 법은 없으며 좋은 동료들과 좋은 매체의 합작품일 수밖에 없음을, 이제야 알겠다.
‘우리 동네 유독물 공장 지도’ 공개 YTN
‘우리 동네 유독물 공장 지도’ 공개
YTN 함형건 기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우리는 왜 10년,20년 전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취재하고 일해야 하나?"
지난 여름 사내 후배들과 함께 처음 데이터 저널리즘 스터디를 하면서 꺼냈던 말이다. 제보나 외부 발표 자료에 주로 의존하는 취재 방식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사안을 더 넓고 더 깊게 추적하고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험해보는 게 우리의 관심사였다. 틈나는대로 공부하고 준비하다가 방송제작에 실제로 활용히게 된 데이터 저널리즘 도구들.
국내 언론계에 전혀 새로운 취재기법은 아니더라도 몇가지 특이한 방식을 거쳤다. 먼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데이터 분석 과정, 이를테면 지리정보시스템이나 사회관계망 분석을 가능하면 현장취재기자의 손으로 직접 수행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야 사내에 더 실질적인 역량과 경험이 축적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스터디 모임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그램 제작까지 전 과정이 기자들의 자발적인 흐름으로 진행됐다는 점도 특징적이었다. 20년 가까이 24시간 속보 중심으로 가동되온 뉴스 공장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제작이었지만 결국 보도국 틀을 벗어난 파일럿 프로그램 형식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문제를 주제로 삼은 건 과거 환경분야를 취재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 큰 피해가 나는 사고가 있어야 비로소 관심을 갖는 보도행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접근하면 사전예방성격의 실증적인 보도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먼저 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어디에 얼마나 유독물 취급 사업장이 있고, 주변엔 어떤 시설이 있는가? 문제는 뭔가?
오랜 기간 학습했던 GIS를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매핑과 분석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전 단계인 공공 데이터를 원하는 형태로 정리하고 걸러내는 과정이었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 공개시스템에서 유독물 사업장만을 추려내 위치 정보 2800여개를 빼내고, 다시 각 사업장에서 보고한 유독물질 정보를 별도로 추출해 전체 데이터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별도로 입수한 지난 10년간의 화학사고 발생 내역과 위치정보도 수작업으로 정리해나갔다. 전국 어린이집 4만여 곳을 비롯한 보육시설과 교육시설의 데이터 중 위치정보가 불분명한 내용을 바로잡는 작업도 병행했다. GIS 전문소프트웨어 2가지로 교차 검증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해보였다. 전국 유독물 취급 사업장 2800여 개 반경 500m안에만 어린이집 1,558개가 위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도 수두룩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당시 당국이 공장 주변 1.4km를 위험반경으로 설정한 데 비춰 일단 유독물 공장 주변 500m는 최소한의 관심반경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사실상 유해화학물질 취급 공장 주변에 마음놓고 주거지와 교육시설을 세울 수 있게 방치하다시피한 허술한 법규가 문제였다.
현장 취재를 통해 공장 지대 주변의 학교와 주민들을 취재해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나아가 유독물 취급 사업장의 정보를 인터랙티브 지도로 만들어 인터넷 상에서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공장 위치와 500m, 1km 반경의 보육·교육 시설 뿐 아니라, 공장에서 취급하는 유독물질 내역, 유독물질 독성정보와 대응요령을 제공했다. 화학사고 150여 개 지점의 위치와 사고내역, 관련 동영상 보도 내용도 추가했다. 6만 여개 지점이 데이터 지도에 표현됐다.
