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회)애기봉 등탑 43년 만에 철거
한국일보 김광수
2010년 12월 21일의 난리법석이 기억에 선명하다. 최전방 애기봉 등탑 점등행사를 북측이 조준사격으로 위협하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 해에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을 겪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애기봉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씁쓸했다. 뒷맛은 더 개운치 않았다. 매년 이런 소동을 벌여야 하나. 그 후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습관처럼 애기봉에서 점등행사를 하는지 묻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올해도 대답은 비슷했다. “확정된 게 없다”, “확인해 줄 수 없다”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때 귀를 잡아채는 한마디를 들었다. “애기봉이 이상한데.”
취재의 시작이었다. 늘 그렇듯 아는 사람은 극히 적고, 대부분 뚱딴지 같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담당자인데 나도 금시초문”이라는 핀잔도 들었다.
그러면서 퍼즐을 맞춰 나갔다. 애기봉 등탑 철거 기사를 내보낸 뒤 박근혜 대통령이 호통을 쳤다는 청와대 반응도 운 좋게 접할 수 있었다. 사회적 파장은 이때부터 커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등탑 졸속 철거’를 사과하고 일부 종교단체는 등탑을 다시 세우겠다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작 애기봉에 가보지 않고 기사를 쓴 점은 못내 아쉽다. 당시 전작권 전환 재연기 문제로 정신 없기는 했지만 학창시절과 군 복무 때 안보현장 견학코스로 들렀던 애기봉을 대면하지 못하고 자판만 두드렸다. 날이 좀 풀리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현장을 찾아 나만의 기억을 들려주고 싶다.
회차 심사평
제290회 전체 총평
제290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숫자와 수준 모두 탄탄했다. 심사에 공이 배나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출품작 수 58개, 다른 달 보다 2-30% 많았다. ‘관심의 사각’을 두드리고, ‘보도 그 이후’를 되짚어 캐낸, ‘수준’들이 두드러졌다는 총평이 나왔다. 지역 보도 부문도 크게 주목받았다. 출품작수도 전체의 40%를 넘었고,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평을 받았다.
취재 보도 부문에서는 4편이 상을 받게 됐다. 국민일보의 ‘통영함 비리 의혹’은 방산 비리를 밝혀내는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취재 기자가 국방부와 무관한 정당 출입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출입처중심주의를 탈피한 바람직한 취재 사례라는 호평이 뒤따랐다.
한국일보의 ‘애기봉 등탑 43년만에 철거’는, 자칫 묻혀질 뻔 했던 사실을 드러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북심리전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상징물로 43년간 친숙해진 등탑이, 국민들도 모르게 ‘실무적’으로 철거된 사실을 찾아내, 문제점을 지적한 점이 인정됐다.
JTBC의 ‘전두환 재산 환수 쇼? … 껍데기 부동산 내놨나’는 1년 전 있었던 큰 뉴스의 ‘그 후’를 추적 발굴한 보도로 호평을 받았다. ‘전두환 씨의 추징금 전액을 환수할 것’이라는 당시의 대대적 공언이 실제로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검증해, 허실을 밝혀낸 점이 돋보였다.
서울경제 신문의 ‘정부 R&D 10건 중 6건, 셀프 과제로 나눠 먹기’는 정부의 R&D 지원 제도를 뿌리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보도였다. 이른바, ‘사회 관계망’ 기법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해 신뢰도도 더했다. 그러나 지면 할애 등 보도의 비중이 내용에 걸맞지 않게 다뤄져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획 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선 1편이 뽑혔다. 수상작인 한겨레신문 한겨레 21의 ‘눈물의 밥상 & 인권밥상 캠페인’에서는 우리 채소를 가꾸고 김치를 담그는 등, 어느 새 ‘우리 밥상’까지 맡기 시작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해법을 모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획 보도 방송 부문에서는 KBS의 ‘해외부동산 추적보고서 - 회장님의 나라는 어디입니까?’와 EBS의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 - 경계선 지능 심층취재’ 2편이 뽑혔다. 해외부동산 추적 보고서의 경우, “KBS라서 가능한 대형 탐사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대 재벌 일가 920여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관보를 전수 분석, 출생과 국적 실태, 그들이 권리에 따른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 등 핵심 사안들을 현장감 있게 고발한 점이 돋보였다.
‘느린 학습자’ 기사는 교육 방송 특유의 전문성이 반영된 우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지적 장애인 수준은 아니지만 정상적 학습이 어려운 ‘느린 학습자’라는 존재를 대중에게 알리고, 배려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이들이 전국적으로 8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26편에 이르는 지속적인 보도로 사회, 정책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전개가 좋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취재 보도 부문에서 뽑힌 2편은 모두 원전 안전 관련 보도물이다. 광주일보의 ‘한빛 원전 방사능 물질 유출 은폐, 실수’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다수의 취재원을 확보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보도를 해냈다는 점이 호평을 받았다. 부산 MBC의 ‘고리원전 CCTV 은폐 의혹’ 역시, 원전 취수기 건물 침수라는 사고 과정에서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차단된 정보 루트를 뚫고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슷한 주제의 보도물에 다 상을 주기로 한 건 이례적이지만 이의가 없었다. 최근 원전에서 지속적으로 사고가 나고 있어 어느 때 보다 원전 안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였다. 원전 안전은 지방언론이 사명감을 갖고 감시해 줘야 할 전문 분야라는 주문도 함께 나왔다.
전문보도 사진 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서해의 매향리 직도의 불기둥’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매향리 사격장 폐쇄 이후 미 공군의 사격장이 된 직도의 상황을 처음으로 포착해 알렸다는 점이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오랫동안의 준비와 관심이 배경이 된 단독 사진 영상이라는 점도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