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김선동 의원, 정의화 국회 부의장에 최루탄 CBS
김선동 의원, 정의화 국회 부의장에 최루탄
노컷뉴스 윤창원
한미 FTA는 미래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엄청난 국가의 중대사이다. 아직도 찬반이 대립하고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당시 미 의회의 비준안 우선 처리로 촉발된 국내의 비준안 처리 논란은 야당의원들이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정치, 사회적으로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여,야의 대립 속에 여당인 한나라당이 24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 이틀 앞서 회의를 기습 개회하고 한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야당의원들과의 충돌과 김선동 의원의 국회 의장석 최루탄 투척 사건은 비준안 처리과정의 국회의 혼란을 너무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례없는 비공개 국회 본회의로 취재진과 의원, 보좌진과 관계자들로 국회 본회의장 의원 출입구가 뒤엉킨 극도의 혼란 속에 메케한 냄새와 함께 발언대 주변에서 최루가스를 뒤집어 상태의 김 의원과 의장석의 정의화 국회부의장의 모습은 한미 FTA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정치의 자성을 촉구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새만금방조제 유실 전주MBC
세계 최장 33킬로미터, 완공까지 19년, 쏟아 부은 혈세만 3조원, 새만금방조제는 환경 파괴를 경고하는 환경론자들에게 대표적인 상징물로, 개발론자들에게는 낙후된 지역을 일으켜 세울 미래 성장기반으로 마치 성역처럼 여겨져 왔다. 환경과 개발, 양측의 지루한 대립 속에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됐지만 세계의 유례없는 대역사라는 자화자찬에 가려지고 환경의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경고에 묻혀 ‘방조제가 안전한가?’라는 문제 제기는 지금껏 제대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방조제의 안전성’은 문제를 제기하는 자체가 소모적인 논쟁거리로만 치부될 것이 뻔했다. 나 역시 카메라기자가 수중 촬영한 바다 속 방조제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수십 년 경험의 다이버 전문가와 문제의 2호 방조제 앞 해저를 추가 촬영했다. 겨울이라 물속 시야는 매우 흐렸지만 촬영된 영상과 음파 탐지기를 통해 급경사가 진 방조제의 하반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설계도면에 따르면 방조제의 해저 부분은 완만하게 돼 있어야 하는데 일부 구간이 가파르게 깎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이거나 외부 환경에 침식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6개월 전 감사원이 1호와 4호 방조제의 유실과 안전성을 지적한 자료를 확보했다. 감사원은 방조제 상단부가 강한 파도에 유실되고 있고, 특히 1호 방조제는 도로를 높이는 추가적인 공사로 인해 하단부에 뒤틀림이 생겨 보강공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보강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2호 방조제는 아무것도 지적되지 않았다.
취재결과, 새만금방조제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는 끝물막이 이후 5년 동안 새만금방조제의 구조물에 대한 정밀점검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심각한 안전 불감증, 하지만 ‘새만금방조제 유실’이 보도된 뒤 정부와 농어촌공사는 서둘러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는데 급급했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정밀조사를 매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첫 조사부터 언론을 차단한 채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됐다. 제보자와 함께 우리 취재진이 정부의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됐다. 결국 정부는 방조제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연 이 말을 누가 믿을까?
나와 전주MBC는 서해 바다의 탁도가 낮아지는 봄에 다시 바다 속에 들어가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첨단장비도 동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뉴스가 나오기까지 주변의 도움과 배려가 적지 않았다. 위험을 무릎 쓰고 바다 속에 들어가 생생한 영상을 담아준 홍창용 선배,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배려해준 회사와 데스크, 그리고 수시로 데일리 뉴스에 빠진 나의 빈자리를 메워준 선후배, 기꺼이 인터뷰를 허락해준 여러 교수님들, 끝으로 이 뉴스의 일등공신인 전북수중협회 조준 전무께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구제역 매몰지 돼지사체 비료화 단독 보도 중부일보
구제역 매몰지 돼지사체 비료화 단독 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국은 올해 초 구제역 공포에 떨었다. 말 그대로 소와 돼지를 잃었다. 지금도 구제역이란 말만 나오면 축산농가들은 치를 떤다.
