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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자연 친필 문건 단독 입수 및 속보, 기획보도
취재후기
(223회) 故 장자연 친필 문건 단독 입수 및 속보, 기획보도 / K…
“어디서 난거냐? 쓰레기통 뒤졌겠지 뭐.”
“뭐, 그 비슷한 거에요.”
아차 싶었다. ‘문건 유출 경위’를 넘겨짚는 질문에 그만 덜컥 시인을 해 버린 것이다.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는 9시 뉴스가 나간 직후, 타 언론사 선배에게 받은 전화였다. 절대 비밀로 했어야할 사실이었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당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쓰레기통에서 문건을 입수했다는 사실이 몇몇 지인들을 통해 타사에 알려졌지만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故 장자연 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가 일부러 KBS에 제공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니, 소문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믿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논란을 덮으려는 현 정권의 음모라는 설까지 떠돌았다.
“우리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모르겠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장자연 리스트’를 찾아오라며, 유장호의 사무실에 취재를 보냈던 바이스 캡 곽희섭 선배가 내게 물었다. 우리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는 다음날 갑자기 꾸려진 수사본부와, 그 앞에 벌떼같이 몰려든 취재진을 보고서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울먹거리며 문건이 도대체 어디서 났냐고 묻던 유장호 씨는 급기야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지도 못한 나는 덜컥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얼떨떨한 나에게 사건팀 데스크 박태서 선배가 한 마디 던지셨다.
“이런 취재는 진짜 분노하면서 해야 하는거야.”
마음을 다잡았다. 저항할 수 없는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약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증거 자료였다. 다들 그러려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수면위로 절대 떠오르지 않았던 연예계의 어두운 그늘이 세세하게 묘사된 문건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오랜 취재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최고의 취재팀도 새로 구성됐다. 분노해야할 대상도 명확했다. 그렇게 취재가 ‘본격’ 시작됐다.
“어떻게 13분만에 문건을 입수한거죠?”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 10분 정도는 촬영을 했으니 3분정도 쓰레기를 뒤진 것이다. 너무 빠른가? 반문해봐도 당시에는 답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봉투 안에 다른 쓰레기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금방 찾았다.
이렇게, 취재를 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취재를 ‘당했다’. 문건 ’입수 과정’과 문건에 나와 있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한 타사의 취재였다. 우리 방송사 피디가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생면부지의 타부서 선배들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피곤한 일이었지만 타사의 취재기법에서도 많은 걸 배웠고, 취재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어떤지 역지사지로 이해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경쟁사의 보도는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이례적으로 문건 입수 경위를 리포트를 통해 공개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경찰이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를 비판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모든 언론사가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왜 경쟁사의 힘 빼기에만 주력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운 점은 있다. 나중에 혹시나 경쟁사에 낙종을 하게 되더라도 이성을 잃지 말고 냉정하게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기회가 또 올것 같냐?”
취재팀의 총지휘자 시경 캡 이영현 선배가 그동안 우리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앞으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를 공유한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그동안 스트레스와 피곤에 지친 나를 말없이 다독여주고, 연예지 근무 경험과 인맥을 살려 외곽 취재는 물론이고 각종 정보까지 아낌없이 제공해 이번 보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김 모 기자에게, 항상 미안하고 또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故 장자연 씨의 명복을 빕니다.
이 회차 수상작 2009년 3월
제223회(2009년 3월)에서 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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