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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회 (2006년 3월)

수상작 5편 · 출품 후보작 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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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5편

심사평

류용규 대전일보 논설위원 /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 제187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은 모두 5편이 엄선됐다. 총 응모작이 48편이었고,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오른 작품이 절반에 가까운 21편이었음을 감안하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수상작은 의외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방송사의 출품이 많았지만 카메라고발성 및 단발성 작품이 상당수여서 전체적으로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고 수준이 높다고 할 만한 작품이 적었다. 그렇지만 지역방송사의 출품이 많다는 것은 지방화시대를 맞아 취재 일선에서 기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의욕이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상대적으로 출품작 수가 적은 지방신문사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총 11편이 응모해 5편이 예심을 통과한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YTN(기동취재부 김승재 기자)의 ‘이명박 시장 황제테니스 논란’과 부산일보(손영신 기자 외)의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두 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YTN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으나, 부산일보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기사의 경우 사실보도를 가장 먼저 함으로써 타 매체의 속보경쟁을 유발하는 기여를 하긴 했지만 1보 이후 후속보도에서 당연히 파헤쳐야 할 아이템을 먼저 보도하지 못했다는 결함이 지적됐으나 다수 심사위원들의 지지로 수상작에 선정됐다. 기획보도신문통신 부문에서는 중앙일보(특별취재팀 허귀식 기자 외)의 ‘논문, 고도성장의 그늘’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7만여명의 대학교수 논문들을 분석하는 수고도 수고지만 남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무임승차하는 관행을 비롯해 표절 등이 안고 있는 문제점 전반과 다양한 비리의 파장, 개선방향을 심도 있게 제시한 노력이 돋보였다. 기획보도방송 부문의 수상작 KBS(탐사보도팀 최문호 기자 외)의 KBS스페셜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은 근래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지역기획방송 부문의 수상작인 광주MBC(보도국 김낙곤 기자 외)의 ‘특집 HD다큐 길 2부작’은 기획에서의 발상은 물론 영상미도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반면 지역취재보도 부문과 지역기획보도신문통신 부문에서는 수상작이 없었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의 경우 무려 13편이 응모하고 5편이 예심을 통과했지만 기사충실도 측면에서 상당수 작품은 밀도가 떨어지고 고만고만했다는 점에서 다수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지명하지 않아 최종 수상작은 한 편도 없었다. 지역기획보도신문통신 부문에서 최종심에 오른 대전일보의 ‘난개발 금남・금북정맥을 가다’와 경인일보의 ‘냉전의 흉터, 철책선 걷어내자’는 기획이 신선하고 내용도 충실하다는 좋은 평을 받았으나 최종 선정에서 탈락, 아쉬움을 낳았다. 이밖에도 취재보도 부문에 응모한 MBC의 ‘시장이 두 명?’과 기획보도신문통신 부문의 서울경제 ‘한미FTA 이것이 급소’ 시리즈 역시 아까운 작품이었다는 평이었으며, 기획보도방송 부문으로 응모한 YTN의 ‘토익 부정행위 확인’은 취재보도 부문으로 응모해도 좋은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4편

취재후기(187회)-이해찬 총리 골프파문
<취재후기-이해찬 총리 골프파문> 부산일보 손영신 기자 사실 파문의 끝은 이해찬 총리의 낙마였다. 불을 지핀 입장에서 총리의 사퇴는 성과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총리의 퇴임을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하고 착잡했다. 어쩌랴,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3월1일 오후 5시. 지쳐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익명을 요구한 그가 던진 한마디. "총리가 골프장에 보였다더라." 그때부터 쉴 수 없었다. 5시간 동안 전화를 돌렸다. 조각맞추기였다. 여러가지 정황들이 쌓였지만 최종 확인이 쉽지 않았다. 시경 캡과 시청,상공회의소 출입기자,정치부 기자 등 5~6명의 동료기자들이 가세한 총력취재가 시작됐다. 결국 밤 10시께 `이 총리와 차기 상의 회장 예정자인 신정택씨 등 부산 상공인들이 2개조로 나눠 오전 10시께 아시아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공인 3명의 명단과 1부 티업 시간대가 끝난 후 2개조를 끼워넣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기사에 필요한 구체적인 팩트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밤 9시께 부장에게 보고했다. 부장의 지시는 '양껏 쓰라'였다. 추가취재 및 기사작성에 들어갔다. 총리가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철도파업으로 비상근무를 한 부처도 파악했다. 이 총리의 과거 골프 구설수 일지도 정리했다. 다음날인 3월2일 오전 제작회의를 거쳐 1면 머릿기사로 결정됐다. 총리실의 해명도 추가했다. 논설실에서는 사설을 준비했다. 