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5편
비료, 유해물질 범벅 TBC대구방송
‘비료, 유해물질 범벅’
TBC대구방송 박철희 기자
농촌에 살지 않는 이들에게 비료는 참 먼 이야기다.
어떤 비료를 어떻게 뿌리는지 본 적도 없고 도무지 감감할 뿐이다.
하지만 의외로 가까운데 있는게 비료다. 농민들은 농작물에 비료를 뿌리면서 이를 들이마시고 비료성분을 담은 농작물을 도시민이 먹는다.
국내 비료시장 규모는 친환경 유기농 비료까지 합쳐 연 2-3조원대로 추정된다.
‘친환경 비료 지원’ 명목으로 혈세도 연간 수천억원이 투입된다. 우리나라는 2기작 이상 농업형태가 많아 외국에 비해 비료사용도 훨씬 많다. 비료에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는 건 명백히 두메산골만의 환경문제가 아니다.
제보가 접수된건 지난해 5월, 비료를 뿌리고 나면 피부가 항상 가렵다는 내용이었다.
유해물질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구체적 내용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비료가 농지에 뿌려지는데 비해 관련보도는 거의 없었던 점을 감안해 해볼만 한 취재라고 판단했다.
기초 자료조사를 하던 중 눈이 번쩍 띄었다. 일부 비료의 원료 가운데 사문석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초 포스코에서 석면이 검출된 사문석을 제조 공정에 쓰다가 문제가 됐던 기억이 났다. 당시 담당은 아니었지만 사문석에서 석면이 나오는 걸 알게 됐고 결국 비료서도 석면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년간의 취재는 이렇게 시작됐다.
석면과 중금속에 방사능까지, 들이대는 항목마다 문제가 되지 않는게 없었다.
당국의 비료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일부 '유해비료'는 국비가 투입돼 개발됐고 지자체가 보조금을 줘가며 보급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과 밀접한 비료가 보건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건 농업과 농민을 가벼이 여겨온 정부의 시각과 무관치 않다. 농가에 공짜로 준다는 혹은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시혜성'이 있을뿐 '유해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농민들은 정부를 믿었다고 했다. 작물의 보약이고 정부가 주는 거니까 건강에 해를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스크나 장갑도 없이 뿌리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뒤늦게 정부는 증산에만 초점을 맞춰온 비료법에 대해 보건 개념을 넣어 50년만에 전면개정하기로 했다. 농민들 사이에서도 비료가 더이상 영양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늘상 시간에 쫓기는게 기자다. 덩달아 마음도 바쁘고 뭘해도 당장 결과를 내야 하는게 본의 아닌 일상이 돼 왔다. 하지만 이번 비료취재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 진득하게 진행한 듯 하다.
짬짬이 이곳 저곳 다니며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이 검사 저 검사 다 해봤다.
덕분에 취재비가 TBC 뉴스 단일 아이템으로는 사상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동료 선후배들의 희생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수상한 최상보, 이상호 기자, 그리고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현직 군수와 후보들, 브로커에 줄줄이 ‘노예각서’…
현직 군수와 후보들, 브로커에 줄줄이 ‘노예각서’
CBS전북 임상훈 기자
1995년 민선자치가 시작된 이래 전북 임실군은 3명의 후보(재선 포함)가 비리혐의에 연루돼 내리 낙마했다. 또 현 군수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군수가 됐다하면 법정에 서게 됐고 직을 잃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취재의 시작은 '왜 임실군이 군수의 무덤이 됐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사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이른 바 '임실오적(任實五賊)'이라는 브로커 세력이 불명예스러운 상황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부정의 고리를 들춰내지는 못했다. '~카더라'라는 소문만 돌 뿐이었다.
주도면밀하게 군정을 농락한 브로커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각서'였다. 군수와 후보자들을 상대로 모사를 꾸미는 대가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는 각서를 관례처럼 받았다.
