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HD특별 다큐멘터리 2부작 '고려 초조대장경' 대구…
HD특별 다큐멘터리 2부작 ‘高麗초조대장경’
대구MBC 보도국 마승락 기자
대장경이라고 하면 보통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팔만대장경보다 160여년 앞서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역대장경인 ‘고려초조대장경’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더군다나 이 초조대장경의 봉안처가 대구 팔공산 소재 부인사였었다는
사실을 아는 지역민들 또한 드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올해는 초조대장경 조성 천 년이 되는 해이자 대구에서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역사적인 해인만큼 지역의 문화유산인 ‘고려초조대장경’을 재조명해 지역민들 뿐 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취재 및 제작에 나섰다.
먼저 취재진은 대장경의 탄생과 이동경로를 알아보기 위해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로 향했다. 이곳에서 부처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부처님 말씀을 최초로 기록한 패엽경을 영상에 담았다.
이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 대장경을 취재하기위해 중국으로 이동한다. 중국에서는 인류 최초의 목판대장경인 북송 개보칙판대장경 인쇄본을 촬영하였다.
또한 취재팀은 고려초조대장경 인쇄본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방송사 최초로 초조대장경 대반야바라밀다경 인쇄본600권 전질 촬영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부인사지 발굴을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만 초조대장경 봉안처로 알려진 부인사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증명하였으며 더불어 소실된 초조대장경 목판본을 천 년 만에 복원하였다.
열악한 지역 방송 환경 속에서 15개월 동안 제작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회사에 감사드립니다. 카메라 기자가 직접 취재 및 촬영, 편집까지 하면서 여러 가지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저희 제작팀원들이 너무나 헌신적으로 제작에 참여를 하여서 큰 문제없이 제작을 마칠 수 있었던 점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진이 작가님, CG담당 송영진씨 기술담당
류동원씨 정말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또한 담당 제작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본 다큐멘터리가 역사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한역 대장경인 ‘고려초조대장경’을 세상에 알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족한 작품 좋게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4대강에 버려진 175억 예산 부산MBC
4대강에 버려진 175억 예산
부산MBC 조재형 기자
비만 내렸다 하면 낙동강 곳곳에서 사고소식이 들려온다. 다리와 제방이 붕괴되고, 식수 공급이 중단되고......자연이 경고를 시작했지만, 올해 말까지 사업을 모두 끝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변함없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를 수 없을 텐데, 자연에 상처를 준만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텐데, 4대강 사업은 비판의 목소리에 눈 막고 귀 막고 그렇게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낙동강은 나의 주요 출입처가 되어버렸다. 지난 2009년 말 낙동강 사업의 문제점을 연속보도해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뒤, 낙동강 관련 취재는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낙동강 사업과 관련한 많은 제보들이 들어왔고,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낙동강 사업 3공구 현장과 관련한 제보를 듣게 됐다. 낙동강 사업 전 구간에서 유일하게 3공구에서만 발견된 미세점토의 처리와 관련한 제보였다. 175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투입돼 미세점토 처리 공사가 진행 중인데, 막상 미세점토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찌된 일일까? 그 때부터 취재는 시작됐다. 일단 처음 설계 당시 60만㎥라는 미세점토 양이 정확한지 궁금했다. 낙동강 사업본부에 자료를 요구했지만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낙동강의 준설량이 대폭 줄어든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그 당시 준설량을 대폭 줄인 건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취재과정에서 3공구의 지반조사 보고서를 입수했고, 미세점토 양을 추산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준설구간이 수심 9미터에서 7미터로 줄면서 수심 7미터 구간 이내에는 미세점토가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혹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부산 MBC의 첫 보도 뒤 부산시가 추가 지반 조사를 실시했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사실 확인은 쉽지 않다. 아니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엄격한 취재 통제로 기본적인 자료 하나 얻기도 어렵지만 공사 현장 접근도 쉽지 않다.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돼도 수사기관은 쉽게 나서질 못한다. 현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그 어떤 비판도, 의혹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때문이다. 이런 의혹이 단지 의혹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는데 이번 보도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자부한다.
지난해 낙동강 현장 취재에 나섰을 때 한 환경운동가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강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을 갖지 못한 사람이 강을 이렇게 훼손하는 거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줘 야할 강의 진정한 모습이 뭘까? 이런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강이 제 모습을 되찾을때까지......
국민 무시 3색 신호등 중앙일보
국민 무시 3색 신호등
박성우 중앙일보 사건사회부
화살표 3색 신호등 취재는 그야말로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4월 기존 신호등을 모든 전구에 화살표가 들어간 3색 신호등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저희 취재팀은 이게 웬 영문인가 싶었습니다. 신호등처럼 온 국민이 매일 보는 것이 없는데 왜 갑자기 멀쩡한 신호등을 바꾸겠다는 건지, 그렇게 엄청난 교체 작업을 하면서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기는 한 건지, 화살표 3색 신호등이 뭐가 좋은지, 우리나라 신호등 체계가 지금까지 그렇게 후진적이었는지 등등 의문이 의문을 낳았습니다.