보도가 나간 뒤, 정부보다 언론이 먼저 앞서 각 지역 주민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가공해 제공했다는 전문가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일단 정부가 올해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만들 예정인 화학물질 장외영향평가제도가 관건이다. 얼마나 구속력있고 효과적인 안전장치로 활용할지를 주민과 기업이 모두 고민해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제작과 보도를 하면서 새삼 느낀 건 협업의 중요성이다. 데이터 정리와 분석 뿐 아니라 실감나는 방송 전달을 위해서는 그래픽 제작에도 상당한 공력이 들어가야 했고, 현장 취재와 인터넷 데이터 지도 제작을 병행하면서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특히 유독물 공장 지도 제작은 컴퓨터 활용보도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수작업을 필요로 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국내 언론계에 미래의 대안적 취재기법으로 데이터저널리즘이 종종 거론되고 있지만, 국내 공공데이터 환경은 아직 열악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양질의 기사를 꾸준히 생산하기엔 공공데이터의 양과 질이 미흡한 수준이다.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관심도 막연한 환상도 아닌 체계적인 지원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격상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종료됐지만, 성탄절을 비롯한 휴일도 반납하다시피하고 기획과 취재 제작에 묵묵히 땀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기사식당 뉴스전'제작진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위공직자 재취업 보고서 - 공생의 세계 KBS
고위공직자 재취업 보고서 - 공생의 세계
KBS 공아영 기자
<은퇴 없는 고위공직자-악어와 악어새>
지난여름은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무더웠다. 8월 17일, 광복절 특집 <적도에 묻힌이름-고려독립청년당>이란 프로그램을 끝낸 뒤, 다음 아이템을 두고 고민의 늪에 빠져버렸다. 밤잠을 설치기를 한 달 여, 친한 국회 보좌관으로부터 묵직한 파일을 입수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취업과 관련된 자료였다. 최근 5년 동안 사기업에 재취업하겠다며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건수 중, 4급 이상 고위공직자만 추려내니 1203건이었다. 주로 대기업에, 고액의 연봉과 고급차를 제공받고 사외이사나 고문, 감사 등의 이름을 달고 재취업하는 이들. 지금껏 공기업 재취업 문제는 여러 차례 다뤄져 왔으나, 대기업에 재취업한 경우, 그것도 5년 치의 방대한 자료를 심층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은 없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데이터. 더 큰 문제는 퇴직 당시 소속기관과 직위, 옮겨간 업체 이름과 직위 등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름이 빠져 있었다. 1203명이 누구인지 찾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탐사보도가 늘 그렇듯, 구글링부터 수백통의 통화와 등기부등본 놀이, 법원 방문, 인맥 동원 등 온갖 취재방법을 총동원했다. 이번엔 그나마 고위공직자들이 대상이어서 공개된 정보 덕을 좀 볼 수 있었다.
엑셀시트에 1203명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가 채워져 가면서, 동시에 현장취재에 들어갔다. 우린 가능한 많은 인물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하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많은데, 우릴 만나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한 대기업의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 오전 7시 쯤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은 강남 압구정동 유명 아파트였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였기에 취재기자의 오랜 뻗치기 경험에 의하면 내부 잠입이 어려운 경우는 아니었다. 그래서 계단에서 기다릴 요량으로 옷만 두둑이 껴입고 별 걱정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그 아파트 동만 리모델링을 한 것이었다. 입구부터 최신 주상복합 저리가라의 삼엄한 경비에, 평수도 종전 소형에서 80여 평으로 바꾸면서 한 세대마다 엘리베이터가 한 대 씩 있는 구조로 바뀌어 있었다. 어찌어찌 눈을 피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곤 ‘닫힘’ 버튼을 힘껏 눌렀다. ‘아싸!’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순간, ‘허걱’ 층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컬러바’가 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이대로 경비 아저씨한테 걸리면 뭐라고 둘러대지?’ ‘잘못 들어왔다고 할까.’ ‘청소하러 왔다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기도를 시작했다. 순간, 기적이 찾아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그대로 8층까지 고고씽. 8층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다행히 나에 대해선 별 관심 없어보였다. 그리곤 1층으로 내려왔다. 마치 가족인양 섞여서 자연스레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이때부턴 아파트 안마당에서 기다렸다. 고급 외제차들 사이에 끼여 있는 낡은 봉고차를 모두들 힐끔거렸다. 그렇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오전 10시까지 기다렸지만, 당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복과 잠입의 연속이었다. 한 낙하산 인사를 만나러 회사에 찾아갔을 때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달아나는 바람에 15층부터 지하 2층까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상대방 측에선 홍보팀 등 건장한 남성들과, 여비서 2명 등 10여 명을 동원해 2명에 불과한 취재진을 온몸으로 막았다. 본의 아니게 층마다 소란을 피운 점, 다른 직원들께 지면을 빌어 사과드린다.
고생 끝에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인물을 접촉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렇게 큰 죄를 저질렀냐”며 항변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인터뷰하려면 공문을 보내라’며 카메라를 막았다. 어떤 기업체 관계자는 ‘고위공직자를 모셔오려면 ’제너시스는 기본이고, 그랜저를 주면 받지도 않는다. 몇 억의 스카우트 비용과 연봉이 필요하다‘는 고백을 해주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재취업을 신청한 고위 공직자 가운데 93%가 심사를 통과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의 경험은 기업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퇴직 공무원들에겐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재취업한 이들 상당수가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정의를 벗어난 공생은 비리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공생이 아닌 공멸로 가는 길이다.
