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기획] ‘연고보다 돈, 그들만의 빛바랜 축제’
대구 MBC 도성진 기자
‘모두가 축제에 취해 똑같은 곳을 응시할 때, 외롭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뒤집어 보기’
전국체전 개막식이 열린 지난 10월 20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은 그야말로 올림픽에 버금가는 화려한 개막행사로 들떠있었다. 국제 수준의 시설과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볼거리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열심히 담아내는 취재진과 중계진.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취재진 속에 나도 함께 호흡하고 현장을 누비며 무언가를 담아내기에 분주했다. 하지만 내가 담아내고자 했던 건 그런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전국체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출장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야했기에 끼니를 걸러 가며 숨가쁜 취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체전 만년 꼴찌팀인 제주도의 문화체육과장도 만났고, 故조오련 선수와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수영 원로는 물론 관중석을 채우기 위해 동원된 초등학생과 들러리로 참가한 비인기종목의 선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현지 취재는 이렇게 짧은 일정에 쫓기며 내달려야했지만 사전 취재와 준비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전국체전 기획은 지난 5월부터 보도를 시작한 ‘대구 승마협회의 해묵은 비리’라는 또 다른 기획취재가 발단이 됐다. 20년 가까이 대구 대덕승마장을 위탁 관리해 온 단체이기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상당한 양의 자료를 확보했고, 이 자료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국체전용 승마선수 스카우트’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몇 년 동안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전국체전 한 번 출전에 7천만원을 받는 선수가 있다는 것은 당시로선 적잖은 충격이었고,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단편적인 보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생겼다. 그때부터 승마협회에 관한 기획보도는 이어가며 틈틈이 체육계 안팎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고, 반 년 가까이 진행된 긴 호흡의 사전 취재는 비로소 숨가빴던 1박 2일의 현지 취재를 거쳐, 전국체전이 한창이던 10월 23일 첫 전파를 타게됐다. 기사 내용 중 “수영의 한 선수는 최근 5년 동안 4개 지역의 대표로 출전했고, 근대 5종과 카누의 한 선수도 서로 다른 3개 지역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라는 이 짧은 문장을 작성하기 위해 수 십 명에 달하는 체육계 안팎 인사들과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 분석이 필요했고, 선수등록시스템 등 다각적인 검증과 확인이 필요했다.
이번 기획보도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하며 땀 흘리고 있는 수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괜한 오해로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경기단체간 이권다툼으로 특정 종목에 지나치게 많은 점수가 배정되고 그로인해 소수 종목, 소수 선수에게만 혜택이 쏠리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꿔서 결국은 전국체전과 우리 아마추어 스포츠를 정상궤도로 돌려놓자는게 이번 보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국체전은 이제 수 십년 만에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의미 없는 순위 경쟁과 텅 빈 관중석, 고장의 명예와 무관한 선수 영입경쟁..
이젠 비뚤어진 구조 속에서 수 백억의 혈세를 건 ‘그들만의 빛바랜 축제’는 바뀌어야 한다.
반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취재기자보다 더 나은 현장 감각과 일 욕심으로 항상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카메라기자 윤종희 선배에게 이번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기획한답시고 설쳐대는 후배를 따뜻한 시선으로 믿고 지지해준 보도국 식구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회차 심사평
제230회 전체 총평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이용원 서울신문 대전`충남북 지역본부장
제230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모두 7개 부문에 40편이 응모해 5개 부문, 6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효성 수사 축소 의혹’ 연속보도와 ‘청와대 행정관 통신3사 기금 압박’ 보도 등 2편이 선정됐다.
한국일보 법조팀의 ‘효성’ 기사는 심사위원 전원에게서 합격점을 받았다. 대검이 효성그룹에 관한 범죄 첩보 10여 가지를 분석, 위법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사실을 단독 보도한 뒤 관련 의혹을 집요하게 추적해 이슈화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자칫 묻혀버릴뻔한 재벌 비리 의혹을 검찰이 재수사하게끔 만들었고, 또 결과적으로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인수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등 파급효과 역시 컸다는 게 공통된 평가였다.
한겨레신문의 ‘통신3사 기금 압박’ 보도에 대해서는 일부 심사위원이 마무리가 미흡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사건의 성격상 더 이상 깊숙한 취재는 어려웠으리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아울러 현존하는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 언론의 일차적 기능이므로 보도 내용만으로도 상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기획보도 신문 통신 부문은 서울신문이 출품한 ‘외국인 폭력조직 대해부’가 차지했다. 경찰조차 파악하지 못한 국내 외국인 폭력조직을, 계보도를 제시할만큼 심층 취재한 기자의 노력과 그 능력에 격찬이 이어졌다. 이론 없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이 되었다.
지역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전국체전, 그들만의 빛바랜 축제’(대구MBC)가 뽑혔다. 처음 지역 체육계의 비리 의혹에서 출발한 보도가 갈수록 그 영역을 확대해 결국은 전국체전의 구조적 문제점까지 파헤치기에 이른, 해당 기자의 끈질긴 취재 의지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MBC가 ‘부마 민주항쟁 3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우리는 애국가를 불렀다’는 지역기획 방송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1979년 10월 일어난 부마 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 도화선이 된 역사적인 ‘사건’인데도 지금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번 특집은 우선 시의적절했다는 평을 받았다. 게다가 항쟁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새 자료를 적극 발굴해 사료적 가치를 더한 점이 점수를 높이는 데 보탬이 됐다.
전문보도 부문에서는 코리아타임스의 ‘세금 한푼 안낸 토플 주관사’ 연속보도가 상을 받게 됐다. 이 작품을 두고는 심사위원 사이에 갑론을박이 적지 않았다. 세금을 내지 않은 책임이 토플 주관사에 있는지, 아니면 국세청에 있는지가 명확치 않다는 둥 기사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여러 심사위원이 했다. 그렇지만 문제제기 자체는 의미가 크다는 반론이 적잖게 나온 데다, 영자신문에 현실적으로 따르는 취재의 제약성을 극복한 노력을 평가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더 우세했다.
이번 심사에서는 ‘기획보도 방송’과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두 부문에서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특히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는 5편이 응모했는데 한 작품도 예심을 통과하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출품하는 시점(타이밍)이 대부분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달의 기자상’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한달 동안에 보도한 기사 가운데서 우수작을 고른다. 따라서 이번 230회 심사는 2009년 10월에 보도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도 ‘흔들리는 수산도시’ ‘안면 소나무’ ‘위기의 청소년 시리즈’ 등 몇몇 응모작은 이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기획 시리즈는 진즉에 끝냈으면서도, 이와 관련한 정부 정책이 10월에 발표되자 묵은 기사에 그 발표 기사를 덧붙여 출품작으로 내놓았다. 마치 ‘이같은 정책은 우리 시리즈가 이뤄낸 성과이므로 이제는 상을 받아 마땅하다’라는 식이다.
언론의 문제 제기에 정책 당국이나 관련기관이 즉각 반응을 보이는 건 기사의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다. 그러나 반응이 없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기사는 기사 자체로서 평가받을 뿐이다. ‘이달의 기자상’ 응모에 실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