이 각서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꼬리가 됐고, 취재진에게는 얽히고설킨 비리의 실타래를 끊어내는 쾌도난마의 단초가 됐다.
2005년께 민선 4기 김진억 전 임실군수는 브로커에게 공사를 주는 대신 수억원의 뇌물을 받는다는 각서를 써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혐의를 입증할 증언을 한 브로커는 검찰 수사에서와 달리 법정에서는 김 전 군수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꿨다.
취재진이 새롭게 발견한 첫 각서는 바로 이 진술번복을 대가로 또다른 공사 수주를 보장해준다며 김 전 군수측이 브로커에게 써 준 내용이었다. 이후 집요한 취재가 시작됐다. 김 전 군수의 낙마가 예상되면서 예비후보들이 난립했고, 이 과정에서 브로커세력은 대부분의 예비후보자에게 '선거를 도와줄 테니 군수에 당선되면 비서실장과 인사권 및 사업권 40%를 보장한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현 강완묵 임실군수 역시 2007년 예비후보시절 브로커세력에게 이같은 각서를 써줬다는 사실이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강 군수는 이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위기감을 느낀 브로커세력은 흥신소까지 동원해 취재진을 압박했다. 하지만 최초보도 이래 새로운 비리를 들춰내는 10여 차례에 걸친 보도로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고, 임실 시민사회도 각성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임실군민의 한탄소리가 하늘에 닿아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군민의 아픈 소리. 이번 보도가 임실군민의 공통된 아픔을 풀어낼 수 있는 단초가 됐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 4장의 유서로 밝혀진 학교폭…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 4장의 유서로 밝혀진 학교폭력의 실태
대구MBC 김은혜 기자
빈소에서 유서를 처음 접했을 때 놀란 마음은 뉴스를 접한 시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그 싸움 안에 깃든(?) 인간미나 정은 찾을 수 없는 게 요즘이구나 허탈한 마음과 함께 취재가 시작됐다.
00이가 이렇게 유서를 남긴 건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인 것 같다는 부모의 말,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던 날- 유서가 없었다면 묻혔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우동기교육감의 말처럼...13살 소년이 자신의 상황을 외부에 알리지 못한 채 목숨을 끊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남겼던 긴 글은 슬프게도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모두가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건기자 5년 차, 그동안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접했다.
학생이 학생을, 학생이 교사를, 교사가 학생을, 학부모가 교사를 때리는 불미스러운 일들.
이런 사건을 접하고 취재하면서 느꼈던 것은 학교 ‘안’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데 언제나 학교 안에서만 해결하려 하는 것이었다. 언론 보도가 잦아들면 관심도 줄어들고 그러면 좀 편해질 것이다,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진 학교와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문제가 있으면 일단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게 가장 좋다는 폐쇄적인 생각과 방법이 학교폭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이 근본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이번 사건은 일단락돼도 학교폭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힘든 취재였다. 유족들에게 얼마나 슬픈지 말하게 하고, 아픈 상황을 되짚어 설명하게 하는 것. 늘 하던 일이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권군 사건이 발생하기 5개월 전에 왕따 문제를 알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모 양 사건은 경찰 조사가 다시 시작되게 한 것 이외에 진척이 없어 마음에 여전히 짐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여러 번 찾아가도 힘든 내색 없이 취재에 응해주고 보도 이후 가해자 조사 등 사건 처리가 신속히 이뤄졌고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어 고맙다는 유족들의 말이 큰 원동력이 됐다.
