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수상 기자가 직접 쓴 1인칭 기록 6편
MB큰형 이상은 다스회장 인천공항 입국
MB큰형 이상은 다스회장 인천공항 입국
한겨레신문 김태형 기자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취재원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만 알리려 하고, 때로는 거짓말까지 한다.‘ 누구나 듣는 기자초년 시절의 교과서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단독으로 기사를 취재해내는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운이 더해지면 100%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하는 특별검사수사 시작과 함께 주요 사건 당사자인 이대통령의 큰형인 다스 이상은 회장이 출국금지 하루 전인 15일 업무를 이유로 중국으로 출국했다. 그런 이 회장이 10여일 만에 24일 중국에서 입국한다는 것이 특검을 통해 알려졌다. 이시형씨가 빌렸다는 6억이라는 돈의 출처와 경위를 밝혀줄 이상은 회장의 입국은 모든 언론의 관심거리였다.
최종적으로 24일 저녁 7시 경 중국 웨이하이를 거쳐 부산 김해공항으로 국적기를 타고 들어온다는 것까지 특검에 통보됐다. 그러나 마지못해 특검 조사에 임하는 이상은 회장이 곧이곧대로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서 데스크의 판단이 있었다. 미리 들어올 수도 있고, 부산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 공항출입기자단 사이에 흘러다니는 인천공항 낮 입국설이 더해졌다. 안전빵으로 부산에도 한명 보내고, 인천공항에도 한명 보낸다. 이걸 그냥 느낌, 시쳇말로 `촉‘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데스크의 몫이다.
당일 인천공항 입국장 게이트에서는 중국 웨이하이에서 30분 간격으로 들어오는 국적기 두편에 집중했다. 이미 부산으로 저녁에 온다고 특검에 통보했으니, 설마 이 두편 중에 하나를 타고 들어올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의외로 종편 두 군데 취재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낮 12시에 도착한 아시아나 항공편 입국자들이 들어오는 D게이트에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실물을 본적이 없으니, 보고도 놓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30분 후에 도착한 동방항공과 코드셰어한 대한항공 입국자들이 들어오는 C게이트로 옮겼다. 종편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는 50미터 정도 떨어진 D에도 계속 곁눈질을 했다. 순간 대부분의 승객들이 빠져나간 C게이트 안쪽 세관신고대 안으로 이상은 회장 `같은‘ 사람이 언뜻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특검에 출석할 때도 입고 있었던 감색 양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료사진에도 그는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를 보았는지 그는 C게이트가 아닌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밖에서 그가 걸아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가 C게이트로 다시 나오고 있었다. 기자를 피하려했던 것이다. 일단 망원렌즈로 몇 컷을 누른 뒤 그에게 달려갔다.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물어본 것이 단독 인터뷰로 이어졌다. 검찰 출석에 나선 이들이 `들어가서 성실히 말하겠다.‘ 수준의 대답 등이었지만, 이상은 회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는 충분했다. 그리고는 광각렌즈로 그를 따라붙으면서 그가 차량에 올라 공항을 떠날 때 까지 계속 취재를 이어갔다.
이상은 회장의 입국 모습이 직접 사진으로 언론에 보도돼지 않았다면, 특검 출석 전 며칠 동안 이상은 회장 측이 다른 피조사자들과 좀 더 편안하게 특검 조사에 대비했을 생각을 하니 이 사진 한장이 새삼스러워 보인다.
단독으로 사진 게재된 뒤 입국 정보에 대한 타사 동료들의 궁금증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특검이나 항공사에서 관련 정보를 한겨레만 알려줬다고 하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알 수 없는 데스크의 취재 지시 감각과 조그만 가능성에도 현장에 집중한 노력이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자부한다. 더불어 다른 취재처럼 가능성 적은 취재에 부족한 인원으로 그동안 함께 노력한 데스크와 부서원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여수시청 공무원 거액 공금횡령 KBC광주방송
여수시청 공무원 거액 공금횡령
KBC광주방송 박승현 기자
공무원 공금 횡령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80억 7700만 원.