당장 화살표 3색 신호등이 시범 운영되고 있던 광화문 앞에 나가봤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단순히 처음 보는 신호등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신호등을 바꾸는 거냐”고 묻는 시민들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빨간 색 좌회전 화살표가 들어오면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에 취재팀은 화살표 3색 신호등과 관련한 모든 것을 파헤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신호등 교체 작업을 추진해 온 것인지를 알아보고 교통정책을 총괄하는 경찰의 설명은 타당한 것인지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주문으로 경찰이 화살표 3색 신호등 아이디어를 냈고, 그 과정에서 형식적인 공청회만 열었을 뿐 일반 시민의 의견을 구한 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화살표 3색 신호등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했지만 취재 결과 신호등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또 ‘(화살표 3색 신호등을 설치하면) 멀리서도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이 되는지 알 수 있다’‘특이하게 생긴 교차로에서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등 경찰이 내세운 화살표 3색 신호등의 장점들은 전국의 모든 신호등을 교체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이라고 하기에는 부차적이고 빈약했습니다.
한 달 여의 집중ㆍ심층보도 끝에 경찰은 결국 화살표 3색 신호등 교체작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근래에 정부가 언론 보도로 인해 정책을 접은 드문 사례로, 취재팀은 저희 기사가 대한민국 언론의 위상을 높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무리 정책 입안자들이 좋다고 하는 정책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때마침 서울시도 국민들 사이에 찬반이 분분한 주소 변경(번지 대신 도로 위주의 새 주소) 정책의 시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정부 내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은 게 이번 보도의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상 수상을 계기로 저희도 앞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는 기사를 발굴하고 보도하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뇌수막염 훈련병 사만 단독 및 군 의료체계 지적 기획…
뇌수막염 훈련병 사만 단독 및 군 의료체계 지적 기획보도
연합뉴스 사회부 김승욱 기자
"군의 명예를 우습게 아는 겁니까. 군대는 다녀왔습니까"
군 의료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을 때 군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내뱉은 한 마디였다.
잠시 말문이 막히고 10여년 전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훈련병 딱지를 떼고 육군 모 사단 감찰참모부에 배치된 첫날, 선임병은 말없이 두툼한 서류철을 펼쳐보였다.
서류철에는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 병사, 야전 상의의 허리끈으로 목을 낸 병사 등 각종 사건사고로 숨진 병사의 사진이 스크랩 돼 있었다.
머리가 절반만 남은 병사의 사진을 가리키며 선임병은 "흔한 일이지. 군대가 이런 데야"라고 했다.
선임병의 말처럼 군 생활 동안 일주일에 2~3번꼴로 전군에서 전파한 사고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사고사례를 스크랩하게 됐다.
10여년이 지난 올해 5월 초, 육군훈련소에서 야간행군을 다녀온 노모 훈련병이 고열에 시달리다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군 생활 중 접한 수많은 사고사례 중 하나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취재할수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야간행군을 마치고 연대 의무실에 간 노 훈련병은 군의관의 진료도 받지 못한 채 의무병이 멋대로 처방한 타이레놀 2정만 받아들고 내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밤새 고열에 시달린 노 훈련병은 다음날 민간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렵게 연락이 된 노 훈련병의 아버지는 더 어이없는 사실을 들려줬다. 부검결과 노 훈련병은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군은 뇌수막염에 걸린 훈련병을 환자로 분류하지 않은 채 기초군사훈련 과정 중 가장 힘든 야간행군에 내보냈다. 행군 복귀 후에는 고열에 시달리는 노 훈련병을 내버려둬 숨지게 했다.
환자 발견에서부터 관리, 치료에 이르는 군 의료체계의 전 과정에 큰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군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까"
막혔던 말문이 트이고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 군 관계자와는 서로 언성만 높이다가 통화를 끝냈다.
노 훈련병의 죽음과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실태가 알려지고 나서 군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도 군 의료체계를 대폭 손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병사의 목숨보다 조직의 명예를 우선하는 군 간부의 의식 변화가 없는 한 근본적인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군의 명예는 치부를 보도한 기자에게 화풀이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부디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군의 명예를 높이는 길일 것이다.
'대기업 MRO 중소기업 영역 침해' 연속보도 매일경…
'대기업 MRO 중소기업 영역 침해' 연속보도
매일경제신문 유통경제부 손동우 기자
"MRO? 그게 뭐에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MRO'에 관한 얘기를 하면 이런 얘기를 할 것이다. LG 서브원 삼성 아이마켓코리아 등 대기업 소모자재대행(MRO) 업체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난 3월말 문구 유통굛제조업체 관계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MRO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반응도 똑같았다.