또한, 이번 사건을 함께 고민하고 취재한 선배들과 부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10대가 아프다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경향신문 류인하 기자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한 중학생이 A4용지 네 장짜리 유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이는 유서에 자기 동생만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고, 좋은 성적만 강요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 “곰인형과 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겨우 14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릴 때부터 끌어안고 자던 곰인형과 아이팟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유서는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단순히 지방의 한 아이가 목숨을 끊었다라는 단신기사용으로 치부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0대들은 이 아이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달 이상의 기획회의가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자들 대부분이 이미 30대인 상황에서 10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0대를 ‘겪었’지만 기사는 ‘10대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미 10대와 관련된 보도는 조금씩 타 매체를 통해서도 많이 나온 상태였습니다. 10대의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특별취재팀이 내린 결론은 ‘무조건 많이 듣자’였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상태. 아이들이 비속어를 쓰면 비속어를 쓰는대로 최소한으로 거르고, 기자의 개입이 없는 아이들 속내를 그대로 파헤쳐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1명의 아이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1시간이 넘는 기다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단 몇줄짜리의 속내를 듣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취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전 취재팀이 한 달 넘게 서울 전역의 100명 이상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학교 앞에서 쫓겨나기 일쑤였고, 비행청소년을 만나기 위해서는 잠복취재까지도 감수해야했습니다. 어떤 기획의도도 갖지 않고 일단 듣고 판단하는 방식의 취재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아무런 덧붙임 없이 들어주는 어른을 처음 만난 아이들은 점차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한 취재를 통해 특별취재팀은 10대들이 갖고 있는 고민, 자신의 연애담, 성적, 친구문제, 부모님과의 갈등 등 30대 어른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10대들에 대한 취재팀의 관심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보람된 일들도 많았습니다. 부모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아이를 발견, 부모와 함께 상담을 받게 함으로써 어머니가 갖고있던 잘못된 훈육방식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또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한 아이들이 기자들과의 지속적인 연락을 통해 직접 제발로 검정고시학원을 등록하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0대는 많이 아픕니다. 20대도, 30대도, 40~50대도, 60대 이상의 노년층도 모두 각자 아프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10대들의 아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은 아직 ‘시작’ ‘희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해도 언젠가 좋은 일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우지 못한 10대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라고 배워버리는 10대는, 절망할 때마다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아픔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중·고등학생이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택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이 되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이번 기획보도로 10대들을 바라보는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많은 어른들의 시선이 따뜻해졌길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10대가 아프다’는 말이 정언명제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길 희망해봅니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 한겨레신…
선관위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
한겨레신문 하어영 기자
지난해 10월26일 선관위 사이버 테러가 있던 날, “디도스 공격이 아니라 공당에 의한 선거제도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테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억이 납니다. 디도스 공격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을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20대 비서가 기획한 디도스 공격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결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디도스 공격이라는 주제 앞에 섰습니다. 그 ‘팩트’에서 출발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기자라고 배웠습니다. 합리적 의심은 고민의 시작일 뿐 보도의 시작은 팩트입니다. 대신 결심했습니다. ‘디도스라고 쓰인 기사가 사이버테러라 읽힐 수 있도록 하겠다.’ 취재에 나섰고, 미궁을 헤맨 것이 한 달입니다.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로부터 청와대가 경찰과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 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린 건 당연지사입니다. 당시 20대 비서의 단독범행이라고 알려진 사건에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개입했다는 팩트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을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팩트를 좇는 과정에서 돈거래 정황이 감춰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돈거래를 경찰이 덮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럴 리 없다’는 의심에서 복수의 관계자에게 거듭 확인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한겨레 21 표지이야기 <선관위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가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경찰은 당일 브리핑을 통해 금전거래 사실이 있었다는 팩트를 곧바로 확인했습니다. 경찰청장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두 차례 전화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 뒤로도 경찰과 청와대의 교감이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를 꾸렸고, 야당은 특검을 제안했습니다.
또 한 달이 흘렀습니다.
취재는 계속됩니다. 두 발은 팩트라는 단단한 땅에 딛고 있어 두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저 너머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을까하는 설렘이 가득합니다.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여 기어 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다’는 경구를 가슴에 새깁니다.
취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한겨레 21 이제훈 편집장을 포함한 한겨레신문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