정부는 '외양간'을 고치려 했다. 잃어버린 소·돼지 사체를 재활용해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다.
친환경 비료를 만들어 농가를 지원하겠다는게 주요 골자였다.
취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과정이 머릿속에 한장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남양주시에서는 구제역 매몰지에서 꺼낸 돼지사체 행방을 쫓았다.
농장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한나절 동안 '뻗치기'한 끝에 남양주시가 돼지사체를 꺼내 다른 지역 비료공장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종의 시작이었다.
경기도청에서는 추가로 26곳의 매몰지를 발굴해 비료화하기 시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자그마치 돼지사체 2만5천128마리와 소사체 890마리가 '친환경 비료'란 탈을 쓰고 논밭에 뿌려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관련법을 모두 뒤져 비료관리법, 가축전염병예방법, 축산물위생관리법 등 3개 법을 어긴 불법행위 사실을 보도했다.
물론 가축사체 비료가 뿌려진다고 반드시 2차오염이 일어나란 법은 없다. 공무원들과 검역기관 관계자들도 같은 말을 했다.
'만약'이란 말은 이럴때 쓰는 표현인가 보다.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하나를 막아야하는게 당연한 도리 아닐까.
거창한듯 하지만 역사가 대신 답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질병은 늘 말없이 찾아와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 뒤안길로 사라졌다.
방심하는 순간에는 더 크고 무서운 놈으로 변해 다시 찾아오곤 했다.
정부는 이점을 망각했다. 경기도와 5개 시·군은 정부를 따랐다고 했지만 그 역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세균에 의한 2차오염도 살폈다. 검역기관은 80도 이상이면 웬만한 세균들이 다 죽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검역기관은 무수한 세균을 제쳐두고 구제역 바이러스와 살모넬라, O-157균 등 3가지 세균조사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80℃ 이상에서 사멸되지 않는 세균도 많다고 했다. 이 중에는 수인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도 다수 포함되고 세균 증식에 따른 2차 오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우리사회가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일간의 연속보도 후 관계기관은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정책을 바꿔 지난 11월 전국에 가축매몰지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고, 발굴한 사체를 소멸처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연달아 내려 보냈다.
3명의 기자가 일궈낸 커다란 보람이었다. 단순한 특종을 넘어 정부와 지자체들의 미온적 태도를 바로잡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순간 '목숨 걸고 취재하고 혼을 담아 기사를 쓰라'는 선배 기자의 말이 가슴을 채운다. 평생동안 가슴 속에 남을 말이다.
취재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길잡이가 되어준 선배 기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2년 새해, 모든 언론이 더 큰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MB 美 의회 연설은 ‘로비 업체’ 작품이었다 세계…
MB 美 의회 연설은 ‘로비 업체’ 작품이었다
세계일보 한용걸 기자
“MB 미 의회 연설은 ‘로비업체’ 작품이었다”를 선정해준 심사위원과 이를 평가해준 기자협회에 우선 감사드린다.
수상을 하게 되면서도 이 작품을 출품하기 전 가졌던 망설임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배경부터 설명하고 싶다.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문 작성과정에서 청와대가 미국 ‘로비업체’에 의뢰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우연’이었다. 기자는 지난해 중반 ‘K스트리트’라는 책을 저술했다.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외교관들의 대미 로비 이면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은 미 법무부의 FARA(외국에이전트등록법)에 의해 신고 된 내용을 기초자료로 삼아 제작됐다. 기자는 FARA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대미로비를 하면서 감출 수 없게 된 영역에 접근하게 됐다. 그 것은 한국정부와 미국의 로비업체간 체결된 계약문서이다. 미국의 법률자문, 컨설팅 업체는 외국정부 및 단체를 대리해서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 활동할 때 6개월마다 계약내용을 신고하도록 돼 있다. 신고한 내용은 즉각 공개된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관계자들은 대부분 이 같은 계약내용이 공개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명박대통령 연설문 관련, 계약문건은 지난해 9월 22일 주미한국대사관과 웨스트윙라이터스(West Wing Writers)간에 이뤄졌다. 이 계약내용은 지난해 10월 19일 FARA에 신고 된 뒤 즉각 공개됐다.
