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취재후기(187회)-이해찬 총리 골프파문
<취재후기-이해찬 총리 골프파문>
부산일보 손영신 기자
사실 파문의 끝은 이해찬 총리의 낙마였다.
불을 지핀 입장에서 총리의 사퇴는 성과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총리의 퇴임을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하고 착잡했다. 어쩌랴,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3월1일 오후 5시. 지쳐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익명을 요구한 그가 던진 한마디. "총리가 골프장에 보였다더라." 그때부터 쉴 수 없었다. 5시간 동안 전화를 돌렸다.
조각맞추기였다. 여러가지 정황들이 쌓였지만 최종 확인이 쉽지 않았다. 시경 캡과 시청,상공회의소 출입기자,정치부 기자 등 5~6명의 동료기자들이 가세한 총력취재가 시작됐다. 결국 밤 10시께 `이 총리와 차기 상의 회장 예정자인 신정택씨 등 부산 상공인들이 2개조로 나눠 오전 10시께 아시아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공인 3명의 명단과 1부 티업 시간대가 끝난 후 2개조를 끼워넣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기사에 필요한 구체적인 팩트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밤 9시께 부장에게 보고했다. 부장의 지시는 '양껏 쓰라'였다. 추가취재 및 기사작성에 들어갔다. 총리가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철도파업으로 비상근무를 한 부처도 파악했다. 이 총리의 과거 골프 구설수 일지도 정리했다.
다음날인 3월2일 오전 제작회의를 거쳐 1면 머릿기사로 결정됐다. 총리실의 해명도 추가했다. 논설실에서는 사설을 준비했다. 이해찬 총리의 낙마로 이어진 3.1절 골프파문 최초 보도는 이날 낮 12시께 `철도파업 첫날, 이 총리는 골프장에…'란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파문의 `원론'은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과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와 정치공세때문에 일 잘하는 이 총리가 낙마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 언론보도와 정치공세도 한국사회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총리 사퇴는 결과적으로 본인 스스로 자초한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철도파업 첫날이자 3.1절에 국정의 총괄책임을 지고 있는 총리가 부적절한 인사가 포함된 상공인들과 사적인 라운딩을 즐겼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앞서 이 총리는 골프와 관련해 여러번 구설수에 올랐다. 언론과 여론은 이 점에서 더이상 이 총리를 너그럽게 볼 수 없었다. 골프파문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의 이 총리 처신도 국정 책임자로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양'이 쌓이면 `질'이 변하듯이 3.1절 골프파문을 계기로 여론은 폭발했고 결국 총리직 사퇴라는 질적변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부산일보의 보도는 그 `양질전환'의 과정에서 `기폭제'였다.
큰 틀에서 역사는 항상 진전한다고 믿는다. 그 과정은 온갖 사연과 우연으로 점철되지만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그것은 `필연'이다. 이 총리의 라운딩은 우연히 마련됐을 수 있다. 하다보니 3월1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하필 철도파업이 터질 줄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운딩을 강행한 사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우연히 그들의 라운딩을 목격한 후 또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했고,그는 또 기자에게 제보했다.
우연의 연속은 총리 퇴임으로 이어졌다. 그 퇴임을 `필연'으로 보는 것이 무리라면 한국의 첫 여성총리 탄생에서 `필연'과 `위안'을 찾는 것은 어떨까.
(도와준 편집국 선후배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제보자 혹은 취재과정에 대한 온갖 억측은 정말 억측일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이 회차 수상작 2006년 3월
제187회(2006년 3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