48분이란 한정된 프로그램의 시간상, 취재를 하고도 담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기회가 되면 꼭 후속보도를 하려고 한다. 이번에 함께 한 후배 김연주, 최형원 기자. 발군의 취재력을 보여줬고,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kbs 리서처의 대모 지혜와 탐사제작부의 연예인 희라. 운기, 우혁이, 대석이. 이들이 있었기에 프로그램이 가능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늘 열정을 불사르는 kbs탐사보도팀. 이주형 팀장, 성재호, 이병도 선배. 지연이 사랑한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백운기 국장과 감일상 부장께도 감사의 말씀 전한다.
육식의 반란 2 - 분뇨사슬 전주MBC
육식의 반란 2 - 분뇨사슬
전주MBC 유룡 기자
<육식의 반란2-분뇨사슬>이 <제1편 마블링의 음모>에 이어 이달의 기자상을 연속 수상했다. 속편이 전편을 넘지 못한다는 속설을 깨고 방송 1개월 만에 방송기자연합회의 <2013 한국방송기자대상>에도 선정됐다. 시청자와 언론계의 높은 관심에 감사드린다.
한국인이 모르는 축산의 검은 이면, 가축 분뇨!!!
<분뇨사슬>이 방송된 뒤 농촌이 술렁였다. 네덜란드를 모델로 작은 나라인 한국도 축산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네덜란드는 가축분뇨로 청색증을 앓고 있다. 청색증은 토양에 질산염이 축적되면서 지하수가 오염되고 그 물을 마신 임신부의 태아가 죽거나 어른도 아닌 어린이에게서 암이 발생하는 병이다. 네덜란드는 더 이상 자국의 땅에 분뇨를 뿌리지 못하고 독일 등 이웃 나라로 분뇨를 실어 나르는 한심한 상황이다.
그동안 무수한 정부 관계자와 학자, 언론인, 축산업자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했지만 어떻게 이런 경고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여전히 네덜란드를 축산 강국으로 미화하는 이야기만 전해져왔는지 취재를 하면 할수록 답답한 마음이 계속됐다. 한국이 네덜란드의 뒤를 이어 토양 오염의 잠재적 위험도가 가장 높다는 지적이 OECD로부터 10년 전부터 전달되고 있었지만 그동안 정부는 고기 팔아주기에 열중했지 국토를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 과연은 축산은 지속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는가?
바람직한 축산은 농부가 자신의 경작지에서 곡식과 사료를 키운 뒤 곡식은 사람이 먹고 사료로는 가축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조상은 사람과 가축이 내놓은 똥으로 퇴비를 만들어 농경지에 비료로 되돌려 주었다. 사람도 살고 땅도 사는 방법이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축산업은 지난 20년 동안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사람이 먹을 곡식을 50%도 자급하지 못하는 작은 나라가 해마다 1조 원이 넘는 사료를 수입해 필요한 육류의 70%를 자급했다.
한국의 가축은 1990년 대 초에 연간 3천만 마리에 불과했지만 96년 1억 마리를 돌파했고 2001년에 1억5천 마리를 넘어섰고 지금은 2억 마리를 웃돈다. 그러는 사이 가축분뇨를 농경지에 무한정 뿌리는 것이 자연 순환인 것처럼 포장됐다. 한국의 땅은 퇴비와 액비로 검게 얼룩져 회복 불가능의 상황이다. 주요 강줄기에는 질산염 과다로 녹조가 피어올라 식수원을 위협한다. 한국은 대책 없는 축산 공화국이다.
가축분뇨를 국민의 세금으로 치우자는 것이 과연 옳은 이야기인가?
농축산식품부의 여인홍 차관은 2013 한국국제축산물박람회에서 한국의 축산물 생산액이 16조원. 전후방산업을 다 합치면 40조원의 막강한 산업을 성장했다고 자부했다. 정부는 축산업의 이런 성장을 위해 퇴비와 액비 공장 건설 등 가축분뇨 처리에 10년 동안 1조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2014년에 6천억 원을 들여 돼지분뇨 공공처리시설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돼지 한 마리 가격은 20만원 밖에 되지 않는데 정상적인 분뇨 처리 비용은 무려 3만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불법 투기가 만연하니 아예 정부가 공공처리장을 지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분뇨는 국민 세금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가축의 분뇨를 공공 처리한다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축산업체가 공기업인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그동안 축산업이 가능하고 돈까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국 축산업의 성장 이면에는 사료는 수입하고 분뇨는 불법 투기했다는 사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이면에는 <분뇨사슬>이 있다. <분뇨사슬>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업자와 정부 모두 육류 소비를 줄이고 사육 두수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축산업계에 던지는 두 번째 쓴 소리!!!