이해찬 총리의 낙마로 이어진 3.1절 골프파문 최초 보도는 이날 낮 12시께 `철도파업 첫날, 이 총리는 골프장에…'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파문의 `원론'은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과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와 정치공세때문에 일 잘하는 이 총리가 낙마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 언론보도와 정치공세도 한국사회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총리 사퇴는 결과적으로 본인 스스로 자초한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철도파업 첫날이자 3.1절에 국정의 총괄책임을 지고 있는 총리가 부적절한 인사가 포함된 상공인들과 사적인 라운딩을 즐겼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앞서 이 총리는 골프와 관련해 여러번 구설수에 올랐다. 언론과 여론은 이 점에서 더이상 이 총리를 너그럽게 볼 수 없었다. 골프파문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의 이 총리 처신도 국정 책임자로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양'이 쌓이면 `질'이 변하듯이 3.1절 골프파문을 계기로 여론은 폭발했고 결국 총리직 사퇴라는 질적변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부산일보의 보도는 그 `양질전환'의 과정에서 `기폭제'였다. 큰 틀에서 역사는 항상 진전한다고 믿는다. 그 과정은 온갖 사연과 우연으로 점철되지만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그것은 `필연'이다. 이 총리의 라운딩은 우연히 마련됐을 수 있다. 하다보니 3월1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하필 철도파업이 터질 줄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운딩을 강행한 사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우연히 그들의 라운딩을 목격한 후 또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했고,그는 또 기자에게 제보했다. 우연의 연속은 총리 퇴임으로 이어졌다. 그 퇴임을 `필연'으로 보는 것이 무리라면 한국의 첫 여성총리 탄생에서 `필연'과 `위안'을 찾는 것은 어떨까. (도와준 편집국 선후배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제보자 혹은 취재과정에 대한 온갖 억측은 정말 억측일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취재후기(187회)-논문, 고도성장의 그늘
187회 이달의 기자상(기획보도 부문) / 중앙일보 - “논문, 고도성장의 그늘” 중앙일보 탐사기획 부문 박수련 기자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결과로 평가해달라’는 프로들의 각오이자 약속이다. 그러나 학계의 현실은 프로답지 못했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팀 논문 조작 사건은 기본 원칙을 어긴 학자들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믿었던 학자에 대한 애증이 한껏 부풀어오른 그 즈음, 취재팀은 한국 논문의 현주소를 짚어보기로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한국 논문이 실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의 빠른 성장이 얼마나 내실을 갖췄는지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논문 표절과 공저자 끼워넣기, 대필 등 악습의 뿌리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취재 결과 한국의 논문은 ‘양적 성장, 그러나 질적 빈곤’으로 요약됐다. 한해 동안 세계 유명학술지에 실리는 한국 논문 수는 1989년 1300여 편(세계 34위)에서 2002년 1만5000편으로 늘어 세계 13위에 올랐다. 하지만 논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피인용지수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 논문의 인기는 미미했다. 해가 갈수록 순위가 떨어져 2004년엔 세계 33위에 그쳤다. 고도성장이 남긴 그늘은 공저자 끼워넣기, 논문 표절 같은 악습이 여전히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는 데서 더욱 짙어졌다. 이번 취재에서 거둔 수확 중 하나는 공저자 끼워넣기 관행이 실질적인 수치로 확인됐다는 점이었다. 교수 7만 6500명이 2003년~2005년 동안 발표했다고 학술진흥재단에 신고한 연구논문을 분석해보니 한해 51편 이상 논문을 발표한 사람이 262명이나 됐다. 149편에 자기 이름을 올린 교수도 있었다. 논문을 심사하는 학회 편집위원들마저도 이런 관행을 인정하고 있었다. 취재원들의 얘기를 들을수록 충격은 더해갔다. 한 대학원생은 지도교수 이름을 넣은 학술지 논문을 2편 이상 내지 않으면 박사 논문 심사 통과가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런가하면 한 대학강사는 대학원 동기의 박사 논문을 수정해 지도교수와 함께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고도 요약ㆍ발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며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1990년 이후 논문 표절 시비에 오른 교수 27명을 추적해보니 이중 6명만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중에는 자신의 논문도 많이 표절당했지만 문제삼지 않는 것이라며 항변하는 교수, 자신은 아직도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교수도 있었다. 학교나 동료 교수들은 쉬쉬하며 얘기를 꺼내기 꺼려했다. 지도교수 지시로 대필 경험이 있는 한 대학원생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 ‘모든 게 끝장’이라며 인터뷰 내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논문 악습’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모르는 척 하는 얘기였다. 학계에서 스스로 문제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보도가 나간 후 사회 각계에서 전화와 메일이 들어왔다. 또다른 표절 경험, 해외 박사 학위 매매 등 논문과 관련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적해줘서 고맙다’는 노교수의 전화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표절 안하기 운동을 함께 펼치자고 제안한 학자도 있었다. 짧지 않은 취재기간 동안 쌓인 피로를 가시게 하는 최고의 상이었다. 남의 들보를 들춰내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들보 들추기를 해야한다면 앞으로도 언제든 나서겠다고 다짐한다. 덧붙여,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말만큼은 무색하지 않도록 살겠다는 다짐도 함께.