기자가 이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언론계 동료들이 미국의 행정 절차상 공개되는 자료취득 루트를 파악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로비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둘러볼만한 FARA사이트(www.fara.gov)에 있는 자료를 기자가 먼저 본 뒤 보도했기에 이번 수상에 손을 선뜻 내밀기 민망했다.
이달의 기자상 출품을 망설이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자는 첫 보도 이후 타매체들이 인용보도하고, 예상외로 파문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책임감을 느꼈다. 정부관계자가 국회에서 해명성 답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주장의 진실성을 규명하고 싶었다. 후속보도를 위해 주미한국대사관과 거래했던 웨스트윙라이터스 소속 계약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기자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웨스트윙라이터스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한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첫 보도에 대한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후속보도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스스로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나오기 까지는 동료 류영현 부장의 안목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탁월한 안목으로 기사가 빛을 보게 됐고, 보도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다.
‘벤츠검사’ 비리 의혹 경향신문
경향신문 조미덥 기자
지난 11월 사건 제보자를 취재하다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검사(여)가 부장판사 출신의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남)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수천만원을 쓰고, 법인 명의로 벤츠 승용차도 빌려 탔다는 것이었다.
가족도 아닌데, 벤츠 승용차를 그냥 주진 않았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해당 검사의 사표가 불과 며칠 전에 수리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했다. 남녀 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 어려웠다.
검찰 관계자는 “남자가 여자한테 좋아서 줬다고 하면 어떻게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은 이러한 내용의 진정을 4개월 전에 받고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사건의 진정인(여)과 변호사, 검사가 얽힌 치정극 정도로 사건을 국한해서 살피고 있었다. 나중에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지금까지 검찰이 남성 위주의 공간이었고, 스폰서 문제는 부장검사 이상 간부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젊은 여검사의 비위를 가정하고 수사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당시에 기자는 검찰이 2010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이 터진 뒤라 이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법조인의 명예가 걸린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던 중 변호사 자신이 연루된 형사 사건이 몇 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검찰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였다.
진정인을 만나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몇 가지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변호사와 검사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일부와 문제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있었다. 꼼꼼히 분석에 들어갔다. “구속영장도 고려해보겠대”, “***검사에게 말해놨어” 등 청탁을 암시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뒤 검사가 ‘샤넬 핸드백 값 540만원을 보내달라’고 독촉하는 문자메시지도 있었다. 그 시기에 법인카드로 539만원이 결제된 것도 찾았다. 청탁의 대가를 보여주는 정황이었다.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지금도 ‘그 문자메시지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증거 불충분으로 내사 종결되는 흔한 사건 중 하나였을 지 모른다.
다음날 일련의 문자메시지를 1면 그래픽으로 넣어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사건은 특임검사팀으로 넘어갔다. 이후 지난 12월28일 검사와 변호사 진정인 모두를 구속기소하면서 특임검사는 임무를 마쳤다.
특임검사팀은 부산지법의 한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와인과 식사 등 170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고, 대법원에 징계 통보했다. 기소는 안됐지만, 지역법관(향판) 출신 변호사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 온 지역법관들의 관행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사장 비리에 대해 의혹을 밝히지 못한 것은 아쉽다. 특히 해당 변호사가 지인을 고소한 건을 검찰이 청탁을 받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의혹은 찝찝하게 남는다. 기소를 한 검찰청 검사장은 그 변호사의 대학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이 건은 법원에서 대부분 정황증거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취재원은 “‘검사장 친구가 고소한 건데 기소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상부의 압박에 당초 무혐의 방침이 기소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과장이나 거짓일까.