지난 2012년 <분뇨사슬>의 전편인 <마블링의 음모>가 방송되고 국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낭비적인 축산물 생산 구조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한우자조금위원회는 억대의 돈을 풀어 쇠고기 마블링이 좋다는 홍보 다큐를 주문 제작하는 등 마블링 선전에 열을 올렸다. 속편인 <분뇨사슬>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축산이 어떻게 환경을 오염시키고 국민 세금을 축내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에는 축산업계가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것인지 궁금하다. 다큐멘터리는 역사의 기록이다.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흘러야 옳다.
주지급 승려들의 밤샘 술판 한겨레신문
주지급 승려들의 밤샘 술판
한겨레신문 김봉규 기자
예전부터 우리나라 불교계에선 술을 술이라 부르지 않고 곡차(穀茶)라고 빗대어 표현하며, 고승들 중에도 곡차를 즐겨 마신 승려들도 꽤 있다는 것은 잘 얼려진 사실이다. 신부님들도 예배가 끝나면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곡차도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술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옛 고승들이 선문답에서 하늘의 한점 구름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해 생을 이야기할 때 곡차를 마신 것이 아니라, 이번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의 밤샘 술판은 그야말로 술판이었다. 한편으론 가슴 아픈 현장 이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해 11월 28일 회사에서 전사원을 상대로 실시한 치유 캠프에 1박2일 일정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장소는 충남 공주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소속 연수원이었다. 그런데 그곳 연수원시설에 20여 명의 승려가 연수원식당에서 손뼉을 치면서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불교 연수원 시설이라 승려들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연수원 치유 캠프 참석자 모두가 곤히 잠든 밤 10시에 노래방 스피커 소리가 숙소 방바닥을 뒤흔들었다.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신문사 후배들 2명과 함께 도대체 늦은 밤중에 연수원 시설에서 고성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뭐고, 장소는 어딘지 알아보기로 했다.
노랫소리의 근원지는 연수원 시설 내 레크레이션룸 이였다. 외부로 통한 창문이 없어서 외부에서 두 개의 문을 열고서 들어가서야 1cm 작은 크기의 틈을 통해서 고성의 노랫소리의 주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틈으로 통해 살펴본 현장은 그야말로 진탕만탕 담배를 피워가며 폭탄주와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야밤에 불교 연수원 시설에서 더군다나 승려들이 말이다. 10여 명의 승려는 대충 살펴보아도 중견급 이상의 고승들로 보였다. 믿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네 눈을 믿기가 어려웠다.
숙소로 돌아와 카메라를 챙겨서 현장을 다시 찾았다. 작은 틈으로 숨을 멈춘 채 10여 장을 찍고서 몸을 낮추고 일단 현장을 빠져나왔다. 승려들을 더 관찰하기 위해 밖에서 모습을 살폈다. 승려들의 술판이 끝나면 현장으로 들어가 더 자세하게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11월 말의 깊은 산속의 겨울 밤은 생각보다 추웠다. 하지만, 10시부터 시작된 술판은 12시가 넘어서도 새벽 2,3시를 넘겨서도 끝나지 않았다. 고성의 노랫소리는 새벽 4시 30분이 돼서야 끝났고 술판은 아침 7시가 넘어서 끝났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숙소로 돌아와서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목격한 승려들은 일반 승려들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승려들이 타락했다지만 이렇게까진 아닐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 승려들은 속된 말로 승복을 입은 어깨 출신들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밤샘 술판의 승려들은 연수원장 주지 스님이 주최했고 나머지 스님들은 연수원장 승가대 동기들로 밝혀졌다. 더군다나 연수원장 스님은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자승 스님 캠프에서 활동한 조계종 중앙종회 3선 의원이고 술판에 참석한 나머지 승려들도 사찰의 주지급 승려들로 밝혀졌다.
성직자는 겉으로도 맑아야 하지만, 마음속으로도 맑아야 한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이 있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직자들의 탈선행위가 눈에 자주 띄게 된 것은 성직자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동시대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도덕적 잣대와 시각도 매우 중요 할 것이다. 이번 승려들의 밤샘 술판 보도를 통해 승려들의 탈선이 관행이라도 말할 것도 없고, 고승들의 품위와 성직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중요한 취재 및 보도였다고 생각한다.
조계종은 <한겨레>의 단독 보도를 근거로 승려들의 술판을 주관한 주지 스님을 해임하고, 나머지 술판에 참석한 10여 명의 주지급 승려들에 대한 조계종 호법 부에서 감찰 조사를 벌이고 있다.
돌이켜 생각건대 조용하게 덕담을 나누며 곡차 한 잔씩 하는 모습이었다면 기사화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보도로 마음의 상처와 지위상 제제를 받았을 승려들을 생각하면 취재 보도한 기자 였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스님들이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길 바라는 기자의 마음이 너무 순진한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