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7편
‘대부업 무이자 광고 천국 ··· 정부는 뒷짐’등…
(202회)‘대부업 무이자 광고 천국 ··· 정부는 뒷짐’등 대부업체 문제 집중보도 및 후속보도/한겨레 경제부 안선희
[취재보도부문]
‘무이자~무이자~무이자’ 아마 이 노래는 한국 광고 역사에서 가장 히트한 CM송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기사가 나간 날 한 독자는 전화를 걸어와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친구들과 같이 ‘무이자’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며 개탄했다. 이 광고뿐이 아니었다. TV만 켜면 인기 연예인들이 나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대부업체들 광고가 쏟아졌다. 대부업체들은 사상 최고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광고들을 수십개 뜯어보고 관련 법률들, 피해사례를 분석하고 전문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접촉해나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보였다. 하지만 단속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식은 안이했다. 한 공무원은 이런 말을 했다. “달을 따다 주겠다는 광고를 하면 누가 믿나요. 무이자로 대출해주겠다는 광고를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믿지 않는 광고를 대부업체들은 왜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하고 있을까? 광고가 사금융 폐해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공정위가 보도 당일 실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대부업 광고에서 ‘무이자’라는 표현의 사용을 금지했고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는 문구를 반드시 삽입하도록 했다. 광고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은 잇달아 출연 중단을 선언했다. 정당·시민단체들은 성명서를 내 광고 규제를 촉구했고, 국회에는 밤 10시 이후 대부업 광고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광고 문제에 이어 한겨레는 ‘은행 이용 못하는 저신용자 7백만명’ ‘서민 등치는 대부업 중개인’ 등 서민금융 관련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 마침 TV에서도 사채의 폐해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몇 달 사이에 서민금융 현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식 수준이 한단계 높아졌음을 느낀다. 한겨레의 보도들이 이 과정에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금융담당 기자의 주요 출입처는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들이다. 그들과 주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다보면 은행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서민들은 잊어버리게 된다. 서민금융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잃지 않도록 상기시켜주는 부장과 팀장에게 감사드린다.
‘이명박 부인 2곳 위장전입’과 ‘이명박씨 부인 주…
(202회)‘이명박 부인 2곳 위장전입’과 ‘이명박씨 부인 주소 이전 15곳 현장점검’/국민일보 사회부 사건팀 남도영
[취재보도부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위장전입 의혹을 검증키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독자들의 궁금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후보 검증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된다. 위장전입 건도 그런 의혹 중 하나였다. 정치적 공방 소용돌이에 끼어 들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만 독자들은 ‘공방’이 아니라 ‘팩트’를 알고 싶어한다고 판단했다. 팩트는 사건팀 기자의 모든 것이다.
팩트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사건팀원 7명 전원이 동원됐다. 확인은 쉽지 않았다. 수백통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젊은 기자들에게 壹 貳 參…으로 씌어진 20년 전 희미한 등기부등본은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수십명의 부동산 전문가들을 만나 등기부 등본의 소유주를 지운 채 일일이 확인했고, 세무소를 들락거렸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던 한 지역 세무소 직원은 찾아간 기자에게 “언젠가는 등기부등본을 들고 오는 기자가 있을 줄 알았다”는 꽤 묘한 말을 남겼다.
오래 전 주소의 실제 소유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동네 전체 부동산을 뒤지고 다녔다. 집이 사라져 도로가 난 곳도 있었다. 분당 XX아파트에 산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아파트 화단을 산책하는 할아버지에게 “혹시 ○○○씨 아닙니까”라고 물어, “맞다”라는 답을 들은 기막힌 우연도 있었다.
한 소유주는 방문-전화-재방문한 기자에게 위장전입 과정을 들려주며 “앞으로는 제발 전화 그만해라”고 하소연했다. 그 분에게 감사드린다. 사건팀 차량을 운전하는 ‘형님’들은 대부분 몸살을 앓았다.
최종적으로 2곳의 위장전입을 확인했다. 실제거주도 확인했다. 의혹이 있었지만,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 곳은 ‘확인하지 못했다’로 독자에게 고백키로 결정했다.
기사를 차장 사회부장 편집국장에 보고했다. 여러 논란이 예상되던 시기였다.
“사실 관계가 맞느냐”는 확인 후 흔쾌히 기사를 받아준 선배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서울과 경기도 전역을 누비며 하나하나 팩트를 추적해들어간 사건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정치부 김종목
(202회)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경향신문 정치부 김종목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지식인’을 가지고 시리즈를 준비한다는 편집국내 소문(?)을 들었다. 기획 의미는 있을 듯 한데 소재도 어렵고 해서 쉽지 않을텐데 하고 남 걱정을 하던 차에 ‘지식인팀’ 파견 명이 떨어졌다. 3월 중순쯤이었다. ‘지식인’이라니, 그것도 시리즈로... 숨이 차올랐다. ‘Why me!’. 명을 받은 날 사무실로 가보니 보름 앞서 차출되었던 후배 손제민·장관순 기자는 우울증 비슷한 증세를 앓고 있었다.