여수시청에서 회계담당 업무를 맡은 8급 공무원이 지난 3년 동안 시 공금을 자신의 개인 쌈짓돈처럼 여기며 매달 2억 원 이상씩을 빼내갔다. 여수시는 감사원 적발 전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수사를 맡은 검찰은 이 공무원의 독특한 수법, 복잡한 돈거래와 허술한 인사·회계·감사 시스템에 혀를 내둘렀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의 취재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40대 부부의 단순한 교통사고에서 두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10월 10일,
남편 47살 김 모씨의 직업이 바로 여수시청 공무원이라는 점. 그리고 자살시도 원인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는다는 점이 교통사고 후속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직감적으로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빈약했다. 일단 정보라인을 총가동한 끝에 김 모씨가 회계업무 담당이라는 점, 그리고 감사원이 여수시청 회계분야에서 공금횡령 의혹을 포착하고 특별감사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을 추가로 알아냈다. 얽혀있던 실타래의 첫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횡령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를 끈질기게 이어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단서를 퍼즐을 맞추듯 한데 모아 결국 김 씨가 지난 3년 동안 여수시 급여업무를 담당하면서 매달 세무서에 납부해야 할 직원 소득세 2억 원 가운에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있었으며 심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해 묻힐 뻔한 사건이 공무원이 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횡령사건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단독보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건이 이렇게 일파만파 확산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KBC 보도와 함께 검찰 수사도 본격적으로 착수됐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수시 공무원의 횡령액은 당초 감사원이 조사한 29억 원에서 계속 불어나더니 지난 11월 18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최종 80억 77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지난 한달 간을 건국 이래 최대의 세도로 기록된 여수시청 공무원의 공금횡령 사건을 취재하며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이번 취재는 기자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따금씩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게 되면 어렵다거나 귀찮다나는 이유로 그 벽을 넘어서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사실을 넘어 드러나 있지 않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끈질기게 파고 든 이번 취재를 통해 기자로써의 제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마지막으로 항상 최고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묵묵해 다하고 있는 KBC 식구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급발진...그들은 알고 있다 KBS
급발진...그들은 알고 있다
KBS 이석재기자
지난 5월, 정부가 자동차 급발진을 규명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을 접했을 당시만 해도 우려보다는 기대가 컸습니다.
운전 미숙으로 결론을 내렸던 지난 1999년 정부의 첫 급발진 조사를 시점으로 이미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자동차의 전자화는 진일보했기 때문에 적어도 그 때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합동조사반의 조사위원 가운데 일부가 지난 99년 당시 조사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던 인사라는 의혹을 전해들은 뒤부터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일부 자동차 제작사 측 관계자들도 그런 이유로 이번 조사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않고 있다는 전언까지 접하면서 의혹은 증폭됐고, 특정 인물 3명의 이름만 확인되면 본격 취재에 착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그때부터 들었습니다.
문제는 16명이라는 조사반 내부 조사위원이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국토해양부도, 조사를 주도했던 교통안전공단 측도, 무슨 이유에선지 명단 공개를 거부하면서 취재는 답보 상태에 빠졌습니다.
진도가 나가지 않던 취재는 회사 동료인 정아연 기자가 문제의 명단을 정부 고위층으로부터 입수해 전달해주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 명단을 통해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고, 본격 취재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 내내 끊이지 않았던 고민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많은 언론사에서 이 급발진 아이템을 다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차별화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취재진은,
현 시점에서 시청자가 제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은,
EDR이라는 사고기록장치가 어떤 부품인지, 이 장치를 놓고 정부 조사반과 자동차 제작사, 급발진 추정 사고 운전자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합동조사반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지난 국정감사에서 어떤 증언들이 나왔는지 파악도 못한 채 방송 직전까지 온갖 꼼수를 부렸던 국토부 관계자의 행태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습니다.