취재후기(187회)-이명박 시장 ‘황제 테니스’ 논란
파장이 이처럼 클 줄은 몰랐다. 취재와 첫 보도를 할 때까지만 해도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처럼 큰 반응을 보일지는 예상 못했다. 보도의 목적은 어찌 보면 단순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이용해야 할 테니스장을 서울 시장과 서울시 테니스협회장 등 특정 인사들이 주말 황금 시간대에 독점적으로 사용했다는 점, 그래서 시민들의 사용 기회는 그만큼 박탈됐다는 문제점, 이렇게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내야 할 사용료를 제때 내지 않다가 나중에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부랴 부랴 뒤늦게 그것도 일부를 지불한 문제점이었다. 일반 시민들이었다면 이런 테니스장을 이용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고 이용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을 모두 선불로 지불한 뒤에야 가능할 터였다. 이른바 힘 있는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누리고 있는 특혜의 문제를 꼬집고 싶었다. 일파 만파 번진 파장의 이유는 절묘한 보도 시점 때문으로 보인다. 이해찬 총리가 골프 파문으로 사임한 직후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전혀 계산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주변의 시각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조차도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나? 내가 봐도 의도한 것 같다"고 했다. 파장과 더불어 각종 소문 또한 무성했다. 이해찬 골프 파문 이후 궁지에 몰린 열린 우리당 측이 기획한 작품이라는 소문부터 이른바 '이명박 죽이기' 시나리오의 첫 번째 시나리오라는 소문도 들렸다. 물론 모두 터무니없는 소문들이다. 취재 소스는 지인과의 점심 시간에 우연히 들은 한 마디가 전부였다. 남산에 테니스장이 있는데 이명박 시장 문제로 잡음이 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르던 이명박 시장이 거론된다는 점만으로도 호기심이 유발되고 취재 의욕이 생겼다. 하지만 막상 취재에 들어가니 그리 만만치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관계자들 대부분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솔직히 말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약간 시끄럽긴 했는데 비용 지불이 다 돼서 더 이상 문제될 건 없다는 게 주된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별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말해주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이후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고 계속 취재해 나간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서울시 테니스협회와 한국체육진흥회 관계자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서 취재를 하면서 전체적인 윤곽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걸린 시간은 한 달여 정도. 취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취재 의도를 설명해야 했다. 특정 대권주자를 흠집내기 위함이 아니라 시민들이 사용해야 할 테니스장을 특정인사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한 문제점을 취재하는 것이라고. 사실 확인을 마친 뒤에는 다른 이유로 골치가 아팠다. 취재 의욕을 불러 일으켰던 '대권주자 이명박'이 이젠 오히려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행여 야당의 대권주자 흠집내기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제 기사 작성에 있어서는 좀 과하다싶을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보도 이후 큰 파장만큼 취재원들의 고통 또한 컸다. 서울시 테니스협회 관계자와 남산 테니스장을 관리했던 한국체육진흥회 관계자 등이 전 언론의 취재로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특히 서울시 테니스협회 관계자 가운데 한 분은 제보자로 몰려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다. 이 자리를 빌어 본의 아니게 고통을 드린 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굳게 닫혀진 남산 실내 테니스장의 내부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주변 크레인까지 동원해가며 힘들게 촬영한 영상취재부 박진수 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보도가 "이른바 힘 있는 이들은 운동을 함에 있어서도 일반인들의 기회를 박탈해가며 특혜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취재후기(187회)-특집 HD다큐 "길"
“DJ, 6월 방북 합의”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식을 듣는 바로 그날, 9시 뉴스의 첫 머리를 장식한 소식이었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게 된 보도 특집 가운데 1부가 DJ의 철도 방북등 남북간의 길 소통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등을 담고 있었기에 물론 우연의 일치였지만 기쁨이 더 했습니다. 지난 2000년 6월,남북 정상 회담 이후 경의선은 완전히 이어졌으나 6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길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대북 지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한 축을 이루게 되면서 남북 철도연결은 여전히 찬반이 있는 민감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제작진은 그러나 이같은 논란과는 별개로 이 시각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무엇인가를 차분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1부 “잃어버린 길을 찾아서”에서는 우리 민족이 잊고 있었던 대륙성을 찾고 미래 번영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등 대륙으로 향한 창을 활짝 열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2부 “6백년만의 부활” 에서는 우리 서남해안과 중국.일본을 잇는 번영의 길이 다시 6백년만에 열리고 있음을 제시하고 중동의 두바이와 예멘의 사례를 비교했습니다. 바닷길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 아라비아까지 진출했던 한민족의 진취성에 가슴 벅차게 됐고 횡단열차를 타고 눈덮힌 시베리아를 달리다 보니 민족의 얼과 혼을 잊지 않고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삶에 숙연해 졌습니다. 특히 개성공단과 서해안 고속도로,서남해안 개발 프로젝트등 한중 수교 13년만에 우리 서남해안에 불어닥친 놀라운 변화를 그냥 단순한 변화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 경부축이 한국 산업화의 동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온 공로가 큰 만큼 이제 새 성장축인 서남해안에 주목하고 열리지 않는 경의선의 통문을 힘껏 열어 젖히며 미래를 대비해야만 한반도는 또 한번 도약할 기회를 맞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끝까지 HD 고화질 영상을 고집하며 영하 38도의 시베리아 혹한과,위험한 철길 촬영,힘들게 두바이의 특종 화면을 엮어낸 카메라 기자 박재욱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