위로부터의 주문생산이었지만 주문의 내용이 명확치 않았다. 몇몇 학자들이 가져온 시리즈 원안이 있었는데, 나중에 시리즈의 큰 흐름에는 상당 부분 반영되었지만 원안 자체는 담론과 기고 위주라 그대로 종합면에 싣는 것은 무리였다.
담론 위주인데다 사건적 가치가 떨어지는 지식인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취재팀은 취재의 ABC로 돌아갔다. 수백건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지식인을 다룬 수십권의 책들을 사다봤다. 1백여명의 지식인을 직접 또는 서면 인터뷰했다. 지식인 죽음 담론을 ‘담론으로 전하지 말자’, ‘데이터를 직접 만들자’, ‘코멘트와 케이스로 풀어내자’는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소재가 어려우니 기사는 최대한 쉽게 풀어내자는 취지였다. ‘지식인 지도’, ‘문민·군사정권 넘나든 장·차관 분석’, ‘지식인 설문’, ‘해외 박사 분석’ 등 자료·데이터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해본다.
원안에다 취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기획안을 만들었다. ‘우리 시대 지식인의 초상’이란 무난하면서도 한편으로 감상적인 시리즈 제목은 국장단의 검토를 거치면서 ‘민주화 20년’이 붙고, ‘초상(肖像)’은 ‘죽음’으로 바뀌었다. 취재팀은 “작년에는 경향신문이 진보·개혁 세력을 위기(진보개혁의 위기 시리즈)에 빠트리더니, 올해는 지식인을 죽이는구나” 서로 농반진반을 주고받았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프레임은 장단이 있었다. ‘비판적·저항적 지식인’으로 한정한다면, 시기적으로 2007년은 맞아떨어졌고, ‘죽음’이란 수사도 무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레임 자체에 대해서는 학계 일부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많은 도움 말씀을 줬다. 취재팀에게 큰 영감을 준 이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이다. 고선생은 인터뷰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감하다’는 미발표 논문도 보내줬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귀신 곡할 현금인출 사건 부산일보 사회부 이현정
(202회)귀신 곡할 현금인출 사건/부산일보 사회부 이현정
[지역취재보도부문]
제보자가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 있었던 시각, 경기도 분당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뭔가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이 때문에 은행도 경찰도 제보자의 자작극으로만 몰고 가는 상황. 제보자는 마지막 방편으로 언론을 찾았다.
답답해하던 차 평소 친분이 있던 민원실 경찰이 제보자가 경찰에 사건을 접수한 날과 같은 날 유사한 사건이 또 한 건 접수됐다는 사실을 흘려줬다. 신종사기 수법일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고 수사지원팀에서 유사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뒤 경찰에게 역으로 정보를 넘겨줬다.
첫 보도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사회 뉴스 검색1위에 오르고 3백개에 가까운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다. 그만큼 현금인출기와 은행카드는 금융생활의 기본. 일상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들이었다. 자작극이라고 믿는 편이 앞으로의 금융생활을 순탄하게 만들어주게 될 터. 댓글 내용도 제보자의 자작극으로만 몰고 갔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현금인출기는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가짜현금인출기는 카드가 들어온 사이 재빠르게 카드를 복제했고 비밀번호를 누르게 해 CCTV로 녹화했다. 인출기는 돈 한 푼 들어있지 않은 `가짜’였고 화면에는 에러 메시지가 떠 이용자의 눈을 속였다.
보도 이후 금융감독원도 조사에 착수했다. 현금인출기를 운영하는 VAN(부가통신)사업자 중 1개 업체는 기기를 각 개인에게 분양해 줘 관리까지 맡기고 있었던 실태가 드러났고 현금인출기와 관련한 각종 대책, 입법 방향들도 쏟아져 나왔다. 언론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마그네틱 카드의 복제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현금인출기 관리 수준이 일반 자판기 수준에 그치고 있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도 짙어졌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종적을 감춘 수법들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는 일이 없도록 발빠른 대응을 해야할 것이다.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3년의 기록 한라일보…
(202회)‘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3년의 기록/한라일보 정치부 강시영
[지역취재보도 신문통신부문]
한라산, 오름과 청정바다, 그리고 독특한 문화와 수려한 자연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제주섬이다. 지난 6월 27일 뉴질랜드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날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World Natural Heritage)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유네스코가 제주의 자연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공식 인정한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결정됨에 따라 국가브랜드 상승은 물론 제주가 국제자유도시와 세계적 관광지로 도약하는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대다수 도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미 외국의 유력 신문·방송들의 제주 세계자연유산 기획취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을 주제로 3년여 기획취재해 온 기자 입장에서 보면 숱한 난관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정부와 제주도가 계획된 기간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했던 과정이나 해외 사례,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절감한 자연유산 등재의 어려움, 예비·본실사, 서명운동, IUCN의 패널회의에 이은 권고리포트, 최종 외교협력에 이르기까지 가슴 졸이는 순간들이 계속됐다. 제주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이 녹아 있다. 그 중심에 탐라의 주역들이 있었다. 압권은 한반도는 물론 지구상에도 유례가 없는 등재기원 범국민 서명운동이다. 내외도민과 관광객, 전국민이 함께 나선 이 캠페인은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였다. 서명인도 제주도 인구의 세배나 되는 1백50여만명에 달했다.
