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한겨레신문 사회부 방준호 기자
돌이켜보면 소박한 시작. 9월1일 김의겸 선임기자 제안으로 회사 한 켠 작은 회의실에 모여 앉아 ‘어떻게든 최순실 이름 석 자를 공적인 영역에 등장시키자’는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이제는 모두가 아는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부담스럽던 때였습니다. 드러낼 자신은 없었지만, ‘부를 수 없는 이름’이 이 나라에 존재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만큼은 모인 기자 모두가 공유했습니다.
방준호 기자가 우연히 케이스포츠재단에서 최순실씨 흔적을 발견한 뒤, 류이근 기자가 얻어 낸 ‘최씨가 대통령에게 지시하는 구조’라는 한 문장을 곱씹으며 팀원 모두 (지금은 모든 시민이 느끼고 있는)충격과 공허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어영 기자와 송호진 기자가 낯선 땅 독일에까지 미친 최씨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순간, 기자로서 기뻤지만 시민으로선 두려웠습니다. 고공과 현장을 오가며 특종을 발굴하는 동시에, 우리가 켠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진중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까지 책임진 김의겸 선임기자는 자주 새벽잠을 설쳤습니다.
‘최순실’이라는 불덩이는 넓고 뜨거웠습니다. 재벌, 문화, 교육, 법조, 국방, 의료…. 이해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벌어진 각 분야 수많은 일을 드러내는 데는 상을 받게 된 저희뿐만 아니라 <한겨레> 편집국 전체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지난 주말 또다시 수백만 촛불이 모였습니다. 촛불은 비선실세와 대통령을 향한 분노임과 동시에 저희 한겨레 특별취재팀원들에게는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취재 초기 느꼈던 충격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 관성이 되려는 고비마다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예민함을 배우고 되새기겠습니다. 또다시 달려갈 채비 하겠습니다.
회차 심사평
제314회 전체 총평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언론은 연일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하고 있는 대통령과 권력층 및 기득권세력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내내 무기력하고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언론들이 뒤늦게라도 용감하게 권력에 도전해 어둠의 그늘을 밝히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서, 기자상 심사를 앞두고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 위안을 받았다. 언론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사태뿐 아니라 국민을 억압하고 고통받게 하는 사회적 현안들을 적극적으로 파헤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켜주기를 당부한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일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각 언론사들의 끈질긴 취재와 고발정신으로 그동안 감춰졌던 비밀들이 연일 단독보도 형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번달 ‘이달의 기자상’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현장기자들의 땀이 배어있는 5편의 보도가 취재보도 및 전문보도 부문에서 기자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JTBC의 ‘최순실씨 국정개입사건’ 보도는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이를 고치는 등 국정 주요 사항들을 최씨가 보고받고 결정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최씨가 사용했던 태블릿PC를 입수해 밝힌 수작이었다. 이 보도 이후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최씨의 귀국과 검찰 출석 및 청와대 핵심실세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등 진실을 밝히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받았다. 좀체로 다시 나오기 힘든 특종으로 준비된 취재기자들의 열정에 행운까지 따르는 등 이론의 여지 없는 수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TV조선의 ‘최순실씨 인사예산 농단 및 대통령 사생활 관리 영상’은 장기간에 걸친 탐사취재를 통해 나온 특종보도로, 대통령 옷을 만드는 샘플실 CCTV 장면은 청와대 행정관을 개인비서처럼 부리는 최씨의 전횡을 영상으로 확인시키는 등 큰 반향을 낳았다. TV조선은 최씨가 국정과제인 문화융성의 틀을 짜고 인사예산까지 주무른 증거를 통해 국정농단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두 달 연속 기자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경향신문의 ‘최순실 독일 유령 법인 설립 및 안종범·차은택 광고사 강탈 사건’ 보도는 각종 자료와 승마협회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삼성과 최씨와의 연루 의혹을 최초 보도했고, 차은택씨 등이 재단 사업을 싹쓸이하고 광고회사를 강탈하려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고발한 수작이었다.
한겨레신문의 ‘최순실 게이트’보도는 최씨와 안종범 수석의 재단 사업 주도,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및 재학중 각종 특혜 제공, 두 재단의 증거인멸 및 대기업에 대한 강제 모금 등 여러 건의 단독보도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밝혀낸 일련의 특종보도였다.
전문보도부문에서는 두 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시사인의 ‘최초공개 최순실’ 보도는 사건 발생 2년 전인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정유라씨 경기장을 찾아 승마경기장에 온 인물들을 모두 촬영하는 등 발품을 판 ‘준비된 취재’를 통해 결국 최순실씨 사진을 언론 최초로 공개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동아일보의 ‘파도에 휩쓸렸다 극적인 구조’ 사진은 태풍 ‘차바’가 남부지방에 최초 상륙할 당시에 촬영된 것으로, 자연의 힘 앞에 한 없이 위태로워진 인간의 모습과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 역작으로, 일본 아사히신문 등 외신이 요청해 주요 사진으로 받아쓸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 출품한 MBC 충북 ‘두 얼굴의 LG, 41억 뒷돈 갑질 10개월의 추적’ 역시 깊이 있는 취재를 기반으로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와 비상식적인 갑질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호평을 받았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취재를 거부하는 이들을 상대로 끈질긴 취재를 함으로써, 검찰의 수사 및 기소, 실형선고 등 형사처벌과 추징금 부과 등을 이끌어냈고, 처벌과정에서 드러난 법률상의 문제를 짚는 등 열정어린 취재정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심사과정에서 그동안 계속된 권력의 탄압과 횡포에 굴하지 않고 부정부패 및 국기문란의 행태를 밝혀낸 일련의 보도들에서 언론의 정론정신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심사에서도 기자정신이 빛을 발하는 기사들이 많이 출품되기를 기대해본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