매일경제신문의 MRO 기획은 `왜 소상공인들이 대기업 MRO에 대해 저렇게 거품을 물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들은 대기업 MRO 업체들에 대한 갖가지 불만을 토로했고, 그중 상당수가 일리 있는 얘기로 들렸다. 대기업 MRO의 부작용이 암암리에 퍼져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중소기업부에 공조를 의뢰해 취재를 시작했다. 생각한 것 이상의 부작용들이 속속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MRO 업체들이 거래대상을 외부로 확대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는다고 울분을 드러냈다. 배송 등 실제 업무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데 대기업이 시스템만 깔고 이익을 중간에서 챙긴다는 지적, 대기업들이 강한 구매력을 앞세워 납품가격을 과도하게 깎는다는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는 이런 팩트들을 묶은 후 최근 급성장한 서브원과 아이마켓코리아의 매출 실적을 묶어 `대기업, 협력사 동원 MRO 횡포'(4월 6일자)라는 기획기사로 게재했다.
사실 취재과정이 쉽진 않았다. 많은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막상 취재에 들어가니 `거래 끊길 일 있냐'며 입을 다물었다. 기사를 작성할 때도 답변에 응해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함께 일하면서 겪는 아픔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연속 보도가 쭉 나갔고 상황도 바뀌기 시작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 MRO 업체들은 여론이 악화되자 스스로 사업조정을 선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지식경제부 등 정부 부처들도 대기업 MRO 배제를 선언했다. 정부와 국회도 대기업 MRO가 불공정 거래와 부의 대물림에 사용됐는지 여부에 대해 압박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 산업의 자유경쟁을 묶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을 받기도 했다. 당시 우리의 판단이 맞았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얼마전, 매일경제신문이 MRO에 관한 기사를 몇 번이나 썼는지 세어 보았다. 우리의 첫 보도부터 7월 1일자 `당굛정 일감 몰아주기 및 MRO 대응방안'까지 약 3달 동안 무려 38개 꼭지였다. 취재부서도 유통경제부, 중소기업부를 넘어 증권부, 경제부, 정치부 등으로 넓어졌다. 때문에 이 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한국기자협회가 회사 전체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리즈 내내 많은 아이디어를 던지고 방향도 제시했던 김성회 유통경제부장, 끝까지 우리를 격려해준 박재현 편집국장과 여러 편집국 선굛후배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손동우 매일경제신문 유통경제부 기자>
고엽제 매립 사건 연속 특종 보도 CBS
고엽제 매립 사건 연속 특종 보도
CBS 권민철 기자
지구촌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또 소비되고 있다. 아이패드 앱을 통해서만도 4000개의 라디오방송과 1000개의 TV 방송을 접할 수 있다. 세계신문협회(WAN) 회원사로 등록된 신문, 통신사만도 17,000개나 된다. 이들 매체가 생산하는 정보 가운데는 우리에게도 가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지 못하는 한 그 정보의 가치는 시간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2011년 5월 13일에도 그랬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피닉스라는 도시에 있는 로컬 TV 방송인 KPHO-TV 방송에 ‘한국에서 근무한 퇴역미군 3명이 고엽제 매립 사건에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러나 이 뉴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6일 뒤인 5월 19일 새벽. 한국 CBS 기자의 페이스북(facebook)에 쪽지가 배달돼 왔다. 미국 LA의 아시아방송국(LA18) 기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 홍재식씨였다. ‘한국의 미군 기지에 다량의 고엽제가 묻혀있다는 방송이 며칠 전 애리조나주에서 나왔었는데 한번 알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보는 곧바로 CBS 워싱턴 특파원에 전달됐다. 왜 그런 뉴스가 미국방송에 나왔을까 의아함도 있었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CBS 특파원은 즉시 KPHO-TV의 방송내용을 확인해 한국시간 이날 새벽 5시 06분 <주한미군, 고엽제 대량 매립 주장> 기사를 한국에 처음 타전했다. 미국 서부에서 건너온 제보가 다시 바다를 건너 미국 동부로 전달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1보가 배달돼 오기까지 불과 3시간 정도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손 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간의 물리적인 거리를 없앤 SNS가 값진 특종을 낚은 것이다.
SNS시대 이전에는 한갓 머릿속에서나 그렸을 법한 지구촌의 메가톤급 제보가 우리 손에 실제로 쥐어진 걸 보고 사실 우리도 놀랐다. 그리고 미국에서 방송된 내용을 토대로 보도했다는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취재후기까지 쓰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사실 이번 CBS의 캠프캐럴 사건 연속 특종 보도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 SNS 취재 기법에 더해 출입처간 벽을 허무는 시도를 하고 있는 CBS 보도국의 실험이 버무려낸 결과이기도하다. 워싱턴 특파원의 1보 이후 우리는 워싱턴과 서울 칠곡을 한데 묶은 뒤 각자의 영역을 뛰어넘는 공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때로는 서울에서 워싱턴과 칠곡을 직접 취재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단서를 토스해 큰 그림을 그리도록 서로 밀고 끌었다. 이 같은 협업시스템은 지난봄에 취임한 뒤 "다 잘 될거야"라며 후배들을 다독인 김진오 보도국장의 국정(局政)운영 방침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협업방식에 대한 불편함도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고 보니 그 방향이 맞았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어느 날 홀연 제주로 내려간 뒤에도 후배들에게 늘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민경중 전 보도국장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