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전문보도부문] ‘인간의 침략, 부서지는 백로들의 보금자리’ / 국민일보 사진부 구성찬
경기도 평택의 백로 집단서식지에서 불법공사가 이루어진다는 제보를 접하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잡초가 무성한 논두렁길을 지나갈 때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온 몸에 솜털이 남아있는 어린 쇠백로였다. 아직 날개를 펼칠 힘이 없는 희고 작은 새가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다급하게 사람을 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인기척에 놀라는 더 작은 새끼 백로가 보였다. 나무 위 둥지에서 날갯짓을 배우고 있어야 어린새가 논바닥 가장자리 풀섶에 몸을 웅크린 채 겁먹은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안쓰러움은 안타까움으로 변했고, 둥지를 잃은 어린 날짐승들의 몸짓 너머로 군데군데 숲이 파헤쳐진 맞은편 야산의 모습이 펼쳐지자 반드시 현장을 고발하겠다는 오기가 생겨났다.
행정당국의 눈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진행되는 불법공사와 숨바꼭질을 벌이기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숲속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백로들의 절규 같은 울음소리는 요란한 기계소음에 파묻혀버렸다. 논을 가로질러 접근한 현장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더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겁먹은 어린 백로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미새의 다급한 날갯짓은 굴삭기의 무지막지한 삽질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서글픈 철거민들은 보금자리를 잃은 채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공사현장을 향해 있는 망원렌즈를 발견하고 공사관계자들이 다가왔다. 슬며시 공사를 중단하며 갖은 이유를 들먹이며 취재를 막는 그들의 훼방에도 셔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논두렁을 헤매고 있는 어린 백로들의 모습이 가져온 분노 때문이었을까? 어린새들의 집을 앗아간 장본인들에게 현장취재는 적극적인 항의였고 결기어린 시위였다. 신문 보도 이후 불법공사는 전면 중단됐고, 지금은 훼손된 숲에서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이제 어린 백로들이 더 이상 논두렁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이번 취재는 도시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는 현장에서 회복할 수 없이 사라지는 풍경을 안타까워한 한 현지주민의 제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발이익보다는 새들의 안식처를 소중히 여긴 주민분의 용기 있는 결단이 숲과 그 속에 깃드는 생명들을 지켜냈다. 사람들의 과욕이 여름철새들의 소중한 생명의 터전을 난개발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린 만큼 그곳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공존을 고민한 사람들의 결의였다. ‘자연은 다음 세대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라는 미국 인디언들의 격언이 떠오른다. 앞으로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내야 할 생명의 공간들을 차분하게 관찰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본다.
회차 심사평
제214회 전체 총평
제214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김종철(한겨레신문)
촛불집회가 6월 내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탓일까? 이번 달의 기자상 출품작은 모두 27편에 그쳤다. 그동안 많을 때는 40건을 넘었던 데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였다. 15편이 본심에 올라 최종적으로 8건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국민일보의 ‘경찰, 여성 시위자 전투화로 밟아 파문 확산’과 KBS의 ‘미 쇠고기 도축장 특별점검 축소 발표 및 부실점검 실태 고발’ 두 편이 뽑혔다. 국민일보의 ‘경찰, 전투화 밟아…’는 사건 현장에 우연히 있었던 행운이 따른 일회성 기사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촛불집회 초기 경찰의 강경 진압 분위기를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보도라는데 의견이 대부분 일치했다. 특히 취재 영상을 인터넷으로 즉각 보도함으로써 휴일에 신문이 쉬는 한계를 극복한 점은 복합 미디어 시대가 나아갈 길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이었다. KBS의 ‘미 쇠고기 부실 점검…’도 정부 활동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보 공개 청구와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끈질긴 취재 등을 통해 정부 발표 이면에 숨겨진 문제점을 잘 파헤쳤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광우병 쇠고기 파동 속에서 나온 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이며, 상을 받을 만큼 내용이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뽑힌 세계일보의 ‘정신 장애인 인권 리포트’를 두고도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사회적으로 절실한 잇슈를 해외 사례까지 풍부하게 취재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으며, 기사에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는 의견이 있은 반면에 탐사기획보도에 걸맞은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부족할 뿐 아니라 제목 등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번 달에도 ‘지역취재보도부문’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9건이 출품돼 본선에는 4건이 올라갔다. 최종적으로는 KNN의 ‘불법 판치는 의료생협’ 한 건만이 당선됐다. 이 작품은 자칫 옥석 구분없이 의료생협은 모두 문제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소재를 다룬 데다가 빗나간 일부 의료생협의 실태를 최초로 의제화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비록 표결에서 아깝게 탈락하기는 했지만, 부산 MBC의 ‘일그러진 불사’와 남도일보의 ‘광주광역시 의원 사회복지법인 허가 비리’는 지역 사회의 성역인 대형 종교기관과 유력 지방 의원의 비리를 용기있고 끈질기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일그러진 불사’의 경우 2006년 12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선행보도가 있었다는 점이, ‘광주광역시 의원 비리’는 유사한 지방 의원 비리 보도가 많이 있었다는 점 등이 각각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기획 신문 통신 부문’에 올라온 충북일보의 ‘세계 최고 소로시 볍씨 잊혀지나’는 당국의 소홀한 문화재 관리에 경종을 울리고 지역민들의 관심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지역기획 방송 부문’에서는 KNN의 ‘HD다큐멘터리 3부작 고인돌 루트’가 학문적인 검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특히 고인돌을 고대문명 교류라는 비교문화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점과 세계 6개국의 고인돌을 직접 현지 취재해 풍부한 내용을 담은 점, 아름다운 영상 등이 호평을 받았다.
‘전문보도 부문’에서는 모처럼 수작이 나왔다. 이달의 출품작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국민일보의 ‘인간의 침략, 부서지는 백로들의 보금자리’가 그것이다. 백로 둥지가 불도저의 거대한 삽질에 의해 파괴되는데도 백로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잘 포착함으로써 보도 사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평이었다. 또 파괴 현장을 연속적으로 담아내 다큐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중앙일보 은퇴 기자들이 만든 ‘다시 뛰는 실버 재취업한 6070’은 특별상을 수상했다. 은퇴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 나선 한국 언론 최초의 시도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노인들의 재취업 현황과 문제점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도한 점도 신선했다. 그러나 일회성 기사인데다 은퇴 선배들을 단순히 한번 활용한 것 뿐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이번 특별상 수상을 계기로 은퇴 기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지면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언론계 전체가 고민할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