방송 직후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각종 해명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해 급발진 추정 사고 조사가 앞으로도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조사반을 신뢰하지 않는 국회가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급발진 추정 사고 조사를 진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사(秘史)MB노믹스-이명박 정부 경제실록’
비사(秘史)MB노믹스-이명박 정부 경제실록
한국경제신문 차병석 기자
“다 끝난 이명박 정부의 경제비사(秘史)를 취재해 쓴다고? 그런 기사에 누가 관심 가질까?”
지난 5월초 ‘비사 MB노믹스’ 연재 기획안을 만들고, 막 취재에 들어가려고 할때 편집국내 상당수 선후배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앞으로 다음 대권을 누가 잡느냐가 초미의 관심인 때에 막을 내리는 정부의 경제비사가 독자들의 주목을 끌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취재팀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설령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를 사실(史實) 위주로 정리하고 기록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이자 정책인 MB노믹스의 성공과 실패를 엄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선 숨겨진 사실들의 발굴과 기록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기록문화가 척박한 우리나라에선 이런 비사를 취재해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기자들의 의무라고 느꼈다.
일단 취재를 시작하면서 두가지 확고한 원칙을 정했다. 첫째, 특정 사안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지 말고, 최대한 팩트(fact) 위주로만 당시 상황을 정리한다. 둘째, 정확한 팩트 확인을 위해 당시 사안에 관련된 사람을 최대한 많이 인터뷰하고, 인터뷰한 내용은 실명(實名)으로 인용한다. 우리가 의도한 것이 MB노믹스의 평가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명박 정부 5년간의 경제정책 비사를 기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정확한 사실만 기사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런 점에서 ‘비사 MB노믹스’ 취재의 90%는 인터뷰였다. 인터뷰한 대상만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전 정무수석, 박병원 전 경제수석,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등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와 경제부처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장관급과 핵심 당국자, 관계자 등 40여명을 망라했다. 이들을 수차례 만나 수시간씩 인터뷰한 녹취만 총 150여 시간 분량에 달한다.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정부의 정책 결정과정, 그것도 뒷얘기를 인터뷰에서 듣기는 쉽지 않았다. 현직은 물론 전직 관계자들도 상당수가 인터뷰 자체를 꺼렸다. 인터뷰에 응하더라도 정확한 증언을 부담스러워 했다. 특히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더욱 민감해 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MB노믹스의 정확한 실체를 기록으로 남길 기회가 없을 것’이란 논리로 설득해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증언도 청취할 수 있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입장에 따라 다른 증언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땐 더 많은 취재원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퍼즐’을 맞추는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취재원들의 증언중 공통 분모를 가려내고, 작은 팩트 하나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작은 실수로 부정확한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고, 취재원 등의 명예를 크게 훼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취재한 팩트들을 모아 주제별로 비사들을 재구성한 결과를 ‘비사(秘史) MB노믹스-이명박 정부 경제실록’이란 이름으로 2012년 9~10월 두달간 한국경제신문 화·목요일자에 총 18회 분량을 연재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특히 경제관료 경제학자는 물론 정치인 기업인 등 오피니언 리더층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한경 본사까지 직접 찾아와 연재물이 실린 신문 가판을 가져가 읽을 정도였다. 한 경제부처 차관은 매주 화·목요일 한경의 ‘비사 MB노믹스’를 읽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미흡한 기사에도 아낌 없는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또 임기중인 정부의 현직에 몸 담고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진실 기록을 위해 인터뷰와 증언에 나서주신 40여명의 핵심 취재원들의 용기와 정직함에 경의를 표한다.
필자들은 이 연재물이 이명박 정부 경제의 진실을 100%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과 여건, 그리고 취재팀의 능력 부족으로 MB노믹스의 일부분만을 사실에 가깝게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통해 채워주길 기대한다. 물론 한경 특별취재팀도 그런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높이 평가해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해주신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비밀회동 한겨레신문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비밀회동
한겨레 최성진 기자
지난해 11월30일이었다. <부산일보> 경영진은 이날 하루동안 윤전기를 돌리지 않았다. 부산일보 기자들이 신문에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에 관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였다. 재단법인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정수장학회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신문사 경영진에게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주요 일간지의 갑작스런 발행 중단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문제는 대선 이슈이기에 앞서, 한국 사회의 언론 민주화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마침 지난 1월 <한겨레> 토요판 출범을 앞두고, 정수장학회 문제에 관한 취재의 강도를 높였다.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 유족들을 만났고, 부산일보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정수장학회와 직·간접적 관계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이야기를 들을만한 거의 모든 사람과 접촉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정수장학회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결국 최필립 이사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난 2월4일치 한겨레(토요판 커버스토리 ‘정수장학회, 부산이 술렁인다’)에 실린 최필립 이사장 인터뷰 기사는 그런 취재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의 하나였다.