한라일보도 미력이나마 등재에 힘을 보탰다. 등재기원 본보 인터넷 서명운동과 더불어 3년여 계속된 기획취재 기간 강만생 대표이사를 비롯한 논설위원실, 편집국 동료 선·후배의 한결같은 지지와 성원의 결실이기도 하다.
과분하게도 한국기자협회가 한라일보 취재진에 이달의 기자상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안겼다. ‘세계자연유산, 제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발굴하고 지켜나가는데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어찌할거나! 벼랑 끝 황혼자살
(202회)“어찌할거나! 벼랑 끝 황혼자살”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통계청 조사 결과 2005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수가 26.1명으로 OECD국가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자살률이 높은 데는 60대 자살률이 54.6, 70대가 80.2, 80세 이상이 1백27인 것에서 나타나듯 평균 자살률을 크게 웃도는 노인 자살이 주요한 원인이다. 노인자살은 1997년 외환위기, 2002-2003년 경제악화와 양극화라는 두 번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국제사회 어느 곳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20년 사이 5배, 10년 사이 4배나 폭증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이 급증한 원인을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지금의 노인들이 막상 노령기에 접어들자 기존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상실한데다, 지병과 경제난으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고, 가족해체에 따라 공동체 문화와 인적 네트워크가 훼손되면서 전통적 권위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존재감 상실과 생활고, 지병, 외로움, 박탈감 등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장애로 이어지고 결국 남은 인생 본인이 기대하는 행복지수보다 오히려 고통지수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나름대로의 합리적(?)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회 당면 현안 가운데 하나인 노인자살 문제를 막상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구성이 쉽지만은 않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사례를 정제된 영상과 원고로 전달하지 못하면 선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설득력 있는 사례와 대안으로 풀지 못하면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작진의 고민을 들어준 시사기획 ‘쌈’팀 등 KBS의 여러 선후배들과 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진해 노인종합복지관장 등 노인 문제 관련 전문가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30대, 40대, 50대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노후와 그들의 부모들을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귀중한 상을 주신 한국기자협회에 감사드린다.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 사고 연합뉴스 사진부 서명곤
(202회)캄보디아 항공기 추락 사고/연합뉴스 사진부 서명곤
[사진보도부문]
지난 6월25일 오후 한국인 13명이 탄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고 당직자였던 나는 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캄포트에 차려진 사고대책본부 주변을 스케치했지만 대책본부 내부 접근은 금지돼 있었다. 기체가 어디로 떨어졌는지, 생존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주변을 살피는데 군 차량이 지나갔다.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 전송장비를 짊어진 채로 무작정 달려 뒤를 쫓아갔다. 3백m 가량 달리던 차량이 멈춰선 곳은 헬기 이착륙장. 외신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다음날 아침, 헬기 이착륙장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지인 한명이 뭔가가 발견됐다는 귀띔을 해 줬다. 추락한 기체가 발견된 것 같다. 현장에 갈 방법을 수소문했다.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밀림에서 현장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군 수색대를 쫓아가는 길뿐이다. 군 당국은 취재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승강이를 벌이면서 겨우겨우 군 헬기에 올라탔다.
힘겹게 도착한 추락 현장의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 한국인 13명이 여행길에 참변을 당했으니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한국으로 현장의 모습을 전해야 했다. 한참 취재를 하고 전송하고 있을 때쯤 뒤늦게 외신 취재진이 도착했지만 자국민이 아니라 그런지 십여 분 찍더니 금방 철수해 버렸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 소식과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수색대와 자원봉사단은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들의 여권과 유품들을 하나씩 들어보였다. 셔터를 눌렀고 위성장비로 바로 전송했다.
수색대는 시신을 수습해 프놈펜까지 헬기로 운송했고 분향소가 마련된 병원까지는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노란색 비닐에 싸여 있는 사망자의 옷 속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영영 받지 못하게 된 휴대전화. 사고가 난 지 어느덧 한달을 훌쩍 넘겼지만 그 벨소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추락 현장을 발견해 희생자의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보내기까지 내내 사고 현장과 함께 했던 짧고도 긴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