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회)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 - 경계선 지능 심층취재
EBS 이동현 기자
올해 1월, 한 교원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에서 ‘경계선 지능’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능 지수가 71∼84로 ‘경계선 지능’으로 분류되는 아이들. 교실 안에는 지적 장애인도 정상 지능도 아닌 학생들이 존재했다. 더 큰 충격은 이들이 한 반에 3명, 전국적으로는 80만 명에 달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해 성적은 최 하위권을 맴도는 아이들은 왕따와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졸업 후 군대에 가서는 관심병사로 취급받았고, 성인이 돼도 자립을 못해 평생 가족의 짐이 되고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회적 안전망은 턱없이 미약했다. 교육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고, 교사들은 수수방관했다. 학습권과 인권이 침해되는 이들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이들의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한 건 이 때문이었다.
취재와 섭외는 난항이었다. 워낙 생소한 주제여서 이 분야의 전문가를 찾는 것 조차 어려웠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교육학과 교수와 특수교육과 교수를 닥치는 대로 접촉했지만 대부분 현실을 잘 몰랐다. 어떤 교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며 만류하기도 했다.
당사자인 경계선 지능 학생을 만나기는 더욱 힘들었다. 학교에는 기본 자료도 없었다. 해당 학생을 겨우 찾아내도 신분 노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경계선 지능으로 26편의 기획보도를 만드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희열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써내려가야 할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제야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기분이었다.
보도 이후 교육단체들은 경계선 지능의 현황과 정부 대책을 집중 논의하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는 오는 12월 4일 경계선 지능 학생 입법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린다.
경계선 지능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적절한 지원과 교육이 뒷받침된다면 이 아이들은 얼마든지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음지에서 고통 받고 있던 경계선 지능 학부모들도 조금씩 용기와 희망을 되찾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긴 시간 함께 취재한 오승재 선배와 후배 이상미 기자를 비롯해 영상 취재팀과 편집팀 이하 EBS 교육뉴스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회차 심사평
제290회 전체 총평
제290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숫자와 수준 모두 탄탄했다. 심사에 공이 배나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출품작 수 58개, 다른 달 보다 2-30% 많았다. ‘관심의 사각’을 두드리고, ‘보도 그 이후’를 되짚어 캐낸, ‘수준’들이 두드러졌다는 총평이 나왔다. 지역 보도 부문도 크게 주목받았다. 출품작수도 전체의 40%를 넘었고,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평을 받았다.
취재 보도 부문에서는 4편이 상을 받게 됐다. 국민일보의 ‘통영함 비리 의혹’은 방산 비리를 밝혀내는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취재 기자가 국방부와 무관한 정당 출입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출입처중심주의를 탈피한 바람직한 취재 사례라는 호평이 뒤따랐다.
한국일보의 ‘애기봉 등탑 43년만에 철거’는, 자칫 묻혀질 뻔 했던 사실을 드러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북심리전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상징물로 43년간 친숙해진 등탑이, 국민들도 모르게 ‘실무적’으로 철거된 사실을 찾아내, 문제점을 지적한 점이 인정됐다.
JTBC의 ‘전두환 재산 환수 쇼? … 껍데기 부동산 내놨나’는 1년 전 있었던 큰 뉴스의 ‘그 후’를 추적 발굴한 보도로 호평을 받았다. ‘전두환 씨의 추징금 전액을 환수할 것’이라는 당시의 대대적 공언이 실제로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검증해, 허실을 밝혀낸 점이 돋보였다.
서울경제 신문의 ‘정부 R&D 10건 중 6건, 셀프 과제로 나눠 먹기’는 정부의 R&D 지원 제도를 뿌리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보도였다. 이른바, ‘사회 관계망’ 기법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해 신뢰도도 더했다. 그러나 지면 할애 등 보도의 비중이 내용에 걸맞지 않게 다뤄져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획 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선 1편이 뽑혔다. 수상작인 한겨레신문 한겨레 21의 ‘눈물의 밥상 & 인권밥상 캠페인’에서는 우리 채소를 가꾸고 김치를 담그는 등, 어느 새 ‘우리 밥상’까지 맡기 시작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실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해법을 모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획 보도 방송 부문에서는 KBS의 ‘해외부동산 추적보고서 - 회장님의 나라는 어디입니까?’와 EBS의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 - 경계선 지능 심층취재’ 2편이 뽑혔다. 해외부동산 추적 보고서의 경우, “KBS라서 가능한 대형 탐사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대 재벌 일가 920여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관보를 전수 분석, 출생과 국적 실태, 그들이 권리에 따른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 등 핵심 사안들을 현장감 있게 고발한 점이 돋보였다.
‘느린 학습자’ 기사는 교육 방송 특유의 전문성이 반영된 우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지적 장애인 수준은 아니지만 정상적 학습이 어려운 ‘느린 학습자’라는 존재를 대중에게 알리고, 배려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이들이 전국적으로 8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26편에 이르는 지속적인 보도로 사회, 정책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전개가 좋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취재 보도 부문에서 뽑힌 2편은 모두 원전 안전 관련 보도물이다. 광주일보의 ‘한빛 원전 방사능 물질 유출 은폐, 실수’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다수의 취재원을 확보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보도를 해냈다는 점이 호평을 받았다. 부산 MBC의 ‘고리원전 CCTV 은폐 의혹’ 역시, 원전 취수기 건물 침수라는 사고 과정에서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차단된 정보 루트를 뚫고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슷한 주제의 보도물에 다 상을 주기로 한 건 이례적이지만 이의가 없었다. 최근 원전에서 지속적으로 사고가 나고 있어 어느 때 보다 원전 안전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였다. 원전 안전은 지방언론이 사명감을 갖고 감시해 줘야 할 전문 분야라는 주문도 함께 나왔다.
전문보도 사진 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서해의 매향리 직도의 불기둥’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매향리 사격장 폐쇄 이후 미 공군의 사격장이 된 직도의 상황을 처음으로 포착해 알렸다는 점이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오랫동안의 준비와 관심이 배경이 된 단독 사진 영상이라는 점도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