최 이사장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 가을부터 정수장학회 재산 처분에 관한 첩보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9월27일 최 이사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때 그는 “10월말쯤 되면 결승의 날이 다가오는 건데, 나도 한몫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수장학회가 준비해온 재산 처분 및 10월19일 기자회견 계획을 암시했다. 이날 전화 인터뷰는 <문화방송>(MBC) 민영화 및 부산일보 매각 계획 등에 관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비밀회동’ 기사를 취재 및 보도하는 데에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정수장학회가 어떠한 공론화 절차도 없이 극소수의 문화방송 간부 등과 밀실에서 추진해온 언론사 지분 매각 및 발표 계획은 한겨레 보도 이후 무산됐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문화방송 구성원이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문화방송 민영화 작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언론사 주식은 최필립 이사장 개인의 소유일 수 없다. 정수장학회의 재산 처분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화방송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당연히 국민적 동의 아래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여전히 설명돼야 할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1년간 수차례의 <한겨레>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최필립 이사장은 언론사 지분매각 계획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내놓아야 옳다.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은 과연 누구의 결정이었으며, 왜 이를 대선을 정확히 두 달 앞둔 10월19일 대형 기자회견의 방식으로 발표하려 했는지, 국민들은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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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고나무
‘진보언론’이란 형용모순이라고 가끔 생각합니다. 직업적 회의주의자가 기자직의 본질이라면, ‘진보적 회의’라거나 ‘보수적 회의’라는 형용이 얼마나 우스운 것일까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요새 제 화두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아래로 한걸음 더 깊이 파고내려가느냐 마느냐입니다.
그러던 차에 전두환 전 대통령 육사사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상했던대로, 많은 일간지에서 숱한 비판 기사가 쏟아져나왔습니다. 그것으로 된 것일까 자문했습니다.
한편 매년 10월 대구공고에서 열리는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는 어김없이 올해도 열릴 예정이었습니다.(실제로 열렸습니다)‘전두환과 그의 시대’가 남긴 유산의 현재와 과거를 <한겨레>가 제대로 조명했는지 자문했습니다. 남은 의혹을 파헤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8년부터 2012년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무수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무수한 보도가 있었는데도 그의 남은 재산에 대해 알려진 바 없는 현실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1988년 민주화 이후 전 전 대통령의 재산과 관련된 모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보도를 모두 검토했습니다. 두꺼운 단행본 2권 분량이었습니다.
이외에 80년대 출판되었다 절판된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관련 저서들을 찾았습니다. 이들 자료를 두세차례 숙독했습니다. 반복해서 읽자 ‘팩트의 구멍’과 ‘야마의 구멍’이 보였습니다.
과거 크게 보도되었으나 이후 추적보도가 없었던 재산논란 사례를 하나하나 엑셀파일에 저장해 추적보도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팔로업(follow-up)할 부동산과 비자금 관리자들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앵글의 빈공간도 찾았습니다. 과거 언론은 전재국, 전재용씨 등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가 재산만 취재했습니다. 저는 ‘전 전 대통령 재산의 비밀은 처가에 있다’는 취재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삽을 들이댈 팩트와 야마의 빈공간을 정한 뒤, 과업은 단순했습니다. 이후 한건한건 논란이 됐던 재산들의 현황 파악에 들어갔습니다.
‘88년 청문회 당시 이순자씨 소유 의혹이 제기됐던 땅이 처남을 거쳐 전두환 딸에게 증여됐다’는 팩트는 이같은 단순한 반복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잘 회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