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관급자재 ‘가격조작’’
TBC 사회부 이세영 기자
"무슨 그리드요?" 지오그리드라는 토목용 보강재, 생전 처음 들어봤습니다. 검색해도 정보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먼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단가 조작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조달청은 6년 동안 시중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에 토목용 보강재를 팔아왔습니다. 취재진도 전화를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시중 가격을 조달청만 몰랐습니다. 그렇게 뻥튀기된 가격으로 6년 동안 무려 800억원 어치가 팔려나갔습니다. 조달청의 시장 가격 조사 기능은 유명무실했습니다.
첫 보도 이후 업체들이 전자세금계산서를 조작해 가격을 부풀린 사실, 최초 조달 등록 당시 대형 업체들이 가격을 담합한 정황과 공무원 로비 정황을 포착해 연속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안 조달청은 그제야 처음으로 현장 조사에 나섰고, 감사를 벌여 긴급사전거래정지 조치 후 업체들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문제가 된 지오그리드는 폴리에스테르라는 섬유를 직조한 뒤 검게 코팅한 겁니다. 이렇게 간단한 공정의 물품도 가격 조작이 쉽게 되는데, 조금 더 공정이 복잡하거나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물품들은 어떨까요. 이제라도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윱니다.
제보자는 본인도 비싸게 팔고 싶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취재로 가장 보람된 것은 그 양심을 적어도 좌절시키지 않았단 겁니다. 두려움과 걱정을 비집고 낸 용기,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아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목소리라는 믿음을 기사로써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역에서 시작된 보도지만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대된 것은 이제 3년차 기자인 저에게도 큰 의밉니다. 끝까지 기자를 믿어준 제보자, 그리고 항상 함께 뛰어주는 TBC 모든 선배와 동기들, 고맙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05회 전체 총평
YTN '뻥뚫린 인천공항' 허술한 보안실태 등 고발…사회적 반향
2016년 새해 첫달부터 이달의 기자상 경쟁이 치열했다. 전통적인 특종에 해당하는 취재보도1부문(정치,사회분야)과 지역취재보도부문에 각각 15개, 11개의 작품이 올라왔다. 그만큼 언론이 감시 견제해야 할 일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다는 뜻일 것이다.
특히 취재보도1부문은 출품작 15개 가운데 5개 작품이 최종 심사 대상에 오를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열띤 토론 끝에 YTN의 ‘밀입국·폭발물 의심물체…뻥뚫린 인천공항’과 매일경제의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졸지에 폐업한 ‘헤이딜러’’, CBS의 ‘좌익효수급 ‘일베’ 국정원 직원 3명 더 있다. 檢 은폐 의혹’ 등 3건의 기사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YTN의 ‘뻥뚫린 인천공항’은 취재여건이 어려운 환경임에도 허술한 공항 보안실태와 나태한 근무태도 등을 초기부터 정확하게 짚어냈으며, 사회적 반향도 컸다는 평을 받았다. 매경의 ‘헤이딜러’는 깊이 있는 취재로 청년 기업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CBS의 국정원 직원 기사는 자칫 묻힐 뻔 했던 사안을 발굴 보도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역취재보도부문에서는 끈질긴 보도로 조달청의 현장 조사까지 이끌어낸 대구 TBC의 ‘조달청 관급 자재 가격조작’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비록 수상작으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중부일보의 ‘천문학적 부당이익 챙긴 판교테크노밸리 ‘초과임대’ 실태 30개월 추적 고발’과 부산일보의 ‘안전보다 비용? 저비용항공사(LCC) 배짱 운항’도 언론 본연의 감시 업무에 충실한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재보도2부문(문화,체육,레저,과학,환경,국제,영자신문)에서는 3건의 경쟁작 가운데 KBS의 ‘전국 유·초중고 석면지도 작성 및 석면 정보 관리 문제점’이 뽑혔다. 전국의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석면 사용 실태를 분석해서 학부모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제공하는 등 생활밀착형으로 접근한 점이 돋보였다.
6개 작품이 나온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에서는 무려 3편이 수상작으로 뽑혀 기획기사의 완성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겨레는 이 중 ‘‘과거사 재심사건’ 책임자 505명을 공개합니다’와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의 국민 후원 제작을 위한 연속 보도’(한겨레21) 등 두건의 수상작을 냈다. ‘재심사건 책임자 505명’은 배석판사였다는 이유만으로 도매금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등 일부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정의 차원에서 꼭 필요한 보도라는 의견이 많았다. ‘귀향 연속 보도’도 시의적절했을 뿐 아니라 영화화에 성공하는 등 반향도 컸다는 점에서 격려할 만하다는데 심사위원들의 공감대가 모아졌다. 일본과 덴마크, 브라질 등 4개국 2500명을 설문조사해 우리사회의 행복 문제를 비교학적으로 다룬 한국일보의 ‘저성장 시대 행복 리포트’의 다양한 입체적 시도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과 사진 보도 등을 다루는 전문보도 부문에서는 한국일보의 ‘한·중·일 청년리포트:3개국 38명의 청춘 이야기’가 이달의 기자상을 받게 됐다. 이 작품은 자칫 식상하기 쉬운 청년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로 내 주변의 생생한 이야기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온라인과 지면에서 공유하면서 개별 특성에 맞게 확장하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기획보도 방송부문에서는 적정 임금이 왜 필요한지를 독일 등 외국의 사례를 들어 설득력있게 제시한 ‘일자리, 땀을 보상하라’(KBS)와, 훈장 수여가 남발되는 실태를 고발한 ‘대한민국 훈장의 민낯’(JTBC)이 최종 심사 대상까지 올랐다. 아깝게 수상을 놓치기는 했지만 둘 다 언론의 공적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