공익 사건을 제보한 격이 된 진정인을 구속한 것도 아쉽다. 결과적으로 ‘검찰 비리를 폭로하면 더 크게 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커지고, 진정인이 구속돼 기자 개인적으로도 진정인에게 미안함이 남는다.
그래도 의미가 있다면, 이런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장기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하는 것 아닐까 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평검사가 금품수수 비리에 연루된 것에 대한 충격이 컸고, 그에 대한 대책도 고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올해부터 신임 검사를 뽑을 때부터 인성·자질 평가하고, 청렴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무부 주요 과제가 나왔다. 작은 변화지만 기자로서는 큰 보람을 느낀다.
최태원 회장 형제 선물투자 손실 SK그룹 보전 의혹…
최태원 회장 형제 선물투자 손실 SK그룹 보전 의혹 수사 특종
한국일보 김영화 기자
이번에 문제가 된 SK 사건은 재벌이 공적인 회사자금을 펀드와 저축은행을 이용하여 회사 밖으로 빼돌린 후 이를 개인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중대범죄이다.
SK 최태원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고위험의 선물옵션 투자를 해왔다. 무속인 김원홍씨의 권유에 의해서다. 물론 재벌 회장이라고 해서 선물옵션 투자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두 사람은 제1금융권에서 거액을 빌려 선물옵션 투자를 했다가 추가 대출이 어려워지자, 제2금융권의 저축은행에서도 거액을 빌렸다. 하지만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저축은행으로부터 추가 대출이 불가능해지자 고안한 것이 바로 SK 계열사 자금을 펀드 출자금 명목으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이를 감추기 위해선 돌려막기가 동원됐다. SK텔레콤과 SK C&C 펀드 출자금 497억원을 처음 횡령하고, 해당 펀드의 설립 시기가 가까워오자 SK가스와 SK E&S, 부산도시가스가 투자하기로 한 또 다른 펀드의 출자금으로 메웠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돌려막기는 결국 매 순간 변제의 압박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저축은행을 통한 우회로였다. SK 계열사 자금으로 만든 펀드자금을 예금형식으로 저축은행에 입금하면, 저축은행이 이 돈을 담보로 SK 오너가 지정하는 차명인에게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대출받은 돈은, 실상은 펀드 자금이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SK 계열사 자금이다.
이런 식으로 최 회장 형제가 횡령한 액수는 1,742억원이다. 또 최재원 부회장은 차명 보유 중인 비상장회사인 IFG 주식을 해당 펀드가 주당350만원이라는 비정상적인 고가에 매입하도록 지시해 200억원 가량의 손실도 입혔다. 합치면 최 회장 형제의 횡령 배임 액수는 2,000억원대에 달한다.
비교적 상세하게 SK 오너 일가가 받고 있는 혐의를 소개한 이유는 이번 사안이 얼마나 부패하고 진화한 기업범죄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번 범죄에 악용된 베넥스 펀드는 중소기업을 위한 창투사이다. 또 저축은행은 영세 서민의 금고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이다.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제도를 재벌 오너가 악용한 것이다. 더군다나 2008년 당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릴 때였다.
시장 권력이 정치권력을 넘어섰다는 진단이 하루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는 여지없이 증명됐다. SK는 막강한 정보력으로 압수수색 영장 발부사실도 미리 파악해 수사에 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초기부터 "동생만 처벌되고 형은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시나리오가 범람했고, "스마트 수사 기조에 역행하는 먼지털기식 수사로 기업 활동에 방해를 받는다"는 민원성 기사는 여전히 지면에서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일보 취재팀도 사건 초기부터 관련 의혹을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혼자 튄다'는 반응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SK 사건은 언론이 결코 침묵해선 안 될 사안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의 힘들고 외로웠던 취재 여정이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고 인정해준 한국기자협회의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