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 진다". 그랬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47년간 품어왔던 북한 남편 상봉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 외국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북한당국이 정권 출범 후 외국인을 초청해 이산가족과의 상봉을 허용한 것 자체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물론 운이 많이 따랐다. 그러나 행운이 절로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홍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기자가 독일 특파원이었던 2006년 가을이었다. 그는 독일동부의 대학도시 예나의 교민사회에선 알려진 분이었다. 생이별한 남편이 북한출신이란 인연 때문일까. 현지 한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때론 자상한 후견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와의 접촉을 그는 처음엔 망설였다. 그해 말 북한방문을 추진하던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 북한대사관이 불편해 할 것이라는 걱정때문이었다.
10월경 다시 할머니에게 문안전화를 드렸다. 그의 목소리가 축 처져있었다. "도와 주세요." 그 즉시 할머니를 만나러 예나로 달려갔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 유학생을 통해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크게 낙담하고 있던 터였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상심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했다. 기자는 "신문에 크게 보도하면 반드시 남편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말았다. 그런 부담감 때문에 기사를 송고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한국에서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국내 언론은 침묵했다. 오히려 낭보는 독일에서 흘러나왔다. dpa 통신이 중앙일보 기사를 인용해 본국에 타전하면서 독일언론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체계적인 여론형성 작업에 나섰다. 독일정부, 적십자사, 북한 대사관에 청원서를 돌리고 평소 친분이 있던 독일 유력지 기자들을 찾아나섰다. 기자는 이들에게 자료제공을 하며 기사화를 부탁했다. "홍 할머니사연은 세기적인 러브스토리에다 인도주의적인 소재, 더욱이 북한문제가 얽혀있는 완벽한 기사거리"라고 설득했다. 대다수가 수긍했다. 덕분에 독일 유력지인 die Welt, SZ, FAZ가 보도를 이어나갔다. 당시 독일을 찾았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첫 결실이 나왔다. 남편 홍옥근씨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특종보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홍 할머니를 한국에 초청한 일은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금강산·판문점 방문, 적십자사 총재 및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할머니는 상봉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홍할머니 부부가 44년만에 편지왕래를 재개했다는 희소식을 접했지만 상봉을 위해서 보도를 미뤘다. 다시 1년간 가슴졸이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은 최대고비였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마침내 지난 7월25일. 기자는 평양에서 " 레나테 할머니 일가가 가족상봉을 했다"는 짧은 메일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2006년 11월14일 첫 보도가 나온지 18개월여만이었다.
회차 심사평
제216회 전체 총평
제216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허승호(동아일보)
제216회(8월) 이달의 기자상에는 7개 부문 37건의 기사가 출품돼 7건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전체 37건의 작품 중 예심을 통과한 것은 19건이다.
11건이 출품된 ‘취재보도’ 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청와대, KBS사장 인선 비밀대책회의’, 중앙일보의 ‘레나테 홍 할머니 47년 만에 평양에서 남편 상봉’, 한겨레신문의 ‘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등 3편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KBS 비밀대책회의 보도의 경우 첩보를 접한 취재팀이 끈질긴 취재 끝에 부적절한 형태의 모임이 열렸음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으며 급기야 모임에서 오간 대화 내용까지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전형적인 특종 보도로 16명 심사의원이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레나테 홍’과 ‘군 불온서적’ 보도는 각각 13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표를 얻었다. 레나테 홍 보도의 경우 2006년 11월 중앙일보가 첫 보도를 한 이래 2007년, 2008년에 걸쳐 총 59건의 관련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덕분에 남북 이산가족 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가 됐으며, 결국 가족 상봉을 이뤄내는 결실까지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 불온서적 보도는 대학교재나 문화부 선정 우수학술도서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사실을 취재한 사회적 파장이 큰 기사였다고 평가됐다.
취재보도 부문에서 유치인의 자살을 예방한다는 취지로 끈이 있는 브래지어를 압류하는 경찰의 규정은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경찰, 촛불집회 여성연행자 속옷 탈의 강요’(한겨레신문) 기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이에 대해 브래지어 탈의는 촛불집회 여성 뿐 아니라 모든 여성연행자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적어도 이를 문제 삼으려면 여성유치인 인권 일반의 문제로 보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해당 규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반론이 많았다.
기획보도 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정부수립 60주년, 국가를 묻는다’와 국민일보의 ‘벌금 90만 원의 비밀-정치인 재판 대 해부’ 등 2편의 기사가 각각 12표를 얻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가를 묻는다’ 기사는 ‘인물선정이 작위적이고 접근방식이 단정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으나 ‘국가-개인의 관계’라는 무거운 주제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웃이나 주변인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터치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뒤집지 못했다.
‘정치인 재판’ 기사는 그동안 각 매체에서 수 없이 지적돼온 문제이지만 전수(全數) 조사에 가까운 400개의 판결문 수집을 통해 정치적 면죄부 판결이 이뤄지고 있음을 계량적으로 확인시켰다는 대목이 높이 평가됐다.
지역취재보도 부문에서는 아쉽게도 수상작이 없었다. 제주MBC의 ‘여름철의 공포, 중국 가시파래’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훌륭한 기획이라는데 이견이 없었으나, 가시파래가 과연 환경오염과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오는 문제인지 분명치 않아 긴 논란 끝에 탈락했다.
지역방송부문에서 전북CBS의 ‘조류독감 기획리포트, 앵무새의 경고’가 15표, KNN의 ‘낙동강 불법매립 탐사보도’가 12표를 각각 얻어 2편의 수상작이 결정됐다.
전형적인 탐사기획보도인 ‘앵무새의 경고’는 지역언론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심도와 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 발견된 조류독감(AI)이 남방형으로 밝혀진 만큼 당국은 AI와 앵무새 등 관상조류 밀수와의 관련성을 밝혀내고, 밀수를 근절시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적절히 제시했다는 점도 돋보였다.
‘낙동강 불법매립’은 부산일보가 출품했으나 탈락한 ‘무단점용 불법형질변경’과 취재원 및 분석방법이 같았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두 기사가 독립적으로 진행된 별개의 보도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으며 각 기사의 완성도만 따지기로 했다. 그 결과 ‘낙동강’ 기사가 하천부지라는 소재의 신선함, 불법매립과 형질변경 과정에 대한 취재의 치밀성, 당국의 묵인 및 유착 흔적 등을 종합적으로 밝혀낸 점에서 좀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